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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과 서쪽으로West with the Night

맑은 바람 2021. 12. 23. 12:55

아프리카 동부 케냐
베릴 마크햄(1902-1986.8.3 케냐 나이로비)

베릴 마크햄 지음/한유주 옮김/2018년 5월 초판 1쇄 발행/455쪽/예문 아카이브/읽은 때 2021년12월21일~12월 29일

--76년간 전세계에서 사랑받은 에세이의 고전
"이 책을 읽고 작가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

베릴 마크햄:(1902~1986) 향년 84세. 영국인, 대서양을 서쪽으로 단독 횡단한 최초의 여성 비행사.
명민함과 넘치는 기백, 미모까지 겸비해 '케냐의 키르케'로 불릴 만큼, 생텍쥐베리(1900~1944)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의 연인이자 뮤즈였다.
그녀의 자전적 에세이이자 유일한 저작인 이 작품은 아프리카를 가장 아름답게 그려낸 에세이의 고전으로 평가받으며 오랫동안 아마존 여행 에세이 1위에 자리하고 있다.

(9)내 생각에 '이 밤과 서쪽으로'는 잘못 붙인, 적절하지 않은 제목이다. 제목만 봐서는 산문적인 책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 책에는 시적이고, 서정적이고, '연상적'인 단어들이 잘 어울린다. 첫 책(이자  마지막 책)이라고 보기에는 잘 다듬어진 문학적인 문장들이 놀랍기만 하다. 이 책은 1942년 미국에서 출간됐다.--1984년 마사 겔흔 서문 중에
**마사 겔흔-스페인에서 기자로 활동, 헤밍웨이의 세 번째 부인/ 5년 살고 헤어짐

1부
01. 눙귀에서 온 소식
*눙귀--나이로비 서남쪽 빅토리아 니얀자 호숫가 남쪽 끝자락에 있는 벽지마을
(21)당시 나는 나이로비에서 무타이가 클럽을 본부로 삼아 프리랜스 조종사로 일하고 있었다./일이 없을 때가 거의 없었다/나이로비는 당시 한창 성장하며 북적이는 도시였다.
(24)아프리카:

정복을 두고 경쟁하던 이들은 아프리카의 살아 있는 혼을 간과했다. 정복자들에 맞서는 힘을 발산하는 혼이다. 혼은 침묵하고 있을 뿐 여전히 지혜를 간직한 채 살아있다. 다만 너무나 단순한 까닭에 근대문명이라는 서투른 땜장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처럼 여겨질 뿐이다. 아프리카의 시간은 고대로까지 올라가고 아프리카인의 혈관에 흐르는 피는 진실만큼이나 예민하고 고상하다. 피의 순수성만 놓고 본다면 최근에야 나타난, 강철과 자만심으로 무장한 신출내기 종족들이 에덴동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뿌리를 두고 이어져 온 마사이 무라니(전사) 한 사람에게라도 과연 대적할 수 있을까?
(26)아프리카는 하나의 땅에 불과하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희망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환상인 곳이 아프리카다.
(27)아프리카는 신비롭다. 야생의 땅이자 푹푹 찌는 열화지옥이다. 사진가들에게는 천국이고, 사냥꾼들에게는 발할라(북유럽 신화에서 전사자들의 영혼이 쉬는 낙원)요, 현실도피자들에게는 유토피아다. 아프리카는 당신이 바라는 모습을 보여주며, 어떤 해석이라도 받아준다.
아프리카는 죽은 세계의 마지막 흔적이기도 하고, 새롭게 빛나는 세계의 요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에게 아프리카는 그저 '고향'이다.  아프리카에는 딱 하나, 지루하다는 형용사만 빼고 어떤 말이라도 붙일 수 있다.
(이러다 책 한 권 다 베끼겠다. 글이 어찌 이렇게 명쾌하게 딱 떨어질까!)
아무것도 몰랐던 네 살에 영국령 동아프리카에 도착한 뒤 난디족과 맨발로 멧돼지를 사냥하던 어린시절을 지나 생계를 위해 경주마를 훈련하고 더 나중에는 코끼리를 찾아 비행기를 타고 탕가니카며 타나와 아티강 사이 바싹 마른 관목지대를 정찰하던 시절까지 나는 권태를 모르고 늘 행복하게 아프리카 생활을 만끽했다. 그러다 런던으로 가서 1년간 지내고 나서야 나는 산다는 것의 지루함을 입에 올리는 지식인들을 이해하게 됐다. 내게 지루함이란 십이지장충병이나 마찬가지로 풍토병이다.
(28)내가 아는 한 당시 아프리카에서 조종사가 직업인 여성은 내가 유일했다. 그래서 전보를 받고 낮에는 물론이고 야간에도 비행을 해야 할 때가 부지기수였다.
(29)계기판과 무선유도 장비에 의지해 항로도가 있는 지역을 야간에 비행하는 것도 꽤나 적적하지만, 리시버라는 냉랭한 동반자 없이, 저 너머 어딘가 빛과 생명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공항이 있다는 걸 모른 채 견고한 어둠 속을 비행한다는 것은 단순히 외롭다고 말할 수는 없다. 때로는 다른 이들이 존재한다는 합리적 생각이 불가능할 정도로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언덕이며 숲 바위 평야가 모두 어둠과 한몸이 되고, 그 어둠은 무한히 펼쳐져 있다. 지구는 이제 나의 행성이 아니라 머나먼 별에 지나지 않는다. 내 행성은 비행기다. 그리고 나는 이 행성의 유일무이한 거주자다. 이런 비행에 나서기 전이면 나는 물리적인 위험보다도 혼자 있게 된다는 생각에 다소 불안해졌고, 그러면 내 직업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나는 외롭거나 그렇지 않거나, 이 일만이 지루함의 저주를 물리쳐 준다는 결론을 냬렸다.
(33)지금도 여전히 아프리카는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들의 요체이자 늘 궁금하지만 결코 완전한 답을 내어주지 않는 수수께끼들의 요람이다.
(34)아랍 루타:난디족/비행기 이착륙을 돕는 사람/일터에서 만족스럽게 일하는 자유인의 웃음을 지닌 그는 삶의 욕구로 충만한 강인한 남자다. 그의 피부는 그저 검다고만 할 수 없다. 그의 살갗은 오랫동안 사람 손길이 닿은 구리처럼 따스한 온기와 광택을 발한다. 검은 두 눈 사이는 넓고, 우뚝 솟은 코에는 자신만만함이 깃들어 있다.
(37)나의 경량 2인승 비행기에는 청록색 기체에 은색 페인트로 'VP-KAN'이라는 글자가 또렷하게  적혀 있다. 낮이면 내 비행기는 맑은 바닷물 아래서 노니는 밝은 색 물고기처럼 푸르고 투명한 하늘을 작고 예쁘게 장식한다. 하지만 이런 어둠 속에서는 그저 지상 위를 지나가는 부드럽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웅얼거림에 지나지 않는다.
--칸은 내게 살아있는 존재나 다름없다. 그리고 칸은 내게 종종 말을 건넨다. 방향키를 밟고 있는 발밑으로 근육에 잔뜩 힘을 주고 기꺼이 긴장하고 있는 칸이 느껴진다.

02. 흑수열로 죽는 남자들
**흑수열--말라리아 합병증/소변이 검게 변하며 죽게 됨
(44)눙귀의 카비론도족:탁월한 체력과 일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어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다루기 쉽고 믿을 만한 노동력을 보유한 종족으로 여겨진다./자기 부족에 대한 이들의 자긍심은 제 아무리 자부심 강한 영국인보다 크면 컸지 결코 부족하지 않다.
(49)자칼을 봤더니 아프리카에서는 뭐든 함부로 버려지는 것이 없다는, 별로 위안이 되지 않는 말 하나가 떠올랐다.  특히 죽음은 결코 그냥 버려지지 않는다. 死者가 남긴 것으로 하이에나가 축제를 벌이고 그래도 남은 것은 자칼과 독수리의 먹이가 된다. 그러고도 남은 것은 격렬하게 타오르는 태양의 차지가 된다.

03. 야생의 표식
(62-63)세렝게티 평원-탕가니카의 니아라자 호수에서 북쪽으로, 케냐 식민지의 국경 아래쪽으로 펼쳐져 있다./마사이족의 성역
끝없이 펼쳐진 세렝게티 평원은 텅비어 있지만 열대의 바닷물만큼이나 생명의 따스함으로 충만하다. 일런드 영양과 영양, 톰슨가젤이 지나간 길이 거미줄처럼 촘촘히 엮여있는 이 평원의 우묵한 지대와 골짜기는 얼룩말 수천 마리에 짓밟혀있다. 가시나무 수풀이 드문드문 자라난 목초지에 들어서는 물소들, 묘한 생김새의 코뿔소가 생명을 얻어 모험에 나선 회색바위들처럼 지평선을 따라 터벅터벅 걷는 것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이 땅에는 도로가 없다. 마을도, 도시도. 전보도 없다. 걷든 말을 타든 보이는 것이라고는 풀,바위,나무 몇 그루, 그리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이 고작이다.
(69)먼지구름:내 시야에 들어오는 사방의 수 많은 곳에서 돌연 작은 먼지구름이 살아있는 것처럼 솟구쳐 평원을 가로질러 굴러가더니 다시 사라졌다. 하늘에서 보이는 먼지 방울들은 정령을 닮아 있다. 예쁜 마법 항아리에 갇혀 있다 튀어나와 오랫동안 꿈만 꾸던, 나쁜 짓이나 착한 행동을 완수하려고 다급하게 바람을 타고 달려가는 정령들 같았다.
(70)윌더비스트--
(71)얼룩말:내가 아는 한 얼룩말은 아프리카에 사는 동물 중 덩치와 관계없이 가장 쓸모없는 존재다. 물론 인간에게 그렇다는 말이다. 세렝게티에서 얼룩말은 사자의 주된 먹이다.

04. 우리는 왜 비행을 할까
(83-85)실종된 우디의 기체 발견:
그의 비행기는 영국제 95마력 팝조이 모터가 장착된 독일제 클렘 (Klemm) 단엽기였다.--기체는 미동도 없이 늦은 오후의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날개 앞에서 보니 사고 흔적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클렘은 거친 잿빛 땅에 누워 쉬고 있는 연약한 여성 같았다. 예쁜 날개에는 상처 하나 없었고 프로펠러는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조종석은 비어 있었다.--워낙 경박하고 변덕스러운 클렘에게 별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퍼뜩 우디가 죽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알았다.(우디는 비행기 고장으로 비상착륙한 끝에 천우신조(?)로 베릴을 만난 것이다. )
(92)-(우디)우리는 왜 비행을 할까?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는데, 사무실에서 일하거나, 농장을 차리거나, 아니면 공무원이 되거나--
-(베릴)당장 내일이라도 그만둘 수 있어. 비행기에 등을 돌리고 다시는 방향키에 발을 올려놓지 않으면 돼. 전부 다 잊고 아프리카가 아닌 어딘가로 가서 다시는 비행장을 보지 않고 살 수 있어. 그렇게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데  왜 안 하는거야?
-(우디)그런데 그걸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너무 지루할 것 같아.

2부
05. 너는 훌륭한 사자야
어린 베릴이 사육당하던 사자 패디의 공격을 받고 구사일생으로 살았다. 평생 사자의 발톱 상처를 간직한 채.
(97)난디족과 사냥을 함:롱가이 계곡이나 마우 단애의 삼나무 숲/그곳에는 딕-딕과 표범, 콩고니, 흑멧돼지, 물소, 사자 그리고 겅중겅중 뛰는 산토끼가 있었다. 이런 산토끼들은 줄잡아 수천 마리는 있었다. 윌더비스트와 큰 영양도 있었다. 땅에서 기는 뱀과 나무를 타는 뱀이 있었다. 새들이 있었고 가죽채찍같은, 햇빛 속의 빗줄기 같은, 싱기리 앞에 꽂힌 창 같은 젊은 남자들이 있었다.
(99)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사자는 여느 인간보다 영리하단다. 그리고 어느 인간보다도 용맹하지. 가진 것과 필요한 것을 위해 싸우는 게 사자야. 겁쟁이는 경멸하고  적수는 경계하지. 하지만 두려워하지는 않아. 사자는 언제나 보이는 모습 그대로라고 생각하면 돼. 사자는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야.
(110)패디는 아주 늙은 사자가 될 때까지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빤히 구경하며 살았다. 짐 엘킹턴이 죽고 진정으로 패디를 사랑했던 엘킹턴 부인은 자신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게 되자 어쩔수 없이 패디를 쏘아 죽이라고 지시했다.---그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방식대로 살다가 죽었다. 그는 훌륭한 사자였다.--내 몸에는 아직도 그의 이빨과 발톱이 남긴 흉터가  남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매우 작아져서 나는 잊다시피 했다. 그리고 나는 최고의 순간을 누렸을 패디를 나무라고 싶지 않다.

06. 그 땅은 고요해
(111)은조로 농장:아버지의 농장/완도로보라는 원주민이 살았다/사냥을 했으나 남을 해치지는 않았다./그들은 콜로부스원숭이 가죽과 소금ㆍ기름ㆍ설탕을 교환하러 왔다./농장은 공장처럼 규모가 컸다. 천 명에 달하는 카비론도족과 키쿠유족이 일하고 있었고 소들도 수백 마리로 불어나 있었다.
(116)들라미어 경:은조로 농장의 이웃/'적도 목장' 주인/탁월한 머리와 활기찬 성품을 바탕으로 오늘의 케냐가 형성되고 성장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침/훗날 영국령 동아프리카의 모든 농장들의 본보기가 됨
그는 동아프리카와 마사이족을 사랑했다. 원대한 사랑이었다. 그는 이 땅에 자신의 재능과 재산 대부분, 그리고 모든 기력을 남김없이 쏟았다. 그는 흑인 문명에서 배울 것이 전혀 없다는 백인들의 오만한 믿음에  걸려들지 않고  마사이족에게 이해와 도움을 줬다. 흑인의 문명적 결핍은 선택적으로 취하지 않은 것이며, 마사이족의 정신과 전통, 신체적인 탁월함, 그리고 전쟁을 제외하고는 그들 유일의 관심사였던 가축에 대한 지식을 존중했다./들라미어경의 성격은 깎아서 다듬은 돌처럼 많은 면을 갖고 있었지만, 이 면모들 각각은 따로따로 환한 광채를 발했다. 그의 관대함은 전설적이었지만 간혹 당찮은 이유로 화를 내기도 했다. 그는 돈을 낭비하는 사람이었다. 자기 돈만이 아니라 빌린 돈도 펑펑 써버렸지만, 자기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않았고 지나칠 정도로 정직했다. 그는 육체의 고통을 초연한 극기주의자처럼 이겨냈지만, 인생 대부분을 아픈 상태로 보냈다.
그에게 이 세상에서 영국령 동아프리카의 농업과 미래의 정치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그는 쾌활하고 이따금 장난꾸러기 꼬마에게서나 볼 법한 장난기로 똘똘 뭉쳐 정신을 팔고는 했다. 그는 생김새도 그렇고  가끔 하는 짓도 '퍽'을 빼다 박았지만 그의 성질머리를 긁는 무모한 사람에게는 엉뚱하다기보다 가혹하기 짝이 없는 본성을 드러냈다

(이 매력적인 남자 이야기가 계속 카피하게 만드네~)
(118)양어머니 같았던 들라미어 부인:은조로 농장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나는 몇 년 동안 '적도목장'으로  D부인을 만나러 가지 않은 날이 거의 없었다.
어린 내가 고민을 털어놓을 때마다,그녀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충고를 건네지 않았던 적이 한 번도 없다.
--들라미어 경이 동아프리카 이주민들 사이에서 으뜸가는 승자였다면, 그가 이룩한 수 많은 승리는 타고난 재능만이 아니라 아내의 헌신과 동료애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다.
(120)표범에게 물려갔다가 살아돌아온 블러:블테리어와 잉글리시 쉽독의 잡종/그는 목숨에 냉소적인 태도를 취했다.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그의 털가죽에는 평생 싸움꾼으로 살아온 이력을 알려주는 길고 짧은 반원형 흉터들이 암호처럼 새겨져 있었다. 그는 싸울 대상이 있으면 누구하고나 싸웠고, 주변에 바로 싸울 만한 상대가 없으면 고양이를 죽였다./표범이 밤에 오두막에 들어와 블러를 채갔다.--동틀 무렵 블러를 발견했다. 거의 숨을 쉬지 않고 있던 블러의 단단한 두개골과 아래턱은 꼬챙이에 찔린듯 구멍투성이였다.--그리고 열 달에 걸친 지루한 간호를 받고 회복한 블러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내가 아는 한, 크기와 종류를 막론하고 표범에게 잡혔다가 돌아와 그일을 추억할 수 있게 된 개는 블러가 처음이었다.(최근에 읽고 싶은 책  십여 권을 한꺼번에 사놓고, 이 책 저 책 먼저 보면서도 이 책은 제목이 영 끌리지 않아 뒤로 제쳐놓곤 했다. 그런데 이렇게 보석같은 책이었다니~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있다니, 난 참 복두 많다.)
**합 앤 캐리 원(hop  and carry  one)--난디와 마사이 무라니들이 성큼성큼 튀어오르며  달리는 방식
어린 베릴은 늘 친구들하고 합앤 캐리 원으로 숲속을 누볐다.

 

07. 황소 피를 주신 신께 경배를
(126)난디족의 종교의식:
아랍 마이나가 피와 엉긴 소젖이 담긴 바가지를 양손으로 움켜잡고 태양을 올려다봤다.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기도문을 읊조렸다.
"우리의 허리에 힘을 불어넣는 황소 피를 주신 신을 경배하노라. 사랑하는 이의 젖가슴에 온기를 안겨주는 소젖을 주신 신을 찬양하노라."
사냥을 나가기 전에는 이처럼 제의를 치러야 했다.
(132)창의 의미:나는 아랍 마이나의 늘씬한 팔을 바라봤다. 고르고 평평한 근육을 봐서는 아랍 마이나에게 그처럼 어마어마한 힘이 숨겨져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아랍 마이나는 아랍 코스키처럼 키가 크고 어린 대나무처럼 탄력적이었다. 피부는 속삭이는 바람에 나부끼는 잉걸불처럼 빛났다. 젊고 엄격한 얼굴에는 부드러운 장난기가 비쳤다.그 얼굴에는 삶에 대한 사랑, 사냥에 대한 사랑, 자신의 힘에 대한 확신, 자신의 창이 지닌 아름다움과 힘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모든 무라니에게 창은 성인 남성이 됐다는 징표이자 근골과 마찬가지로 몸의 일부다. 그의 창은 신념의 표명이며, 창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룩할 수 없다. 땅도 가축도 아내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팔에 힘이 있는 한, 나이가 들어 눈에 구름이 끼기 전까지 그는 언제나 창을 쥐고 있을 것이다. 창은 그가 나고 자란 상징이다. 그리고 창을 소유함으로서 그는 남자가 된다.
(146)아프리카 흑멧돼지:나는 아프리카 흑멧돼지보다 겁없는 동물을 알지만, 이들보다 더 용맹한 동물은 알지 못한다. 초원의 농사꾼인 이들은 촌스럽고 지저분한 땅파기꾼이기도 하다. 겉모습은 볼품없지만 가족과 집, 중산층의 관습을 지키는 일에는 용감무쌍하다. 이들은 자신의 의기양양한 존재를 방해하는 것이라면 크기가 어떻든 어떤 짐승이든 싸움을 불사한다. 그의 무기조차 서민적이다. 땅을 팔 때 쓰는 날카롭고 치명적이지만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굽은 어금니를 싸울 때도 쓰는 것이다.
그에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의심할 대상이고, 의심의 대상은 싸워야 할  상대다. 그는 펄쩍 뛰어오를 수 있고, 말에 탄 사람이 공격 전술을 미처 생각해 내기도 전에 말의 배를 뚫을 수도 있다. 굴에서 튀어나오며 기습 공격을 선 보이는 속도는 가히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에게 작전상 후퇴는 있어도 항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도무지 여성의 글이라고는, 어린 소녀의 관찰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이 생생한 묘사!)
(154)불러의 重傷:피로 흥건한 웅덩이 앞에 선다. 내가 본 중 가장 몸집이 크고 불러보다 여섯 배는 큰 멧돼지가 탈진해서 엎드려 있고 개가 그 배를 찢고 있다. 늙은 멧돼지가 또 다른 적인 나를 보더니 맹렬한 기세로 다시 한 번 공격해 오고, 나는 옆으로 비켜 서서 멧돼지의 심장에 창을 꽂는다. 멧돼지는 거대한 어금니로 땅을 긁으며 앞으로 쓰러져 꼼짝없이 누워 있다.
나는 창을 그대로 남겨두고 불러를 돌아본다.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한 것이 느껴진다. 개는 도살당한 양처럼 가리가리 찢겨 있다. 몸 오른쪽은 꼬리부터 머리까지 찢겨 속살이 계곡처럼 드러나 있고, 피로 범벅된 손가락들을 닮은 허연 갈비뼈가 보인다. 그는 멧돼지를 보고 옆에 무릎을 꿇은 나를 보더니 제 머리를 내 팔에 떨군다.

08. 너와 나는 놀이 친구야
(160)일차 대전 勃發:1915년(베릴13세)이 되자 빛은 '유럽 전역'에서만이 아니라 동아프리카의 몇 되지 않는 창문에서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160)(대영제국 식민지 사람들은 소집령이 떨어지자  각지에서 모여들어 戰場으로 갔다. 농장의 많은 사람들도 싸우러 갔다. 베릴의 친구 키비의 아버지(아랍 마이나)도 전사했다.)

09. 유배 당한 왕족
(173-175)캠시스캔:교배를 목적으로 영국에서 데려온 말/두꺼운 혈통대장이 딸린 종마/그는 유배당한 왕족처럼 느린 걸음으로 떠들썩한 작은 기차의 경사로를 내려왔다.
그의 이마에는 하얀 별무늬가 있었다. 큼직한 콧구멍은 중국용의 옷칠한 콧구멍처럼 진홍색을 띄었다. 그는 키가 크고 허리는 두툼했으며 가슴은 늘씬하고 강인한 다리는 대리석처럼 미끈했다. 햇빛을 듬뿍 받으며 긴 다리로 서 있는 종마는 붉은색이 감도는 금빛 광택을 발하고 있었다./그는 인간들이 자기 시중을 드는 존재이며 그 대가로 자신은 이런저런 사소한 변덕을 허락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여러 번 그녀를 내동댕이 치고는 채찍으로 무수히 맞기도 했지만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말과 인간간의 교감이 이루어진 것이다)

10. 날개 달린 말이 있었다고?
(186)코케트: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의 옛이름)산으로 밀수로 들여온 암말/작은 체구에 횡금빛 털을 지님/갈기와 꼬리가 새하얗다./망아지 출산을 베릴이 손수 돕는다/"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주는 법이지" 아버지가  말한다.
"네가 인도한 생명이니 이 망아지는 네 것이다."
나는 새로 태어난 수망아지에 대해 생각했다. 이름을 뭐라 붙인담?
이름을 궁리할 때 위쪽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위쪽을 올려다볼 때 하늘 말고 볼 것이 또 뭐가 있을까? 하늘을 나는 페가수스라는 이름의 말이 있지 않았나? 날개 달린 말이 있지 않던가?
그리고 지금, 날개 달린 말이 다시 내  앞에 있었다.
(188)아버지:샌드허스트(영국육군사관학교) 졸업/방대한 그리스어와 라틴어 지식을 갖춤/오비디우스와 아이스킬로스의 글을 번역해 여러 상을 받음/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아마추어 기수/그리고 말과 아프리카에 명운을 걸었다. 아버지는 한 번도 손해를 후회하지 않았고, 얻은 것을 뽐내지도 않았다./아버지는 키가 작지도 크지도 않다. 마른 체격이지만 가죽띠처럼 강인하다. 다정함을 잃지 않은 다부진 얼굴의 두 눈은 검고 상냥하다.
(189)은조로의 11월:11월의 은조로와 고지대는 키쿠유족, 마사이족, 카비론도족이 섬기는 신, 또는 백인들의 신, 아니면 인간이 알고 있는 모든 신들이 서로 사이좋게 협업해 차례대로 돌아가며 내려주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빗줄기에 젖어들기를 기다린다.
(190)뚱보 툼보:베릴의 전속 참모/툼보가 온다. 온다기보다는 나타난다고 하는 편이 낫다.그는 흑단(흑단나무에서 얻는 단단하고 검은 목재)으로 빚어진 사람 같다. 이 극단적인 세계에서 그 어떤 것도 툼보보다 검지 않고, 그의 배보다 둥글지 않고, 그의 미소짓는 입보다 넓지 않다. 툼보는 항아리에 한 번도 갇히지 않은 착한 정령이다. 문간이 갑자기 그로 채워진다. 그는 마치 싸구려 장식품에 박힌 반들반들한 돌처럼 보인다.
"툼보, 코게트의 해산일이 가까워졌어요. 이제부터 불침번을 서야 해요."
툼보의 넓적한 얼굴에 함박웃음이 연못의 잔물결처럼 퍼져나간다.
그에게 탄생과 성공은 동의어다. 툼보 자신의 탄생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성공이다. 그의 눈과 입 사이에 더는 공간이 없을 때까지 그의 웃음이 퍼져나가고, 급기야는 눈까지 사라진다.

(이 기분좋은 표현을 끌어내는 솜씨란! 베릴과의 만남은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사물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그려내는 이야기라 이렇게 감칠맛이 나고 읽는 즐거움을 주나 보다)

신화 속 페가수스/베릴의 수말이름은 페가수스다

3부
11. 내 길은 북쪽으로
(부녀의 이별:은조로에  닥친 무서운 가뭄은 모든 씨앗들을 말라죽게 했다. 제분소를 경영하던 아버지는 계약 이행을 위해 비싼 값으로 밀가루와 곡물을 사들여 약속을 지키고, 파산지경에서 은조로를 떠난다. 아버지는 페루로, 17세가 된 베릴은 自意에 의해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 몰로로.)
(206)나는 살고 사랑했으며  모든 지난 날을 깊숙이 묻어둔 곳을 반드시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 최대한 미적거리지 말고 가능한 빨리 떠나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절대로 돌아보지 말고 기억에 남은 시간들이 더 행복했다고 생각하지 말 것. 그 시간은 이미 죽었으니까.지나간 세월은 이미 정복돼 안전하게 보인다. 반면 미래는 만만찮게 보이는 구름 속에 살아 있다. 미래로 걸어 들어가면 구름은 걷힌다.나는 이 사실을 배웠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뒤늦게야 배우게 됐다.
(207)이 모든 일들이 벌어진 것은---우리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던 다정한 신들이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더는 비를 내리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208)어느 해 은조로와 인근의 모든 농장, 낮은 평야 지대, 비탈진 언덕, 숲을 베어 만든 네모난 터의 모든 씨앗이 죽었다. 쟁기 하나, 희망 한 톨로 지어진 농장과 대농장들의 모든 씨앗이. 비가 내리기를 애타게 갈구하다 결국 아무런 양분을 흡수하지 못하고 굶주려 죽었다.---모든 생명은 성장을 멈췄고 , 이파리는 말려들었고, 모든 생물은 태양에게서 등을 돌렸다.
(209)아버지의 제분소에 닥친 시련:비가 내리지 않으면 제분소도 멈춘다. 아니다. 어찌어찌 돌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주인의 절망을 잘근잘근 갈아대면서.
가뭄이 시작되기 전, 아버지는 밀가루와 곡식 수백 톤을 정해진 가격과 날짜에 공급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정부기관 및 민간업체들과 계약을 맺었다.
(210)은조루를 떠나다:
어느날, 기다란  화물열차가 의기양앙한 작은 엔진을 앞세워 제분소를 떠났다. 마지막 밀가루가 갈렸다. 모든 계약서는 첫줄부터 맨 끝의 장엄한 우유 얼룩까지 모두 지켜졌다. 기차엔진이 멀리서 몸을 꺾었다. 깨끗한 지평선에 자욱한 연기를 드리우며 크게 한 번 기적소리를 울리고는 기차는 사라졌다. 그 기차에는 내 어린시절 대부분이 실려 있었다. 농장과 건물들, 마구간, 그리고 날개 달린 말을 제외한 나머지 말들에 대한 아버지의 소유권도 실려 있었다.

(절망의 순간을 이토록 담담하게 그려낼 수 있다니!)
(212)아버지의 조언:
"몰로로 가라. 몰로에는 네가 쓸 수 있는 마구간이 있다. 네가 아직 어린 여자아이라는 걸 명심하고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라. 네게 말 훈련을 맡길 사람들이 있을 거다. 그 다음에는 일을 하면서 꿈을 키우거라. 하지만 네가 일하는 것 이상을 기대하면 안된다."
(212-213)몰로로 가는 길:몰로로 가는 길은 북쪽으로 뻗어 있었다.
밤이면 별까지 곧장 이어지는 듯했다. 태양조차도 몰로로 가는 길을 기어올라야 했다. 나는 가진 것 전부를 지니고 그 길을 올라갔다.
내게는 안장가방 두 개와 페가수스가 있었다. 안장가방에는 말 덮개와 솔, 대장장이용 칼, 잘게 부순귀리 3kg,아프리카 말병에 대비한 온도계 하나가 들어 있었다. 내 물건으로는 파자마, 바지, 셔츠 한 벌, 칫솔, 그리고 빗이 들어 있었다. 이보다 적게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 이상 필요한 것 같지도 않았다.
(221)몰로의 첫인상:
페가수스와 나는 아프리카처럼 보이지 않는 곳으로 접어든다.
얼음처럼 차가운 시냇물이 흐르는 땅. 이 땅의 골짜기에는 고사리가 빽빽이 자라나고 언덕은 방랑하는 스코틀랜드인이 노래하는 초록빛 헤더(각종 히스의 총칭?)로 뒤덮여 있어 도무지 아프리카로 보이지 않는다. 하늘과 땅은 어색한 사이처럼 맞닿아 있고, 태양의 손길은 생각이 딴 데 가 있는 사람이 건네는 악수처럼 냉정하기만 하다.

12. 호디!(나 왔어)
(228)아버지 소식에 대한 답장:아버지가 얼마전 페루에서 보낸 편지를 꺼내 다시 읽고 답장을 하려고 펼친다. 강철 펜촉이 종이 위에서 속삭일 때처럼 정적을 꿰뚫고 들어가기 어려울 때도 없다. 나는 고독의 미궁에 들어앉아 펜촉으로 靜寂의 방벽을 연신 때리고 찌른다.
(229)한밤중 누군가가 맨발로 나를 향해 걸어오는 기척이 느껴진다.--어둠에 익숙한 정직한 소리다.
"호디!"
부드러운 목소리다. 나직한 음색의 목소리가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하다.--다정하고 상냥하며 수줍음도 느껴지는 목소리. '나왔어'라는 의미를 지닌 이 한 마디의 스와힐리어에는 '나 잘왔어?'라는 메아리도 담겨 있다.--'호디'는 상냥한 단어, 명예의 단어, 다정하게 답을 청하는 단어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문간을 내다본다.  아무도 보이지 않지만 나는 답을 한다.
"카리부!"
이런 뜻이다. "어서 와, 잘 왔어"
(어릴적 동무 키비가 창을 얻고 무라니가 되어 아랍 루타라는 이름을 갖고 그녀를 도우러 온 것이다.)
(235)운명의 장난:적어도 내가 몰로에 가지 않았다면 뉴욕에 가보지 못했을 것이고 비행을 배우지도 않았을 것이며  코끼리 사냥을 배우지도 못했을 것이다.
(240-241)톰 블랙:(길에서 차를 수리하던 젊은 남자는 돈을 모아 비행기를 사겠다는 포부를 이야기한다.)
그는 낯선 사람을 후하게 대접했다. 내게 단어 하나를, 나로서는 있는지도 몰랐지만 그래도 찾아야 했던 문을 여는 열쇠 하나를 던져준 것이었다.
"모든 조각이 하나로 맞춰지고, 그  전체가 내 것이예요--"  단어 하나가 생각으로 자라난다. 생각은 발상이 되고, 발상은 행동을 이끌어 낸다. 그 변화는 느리다. 현재는 내일이 갖고자 하는 길에서 굼벵이처럼 빈둥거리는 여행자다.

13. 나 쿠파 하티 음주리
('나 그대에게 행운을 가져다 드리리'의 뜻)
(245)나쿠루로 거주지를 옮김:
--나쿠르--
절대의 세계였다. 그림자도 소리도 색도 중간이 없었다. 나쿠루를 창조해낸  붓질에는 미묘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쿠르 호숫가는 침묵이 가득하고 쓸쓸하지만, 얕은 물을 둥글게 둘러싼 단조로운 모래와 진흙은 새들로 인해 지루할 틈이 없다. 한 마리나 한 무리, 수백 마리의 새 정도가 아니다. 해가 떠 있는 동안의 나쿠르 호수는 더는 호수라 부를 수 없다. 분홍색과 진홍색 불꽃의 향연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 불꽃 하나하나는 플라밍고들이 일으킨 것들이다. 이처럼 화려한 색을 지닌 새들 수만 마리를 한꺼번에 보고 나면 이후 살아 가면서 스스로도 정말로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해질 정도다. 하지만 나쿠르 호숫가의 플라밍고가 수만 마리라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수백만 마리라고 해야 얼추 맞을 것이다.
메네가이 분화구는 마을과 호수를 굽어보고 있다. 사람이 여기 살고부터 분화구는 유황을 내뿜지 않고, 가느다란 연기를 피워올리는 일도 드물다. 하지만 바다가 고리처럼 동그란 산호섬을 품고 있고, 사막이 사구를 품고 있는 것처럼 이 모든 것을 품은 리프트벨리의 연대기에 사람의 시대는 어떤 기록이 되기에는 너무 짧다. 내일도, 다음날도, 다음해에도 메네가이는 다시 화로가 될 것이고 지나가던 신이 한 겁의 세월쯤 전지전능한 손을 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가 오기 전까지 인간은 안전하게 그 자리에 서서 저 아래 분홍색과 진홍색 날개들의 호수를 지켜보며 서있을 것이다. 온갖 산의 불이란 불을 잠시나마 죄다 훔쳐온 것처럼 보이는 호수를.
나쿠루에서 나는 이처럼 호화로운 환경에서 말을 조련했다.
(252-272)세인트 레저 경마대회--
랙과 와이즈 차일드의 대결--(랙은 베릴이 훈련시킨 경주마였으나 그주인이 18세 소녀의 실력을 의심하여, 대회가 임박해서 데려갔고, 와이즈 차일드의 주인 에릭은 그녀를 믿고 말을 데려와 맡겼다. 와이즈 차일드는 나쿠루에서 나의 돌봄을 받게 됐다. 우리,그러니까 아랍 루타와 나, 그리고 조그만 적갈색 망아지는 함께 노력하고 함께 걱정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축복을 받은 셈이었다.
(265-269) 출발선을 떠난 말들이 갈길을 가고 있다. 긴 구간을 달리는 말들의 발굽소리가 천둥이 물결치는 것처럼 들린다.
경마는 단순하지 않다. 이 시합은 단순하지 않다. 단순히 열 마리의 말이 전력을 다해 달려가고 있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술과 저마다의 이유와 기회가 저들과 함께 달린다. 용기와 전략이 저들과 함께 달리고 있다.---그녀가 랙을 따라잡고 있다.--랙은 전진하는 힘의 화신이다. 와이즈 차일드는 근육과 뼈와 신경이 왼벽하게 어우러져 있다. 그녀는 빠르고 날렵하다. 그녀는 칼날처럼 날렵하다. 그녀는 랙과 손 하나 너비로 간격을 좁힌다. 그러고는 이내 머리카락 한 올 너비로, 마침내 간격이 사라진다.---암망아지는 돌을 스치는 회오리바람처럼, 사냥개를 앞지르는 치타처럼 수망아지를 제친다. 
불쌍한 랙, 가슴이 찢어지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 랙의 가슴은 찢어지지 않는다! 그는 머리를 약간 들고 있고, 나는 그가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는 종마이고, 수컷의 자존심은 타는 듯한 근육의 고통도 사그라뜨리는 용기에 불을 붙인다. 그는 모든 것을 잊고, 자신도 기수도 잊고 오직 목표만 생각한다. 그는 머리를 낮추고 번개처럼 암망아지를 뒤쫓는다.--나는 랙이 위풍당당하게 용맹함을 떨치지 못하는 모습을 냉담하게 보고 있을 수가 없다.  달려 랙!  할 수 있는 한, 빨리 달릴 수 있는 한, 빠르게 달려, 나의 랙.  나의 고집쟁이 랙. 그는 6마신이나 뒤떨어져 있다.
---랙이 다시 그녀를 따라잡으며 그녀를 지나치며 그녀에게 부끄러움을 안기며 그녀의 옆구리께 있다. 그녀가 휘청거린다.---나는 와이즈 차일드가 한번 더 휘청거리고는 자세를 바로하는 것을 본다. 나는 그림자였던 그녀가 작고 민첩한 용기의 불꽃으로 변하는 것도 본다. 그러자 나의 의혹도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그녀가 랙의 위협을 업신여기고 랙을 응원하던 사람들이 목구멍으로 환호를 삼키는 것을 본다. 나는 그녀가 부은 다리로 마지막 펄롱(201.17m에 해당하는 거리)을 휩쓸며 앞으로 달려 그녀의 말발굽이 일으킨 먼지를 랙에게 먹이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관중들은 다시 목소리를 찾는다. 그들이 결승점을 통과하는 와이즈 차일드를 향해  엄청난 기세로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끝났다. 누군가가 바벨탑의 문을 닫은 것처럼  정적이 흐른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행복감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다.  더구나 작가와의 교감이 이루어질 때는 희열마저 느낀다)

14. 바람의 심부름
(278)나이로비에서 비행사 톰 블랙을 다시 만나다.:
톰 블랙과 나는 나이로비에서 유일하게 밤새 영업하는 커피 스탠드에 앉아 우리의 첫 만남을 기념하는 자리를 가졌던 것 같다.---나는 처음으로 그 눈이 불편할 정도로 맑다는 것을 알았다. 푸른 두 눈은 모든 질문과 대답을 그 안에서 녹이는 것처럼 보였다.
(이 책은 분명 베릴 마크햄 자신의 이야기로, 자서전의 성격을 띠었으나 아버지 이외의 가족 이야기는 한 마디도 나오지않고, 주위에 멋진 남자들이 많았건만 그녀가 누구를 좋아했는지 또 누구를 사랑했는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이 없다. 생떽쥐페리와 연인 관계라 해서 언제쯤 그 이야기가 나오려나 했는데 끝까지 그의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이 책이 나온(1942년) 뒤의 이야기도 궁금하기 짝이 없건만--)
(284)"루타."내가 말했다. "전부 그만두고 비행하는 법을 배울 생각이예요."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먼지도 없는 손을 한 번씩 털었다.
그가 말했다.
"우리가 비행을 해야 한다면 해야지. 멤사힙. 아침 몇 시에 시작할까?"
*멤사힙-주로 사회적으로 높은 계층의 백인 여성을 높여 부르는 말, 베릴의 호칭

4부
15. 삶의 탄생
(288)톰 블랙은 처음에 'D.H.집시 모스'로 나를 가르쳤는데, 이 비행기의 프로펠러는  동틀 무렵 아티평원의 고요를 산산조각 냈다.
우리는 언덕이며 마을 위를 비행하다 돌아왔고, 나는 한 인간이 비행기의 주인이 되는 법과 비행기가 환경의 주인이 되는 법을 배웠다. 나는 시점의 연금술이 내 세계를 축소시키고 여태껏 지나간 나의 생애 전부를 컵 하나에 담긴 낟알로 바꾸는 것을 봤다.
나는 보는 법과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손을 믿는 법을 배웠다. 나는 꿈꾸는 아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할 것을,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먼 지평선은 없으며 넘어갈 수 없는 지평선은 없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이런 것들을 단숨에 배웠다. 하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힘들게 배울 수밖에 없었다.
---톰 덕분에 이런 감각들이 왔다. 톰보다 더 신중한 조종사는 없었지만, 더 태평스러운 조종사도 없었다. 비행기가 아무리 으르렁거리는 소음을 내더라도 그의 담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는 키가 큰 편이 아니었는데, 조용하고 단호한 태도로 인해 그가 어떤 일을 하든지, 어떤 비행기를 몰든지 더 크고 유능하게  보이도록 했다.
(295)비행을 배우고 약 18개월 후에 나는 'B'면허를 취득했다. 영국 제도 하에서는 가장 높은 등급의 자격증이었다.--

(그녀는 프리랜서 조종사가 되어 우편물과 승객, 사파리 보급품 등 수송해야 할 온갖 것들을 날랐다.)
(297)아랍 루타의 존재:톰과 베릴이 이야기를 나눌 때면 마실 것이나 저녁식사를 내온 아랍 루타는 영어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옆에 있던 기억이 난다. 그는 하인도 친구도 아니라 살아 있는 가택신처럼 테이블 곁에 머물렀다. 그런 그의 모습은 마치 청동상처럼, 전지적 신처럼 고요하고 심오했다.
(298)데니스 핀치-해튼:( '아웃오브아프리카'의 원작자인 덴마크 작가 카렌 블렉센(1885~1962)의 실제 연인)
거만하지 않았던 위대한 사람/최고의 백인 사냥꾼 중 하나/체격이 좋은 일류 크리켓 선수/고전에 통달한 학자/그는 사람들에게 절망하는 대신 자갈투성이 땅에서 시를 찾았다./그의 매력은 지성과 힘, 빠른 직관과 볼테르적 유머에서 나왔다./데니스의 비행기는 집시 모스였다./데니스는 베릴에게 코끼리 서식지 보이에 함께 가자고 했다/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톰은 동행을  만류했고 사건 이후 루타는 그의 소식을 궁금해 했다/데니스는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었다

16. 상아와 산세비에리아
(코끼리 서식지엔 삐죽삐죽한 산세비에리아가 있어 비행기가 갇히게 되고 걸어나오면 살인개미의 먹이가 된다.)
(312)폰 블릭센 남작: 블릭스, 블리키라고도 불림/카렌의 남편/180cm가 넘는 키에 상냥한 스웬덴 사람으로 내가 아는 한 가장 강인하고 가장 끈질긴 백인 사냥꾼/그는 베릴과 코끼리 사냥에 나선다
(카렌과 그녀의 남편, 애인은 모두 베릴과 잘 아는 사이이고, 헤밍웨이 또한 이들을 잘 안다. 그는 노벨상은 카렌에게 주어져야 했고, 베릴의 글을 읽고는 작가로서 부끄러웠다고 했다. 헤밍웨이의 통큰 여유를 알 수 있는 언사들이다.)

17. 내가 쏴야 할까?
(320)코끼리 사냥에 대하여:
코끼리에게 인간이란 죽을 정도로 아픈 독침을 쏘는 각다귀에 불과하다/코끼리는 평균적으로 우리 지능과 맞먹는 지능을 갖고 있다/코끼리들은 죽은 동료를 비밀스러운  무덤에 버리는데  이 무덤은 한번도 발견된 적이 없다는 전설이 있다/상아는 한때 금만큼 귀했다/아마도 나는 비행기로 코끼리 수색에 나선 최초의 인물일 것이다
(321)코끼리들의 생각:그 두 다리로 걷는 난쟁이들은 기억을 되짚어볼 때 어금니를 빼앗으려고 우리 수놈들을 죽였다. 하얀 난쟁이들은 어금니만 가져가기 때문이다.
(327)코끼리 사냥의 본모습은 불편하기 짝이 없어서, 이에 발생하는 비용은 오로지 부유한 이들만이 감당할 수 있다.
(330)마쿨라:마쿨라가 우리와 함께 갔다. 사실 마쿨라가 없었다면 그 사파리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이 책도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그는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 그의 모국어는 와캄바이고, 스와힐리어(아프리카 동부 해안의 언어)를 더듬거리기는 하지만 조금 할 줄 안다. 그는 지나칠 정도로 지혜로운 눈과 흑단처럼 검은 피부를 지닌 자그마한 원주민으로 흑마술 애호가이며 비글 사냥개(토끼사냥개로 몸집이 작음)의 본능을 갖추고 있다. 나는 그라면 대나무 숲에서도 호박벌을 쫓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사파리팀이 오가지만 마쿨라는 영원하다. 나는 가끔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그가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지혜로워서 지혜가 귀하다는 것을 아는 그는 그 한 조각도 내던진 적이 없다. 나는 자기일에 과도한열정을 바치는 한 신입에게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백인들은 돈을 내고 위험을 사. 우리 가엾은 사람들은 그걸 감당할 수 없어. 코끼리를 찾아. 그리고 사라져. 그래야 살아서 다른 놈을 찾을 수 있어."
(335-336)거대한 수놈코끼리와 마주침:커다란 수코끼리가 약 3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코끼리의 몸이 흔들렸다. 절벽 가장자리에서 아래로, 오갈 데 없는 내 앞으로 굴러떨어지기 직전의 바위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코끼리가 귀를 한껏 펼치고 코를 위로 쳐들어 우리 쪽으로 뻗은 채 분노에 찬 함성을 질렀다. 내 목을 조르는 손가락처럼 너무나도 무시무시하고 끔찍해서 선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게 만드는 소리였다. 겨울 바람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새된(높고 날카로운) 비명이었다. (그런데 그  비명은 이들을 덮치려는 게 아니고 그들 무리에게 도망가라고 경고하는 소리였다?)
---코끼리들은 떠났다.떠나면서 땅을 뿌리째 찢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우리를 공격하려고 했던 괴물도 . 그는 동작을 멈추고 소리를 살피고는 은행의 금고 문처럼 느릿느릿 확고하게 방향을 틀었다.그러더니 짓밟힌 식물들과 산산조각 난 나무들의 태풍 속에서 사라졌다.

18. 강의 포로들
(341)이툼바 야타고원의 거대한 수코끼리:윈스턴 게스트의 사냥 대상/
(343-345)존 카베리: 아일랜드 귀족 출신/뛰어난 조종사/ 대단히 지적이고 실리적인 사람/작은 체구에 기민하고 매력적임/소름끼치는 일이 벌어질 것이 분명할 때 킥킥대며 웃는 사람/그는 미국에서 산 적이 있고 그곳을 사랑한다./ 세라마이('죽음의 땅'이란 뜻)의 커피 농장주/케냐산 남쪽 기슭 가까이의 키쿠유 보호구역과 경계 지역인 세라마이는 2400m 고도에 위치하며 시원하고 안개가 많이 낀다. 토양은 비옥하고 비도 풍부히 내린다./그는 뛰어난 정비사와 활주로, 근사한 격납고, 어지간한 잔고장을 수리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베릴은 그녀의 비행기 에이비언을 손보려 이곳에 온다.

(존 카베리는 뒤에 베릴을 위해 대서양 횡단 비행기를 제작하도록 지원한다.)
(350)내가 파란 하늘을 날아오는 동안, 야타는 비가 내려 생긴 바다를 떠도는 정글섬이 되어 있었다.
---윈스턴과 블릭스, 그리고 그들이 고용한 짐꾼들 모두는 간신히 물을 피해 그루터기에 올라앉은 새끼고양이나 마찬가지였다. 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아프리카에서 강이 범람해 발이 묶인 것이었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그녀는 거의 모든 대상을 호의적이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독자는 새로운 인물에 대한 호기심을 강하게 느끼고 기대감을 부풀리기도 한다.)

19. 대담한 사냥꾼이여, 사냥은 어찌 되었는가?
(354)면도기와 깨끗한 셔츠가  없는 남자들:블릭스와 윈스턴은 면도도 하지 못해 지저분한 몰골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남자들이 면도기와 깨끗한 셔츠가 없으면 얼마나 빨리 추저분해지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이들은 가지를 쳐 주고 날마다 돌보지 않으면 잡초가 되는 화분 식물 같다. 하루만 턱수염이 자라도 무신경한 남자로 보인다. 이틀이면 부랑자로 보인다. 나흘이면 오염물질이나 다름없다. 블릭스와 윈스턴은 사흘간 면도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동안 작가의 글솜씨에만 감탄했지 번역솜씨가 훌륭하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있다. 한유주 번역가의 풍부한 어휘가 아니었더면 어찌 이런 글과 만날 수 있었겠는가!)
(356)멋진 사람 블릭스:
15명의 짐꾼들이 식량 제공을 하지 않는다고 파업을 하고 있는 사이, 블릭스는 베릴의 착륙을 위해 작은 나무 1000그루 이상을 부시나이프(원주민이 쓰는 무겁고 큰 칼)로 베어내고 그루터기를 모두 파내어 9m에 달하는 공터를 만드는 초인적인 위업을 이룩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블릭스는 웬지 밉살스럽게 나오더구만~)
(361-362)비행기를 처음 탄 원주민 마쿨라:마쿨라는 비행기에 오르길 주저했다. 베릴은 말했다.
"용감하지 않다면 아무리 현명하더라도 여자보다 못하다"
그는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땅에 침을 뱉었다. 마침내 그는 슈카에 손을 문지르고 에이비언에 올랐다. 반짝이는 금속테를 여러 개 감은 그 목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는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허리춤에서 가느다란 담요 하나를 꺼내 밤인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고 두려움처럼 형체가 사라질 때까지 그것으로 머리를 둘둘 말아 감쌌다. 그리고 나는 이륙했다.
아툼바로 가는 내내 나의 보따리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에이비언은 부드럽게 착륙해 활주로 위를 수월하게 굴러가다 멈췄다. 그러자 보따리가 움찔했다.--윈스턴과 블릭스의 목소리가 들리자 마쿨라는 자신의 흑마술 덕분에 수의가 되지 않았던 담요를 풀기 시작했다.
(375)늙지 않는 아버지:이제 예순 넷이 된 아버지는 아늑한 의자에 앉아 돌봄의 손길을 받으며 꿈을 곱씹고 친구들에게 툴툴거릴 자격이 충분하다.  원하기만 한다면 아마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유는 충분하니까.
"난 이제 늙었어.이제 좀 쉬어도 돼."
하지만 아버지는 대신 이렇게 말한다.
"너도 알겠지만, 나는 남아프리카가 좋아. 다반이 좋다. 나는 거기로 가서 말 훈련을 시작할 거다. 거긴 경마가 흥하고 배당금도 높아. 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아버지는 학생처럼 자신만만한 포부로 당신 생각을 알린다.
**다반--남아프리카 공화국 항구도시. 일 년 내내 날씨가 온화함

20. 콰헤리는 작별의 말
(382-383)블릭스와 함께 영국으로:
21. 리비아 요새를 찾아서
22. 벵가지의 촛불
(407)벵가지:그리스 시대엔 헤스페리데스('신들의 정원'이라는 뜻), 프톨레마이오스 3세 때는 베레니케라 불림
**벵가지--리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408)전쟁의 신은 이 작은 도시를 흙이 될 때까지 걷어차고, 도시는 고집스럽게도  다시 솟아오른다. 벵가지는 영혼을 지닌 작은 도시다. 더러운 영혼일지도 모르지만, 영혼이 있는 도시는 쉽게 죽지 않는다.  동방의 모든 항구도시들처럼 벵가지는 노골적이고 원색적이다. 피로에 지쳐 있으면서도 지혜를간직하고 있다. 한때 이 도시는 사막을 건너 대상들이 가져오는 상아로 삶을 꾸려나갔다.
(호텔방이 없어서 변두리 갈보집에서 일박한다. 박애주의자 브릭스는 몇 푼 남지 않은 돈 일부를 떼서 주인여자에게 준다.)
(418)우리가 차를 마시고 안뜰을 벗어나 여전히 어둠에 잠겨있는 거리로 나설 때까지, 갈보집 주인은 촛농을 뚝뚝 흘리는 촛불을 손에 든 채 오랫동안 그 집 앞에 서 있었다. 우리가 신들의 정원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었던 빛이었다.
(418-419)아프리카!:
아프리카는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이에게 결코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변화의 땅이어서가 아니라 무수히 다양한 정취를 간직한 땅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변덕스럽지 않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단지 인간만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부족을 낳았고, 도시만이 아니라 문명들의 요람이 되어 왔으며, 그것들이 죽는 것과 새로운 것이 다시 태어나는 것을 지켜봤다. 아프리카는 냉정하고, 무심하고, 따스하고, 냉소적이고, 너무 많은 지혜에 지쳐 있다.
오늘날 아프리카는 영원한 약속의 땅, 그 약속이 거의 실현된 땅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내일이면 다시 암흑의 땅, 자기 자신에게 이끌리는 땅, 에덴의 실험 이후로 아프리카를 두고 애타는 쟁탈전을 벌여온 인간들의 헛된 행동을 경멸하고 짜증스러워하는 땅이 될지도 모른다. 대륙이라는 가족들 가운데 아프리카는 말없고 침울한 딸이다. 수 세기 동안 제국이라는 편력 기사들의 구애를 받아왔지만, 대단히 현명하고 그 끈덕진 요구에 물린 나머지 아프리카는 그들을 하나씩, 때로는 여럿을 거부해왔다.
(베릴이 모는 비행기는 '레오퍼드 모스'다)

23. 이 밤과 서쪽으로.
(426-428)1936년  9월 대서양 횡단을 결심하다, 엘스트리 올든햄 하우스에서.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왜 위험한 짓을 사서 하지?"
"그렇게 타고난 걸 어떻게 해."
나는 그동안 40만 km가량을 비행했다. 하지만 내게 비행기가 있고 하늘이 저기 있는 한 더 많은 거리를 비행할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429)런던 존 카베리 부부의 만찬 초대장에서:
"J.C, 베릴의 기록 비행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생각 없어요?"(맥카시)
"남자든 여자든 아무도 영국에서 혼자 비행에 나선 이는 없었네. 난 거기에는 관심이 있네만, 다른 건 생각이 없네.  벌(베릴을 가리킴), 자네가 할 생각이 있다면 내가 지원하지. 에드거 퍼시벌이라면 그 비행을 가능하게 해 줄 비행기를 제작할 수 있을 것 같군. 해 보고 싶나?"(존 카베리)
"네"(베릴)
"이건 계약이네, 벌. 내가 비행기를 제공할 테니 자네는 대서양을 횡단하는 걸세. 하지만 나 참, 100만 달러를 준다고 해도  나라면 하지 않겠네. 그 시커먼 물을 생각해봐!  거기가 얼마나 추울지 생각해 보라고!"(J.C.)
(430)비행기 제작:(베릴은 비행기 제작 과정을 지켜보기 위해 항공기 제작소 근처 엘스트리로 이사감)
비행기 이름은 베가 걸(Vega  Gull)
**Vega직녀성  Gull대형갈매기
나는 베가 걸의 탄생과 성장을 지켜봤고 날개가 꼴을 갖춰가는 모습을, 나무와 천이 갈빗대에 입혀져 길고 우아한 몸통이 생겨나는 것을, 그리고 몸체 안으로 엔진이 들어가고 단단히 고정되는 것을 지켜봤다.
베가 걸의 몸체는 청록색이었고, 날개는 은색이었다. 에드거 퍼시벌은 숙련된 솜씨와 정성과 걱정으로 베가 걸을 제작했다.
(431)톰의 조언:
"그 일을 하기로 했다니 기쁩니다, 베릴. 간단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게 많은 연료를 싣고 이륙한다고 해도 하루 밤낮을 비행기 안에서 혼자 있는 겁니다.  주로 밤을 보내게 될 거고요.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면 맞바람이 불어요. 9월에는 날씨도 문제죠. 무선 장비도 없을 테고, 항로를 몇 도만 잘못 계산해도 래브라도나 바다에 떨어지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절대로 오판하면 안 됩니다."
톰은 씩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무튼 당신을 지원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아직도 '죽음의 땅'이라는 농장에 살고 있고, 당신 비행기가 '그레이브스엔드'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참 재미있어요. 당신이 일관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베가 걸에게 '하늘을 나는 묘비'라는 이름을 주는 게 어때요?"
(435)일생을 살아가다 그 끝에 도달하면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외로움을 지우려고 분투하는 존재이기에 다른 사람을 지켜보는 법을 배우지만, 정작 자기자신을 보는 법은 배우지 못한다. 책을 읽거나 카드를 섞거나 개를 돌보며 자신과의 대면을 피하는 것이다. 외로움에 대한 혐오는 살고자하는 욕망만큼이나 자연스럽다. 그렇지 않았다면 인간은 다른 이들을 알고자 한다는 이유로 문자를 만들거나 한낱 짐승의 소리에서 단어들을 빚어내지도 대륙을 횡단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루 밤낮이라는 짧은 시간에도 비행기에 혼자 있는 경험은 돌이킬 수 없는 고독감을 선사한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어둠에 반쯤 잠긴 계기판과 자신의 두 손뿐이니, 한 인간의 용기가 얼마나 작은지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일랜드 남부--애빙던에서 이륙--
(437)베가 걸은 이륙했다.설계사의 제도판이 늘어놓는 궤변에 항복해 비행 궤도에 오르자마자 베가 걸은 이렇게 말을 걸었다.
"자, 내가 이 무게를 하늘로 들었어.이제 우리 어디로 가는 거지?"
이 질문은 나를 두렵게 했다.
"우리는 여기서 5800km 떨어진 곳으로 가고 있어. 그중 3200km는 계속 바다만 나올 거야. 가는 길 내내 밤일 거고. 우리는 밤과 함께 서쪽으로 비행하고 있는 거야."
비어헤이븐 등대,--그리고 바다
(438)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조종실 밖은 완벽한 어둠이다. 고도계는 600m 아래가 대서양이라고 말한다.
---오후 10시, 나는 맞바람이 시속 64km로 불어오는 와중에 뉴펀들랜드 하버 그레이스를 향해 대권항로를 따라 시속 210km로 날아가고 있다. 날씨 때문에 비행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 알 수 없지만, 아마 8시간에서 10시간 사이인 것이다.
(연료가 바닥나 시동이 꺼지고 비행기는 물 위로 내려가고 다시 다른 연료통이 가동되자 비행기는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 시간은 30초가 좀 넘었을 뿐이다.)
(441)나는 신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러면서 간접적으로이긴 하지만 이 불굴의 집시 모터를 설계한 제프리 드 하빌런드에게도 감사한다. 결국 그도 태초에 신이 설계해서 세상에 나온 것이다.
.(442)나는 배와 새벽을 보고, 안개띠에 감싸인 뉴펀들랜드 절벽을 봤다. 그토록 오랫동안 그려온 감격스러움이 느껴지고, 날씨와 바다의 엄숙한 권위를 회피할 수 있었던 데 대해 행복한 죄책감을 느낀다.

*뉴펀들랜드 섬-캐나다 땅
---밤과 폭풍우가 베가 걸을 가두는 바람에 우리는 19시간 동안 계기 비행을 했다.
(443)(시드니---세인트로렌스 만---뉴브런즈윅---메인---뉴욕)

*세인트로렌스 만-캐나다에 위치, 북아메리카 전체의 내륙으로 들어가는 관문
이제부터는 시간문제일 뿐이지,
순풍이 불어오고, 마지막 연료 탱크는 4분의 3이상 차 있고, 세상은 마치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신세계인 것처럼  화사하기만했다.
그 순간---땅이 보이지도 않는데 엔진이 떨기 시작한다.---유압계와 온도계는 정상이었고,자석 발전기도 잘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고도가 천천히 낮아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마음 속에 실패했다는 생각이 스며들었다. 육지에 닿기만 한다면, 나는 최초로 영국에서 출발해 북대서양을 횡단한 조종사가 되겠지만, 내 관점에서는, 그러니까 조종사의 관점에서는 비상착륙이란 실패였다. 목적지가 뉴욕이기 때문이었다. 
(445-446)비상착륙:시드니 공항에서  12분 거리?
엔진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정말로 죽었다. 베가 걸은 땅을 향해 가기로 결정했지만, 그 땅은 내가 아는 땅이 아니다. 바위투성이 검은 땅이고, 나는 그 위에 희망과 움직이지 않는 프로펠러에 의지해  매달려 있다. 땅이 서둘러 나를 맞이한다. 나는 비행기를 기울이고, 돌리고, 옆으로 미끄러지며  바위를 피하려고 한다. 바퀴가 땅에 닿고, 나는 바퀴가 땅에 잠기는 기분을 느낀다. 기수가 진흙에 처박히고, 내 몸이 앞으로 튕겨나가며  머리가 조종실 유리창에 부딪힌다. 유리가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들린다. 얼굴에 온통 흐르는 피가 느껴진다.
---나는 비틀거리며 비행기에서 나온다. 검은 진창에 무릎까지 잠긴 채 그대로 서서 멍하니 들여다본다. 생명이 없는 듯한 땅이 아니라 내 시계를.

21시간 25분
대서양 비행.(영국~캐나다)
영국 애빙던에서 이름모를 습지까지(나중에 밝혀지기로는 노바스코사 습지)
무기착 비행
케이프브레턴 섬에  사는 사람이 나를 발견했다.

**케이프브레턴 섬-캐나다 노바스코샤 주 북동부에 있음
---나는 시드니 공항에 전화를 걸어 내가 안전하다는 것을 알리고 불필요한 수색을 막았다.
---다음날 아침 나는 플로이드 베넷 비행장(뉴욕주에 있음)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렸다. 그곳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나를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내린 비행기는 베가 걸이 아니었다.

24. 바다를 날 수 있다면
톰도 악연을 만나 죽고(활주로에서 이륙하려 할 때 비행기가 들이닥쳤으니까) 베가 걸도 죽었다.

(필사하느라 수고했다.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하니까. 낭독회 모임을 만들어 돌아가며 소리내어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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