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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진도 할매 정성숙의 소설

맑은 바람 2021. 12. 2. 13:47

진도할메의 농촌소설

 

ㅣ정성숙 소설/삶창/279쪽/읽은 때2021.11.29~12.8

정성숙(1964~  )진도 출생/32년째 농사를 지음/농부소설가

--차례--
<호미> 007
**표현이 좋다:

*'품고있는 뜨거움이 얼마나 무거운지'

*'젊어서 한창기운 쓸 나이에 전답은 산천초목 우거지게 방치해 두고 집구석 또한 쥐똥 밟고 사람 넘어질까 무섭게 손을 움직이지 않고 사는 희선네'

*콧구멍이 둘이어도 숨쉴 짬이 없는 성님

*불도 켜지 않고 마루에 걸터읹아서 어둠에다 노곤한 눈길을 걸친 채

(걸죽한 욕사발이 맛깔스럽고 스트레스를 날린다):

*니 시방 뮌 말을 하고 지빠졌냐,  이잉!

*오메! 샛바닥은 짧은데 침은 멀리 뱉고잡은 모양이구마이.

*아아믄! 집은 험해도 살제마는 땅이 없으믄 끄니를 굶는 것이라서~
(30)(눈물이 난다:나병에 걸린 큰아들 효준이 부모를 도와 산을 밭으로 만들다가 16세에 떠난 이야기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소설 읽다가 울어본 게 얼마 만인가)
(31)효준이에 대한 추억:오기 부리며 박혀 있던 돌들을 영산댁이 호미로 파서 모아놓으면 남편은 지게로 날라 효준에게 부려주고 효준은 돌 하나하나를 매만지고 뒤집어서 꼭 있어야 할 자리에 놓곤 했다. 영산댁이 50년 가까이 되새김질한 기억이었지만 그때 장면들은 늙지 않고 50년 전 그때처럼 영산댁의 얼굴을 환하게 했다.
(34)삭신에 불이 붙어서 화산처럼 폭발이라도 할 것 같은 울화증을 다독일 수 있는 영산댁의 유일한 재주가 호미질이었다.

<기다리는 사람들>  049
(81)"이놈아, 고추를 태울라믄  청와대 앞에 가서 태워야제 어린 새끼 앞에서 태우고 자빠졌냐! 이 간장 종지만도 못한  놈아. 못난 것들이 각시나 패고 살림 부수고 밖에 나가서는 입 뻥긋도 못하는 주제들이여. 니 놈이 따악 그 짝이여 이놈아."

<백조의 호수>  087
(97)요즘은 고전음악을 자주 듣는다. 아직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 맘을 차분하게 해 주는 것은 확실하다. 솔직하게 말해서 다른 것은 몰라도 '백조의 호수'만큼은  알 것 같다. 잔잔한 호수에 우아하게 떠 있는 백조가 자연의 일부이기도 하고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만족한 인생을 보는 듯하다.
물론 백조도 물속에서는 부지런히 물갈퀴질을 해야  멋진 폼이 나온다는 것쯤은 안다. 그래야 맞다.
그러니까 흙이며 퇴비를 뒤집어 쓰며 일할 때 외에는 물위에 떠있는 백조같은 모양이 나와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일당 3만원을 벌기 위해 하루종일 밭고랑을 기어다니던 생활을 청산하고, 거간꾼이 된  '나'는 돈의 맛을 알면서 노름에까지 손을 대고 몸을 팔 생각도 한다.
과거의 그녀의 삶을 생각할 때 이런 모습을 '타락'이라는 말로 싸잡아 표현해야 되는 건지~~)

<복숭아나무 심을 자리> 117
(121)동네 이장의 고충:어떤 때는 새벽 4시경에 전화벨이 울려서 깜짝 놀라 수화기를 들어보면 밥을 안치려는데 가스레인지가 켜지지 않는다며 와서 봐달라는 동네 노인의 울상이었다. 배고플 때 먹는 인절미 맛과 다르지 않은 새벽잠을 뺏긴 것이 억울해서 울컥 짜증이 났다가도 어이없어지고 말았다. 혼자 사는 노인네가 날이 밝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더디 걷는 어둠을 제치고 일어나서 밥끓는 냄새라도 동무삼고자 하는 심정이 낯설지 않았다.
(131)"애국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정치하는 것들이 우덜을 홍어좆으로 보고 의붓새끼로 아는데 뭔 놈의 애국은 애국이여!  그런 것 있으믄 개나 줘서 뜯어 먹으라고 하제!"
(농민들의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은 뿌리가 깊은 것 같다. 정치인들은 어디서나 욕을 먹고 사는가, 그래서인가, 프랑스의 어느 수도원 학교에서  한 아이가 넘 말썽을 부리니까  담임 수녀님이 "넌 이담에 커서 정치가나 되라"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132-133)베트남 아가씨에게 장가들러 떠나는 진도총각들:
"아따아, 씨발! 장개  한번 가는 것이 겁나게 성가시구마안.  땡볕에서 비료 살포기 지고 이삭거름 하는 것보다 더 뻐친 것 같당께"
"나도 그란당께. 촌닭 서울 구경하러 온 것 같어서 입맛이 쓰디쓰구마이잉"
"와따아! 저 가시나 궁뎅이 실한 것잔 보게에. 콧방 깨진 놈 여럿 되겄구마안. 흐흐흐"
"워메  워메!  쩌그 잔 봐라아잉. 뭣 할라고 손부닥만 한 것을  걸쳤으까이. 아싸리하게  벗어불제. 그라믄 참말로 더 볼 만할 것인데에"
형석은 주변을 눈요기하며 낄낄대는 일행들의 배포가 부럽다 못해 은신처가 되어주는 듯했다.
(이 작품은 농촌의 적나라한 현실을 그려내고, 토착어의 맛깔스러움을 담아낸 것만으로도 상을 받을 만하다. 끼리끼리 나눠 먹는 풍토만 사라진다면--)
(140)부뜨앙과 형석:형석이 부뜨앙과 같이 보낸 사흘 동안의 베트남 생활은 그야말로 구름다리를 건너는 듯한 어지럼증의 연속이었다.
형석이 부뜨앙의 손을 잡을라치면 잠깐 부끄럼을 탔다가도 이내 순한 토끼가 되었다. 앙증 맞은 부뜨앙의 손이 자신의 손바닥 안에서 꼬무락거리는 것에 자극되어 형석은 행인들 앞에서 자신의 아랫도리를 조심스레 내려다봐야 했다.
(143)형석은 3월에 파종한 대파를 5월에 정식하고 여름내내 굴파리와 파밤나방이라는 생명력 지독한 벌레와 10여 차례 전투를 했다. 명줄 질기기가 호랑이 가죽 못지않은 쇠비름이나 바랭이들 틈새에서 대파를 지키느라 자신의 몸에서 뽑아낸 육수가 얼마나 될지 가늠해볼 여유없이 늦가을까지 뜀박질을 했다.
지게 작대기만한 중국산 대파가 가락시장에서 판을 치고 있는 마당에 대파 풍년이 원수였다. 게다가 농사꾼 모두가 쓸데없이 부지런했던 죄의 값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형석은 농사를 짓는다고 비용을 쓸 것이 아니라 동네 느티나무 아래서 새끼손가락으로 막걸리나 휘저어 마시다가 취하면 배때기 드러내놓고  코를 골든가 장기판을 동무 삼았다면 몇 천 원의 막걸리와 담뱃값만 외상으로 남을 수 있었다.  막걸리 외상에 비하면 대파 생산비는 너무나 컸으므로 계산상으로는 그 방법이 합리적이었다.
(장보러 갈 때마다, 야채값이 왜 이렇게 비싸냐고, 고기값과 맞먹겠다고 궁시렁거렸었다. 생산자의 노고 같은 건 생각 밖이었다. 거간꾼들의 농간없이, 생산자와 소비자가 웃으며  농산물을 사고 팔 날은 요원한 것인가.
저들의 자조적인 쓴웃음을 누가 멈추게 할까?)
(144)오월의 신부:부뜨앙은 5월27일 형석이 곁으로 온다/보리가 이삭을 펼치기 시작하던 4월 초순에 형석은 복숭아 나무  열 그루와 삽을 옆구리에 끼고 대파를 갈아엎어 놓은 밭으로 올라갔다. 먼 발치에서조차 눈길을 돌리고 싶던 밭이었다. 형석은 한참동안 밭둑을 돌아다니면서 살펴보았다. 아침 해를 일찍 받는 곳이 좋을지 오후 햇살을 늦게까지 받는 방향이 좋을지 복숭아나무  심을 데를 고민 중이었다. 게다가 부뜨앙이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복숭아를 내년부터라도 열리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덜익은 욕심까지 보탰다.

<아직도 건네지 못한 이야기> 147
(현준오빠:짝사랑 현준오빠/시장바닥에서 머리채를 끄들리며 한바탕 싸움을 하고 돌아서는데--)
(175)선우 엄마가 영심을 생선가게로 끌고 와서 긴 말, 짧은 말을 섞어서 늘어놨지만 영심의 귀에 들어오는 말이 없었다.오직, 38년 만에 본 현준 오빠의 놀란 눈동자만 어른거릴 뿐이었다.

<이른 봄> 177
(어쩌면 그리 세세하고 실감나게 사실적으로 쓸까?
소설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더라~ 책 팔아 돈 좀 벌고 싶다는 허무맹랑한 생각, 소설을 써볼까 하는 생각, 이제는 깡그리 접고 이런 재미난 글 읽으며 카피하며 시간을 즐기리라. 이렇게라도 할 수 있는, 아직은 쓸만한 시력이 있고 오늘 현재 달리 마음 쓸 데가 없어 책에 집중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다. 내 나이 칠십 중반으로 치달아오르니 이에 무얼 더 바라랴~)
(194)농촌 아낙의 삶: 귀숙은 자신이 사는 꼴을 들여다보니 호적상으로만 귀숙의 아내일 뿐 실상은 머슴도 상머슴에 불과한 밭두렁 등신이었다. 삼백예순 날에서 삼백 날을 넘게 밭고랑을 기어다니고 소똥을 치우고 살아도 빚더미 속에서 다리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는데 서방이라는 작자까지 흘리고 다니는 일거리가 발에 채여서 지 맘대로 나오는 숨도 조절해서 쉬어야 할 판이었다. 무엇보다도 들에서 자신의 삭신을 굴리는 만큼 빚이 줄어야 마땅한 이치인데 빚덩이는 몸뚱이를 더 굴려 커져만 가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대출 받아서 이자 막고 다시 대출 받아서 연체이자 막았다.  폭우로 방죽 둑이 무너졌는데 귀숙 자신은 무기력하게 호미 자루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꼴이었다.
(경석이는 뭔가 숨통 트이는 일을 해보려구 진도개 어미와 새끼 사는데 500만원이라는 거금을 빌렸다. 농민이야 빚더미에 깔려 죽든 말든 농협은 척척 돈을 빌려 주는갑다.
어미 배가 불러오는 모양을 보며 희망에 차 기다리는 중에, 뼈대 있는 강아지값이 단돈 3000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기숙은 다리 힘이 빠져 제 힘으로 일어설 수가 없다. 나 또한 분노 조절이 안 된다. 어쩌꺼나, 이 농촌 현실을---)

<연변 봉숭아꽃> 207
(딸같은 어린 여자들을 연변에서,베트남에서, 캄보디아 등지에서 데려와
나이든 노모 시중, 병든 남편 시중, 쉴틈없는 농사일을 시킨다. 학수의 아내 순정은 그래도 난 편이었다.  고가의 구두를 장백이가 물어뜯었다고 개 패듯 패기 전까지는--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오늘도 그녀들은 죽지 못해 산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도 모르는 척, 몰라도 대수냐 하며들 산다.)

<놈> 237
(왜 제목이 '놈'인지 다음을 보면 안다)
(240)놈 때문에 생기는 나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피나는 노력이 40년이 넘어가고 있다.
(241)(한밤중에 전화를 받고도)그래, 새꺄 간다, 가! 니가 여그를 안 뜨믄 내가 뜬다! 니놈하고 더 이상 안 엮어질라믄 그 수밖에 더 있겄냐!
(251)놈의 실체:한여름에 얼어 죽을 오지랖인지 놈은 있으면 다 퍼 주고 없으면 그만이었다. 이탈이었다. 소유의 개념이 생긴 이래로 인간들이 시대에 맞게 만들어 놓은 일종의 질서에서 벗어난 짓을 놈은 일상적으로 저질렀다. 헝클어진 다른 사람의 인생에 왜 자꾸 끼어드는지 알 수가 없었다.
(260)동네사람들에게 비친 '놈':
가뭄 때 동네 저수지 수문을 관리할 사람은 항상 놈이 뽑혔다. 적고 한정된 물을 공평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놈밖에 없다고 동네 사람들은 생각했다.
(267)"애쓰고 일하믄 일한 만치 빚이 덜어져야 할 것인데, 어찌케 된 시상인지 애를 쓰믄 쓸수록 빚이 불어나니 뭣이 잘못되었어도  한참 잘못 되었당께!"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말은 아직도 유효한가? 전국을 누비며 청년들의 인기를 끌어모으느라 다투는 두분 대통령 후보 누구의 입에서도 '농어민의 생활 안정과 복지'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조차 없다. 그러니 누가 진정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 될 거라는 기대를 할 수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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