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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이애나의 진실

맑은 바람 2021. 12. 18. 20:54

--유서로 남은 다이애나의 고백

앤드루 모튼 씀/송은경ㆍ이순희 옮김/사회평론/397쪽/초판 1998년1월/읽은 때 2021.12.8~12.18

앤드루 모튼:왕실 작가/다이애나와의 인터뷰를 통한 공동작업으로 만들어진 것/이 책은 베스트 셀러가 됨
다이애나(1961~1997.8.31) 향년 36세/1981년 결혼~1996 이혼

--이 책(영국에서는 1992년 6월에 출간됨/저자는 1982년부터 왕실이야기를 저술함)의 내용은 모두 그녀의 입에서 나왔으며 작업을 위해 켄싱턴 궁에서 녹음한 일련의 인터뷰들에는 그녀 일생의 고통과 비탄이 담겨 있었다.--저자 서문에서

차례
1.난 사내아이로 태어났어야 해
상속자를 기다리는 가문에 딸로 태어남/부친 스펜서 백작(귀족칭호를 사들임)은 15세기에 조상들이 재산을 축적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양 무역상 중 하나/알소프 하우스에서 삶/스펜서 가문은 3세기 동안 국가와 궁정의 직책들을 두루 섭렵함/다이애나는 활발하고도 강한 성격과 할머니의 사려깊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자질을 물려받는 축복을 받은 셈이었다.
(38)어린 다이애나로서는 '사랑스런 기억으로'라는 짧은 비문만이 적혀 있는 오빠(불구로 태어나 일찍 죽음)의 묘비를 보면서 '난 사내아이가 되었어야만 하는 계집애야'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세째딸로 태어난 그녀는 아들이 아니라는 죄로 사랑받지 못했다)
(39)그녀가 살던 곳:샌드링엄 영지(여왕의 겨울 저택이 있는 곳)의 파크 하우스-천국과도 같은 곳(목장, 숲속 동물들, 노퍽 해변이 멀지 않은 곳)
(40)그녀의 부모:1954년 6월, 여왕의 시종무관을 지냈던 조니 스펜서는, 퍼모이 남작의 딸이며 12살 연하의 프랜시스 로지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결혼식을 올린다./14년 후에 파경을 맞는다.(다이애나 7세 때)/이유는 프랜시스의 불륜 때문(상대는 부유한 사업가 피터 샌드 키드)
(44)그녀의 성격:따뜻하게 누군가를 돌봐주는 모성애적 자질
(일찌감치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유모도 자주 바뀌는 환경이었으니, 보고 배우는 것은 타고난 성품에 미치지 못하는 것인가?)
(45)동생 찰스:네 살이던 찰스는 밤이면 엄마를 찾고 울었다.
"난 그 애의 울음소리를 참을 수 없었어요. 그렇다고 침대에서 일어날 용기도 없었죠. 난 그 일을 아직까지도 잊지 못해요."
찰스는 못된 유모들을 경험하면서 자기 자식들은 절대로 유모 손에 키우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부모의 보살핌이 없었음에도 찰스는 진지하고 행실 바르게 컸으며 학교에서 뭐든지 뛰어났다./후에 옥스퍼드에 진학
(55)자원봉사:수십 명의 십대 자원봉사자들이 화요일 저녁이면 장애를 입은 환자들을 만나러 버스에 올랐다./다이애나는 이 봉사활동에서 자존감을 회복했다./왜냐하면 그의 집안 사람들은 각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그들과 겨룰 수가 없었다.
(56)그녀의 재능:교내 댄싱경연대회에서 우승함/"춤을 추면 나를 사로잡고 있는 엄청난 긴장이 풀어져요"
(우리나라에도 명색이 '자원봉사'가 있기는 하다. 그저 점수만 채우려는. 아이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 아까워 봉사점수를 얻는데 편법을 쓰는 엄마들도 많더라. 어려서부터 몸에 배야 나이 들어서도 자연스레 봉사활동을 하는 법인데--)
(57)알소프 저택으로 이사함: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스펜서 백작 8세가 되고 1600만평의 옥토와 100채가 넘는 집들을 상속받음
(62)학창시절 마감:1977년 웨스트 히스 스쿨 졸업/스위스의 값비싼 교양학교에서 양재와 요리를 배우나 적성에 맞지 않아 도중에 그만둠/런던에 가서 새로운 생활하기를 갈망함.
"갑자기 홀대받던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로 변해갔다"--동생 찰스

2.나를 '경'이라고 부르시오
(64)만남:왕자가 알소프 영지로 사냥을 나옴/16세의 다이애나는 왕자를 처음 봄/언니 사라가 왕자와 교제 중/스펜서 집안은 왕자를 위해 무도회를 열어줌
(72)아파트를 소유하게 됨:성년 기념으로 아파트를 선물 받음/다이애나는 이 아파트에서 생활하던 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회상한다.
(79)끊임없이 사랑에 빠지는 찰스왕자:1979년, 베스티경 소유의 글로스터셔 영지의 스토우엘 파크에서 열린 폴로 무도회에서 그녀(스코틀랜드 영주의 딸인 안나)는 찰스가 그날 밤 내내 카밀라 파커-보울즈와 춤추는 것을 끓어오르는 분노로 지켜보고 있었다./왕자의 삶에 자신의 생활을 맞추려고 노력했던 카밀라 파커 보울즈와의 관계는 그의 삶의 방식에 꼭 들어맞았다.
(81)33세의 찰스 왕자의 결혼관:
결혼이란 사랑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난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이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기본적으로는 서로 좋은 친구여야 하죠. 그러면 사랑은 그 우정에서 자라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난 올바른 결정을 해야 할 특별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이혼입니다."
그는 결혼은 협력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아내는 왕실의 생활방식과도 결혼해야 한다고 밝혔다.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는 찰스는 그 후 이혼도 하고, 왕실의 생활방식을 따르려고 애쓰는 아내에게 칭찬 한 번 해주지 않았다)
(82)다이애나와 왕자의 만남:1980년 7월/워스트 서섹스의 펫워스에 있는 필립공의 친구 로버트드 파스 사령관의 집/사령관의 아들 필립이 다이애나를 초대함/다이애나의 동정심이 왕자의 마음을 빼앗음
"전 당신이 외로운 사람이고 보살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찰스 왕자는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헌신적인 여자를 데려다놓으면 나는 나름 의무를 다하고  후에 좀더 자유로워지겠지?)
(84)벨모럴:5천만 평의 황무지 위에 세워진 여왕의 하이랜드 성/윈저가의 독특함이 돋보이는 저택/1848년 빅토리아 여왕이 이 영지를 삼
(어느 책에서도 왕실 내부의 이야기가 이토록 세세히 보여주지는 않았다)
(87)왕자의 태도:(어느 자리에서도 둘만의 자리는 마련되지 않았다. 주변에 반드시 파커 보울즈 부부가 있었다.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면 찰스왕자는 꽝이다!)
(89)그들의 기괴한 연애 기간 동안 그녀는 그가 원할 때면 쪼르르 달려가는 귀여운 강아지였다. 그리고 그가 원한 것도그 정도였다. 영국의 왕세자로서 그는 주목을 받아왔으며 아부와 칭찬에 익숙해 있었다. 찰스는 그녀를 다이애나라고 불렀으며 그녀는 그를 '경'이라고 불렀다.

3.그 날의 가슴 벅찬 희망
(95)왕세자의 탐색은 끝났다. 그는 예쁜 처녀를 찾아냈고  세상 사람들은 동화같은 이야기를 얻었다. 상아탑 속에서 신데렐라는 친구와 가족과 바깥세상과 동떨어져 불행하게 지냈다. 석 달 동안 여러 번 눈물을 흘렸고 그 후에는 더욱 많이 울었다. 약혼을 발표했을 때 29인치였던 허리가 결혼식 날 23인치 반으로 줄어들 만큼 살도 쏙 빠졌다. 정신없이 보낸 이 기간 동안에 그녀의 신경성 대식증이 시작되었는데 이 병을 완치하는 데는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대식증--폭식증/음식 먹는 동안조절할 수 있는 통제력을 잃는 것
(96)클라렌스 하우스에 도착했을 때:왕실 가족들은 아무도 없었으며 단지 새로운 세계에 들어온 그녀를 환영하는 뜻으로 장래의 남편이 그녀를 맞았을 뿐이다.
실상 왕세자빈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된 다이애나는 평범한 슈퍼마켓 점원만큼의 훈련도 받지 않았다.
(104-105)세인트 폴 성당의 결혼식:1981년 7월 29일, 통로를 걸어들어갈 때 그녀의 마음 속에는 찰스에 대한 애정과 흠모가 넘쳐흘렀다. 베일을 통해 그를 쳐다보자 두려움은 사라지고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아가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미래에 대해 부풀어오르는 희망, 그가 자신을 사랑하고 보살피며 앞에 놓인 시련들로부터 보호해 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졌다. 70여 개국에서 텔레비젼 수상기 앞에 모여 앉은 7억5천만  명의 사람들이 그 순간을 지켜보았다.

4.제발 좀 도와 주세요!
(114)"나는 아무것도 아닌 이름없는 존재였다가 다음 순간 영국 왕세자빈이며, 어머니이며, 언론의 노리개이자 왕가의 일원이 된 거야.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짐이었지."
(115)(그녀는 여러 차례 자살 시도를 했다.그러나 그런 일련의 행동이 찰스와의 거리를 점점 멀어지게 했다.  도와달라는 신호였는 데도 말이다. 갖출 것 다 갖춘 남자가 단지 애정이 없기 때문에 한 여자를 나락으로 빠트린 것은 필연이었다.)
(잘못 끼워진 첫단추:부유하기는 하지만 이혼한 부모, 고교 중퇴의 학력, 평범한 외모의 신부, 그러니 궁에 들어오는 날부터 시집 식구들의 냉대를 받을 수밖에~ 왕세자빈이라면 귀족집안에서 철저히 귀족답게 사는 방법을 습득해야 했고 타인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그걸 즐길 줄도 알아야 했다. 다이애나는 처음부터 그런 환대와 시선을 불편해 했다. 그녀는 성장기에 부모의 흡족한 사랑을 받지 못해서 매사에 자신감이 없었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어, 결혼 날짜를 잡아놓고도 유부녀와 연애 행각을 벌이는 개차반 왕자인 신랑--전통을 중시하고 신사의 나라라는 걸 코에 걸고 사는 영국인이 아니더라도 그런 망나니 짓은 안한다. 그러니 아내이기도 하지만 '왕실의 식구'가 될 사람을 제대로 가릴 줄 알았겠는가?)
(119)일상생활이 힘겨웠다고 한다면 공무는 악몽과 같았다. 웨일즈 방문은 성공이었지만 다이애나는 자신의 인기와 군중의 규모, 그리고 가까이 있는 언론에 압도당한 기분이었다. 마치 호랑이 등에 타고 내달리는데 빠져나갈 길이 없는 것 같았다.
(정성숙의 <호미>를 읽으면서 분노했다. 다이애나 얘기를 읽으면서도 또 분노를 느낀다. 전자는 주어진 처지를 받아들이며 삶에 충실했는데도 보답이 주어지지 않는 현실에 공분을 느낀 거고, 후자는 허황된 욕심으로(?)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든 가련한 여인의 자업자득하는 모습에 분노를 느꼈다.)

5.남편의 여자, 카밀라 파커-보울즈
(140)다이애나의 발레 즉흥공연:코벤트 가든의 왕립 오페라 하우스에서/찰스 왕세자는 대중 앞에서는 칭찬하고 돌아서서는 나무라며 흉을 보았다./이처럼 매사에 반대만하는 태도를 그녀는 익히 예상하고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무엇을 하더라도, 그녀가 자신의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애쓸 때마다 그는 그녀의 정신을 깔아뭉개 버렸다. 그 때문에 그녀는 서서히 파괴되어 갔다.
(145)비교 대상이 된 앤드루 왕자비 퍼기:"당신도 좀더 퍼기처럼 행동하면 어때?"/원래 왕족의 남자들을 판단하는 기준은 말이고 여자들은 외모이다./그녀가 자연스러운 미인으로 꽃피어났으므로 다이애나는 업적이 아니라 외모로 평가 받았다./"왕실조직은 그녀가 단지 몸치장이나 잘 하고 순종적인 아내가 될 것을 기대했어요."
(152)인적없는 모래사장을 걸으면서 다이애나는 남편과의 화해에 대해 자신이 품고 있던 모든 희망이 끝장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실제의 다이애나 스펜서, 7년 동안 버려지고 물밑으로 가라앉아 있던 처녀시절의 성격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을 마음으로부터 알고 있었다.

6.나는 인생의 진로를 바꿨어요
(158)'샌 로렌조'와의 인연: 마라와 로렌조가 운영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크나이트브리지의 뷰캠 플레이스에 있음/마라는 점성술사로 1990년대 초부터 다이애나의 삶에 뛰어듦/다이애나의 도피처
(159)점성술과 타로카드, 그리고 투시술과 최면술, 강령술 등은 왕실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던 전통 중의 하나였다.
(과학을 선도하는 나라의 왕실에서 점성술이라니!)
(176)아드리안을 통해 다이애나가 얻은 새로운 인생:아드리안은 발레, 오페라, 예술분야의 저명인사로 에이즈를 앓고 있었는데 죽을 때까지 5개월 동안(1991.4~  ) 다이애나의 헌신적인 돌봄을 받는다.
(177)아드리안을 돌보던 몇 달간의 경험은 다이애나로 하여금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7.절대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아요
(181)중상을 입은 장남 윌리엄을 병원에 맡겨 두고 공무를 보러 떠나는 찰스 왕세자: "이런 일이 전에 없던 일이었다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거예요. 이번 일은 왕세자에 대한 다이애나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고, 왕세자가 자애로운 아버지 노릇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을 더욱 굳게 만든 것이었어요. 다이애나에게는 의지할 사람도, 아픔을 함께 나눌 사람도, 사랑으로 보살펴 줄 사람도 아무도 없었습니다."(친구의 말)

(189)제임스 휴이트 대위:아이들에게 자상한 아저씨처럼 대하며 승마도 가르침/미남/ 유머감각이 있고 신중한 사람/둘 사이의 우정이 사랑으로 변함
(192)카밀라:상류계급에 많은 친척을 두고 있는 전형적인 부호가문 출신/두 번 이혼하고 세 번째  결혼한 중에 왕세자와 불륜 관계(왕세자와는 천생연분, 찰떡궁합인가 보다)/현재의 남편 앤드루 파커 보울즈는 육군장교로 그녀는 '처음 만나면 정중하게 절을 하고 다음에는 침대로 뛰어드는' 것이 특기라는 소문이 있었다.
(193)찰스와 카밀라:1972년에 처음 만남/그때 앤드루 파커 볼즈와 연인 관계/찰스는 활발하고 매력적인 이 여성에게 매혹되어 사냥과 폴로를 함께 즐김/찰스는 카밀라를 대단히 좋아했다고 한다/카밀라도 찰스를 사랑했고 찰스가 청혼했다면 당장 결혼했을 것이다. 그러나 찰스는 다른 여성들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결국 카밀라는 그와의 결혼을 포기했다./카밀라가 결혼한 후에야 왕세자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201)왕세자빈이라는 영예는 덧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공적인 이미지를 벗어던질 수 없었고, 일상적인 일과에 쫓기는 왕세자빈이라는 독특한 지위와 엄격한 환경에 얽매어 있었다. 다이애나의 친구들은 다이애나의 공식명칭인 '프린세스 오브 웨일즈'의 머리글자인 POW를 '전쟁포로(prisoner of war)'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했다.
(205)다이애나는 이중적인 삶을 살았다. 대중들은 그녀를 칭찬했지만, 남편을 비롯한 왕실 성원들은 의심과 질투로 가득 찬 침묵 속에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왕실 밖의 세계는 다이애나가 윈저 하우스의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벗어던졌다고 생각했지만 통제와 격식, 그리고 관습을 중시하도록 교육받아 온 왕실 내부의 사람들은 다이애나를 돌연변이이며 문제아라고 생각했다.

8.구명 보트 같은 내 아이들
(215)하노버 왕가는 배우자를 고귀한 가문에서 구하려고 했지만, 하노버 왕가와 평민과의 결혼은 재앙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다. 현 여왕과 황태후의 혼인을 제외하고는, 왕가와 평민 사이에 이루어진 혼인 관계는 모두 이혼으로 끝났다. 마가렛 공주와 앤토니 암스트롱-존스, 앤 공주와 마크 필립 대위, 요크공작 부처, 웨일즈 왕세자 부처의 경우가 모두 그랬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뚜렷한 대안은 없었다.
(222)아이들은 구명밧줄:다이애나 자신은 결코 왕비가 되지 않을 것이며 찰스도 결코 국왕 찰스 3세가 되지 못할 것이란 확고한 신념을 전제로 아이들을 대했다. 아이들은 고립되어 있는 왕세자빈에게는 언제나 소중한 구명 밧줄이었다.
"아이들은 나의 모든 것이에요."
(223)다이애나에게 일어난 변화:1991년과 1992년 두 해 동안, 그녀는 왕실 조직 내에서의 자신의 위치에 대한 사고 방식을 변화시켰다. 그녀가 내린 대략적인 결론은 왕실을 떠나지 않고 왕실에 그대로 남겠다는 것이었다. 다이애나는 군주 제도라는 이름의 삐걱거리는 조직을 대하면서 절망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을 느꼈다. 그녀는 찰스 왕세자를 사무적이고도 냉담한 태도로 대했고, 카밀라 파커-보울즈에게는 질투 어린 분노가 아니라 차가운 경멸의 태도로 대했다. 그녀는 왕실 조직을 개혁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점차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세상에 유익한 일을 하겠다는 진지한 결단을 내렸다.
(228)"이혼하지 않으면 다이애나는 행복해질 수 없어요. 그러나 찰스 왕세자가 이혼하자고 하지 않으면 그녀는 어쩔 수가 없는 거죠. 또 찰스 왕세자도 어머니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할 겁니다.그러니 결코 그들은 행복을 누릴 수 없게 되는거지요. 그들은 왕실가족이라는 허울 속에 계속 남아 있겠지만 서로 완전히 단절된 인생을 살게 될 겁니다--제임스 길베이의 말

9.왕실을 뒤집어 놓은 한 편의 슬픈 동화
(231)'선데이 타임즈'에 이 책<나, 다이애나의 진실>을 연재함:1992년 6월 7일/ 왕궁은 겁에 질렸으며, 언론은 격분하고  대중들은 심한 충격을 받았다./다음 날  켄싱턴 궁에  마주앉은 왕세자 부처는 냉정하고 조용하게 별거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정식으로 별거함으로써 가식에 불과했던 결혼 생활을 매듭짓기로 결정했다.
(233)호스피스 활동:그녀의 호스피스 활동은 다이애나와 대중들의 감동적인 만남의 자리가 되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애정 어린 환대는 그날 아침 왕실 사람들이 가했던 무자비한 질책과 찰스 왕세자와의 결정 뒤에 숨겨져 있던 긴장감을 깨끗이 잊게 해 주었다. 그곳에서 다이애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246)다이애나는 두 사람의 별거가 발표되자  "너무 너무 슬펐다. 동화는 끝나버린 것이다."라고 말했다./지독히도 불행했던 결혼 생활의 족쇄를 벗어던진 자유로운 생활이 다이애나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다이애나는 새로운 출발을 했지만, 그녀가 그토록 경멸하고 불신하던 왕실의 성원으로서 왕실 조직의 제한을 벗어나진 못했다.

10.제 연기는 이제 끝났습니다
(이번 독서는 다이애나의  지리멸렬한 삶의 궤도와 맞아떨어진다. 얼른 끝내고 싶다.)
(266)공적활동 중단 선언:1993년 12월 어느 자선 모임에서 공적활동을 중지하겠다고 발표했다.
(267)그녀가 인기 영화배우 제레미 아이언즈에게 잡담을 건네고 있을 때  그가 말했다.
"올 한 해의 제 연기활동은 끝났습니다."
다이애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도 그래요"

11.이젠 나 자신이 될 거예요
(272)자선활동을 통한 자아성취:요란스럽지도 않고 형식에 구애받지도 않는 그녀의 조용한 자선방문들은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행해져 왔던, 공들여서 각본에 짜여진 왕족의 자선방문들과는 무척 대조적이었다. 마침내 다이애나는 의미있고 만족스런 일을 찾은 것이다.
(282)내 일생에서 가장 슬픈 날:1996년 2월 28일 수요일 오후 늦게 다이애나는 무조건 이혼에 동의한다고 발표했다.
"나, 다이애나 왕세자빈은 왕세자의 이혼 요구에 동의합니다. 왕세자빈은 아이들에 관해 동등한 양육권을 행사할 권리를 가지며 켄싱턴 궁에 거처하면서 세인트 제임스 궁에 사무실을 둘 것입니다. 왕세자빈은 왕세자빈의 칭호를 계속 보유할 것이며 다이애나 왕세자빈이라고 불릴 것입니다."
4개월여 동안 더 협상이 진행된 후 드디어 1996년 6월 15일 왕세자는 이혼 가판결을 받았다.
6주 후 8월 28일, 이 세기의 결혼은 이혼 확정 판결과 함께 끝을 맺었다. 다이애나는 세인트 제임스 궁의 사무실과 1,700만 파운드에 달하는 위자료를 일시불로 얻어낸 반면 비전하 칭호를 잃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비전하=왕세자빈?
(1997년에 사망했으니 그녀가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의 시간'은 단 일 년으로 끝났다)
(286)"나는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나 자신이 되려 하고 나 자신에게 충실할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남들이 말하는 대로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이제 나 자신이 될 것입니다."

12.'예스'라고 말해줘요
(287)그녀의 꿈:인도주의에 입각한 대사직 활동
(288)"나는 앞으로 절대 불평하지않을 겁니다."
그녀가 1993년, 처음으로 네팔을 방문했을 때 산간 마을에 있는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한 방 한 칸짜리 오두막에서 나오면서 한 말이다.
(290)1996년 12월, 뉴욕에서 헨리 키신저는 그녀에게 '올해의 인도주의자'상을 수여했다. 이 노련한 전직 외교관은 그녀의 강건함과 '빛나는 인격'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녀가 '아프고 고통받고 짓밟힌 사람들의 동지'였다고 치하했다.
(300)운명적인 7월의 여름 휴가:다이애나는 헤롯백화점 주인인 모하메드 알  파예드의 남프랑스 생 트로페 별장에 초대됨/억만장자인 알 파예드의 외아들 도디를 사랑하게 됨/도디는 아랍 에미레이트 공군 출신
/할리우드의 영화제작자/아카데미상 수상작인 '불의 전차' 제작/그와 보낸 휴가에 대해 다이애나는,
"정말 내 일생에서 최고의 휴가였습니다."라고 말했다.

**<불의 전차>--1981년 상영/영국의 단거리 선수 이야기/실존인물을 다룸/스포츠 영화로 크게 성공함/인생철학이 담긴 최고의 클래식 영화
(307)단지 며칠이었지만 그동안 그녀는 폭풍우 같았던 삶에서 진정한 신의 은총을 누렸다. 그런 다음  하늘이 갈라지고 신은 그녀를 데려갔다.

13.만인의 프린세스
(308)사람의 마음에 남을 수 있다면 죽은 것이 아니다"-토머스 켐벨
-**다이애나의 장례식 전 애도 기간 중 켄싱턴 궁 정문에 쓰여 있던 글**
(313)다이애나를 죽게 한 앙리 폴은 누구일까?:
그는 법적 음주 운전  허용 한도를 3배나 초과할 정도로 취해 있었다. 그는 또 약물도 복용했는데 하나는 신경안정제였고 다른 하나는 알콜 중독을 치료하기 위한 약이었다.
앙리 폴은 콩코르드 광장 근처에서 빨간 불을 무시한 채 센 강 북쪽에 있는 알마 광장 지하터널을 향해서 무섭게 돌진하고 있었다고 한다. 오전 12시24분 경 시속 140에서 150km로 달리고 있던 벤츠는 어두컴컴한 터널 속을 진입했다. 앙리 폴은 중심을 잃었고 차는 차도를 가르고 있던 콘크리트 기둥을 정면으로 들이박고 미끄러지면서 한 바퀴 돈 다음 반대 방향으로 멈춰섰다.
운전사와 도디는 즉사했고 유일하게 안전밸트를 매고 있던 경호원은 치명적인 중상을 입어서 2주 후에나 의식을 회복할 수 있었다.

(누가 이 미친 남자에게 운전대를 잡게 했을까?  다이애나의 죽음도 수많은 역사적인 사건들 가운데 결코 밝혀지지 않은 미스테리의 하나로 남은 건가)
처음 사고현장에 도착한 것은 300m쯤 간격을 두고 뒤따라오던 사진기자들이었다. 그들은 너무나도 큰 폭발음이 들려서 다이애나가 테러리스트의 폭탄에 희생된 줄 알았다고 말했다.
(315)파파라치들의 파렴치한 행동들:사진기자들은 죽어가고 있는 다이애나를 위로한다든지 혹은 응급차를 부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문이 열린 오른쪽 뒷좌석 주위에는 카메라의 플래쉬가 마치 기관총을 난사하는 것처럼 터지고 있었다."

**파파라치-paparazzi(유명인사를 쫓아다니는 프리랜서 사진가들/오늘날 파파라치가 가장 극성을 부리는 나라는 영국이다
(318)동생 스펜서백작의 말:
"나는 항상 언론이 그녀를 죽일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녀의 죽음에 이렇게 직접적인 역할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녀의 사생활을 캐는 사진을 사들인 모든 출판사의 발행인이나 편집자들은 다이애나를 찍기 위해 온갖 위험을 감수하는 탐욕스럽고 무자비한 사람들을 부추김으로써 오늘날 그녀의 피를 손에 묻히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위안이 되는 것은 다이애나가 이제는 어떤 인간도 그녀를 괴롭힐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평화로이 잠들기를 기도합니다."
(318)토니 블레어 수상(재위기간1997~2007)의 조사:
그녀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영국뿐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에게 기쁨과 위안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때때로 그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우리는 단지 추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영국 국민뿐 아니라 온세계사람이 다이애나빈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녀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그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녀는 '만인의 프린세스'였고 우리들 모두의 마음 속에 영원히 그렇게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전세계 주요 인사들로부터 쏟아진 찬사 중 첫번째인 그의 말은 그 역사적인 1주 동안의 영국 국민들의 감정을 완벽히 표현한 것이었다.
(321-322)여왕의 조사:내가 이제 여러분에게 여왕으로서, 그리고 할머니로서 하려고 하는 말은 나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먼저 나는 개인적으로 다이애나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비범하고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그녀는 언제나 미소짓고 웃을 줄 알았으며 다른사람들에게 따뜻함과 친절로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나는 그녀가 정열적으로 다른사람들에게 봉사한 점과, 특히 두 아들들을 헌신적으로 양육한 데 감복하고 또 존경했습니다.
(322)그녀의 장례식:
1997년 9월 6일, 다이애나의 관이 말이 끄는 포차에 실려 켄싱턴 궁에서 웨스트민스터 사원까지 옮겨지는 동안 매 분마다 구슬픈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군중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기독교 의식은 엄숙했다. 알소프로 향하는 다이애나의 운구 행렬이 지나가는 길에는 꽃이 뿌려졌다. 알소프에서 다이애나의 시신은 가족끼리의 의식이 있은 후 스펜서 가문의 영지에 있는 호수 안의 라운드 오벌이라고 불리는 섬에 안장되었다.
(325)엘튼 존이 그녀에게 바친 노래:'바람 속의 촛불'
(12살이나 되는 나이 차이, 성격 차이, 생활환경 차이, 관습 차이--이것말고도 결혼생활 내내 다이애나를 괴롭힌 카밀라라는 존재--는  20살의 어린 신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과제였나 보다. 보여지는 것과 실제의 내면이 다른 채로 살아가는 군상들이 대다수인데, 그 거대한 산을 넘어뜨리고 걸어 나온 다이애나에게 박수를 보내야 하는 건지~'왕실 미스터리 세계사'를 한번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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