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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을 위하여--박완서 소설

맑은 바람 2021. 10. 3. 23:47

박완서소설/문학동네/초판발행 2013.6/읽은때 2021.9.29~10.3

박완서(1931~2011) 향년 81세
(7-9)"나도 사는 일에 어지간히 진력이 난 것 같다. 그러나 이 짓이라도 안 하면  이 지루한 일상을 어찌 견디랴."
"웃을 일이 없어서 내가 나를 웃기려고 쓴 것들이 대부분이다. 나를 위로해 준 것들이 독자들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이 짓'이 내게는 필사하는 거)

**그리움을 위하여
(13)죽는 날까지 잃고 싶지 않은 가장 소중한 걸 대라면 서슴지 않고 보행의 자유를 대겠다.
(43~44)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도 춥지 않은 남해의 섬, 노란 은행잎이 푸른 잔디 위로 지는 곳, 칠십에도 섹시한 어부가 방금 청정해역에서 낚아 올린 분홍빛 도미를 자랑스럽게 들고 요리 잘하는 어여쁜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풍경이 있는 섬. 그런 섬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에 그리움이 샘물처럼 고인다.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다. 그동안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았다. 그릴 것 없이 살았으므로 내 마음이 얼마나 메말랐는지도 느끼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은 내년 여름엔 이모님이 시집간 섬으로 피서를 가자고 지금부터 벼르지만 난 안 가고 싶다. 나의 그리움을 위해. 그 대신 택배로 동생이 분홍빛 도미를 부쳐올 날을 기다리고 있겠다.

**그 남자네 집
(46)온갖 편리한 기능이 구비되고 투자 가치까지 보장된 아파트에 살면서 줄창 이게 아닌데 싶었다면 이게 아닌 저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만의 비밀스럽고 고유한 추억이 점점 안 중요해지다가 마침내 아무것도 아닌 게 돼 버리는 텅빈 느낌이 아파트 탓이 아니듯이 땅집이라고 그런 것을 저절로 품고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60)그 남자네 집을 보러 가던 날: 세종로의 은행나무들이 자기 안에 깊숙이 숨어 있던 노랑 중 최고로 순수한 금빛을 환장을 한 것처럼 한꺼번에 분출하던 날
(65)포장마차에서:
"아저씨 접때 먹은 힘줄은 그래도 양키 군화 삶은 정도의 누린내는 나던데 이번 건 영 아냐. 꼬랑내만 조금 나는 게 혹시 마루밑에서 옛날에 신던 아저씨 구두를 주워다 과낸 거 아뉴?"
"아차,그런다는 게 그만 우리 어머니 고무신을  훔쳐다 삶아 냈는지도 모르겠네."
두 남자가 낄낄거렸다. 화음이 잘 맞는 웃음소리였다. 나는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들이 주고받는 수작을 지켜보았다. 뜻밖에 요새 읽은 책 얘기를 했다. 둘이서는 서로 책을 빌려보는 사이인 듯했다. 나는 그들이 나를 의식하고 꼴값을 떠는구나 하고 같잖게 생각했다. (ㅎㅎㅎ)
(67)그 남자가 국군에 입대했다가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왔을 때:그 큰 집에 늙은 어머니 혼자 달랑 남아 있었다. 그동안에 파파 할머니가 돼 버린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는커녕 무슨 효도를 보려고 자기를 기다렸느냐고 드립다 구박만 했다. 저 노모만 없었으면 얼마나 자유로울까. 그 생각만 하면 숨이 막힐 것 같아서 요새도 맨날맨날 구박만 한다고 했다. (자식사랑은 요기까지만! 다 큰 자식에 대한 사랑은 어디까지나 짝사랑일뿐인 것을--)
(68)그 남자에 대한 나:나는 그날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내 몸에 위험한 바람이 들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마치 길가다 강풍을 만나 치마가 활짝 부풀어오른 계집애처럼 붕 떠오르고 싶은 갈망과 얼른 치마를 다독거리며 땅바닥에 주저앉고 싶은 수치심을 동시에느꼈다.
(69)애인:남이 쳐다보고 부러워하지 않는 비단옷과 보석이 무의미하듯이 남이 샘내지 않는 애인은 있으나 마나 하지 않을까. 그가 멋있어 보일수록 나도 예뻐지고 싶었다.
(73)그는 시를 좋아할 뿐 아니라 외우고 있는 시가 많았다. 가로등 없는 골목길을 오 리를  십 리, 이십 리로 늘여서 걸으면서, 삼선교의 포장마차집의 새파랗고도 어둑시근한 카바이드 불빛이 무대조명처럼 절묘하게 투영된 자리에서 그는 나직하고도 그윽하게 정지용, 한하운의 시를 암송하곤 했다.(연애하기 딱 좋은 분위기!)
---그 암울하고 극빈하던 흉흉한 전시를 견디게 한 것은 내핍도 원한도 이념도 아니고 사치였다.시였다.
(79)왜 난 그 남자와 결혼을 하지 않았을까?:
나는 작아도 좋으니 하자 없이 탄탄하고 안전한 집에서 알콩달콩 새끼까고 살고 싶었다. 그의 집도 우리집도 사방이 비 새고 금 가 조만간 무너져 내릴 집이었다. 도저히 새끼를 깔 수 없는 만신창이의 집,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 새끼를 위해 그런 집은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마흔아홉 살
(98)그들 남매는 '어릴 적 추억이 어린, 낡았지만 뜰이 넓은 부모님의 집을 좋아했다.

(우리 손녀들의 기억에도 친조부모의 집이 이렇게 새겨질까?)
(107)모든 인간관계 속엔 위선이 불가피하게 개입돼 있어. 꼭 필요한 윤활유야.

**후남아, 밥 먹어라
(121)뭐니뭐니 해도 아내를 가장 생기있게 하는 건 태평양을 바라볼 수 있는 비치로 피크닉을 가는 거였다. 그는 비치에 가잔 소리를 지구가 아직도 둥근가 보러 가자고 했다. 그는 농담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다. 사랑이 그를 농담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136)맑은 시냇물이 졸졸 새처럼 지저귀며 길을 따라오고 있었다.
(136-2)"후남아, 밥 먹어라. 후남아, 밥 먹어라."
어머니가 저만치 짧게 커트한 백발을 휘날리며 그녀를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아아 저 소리, 생전 녹슬것 같지 않게 새되고 억척스러운 저 목소리, 그녀는 그 목소리를 얼마나 지겨워했던가.
(138)녹물은 안 들었는지 몰라도 밥 뜸 드는 냄새에는 무쇠 냄새도 섞여 있었다. 매케한 연기 냄새도, 연기가 벽의 균열을 통과하면서 묻혀온 흙냄새도 그 모든 냄새와 어우러진 밥뜸 드는 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아 이 냄새, 이 편안함, 몇 생을 찾아 헤맨 게 바로 이 냄새가 아니었던가 싶은 원초적인 냄새, 이열치열이라던가 음식 때문에 뒤집힌 비위를 부드럽게 위로하는 이 편안한 냄새, 어머니는 왜 아무 연고도 없는 이리로 왔을까. 나는 또 생전 처음 맡아보는 이 냄새가 왜 이렇게 좋은가.
---후남이는 알맞게 부숭부숭하고 따끈한 아랫목에 편안히 다리 뻗고 누웠다. 그리고 평생 움켜쥐고 있던 세월을 스스로 놓았다. 밥뜸 드는 냄새와 연기 냄새와 흙 냄새가 어우러진 기막힌 냄새가 콧구멍뿐 아니라 온몸의 갈라진 틈새로 쾌적하게 스며들었다.(외국으로 시집가서 몸 편안히 살면서도 바짝바짝 마르는 원인은? 향수병!)

**거저나 마찬가지
(153)남의 몸이 다치거나 아파하는 걸 차마 못 보는 측은지심은 어디서 배우거나 흉내낸 교양이 아니라 타고난 천성 같은 거--
(158)번역자가 내 이름으로 돼 있지는 않지만 내 글솜씨가 분명한 글이 아름다운 삽화와 함께 미려한 책이 되어 서점에 나온 걸 어루만져 보는 맛은 섭섭하고도 대견스러웠다. 돈 되는 일보다 돈 안 되는 정체모를 일거리가 더 많이 끼어들었는데도 그 일에는 마약같은 중독성이 있었다.
(165)먹어도 먹어도 남고 나눠도 나눠도 남는 게 농사라고 할머니는 가는 눈을 뜨고 자랑했다. 땅이 화수분이야. 할머니의 말버릇이었다.---거저나 마찬가지 집에 사니 생활비도 훨씬 덜 들어 거저 사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사람잡는 '거저나 마찬가지'라는 말, 거저면 거저고 아니면 아닌 거~그 애매한 표현이 사람의 발등을 찍는다.)

**촛붉 밝힌 식탁
(시골생활을 접고 아들네가 사는 곁으로 이사 온  노부부-그들이 들락거리는 게 싫어 문을 걸어 잠그고 열어 주지 않는 아들네 식구들--짝사랑은 일찍 접을수록 실망과 상처가 적은 법인데 노인들이 순진하기는--)

**대범한 밥상
(남의 일에 찧고 까부는 천박스런 인간들 속에 꿋꿋하게 상식을 넘어선 두 노인의 씁쓸한 이야기:무수한 소문을 귓등으로 들으며 비행기 사고로 한꺼번에 딸 잃고 아들 잃은 홀아비 바깥사둔과 영감 없는 안사둔이 한집에 기거하면서 손자손녀를 길러내 유학까지 보낸다. 그 바로 뒤 바깥사둔이 제 손발의 일부 같던 자전거 사고로 사망한다. 어찌 이걸 사고라고 볼 수 있겠는지?)

**친절한 복희씨
한때는 집안의 식모였지만 지금은 어엿한(?) 마누라로 살고 있는 복희씨의 심리이야기:
(남편은 중풍에 걸렸다.)
(224)그는 중풍에 걸려 오른쪽 반신이 흐느적대고, 제 입안의 침도 잘 수습하지 못한다.
(225)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게 이상인 단순한 남자가 늙고 병들어 썩은 포대자루처럼 처져 있는 걸 보면서 나는 측은하단 생각이 들기보다는 기괴한 환상에 시달린다.--저 남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가 거침없이 말할 때도 그의 생각은 주로 욕망에 관해서였다. 물욕 식욕 성욕이 남보다 강하고 그걸 표현하는데 망설임도 수치심도 없었다. 말로도 행동으로도 그런 욕망을 채울 길이 막혀버린 지금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은 무슨, 그의 속이 텅 비어 있다고 생각해도 불안하고, 텅비었다고 생각하고 그 안에다 뭘 자꾸자꾸 쑤셔 넣고 싶어하는 나는 더 불안하다. 내가 불안한 건 그가 아니라 나다.
(237)(60, 70년대  '단봇짐'을 싸가지고 서울로 서울로 올라오던 소녀들의 삶의 한 토막, 복희 이야기, 그래서 그 당시 우리들 입에 올랐던 단어들이 심심찮게 씌었다)
(239-240)하숙집 군식구 중 하나인 대학생 청년:나는 그때 처음으로 옷이나 음식 외에 표정에도 고급스러운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내 손이 가늘게 떨렸다.--나는 내 몸이 한 그루의 박태기나무가 된 것 같았다. 봄날 느닷없이 딱탁한 가장귀에서 꽃자루도 없이 직접 진홍색 요요한 꽃을 뿜어내는 박태기나무.--내 얼굴은 이미 박태기꽃 빛깔이 되어 있을 거였다.---대학생이 나를 염려해 준다는 걸 알고부터 내 몸은 날로 귀해졌다.--생전 처음 느껴보는 신비 체험이었다.--내 몸이 자꾸만 귀해져서 천사처럼 날아오를 것 같은 황홀감을 느낄 적도 있었지만 내 혼자 생각이었다.
--임금님에게 잡혀본 손목을 비단수건으로 싸매고 죽을 때까지 보물처럼 모시었다는 왕조시대의 어떤 기생처럼 그 기억은 내 마음 속에 신전이 되어 있었다.
(죽을 용기가 생기려면 얼마나 오랫동안 담금질을 해야 할까? 남편이 중풍 걸린 주제에 약국에서 정력제를 사오라는 얘기를 듣고 복희는 죽고 싶을 만큼 수치스러웠지만 고작 강물에 양귀비통을 던졌을 뿐이다)

**그래도 해피엔드
(우리 사는 얘기-버스 안에서, 전철 안에서 늘상 보고 겪는 얘기를 이 작가는 어찌도 이리 능청맞게 잘 그려낼 수가 있을까?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273)남편에게 어머니의 땅이 신포도라면, 어머니에게 자식들은 땅  네 귀퉁이에 말뚝박고 줄 매서 흔드는 도깨비가 아니었을까.
(275)부모자식 간에도 자유를 사고 팔 수 있게 하는 게 돈의 힘
(277)노인네들이 식탐도 많고 예상했던 것보다 양도 큰 것에 놀랐다. 헌 부대에 곡식이  더 많이 들어간다는 옛말을 실감케 했다.
(281)잘 생긴 백자볼에 풍성하게 담아놓은 잡채는 황백 알지단에 석이버섯 채 친 것, 실백까지 웃고명이 알맞게 올라앉아 아무도 손을 대거나 맛을 볼 수 없도록 고상을 떨고 있다.
(289)이혼한 아들의 말:어느 날 내가 멀미를 내고 있다 보니 그 친구도 멀미를 내고 있더라구요. 멀미 나는 차는 빨리 내리는 게 수지 누가 먼저 멀미가 났냐는 따져서 뭐하게요.
(295)이혼한 며느리의 변:연애할 때나 신혼  때는 서로 약속 안 하고도 그런 게 척척 맞았다니까요.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서로 그렇게 텔레파시가 통하게 돼 있는 거 아닌가요. 연애도 아마 그 재미에 했을걸요. 그게 안 통하고부터 우린 서로의 사랑을 의심했고 같이 살 까닭도 못 느끼게 된 거죠.

**빨갱이 바이러스
(306)홍수가 아흔 노인을 싣고 간 마을:앞벌 논배미 사이를 흐르는 도랑들도 격류로 변해 물소리가 요란한 데도 이 옴팍한 마을에 고인 적막은 어쩌지 못한다. 적막이라기보다는 온세상의 침묵이 다 모여서 짜고 짠 것 같은 견고한 침묵이다.세 여자들이 툇마루에 걸터앉아 아늑한 동네와 나의 시골집을 찬양하고 선망하느라 떠들썩하지만, 철통같은 침묵의 겉껍질을 흐르는 물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335)(좌익에 물들어 그 형에게 살해되어 마당에 묻힌 삼촌--그 비밀을 안고 사는 나/
바람난 여자--젊은 남자에 눈 멀어 손주를 죽게 한 여자/

불구 자식을 버린 여자--자원봉사자를 가장하고 정기적으로 자식을 찾아보는 여자

그들과 빨갱이 바이러스는 무슨 상관일까?)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이 글은 소설이라기보다 자전적 내용을 담고 있는 듯하다)
(342)중풍으로 쓰러진 할아버지:식구 중 누구보다 '나'를  사랑했던 이유는 내가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기 때문이었나 보다/사족을 잘 쓰지 못하게 되면서 할아버지는 각설이 타령이나  동냥 중을 반겼다./불쌍한 할아버지, 그때 할아버지에게 위로가 된 건 그들의 신바람이나 덕담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끼쳐 오는 타관의 냄새가 아니었을까. 내가 할아버지 두루마기 자락에서 대처의 냄새를 즐겼듯이.
(353)매동학교시절:인왕산 자락의 아이가 사직동에 잘사는 친척의 도움을 받아 주소를 옮기고 매동학교에 합격한다. 고향에서는 8살 이전에 천자문과 언문을 뗀 신동이었으나 서울에서는 일본어를 따라가지 못해 졸지에 열등생이 된다.
(354)공부도 못하는 데다가 산동네 아이 티가 더덕더덕 나는 촌스러운 옷차림을 한 아이는 자연히 외톨이 신세였다. 동네아이들과 다른 학교를 다니니까 으슥한 인왕산길을 혼자서 등하교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걸 즐기면 즐겼지 무섬을 탄 것 같지도 않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마음껏 공상을 할 수 있었다. 그 길은 어린 날의 나의 꿈길이었다. 구질구질한 산동네와 나보다 잘난 아이만 있는 교실로부터의 해방구였다.
(영천 살 때 남동생은 인왕산자락을 타고 경복고등학교를 다녔다.
차비를 다른 데 쓰고 걸어다니는 데 재미를 붙였던 게 아닌가 싶다.
효제국민학교를 다니던 동생들을, 명문 수송국민학교에 집어 넣어 일류중학교에 보낸 우리 어머니! 소학교 문턱도 밟아 보지 못한 어머니의 그 교육열은 어디서 나온 걸까?)
(357)증언의 욕구:('세상에 예쁜것'이라는 산문집에서 작가는  '나는 왜 소설가인가'라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막내까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집에 잔 손 갈 일이 없어지자 비로소 이제부터라도 엄두를 내야 할 것 같은 엄청난 욕구가 내 안에 있다는 걸 느꼈다. 그 걷잡을 수 없는 욕구는 증언의 욕구였다.
(359)남편과 아들의 죽음: 88서울올림픽으로 온 국민이 활기와 환희, 새로운 희망과 자신감으로 의기충천해 있을 때, 그 한 해 동안에 나는 남편과 아들을 석 달 간격으로 잃었다. 남펀이 먼저였다./남편의 영정을 머리맡에 두고, 여보  나 좀 데려가 줘요, 하는 소리만 주문처럼 외고 살았다. 그런 지 석 달 만에 남편이 데려간 건 내가 아니라 아들이었다. 나는 겁없이 그런 주문을 왼 내 입술을 짓찢어도 시원치가 않았고 내 소원에 그런 어깃장으로 답한 남편이 꼴도 보기 싫어 당장 영정사진을 치워버렸다.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사별한 남편 이야기)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참척의 아픔을 시대의 환부에 담아냄)
(360)하느님과의 대결에서 깨달은 것:피조물은 길든 짧든 창조주가 정해준 수명에서 일 초도 더하거나 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박완서 문학의 가장 깊은 이해자인 김윤식은 박완서 문학의 핵심을 '기억과 묘사'로 요약하고, 박완서 소설의 "유려한 문체와 빈틈없는 언어 구사"에 '천의무봉'이라는 표현을 얹어준 바 있다.

모든 작품들이 그저 물흐르듯이 흘러가되, 암중모색의 저 고독한 시간들을 거쳤을 낱낱의 단어와 문장 들은 두터우면서도 엽엽하다.--문학평론가 정홍수

 

(2008년 9월 9일에 독후감을 쓴 게 있었다. 그때 읽은 책은 '친절한 복희씨'였는데, 같은 내용을 제목만 바꿔 '그리움을 위하여'로 다시 나왔다. 속은 기분이 들어 슬그머니 불쾌감이 스며든다.
기억 속에는 이미 한 줄도 남아 있지 않아 재미있다고 필사까지 하며 읽은 주제에---
하기사 읽은 지 10년도 더 된 책이니 까마귀 정신이 기억할 리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