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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맑은 바람 2021. 12. 21. 22:11

독일 첫 여성 총리
니콜 슐라이 지음/서경홍 옮김/문학사상/2006년1월 초판 발행/250쪽/읽은 때:2021년 12월18일~12월 21일
(이 책의 원서는 독일 총선 와중에 씌였다)
"독일의 미래는 여성이 통치한다"
--동독출신의 시골뜨기에서 최정상의 권력자가 되기까지
**앙겔라 메르켈:(1954~   )현재 67세,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으나 개신교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구동독지역의 작은 마을 템플린에서 성장/라이프치히 대학 물리학 박사/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정치에 투신/동독 민주화운동단체에서 활동/빠른 판단과 남다른 열정으로 헬무트 콜 총리의 눈에 띄어 1991년 여성청소년부 장관, 1994년 환경부장관을 역임함/1998년 개신교도임에도 불구하고 카톨릭 중심의 기민당에서 사무총장이 되었다./이어 2000년에 여성 최초로 당수가 됨/2005년 독일총리에 취임함/이혼과 재혼, 자식을 갖지 않은 커리어우먼/숱한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정계 진출16년 만에 최정상의 자리에 오름

(<나, 다이애나의 진실>을 읽는 동안 꿀꿀했던 기분이 사라지고 머리가 말개져 온다, 역시 명쾌한 독일인? 유대인이 들으면 뭐라 말할까?)

*앙겔라 메르켈의 정상을 향한 길
(22)앙겔라의 아버지  호르스트 카스너는 동베를린의 판코우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1954년 하이델베르크와 함부르크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학업을 마친 후 목사로 일하기 위해 동독으로 돌아왔다.
(23)호르스트 카스너는 동독으로 돌아오자 마자 비밀경찰 슈타지(국가안보부STASI)의 반체제 인사 명단에 올랐고  그때부터 그의 가족은 끊임없는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동독에서 목사는 반체제 인사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목사들은 외부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꺼렸고 카스너도 집안 일을 일절 밖에 나가서 말하지 않았다.
--1961년 8월 13일 설치된 베를린장벽은 카스너 가족에게 많은 어려움을 가져왔다.
(26)앙겔라의 삶의 방식은 다른 학생들과 많이 달랐다. 다른학생들은 신학이나 교회사에 대해 전혀 몰랐으며 학교에서도 기독교 신앙은 국민을 우둔하게 만들고 비과학적이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앙겔라는 기독교의 소중함과 믿음, 그리고 기독교적인 도덕을 중심으로 교육을 받았다.
(29)1973년 앙겔라는 라이프치히(동독시대 칼 마르크스 대학)에서 물리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녀는 아주 평범한 대학생활을 했지만 학과 특성상 주로 남학생들과 어울렸다. 그러는 가운데 그녀는 점차 남학생들도 앞지르게 되었다.
---메르켈은 마침내 교환학생으로 러시아를 방문했고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를 구경했다. 그녀의 유창한 러시아어 실력은 그곳에서 많은 물리학도를 사귀는데 도움이 되었다. 러시아에 머무는 동안 앙겔라 카스너는 후에 그녀의 남편이 된 울리히 메르켈을 사귀었다.
--1976년 그들은 동거를 하기 시작했고, 1년 뒤 템플린에서 결혼식을 올렸다.(그녀 23세 때)
(30)메르켈 부부는 1978년 동베를린으로 이사했다. 남편 울리히는 베를린 훔볼트 대학의 강사로 일을 하게 되었고 앙겔라는 그토록 갈망했던 동독의 주요 연구소인 베를린 과학 아카데미의 연구원으로취직을 했다. 그녀가 일을 하게 된 곳은 더군다나 중앙 물리화학 연구소였다. 이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말 그대로 계급없는 동독체제 안에서 확실한 자유를 만끽했고, 동독 국민의 평균 소득에 비교할 때 상당히 높은 생활 수준을 누렸다. 연구소의 일상은 고향인 발트호프와 비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앙겔라 메르켈은 자립정신과 개성을 펼칠 수 있었기"때문이었다.
(31)이혼:앙겔라 메르켈은 매우 활동적이고 비판적이었으며, 신중하면서도 의욕이 강했다. 메르켈의 남편은 한적하게 자신의 생활을 즐기려 한 반면 그녀는 지속적으로 여행과 연수에 참가했다. 부부 사이는 마침내 멀어지게 되었고 1981년 메르켈의 제의로 별거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2년, 그녀는 5년 간의 결혼 생활의 종지부를 찍게 된다.(메르켈 28세 때) 그러나 그녀는 메르켈이라는 성을 버리지 않았고 이혼한 남편과 가끔씩 식사를 하면서 친구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33)재혼:1985년 그녀는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녀는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지도교수인 루츠 췰리케와 논문 초고에 비판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요아힘 자우어 박사 덕분이라고 공을 돌린다.
자우어 박사(베를린대학교 화학과교수)는 당시 기혼자이면서 메르켈과 가까운 친구였다. 메르켈과 자우어는 13년 뒤인 1998년12월에 결혼한다.(메르켈 44세 때)

49세 메르켈과 자우어(남편)

(33)동독 국민들의 자유에의 열망:1989년 9월 처음 시작된 평화 시위/라이프치히의 니콜라이 교회와 베를린에서/그들의 구호-
"슈타지 물러가라"(1989년 12월에 해체됨)
"집단 탈출을 막으려면 여행의 자유를 보장하라"
(36)앙겔라의 정치 목표:그녀는 정치에 관심이 매우 많았지만 1989년 말 '민주변혁'에 입당할 때까지만 해도 그에 걸맞은 적극적인 정치적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정치 목표인 독일 통일을 한걸음앞당기기 위해 그녀는 1990년 3월 18일로 예정된 인민위원 선거 운동에 동참했다.
(37)'민주변혁'의 당대변인이 되다:볼프강 슈누어 의장은 즉흥적으로 그녀에게 공식적으로 당대변인이 되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볼프강이 슈타지의 첩자로 활동한 것이 드러나 메르켈은 당을 떠난다.
(40)로타르 드 메지에르가 이끄는 동독기민당의 부대변인이 되다:탁월한 러시아어 실력은 협상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전혀 꾸미지 않은 그녀의 단발머리와 촌스러운 패션 감각은 종종 웃음거리가 되곤 했다.
(41)1990년 가을 동서독 최초의 총선을 앞두고:동독 기민당은 민주변혁과 합당하고 다시 서독기민당과 통합했다.
--1990년 10월 3일 독일 통일
(42) 1990년 11월, 통일 독일의 국회의원이 됨, 이어  1991년 1월 헬무트 콜 내각에서 여성 청소년부 장관에 임명됨(메르켈 37세)/재임기간 1년
(48)어디서나 같은 남성 정치가들:
그들은 여성 정치가들에 대해선 은연  중에 적대적인 감정을 품고 있다.
(49)1990년 말 로타르 드 메지에르도 슈타지 첩자로 들어나 물러난다. 헬무트 콜은 앙겔라를 기민당 부당수 대행 자리에 임명한다.
(53)1994년 환경부장관에 임명됨/1998년 10월까지
(56)헬무트 콜은 동독 출신의 무명 정치인 메르켈이 자립심 강한 여성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그러나 메르켈이 영향력 큰 후원자의 도움만으로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녀 스스로가 출세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던  것이다. 메르켈의 하루 일과는 일반적인 동독인에 비해 매우 이른 시각에 시작해 서독인들의 기준보다 항상 늦게 끝났다. 
(57)헬무트 콜의 패배:1998년 9월 총선에서 기민당은 최악의 득표율을 기록, 콜은 국회의원직과 기민당 당수직을 떠난다.
후임 쇼이블레는 메르켈을 원내 의장으로 추천, 이어 최초의 여성 사무총장으로 선출됨
(62)헬무트 콜의 비리:수많은 부정축재를 해서 국민의 지탄을 받을때 메르켈은 신문에 기사를 내서 헬무트를 단칼에 처리한다.
기사의 요점은 기민당이 역사적으로 이루어놓은 업적을 축소시키지 않으려면 콜과 결별할 것과 이제 콜 없이 기민당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가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메르켈은 국민들의 불신을 해결한 용기 있는 인물로서 믿음의 상징이 되었다.
(그녀의 정치 입문을 도와 주고 두 차례 장관을 할 수 있도록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아버지 같은 콜을 단호히 내칠 수 있는 용기는 결코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독일인'도 재물을 탐내고 권력을 악용하는 정치인이 있다는 것이 순진한(?) 나로서는 놀라운 사실이다. 인간은 거기서 거기인가?)
(63)콜의 후임 볼프강 쇼이블레도 얼마 되지 않아 역시 기부금 스캔들에 연루되어 사임한다.
(64)2000년 4월10일, 메르켈은 기민당 전당대회에서 96%의 찬성표를 얻어 여성 최초로 기민당 당수가 된다.

[여성 정치인 메르켈을 바라보는 시각]
(정치인들 얘기라면 정말 흥미없다. 채널을 돌린다. 그런데 독일을 흔들었다는 이 여성 정치인에 대해서는 무엇이 그리 궁금했을까? 일단 재미 있다. 그들의 정치세계나 우리나라나 비리를 저지르고 쫓겨나고 자신들의 신념과 어긋나면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고 고소하고---)
(68)메르켈은 기민당의 권력구도 안에서 충성만 다하는 충복이 아니라, 높이 평가받는 사람이 되었다.
(70)모든 사람들이 열렬히 책상을 두드리는 가운데 후보선출안을 가결했다. 총리후보로 선출된 메르켈은 즉각 '완벽한 정치'를 선언했다.
(76)삼두마차:당수 메르켈을 이끄는 삼두마차 가운데 한 사람은 베아테 바우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에바 크리스티안젠이다.
바우만은 메르켈을 항상 충직하게 따랐고 메르켈의 허점에 대해서 아주 정확하게 비판을 했다. 그녀는 메르켈을 보호하는 완충기 역할을 했다. 35세의 에바는 경제전문가로, 1998년부터 기민당의 대변인으로 일했다.
(88)그들에게도 일어난 일들: 돈세탁 문제, 기부금 사건, 스위스 비밀계좌, 비자금--
(92)두 번째 남편 요아힘 자우어:1998년12월30일 결혼/그는 어떤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 대해서도 일체 말하지 않고 있으며 자신은 메르켈의 정치활동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는 말이 자주 인용되고 있다.
(94)부동표가 움직이는 곳:
독일 총선에서도 역시 부동표는 정당의 정책보다는 후보자의 인격에 따라 죄우될 수밖에 없다. 앙겔라 메르켈도 아마 자신의 주변 인물의 행동거지에 대해서 철저하게 신경을 쓰고 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녀에 대한 인기도는 정치적인 업적과 경력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사생활도 중요한 몫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12월 20일 현재, 우리의 대선주자 두 후보는 수신 제가면에서는 50점을 주기도 힘들다. 한 국가를 통치하겠다는 사람이, 임무가 끝난 후에 뭘 하겠냐는 질문에 답하기를 그동안  못 놀아주었으니까 강아지하고 놀겠다고 말한다. 희대의 코미디다!)
(95)언론에 비친 메르켈:국민의 주요 관심사는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그녀의 머리 모양, 화장, 신발  등의 외모에 관한 것이었다./동독 출신 시골 여인/그러나 메르켈은 자신의 외모와 의상에 대한 언론의 흠집내기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오히려 그러는 동안 그녀의 이미지에 대한 언론의 평가가 점점 좋은 쪽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97-98)메르켈의 변화:2005년  5월이후~자주 웃는다/농담도 한다/빨간색 조끼를 입고 나오기도 한다./머리와 화장도 완벽한 스타일로 바뀜/아울러그녀의 설득력 있는 연설은 언론의 태도를 바꾸어 놓았다/별 볼 일 없는 동독 출신의 시골 여인에서 모든 언론의 촉각의 대상이 되었다.
(99-104)국민들이 바라보는 메르켈:
사람들은 인간적 이야기를 듣고싶어 한다/이산 가족이 된 외할머니 이야기를 통해 메르켈은 사생활 비공개란 철저한 원칙을 무너뜨린다./메르켈은 자신이 겨우 1990년(그녀 36세) 독일의 통일과 함께  정치계에 입문했고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드러내 보이지 않고는 결코 총리가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또한 독일국민들의 마음이기도 했다. 결국 조심스럽긴 했지만 메르켈은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많은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다./여론 조사에서 다음 주 일요일 투표를 한다면 당신은 누구를 뽑겠습니까?라는 가상의 질문에  메르켈은 49%의 찬성표를 얻었다.
(이 책은 메르켈이 독일 총리에 취임한 이듬해에 우리말로 출간되었으니 총리 재임 기간(2005~2021,16년간)의 이야기가 없다. 머잖아 책이 또 한 편 나오겠지?)
(105)메르켈과 외국의  정치 지도자들:
--터키의 EU 가입 불발,
--러시아의 체첸 공화국에 대한 정책과 언론 탄압 등을 비판,
--미국에 대해서는 중요한 외교적 관심사에 맥을 같이함
-프랑스는 메르켈이 유럽 통합의 기회를 잡지 못할 것으로 판단함
- 유럽연합은 자유,평등,연대감 그리고 주권국가와 같은 민주주의적 가치들이 유럽 통합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메르켈의 생각이며 그것이 헌법에 명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함

[메르켈이 풀어야 할 과제]
세금정책/사회보장제도/고령화 시대의 국민 연금정책/의료보험의 효울성/여성 정책/에너지 정책/외교안보 정책
(164)의료보험의 심각성:현재 시행되고 있는 4대 사회보장보험을 개혁하지 않으면 소득의 42%에 해당하는 보험료 부담은 2030년에는 54%, 2050년에는 61%까지 늘어나게 될 것이다.(이것이 사실이란 말인가?)
(174)메르켈은 핵에너지에 찬성하는 입장이다핵에너지는 근본적으로 원활한 에너지 공급의 중요한 원천이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아 대기오염을 막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환경부에서 규정해놓은 한정량의 에너지를  이미 생산한 핵발전소는 문을 닫아야 하고 가능한 한 2020년에서 2021년 사이에 모든 원자력 발전소를 폐기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메르켈은 이 시한을 무한정은 아니지만 어떻게 해서든 연장하려 한다

[선거전을 통해 본  메르켈의 청사진]
(189)"나는 독일을 위해  헌신할 것입니다."
앙겔라 메르켈은 베를린의 콘라드 아데나워 하우스에서 자신을 열렬히  지지하는 당원들에게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연단에서 이 말을 하고 있는 한 여인은 기민당과 기사당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본적 없던 만장일치로 총리 후보로 선출되었다.
(198)메르켈의 4인방:폴커 카우더/노베르트 뢰트겐/마하엘 마이스터/로날드 포팔라
*폴커 카우더--법률가/일중독자/기민당 사무총장/국회의원 경력/선거전에 능함
*노베르트 뢰트겐--원내 사무총장/경제와 실업문제 전문가/우파정치의 대변인/다른 원내 교섭단체와 회합을 하면서 의견 조율
*미하엘 마이스터--원내재정전문위원/원내 부의장의 한 사람
*로날드 포팔라--원내 부의장의 한 사람/헬무트 콜의 측근(변호사)/원내 법사위원/원로 국회의원/사회교육학자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저리 티없이 웃음짓는 모습을 보았으면--

(201-202)메르켈 사단의 여성들:
*베아테 바우만--비서관/사리가 분명하고 사람들과 교류할 때 항상 거리를 두고 매우 철저하다.
*에바 크리스티안젠--대변인
*아네테  샤반--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청소년문화스포츠 부 장관/독일 교육제도를 세계 수준에  맞추어 개혁하는 것이 정치적 목표/취학 연령을 낮추고 영재교육 프로그램 도입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니더 작센 주의 사회여성가정건강복지부 장관/의학박사/7명의 자녀를 둠
*외부의 조언자 하인리히 폰 피어러--지멘스 노사감독 위원회장/독일 기업가들과의 교두보 역할 기대

[9ㆍ18 총선 이후 메르켈의  행보]
(여기서는 총선 결과와 이후 메르켈 총리의 정치 행보를 실었다)
(224)2005년 11월 22일 총리에 공식 취임/독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통일 이후 동독 출신 첫 총리/전후 최연소 총리(51세)
(226)메르켈의 과제: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 적자를 줄이고 11%가  넘는 실업률을 낮추는 것
(230)메르켈 인기상승의 요인:
냉철하고 치밀한 정책 집행 태도와 정치적 쇼가 아닌 진정으로 일하는 총리상을 보인 점이다.
(그녀는  4선 총리로 16년의 임기를 마치고 지난 12월 8일 조촐한 퇴임식을 했다. 그녀의 16년 간의 총리 시절, 8번이나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그들 앞에 깊이 머리 숙여  사죄했다고 한다. 독일인을 대표하여 부끄러운 과거사도 끌어안고 그 잘잘못을 가린 메르켈 총리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12월 20일 현재, 우리의 후보자님들, 평소에는 근처에도 안 가면서 새삼 재래시장을 돌며 쇼 그만하시고 진정성 있는 정책이나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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