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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겨울 Three Winters Cold

맑은 바람 2022. 6. 13. 23:28

조선희 지음/허종열 옮김/가톨릭출판사/327쪽/2003년12월 초판/2016년3월 개정2판1쇄/읽은 때 2022년5월5일~6월13일
**이 책의 원본은 1955년 아일랜드에서 출판되었다.

조선희:(1915~2005)Philip j.Crosbie/오스트레일리아 출생 /아일랜드의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신학교에서 26세에 사제품을 받고 한국땅에 오심/홍천본당 보좌신부로 부임하였으나 태평양전쟁으로 강제 출국, 후에 다시 입국, 홍천본당 주임신부로 부임/58년 동안 춘천교구에서 사목생활을 하심/ 1950년 7월~1953년 5월까지 북한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포로가 됨/1952년과 1953년 사이의 겨울에 이 수기를 씀/이 수기를 쓸 수 있었던 것은 면담자들과 장교들이 건넨 몽당연필, 종이조각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제공한 체코제 새 연필과 큰 종이 두 장 덕분이다. 나중엔 펜과 잉크도 제공해 주었다./그러나 석방된 후 원고를 가져 나오는 일에 실패하고 기억을 더듬어 다시 썼다./1990년 은퇴 후 1991년 3월 겟세마니 피정의 집 설립, 평화와 보속을 위한 기도와 피정을 지도하심/1998년 11월 오스트레일리아로 영구 귀국

기나긴 겨울Three Winters Cold
--한 선교 사제의 한국 전쟁 포로 수기--
어제 인제 '겟세마니 피정의 집'을 찾았다. 십년 만이다.
새로운 신부가 오셨지만 필립보 신부의 彫像은 그대로 있었고 그분이 쓰신 책이 나와 있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오로지 하느님의 부르심을 따라 이곳까지 오신 모든 신부님을 나는 사랑하고 존경한다.

그래서 선뜻 책을 집어들었다. 잘 읽힐 것 같다.

--김운회 루카 주교의 '개정 2판을 내면서'에서--
(6)"늙고 병들어 이제는 더 이상 줄 것이 없으니 폐라도 끼치지 않겠다."라며 홀연히 본국으로 떠나면서도 "내 영혼의 절반은 한국에 놔두고 간다."라고 하실 만큼 이 땅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7)우리나라 격랑의 현대사의 증인이셨고 이제는 당신 스스로 역사가 되신 조신부님의 글이 독자들에게 삶의 위로와 신앙의 거울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63)1.구인란 토마스 몬시뇰:
1950년 6ㆍ25 당시 54세/아일랜드 티퍼레리 출신/1920년, 선교활동을 위해 중국으로 떠남/12년 동안 선교활동 후 휴가차 귀국/중국에서 그는 표준어와 사투리까지도 배워야 했고 산적과 홍수와 기근과 싸워야 했다./그는 그 다사다난했던 세월 동안에도 환한 웃음을 자아내는 온갖 재치가 번뜩이는 익살들을 그의 추억 속에 특별히 비축해 왔다./1934년 한국으로 배속되었다./광주에서 포교활동을 함/춘천교구의 기초를 놓은 분/살아있는 성자/훗날 석방되어 고국 아일랜드로 돌아갔을 때 그는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1954년 7월7일 그는 춘천교구로 다시 돌아옴
(64)2.손신부:
아일랜드 골웨이 출신 사제/그는 조용하고 겸손한 사람이었으며, 과민하지 않고 꾸준히 공부하는 온화한 사람/인생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명석하고 이해심 많은 위트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재능을 겸비함/그는 나이들어 만성병이 그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음에도 번쩍이는 유머의 별빛은 여전히 그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인 진지함과 더불어 옛날처럼 반짝반짝 빛났다./포로생활 도중 폐렴을 앓음/하창리에서 12월6일 35세로 천국으로 떠남
(69)3.안토니오 신부:
아일랜드 신부/1945년 미군이 춘천에 진주했을 때 통역을 맡음/차분하고 조용하며 명랑한 사람/ㅣ기계 기술자로 군인과 민간인에게 도움을 줌/6ㆍ25발발 초기에 피살됨
(73)4.방일은 주교:

메리놀 외방 전교회/주한 교황 사절/금욕주의자/1922년 한국에 들어옴/1937년 메리놀회 개척단으로 일본 교토에
들어감/사리사욕없이 자기 일에만 헌신하여 일본인들로부터 존경 받음/1947년 교황사절로 한국에 옴/1949년 서울 주교좌성당에서 주교로 성성됨/1950년 11월 25일 하창리 수용소에서 사망
(88)5.허버트 A. 로드 부장:

구세군한국사령관/영국인/21세부터 한국에 살며 아들 다섯을 낳음/1945년 사회복지를 위해 힘쓴 공로로 대영제국 훈장을 받음/1950년 7월2일 공산당에 체포됨/한국의 관습과 언어에 관한 대가/한국어에 능통함/매우 용감한 사람/북한군의 통역사가 됨
(94)6.구인덕 신부: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1933년 사제로 한국에 옴/병(결핵)을 얻어 프랑스로 귀국 후, 42세(1950)에 다시 대신학교 철학과 역사학교수로 한국으로 돌아옴/최악의 날들이 계속되고 있을 때 그는 말했다/우리 중 한 사람은 살아 남아서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고/그는 특유의 결의로 병마와 싸웠고 마침내 이겨냈다. **구인덕 신부의 '나의북한포로기'는 프랑스 한림원상을 수상함/경북 안동으로 돌아와 부주교를 지냈으며 인세를 한센인 자립공동체에 보냄/1993년 3월 86세로 귀천함

(97)7.쿠퍼 주교: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줄신/1910년 한국에 와서 북쪽에서 활동함/자주색 성직자 평상복을 입은 채로 끌려왔다./수용소생활 당시 70세 가까이 되었으나 튼튼하고 활발하고 정력적으로 일했다/꿀벌을 기르고 그에 대해 일가견을 갖고 있었다./수용자들을 위해 시를 지어 읽어주기도 했다./언제나 차분하고 공정했다
(100)8.종군기자 필립 딘:
춘천에서 96km 남쪽에 있는 평동에서 체포될 당시 20대 중반의 그리스인으로 런던 '옵서버'지 소속
(104)9.조르주 페뤼쉬 프랑스 총영사:
약품이고 옷가지 등 가진 걸 모두 내줌/수용소 생활개선을 위해 분투함
(104-1)10.장 메드모르 부영사:
뛰어난 미남/중국문화 전문가/예의바르고 친절하며 남을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음
--프랑스인들은 감방 속에서도 댄스와 카드놀이로 지루함을 달랬다.
(116)11.로렌스 젤러스:미국 텍사스 출신/ 크고 잘생김/낭만적 카우보이 인상/ 감리교 목사로 개성 선교지역에서 영어를 가르침/무선통신기사로 대서양 횡단 수송작전에 투입/쾌활하고 잘난체하지 않으며 이기심이 없다.
(131)12.사기드 살라후틴:
남에게 도움을 주는 18세 소년/근엄한 갈색 눈, 검고 기름한 얼굴,잘생긴 코와 넉넉하게 큰 입/영어를 곧잘 함
(131-2)13.루이스 댄스:
 37세의 키가 작고 땅딸막하며 근육이 잘 발달한 미국인/대니라 불림/ 한때 전문 곡예사/육군 중위로 일본에서 호텔 관리/서울에서 무역거래소 차장으로 있다가 체포됨
(132)14.윌리엄 에번스:
50세의 광산 기사/미국인 아버지와 유라시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남/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에 능통함/포로로 잡혀와 죽음
(133)15.월터 엘트링햄:
펜실베니아 출신 탄광 안전 전문가/크고 굵직한 외모/그는 잘 다듬어진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사람이었다/자기몫을 기꺼이 남에게 나누어 줌/재치가 있음/부뚜막에 놓았던 구두가 줄어드는 바람에 짚신을 신고 다님/하창리에서 죽음
(140)16.에른스트 키쉬박사: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 의사/비엔나 의과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작고 성미가 급함/능숙한 피아니스트/히틀러의 반유대인정책을 피해 상하이 병원에 있다가 출국을 강요당하고 미국으로 피신, 다시 한국의 개성 미국 감리교 선교회 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하던 중 6ㆍ25를 만남/안동리에서 사망
(145)17.크리스 젠슨 목사:

덴마크인/17세에 뉴욕으로 이민/진취적인 정신, 근면, 인내심이라는 자산을 가지고 자수성가함/감리교 목사가 된 후 선교사가 되어 한국에 옴/몸집이 크고 따뜻한 사람/보기 드문 고결한 품격을 지님/무한히 용서할 줄 아는 능력의 소유자/포로로 있을 당시 설사병으로 죽을 처지에 있었을 때 사람들이 곧 죽을 거라 예언하는 걸 듣고, 오기가 나서 끝내 살아남
(146)18.강달순 신부:
1878년, 프랑스에서 출생/교수로 있다가 파리외방 전교회에 소속, 대구로 파견됨/1차대전 때 군복무,중위로 인도네시아에 주둔, 후에 군종신부로 시베리아에 갔다가 종전 후 한국으로 옴/불굴의 쾌활함의 소유자/원래 군 출신/대전에서 체포됨/포로로 잡혀왔을 때 나이가 72세/하창리에서 사망
(160)19.이반 니콜라이 티히노프:
난방설비방면 전문가/화장품 제조업자/흰 구레나룻을 기른 조그마하고 늙은 러시아인/체포될 당시 67세
(187)20.넬 다이어:

미국 아칸소 출신/1927년 선교사로 한국에 부임/감리교 미션스쿨의 교사/여장부/키가 크고 얼굴이 잘생김
(201)21.버서 스미스 여사:
미국감리교 선교사/조용하고 참을성있는 태도, 놀라운 기억력으로 수십 개의 성가를 가르쳐줌/은퇴를 몇 달 앞두고 포로가 됨
(208)22.베아트릭스 원장 수녀:
프랑스인/안느 마리 에두아르//1906년 서울의 샬트르 성 바오로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 배속됨/거의 50년 동안 한국에서 병자들과 가난한 사람들과 고아를 돌봄/1950년 11월 3일 기아상태로 시달리다가 기진맥진하여 죽음
(212)23.우신부:
1868년 프랑스 출생/파리 외방전교회 사제/24세에 조선에서 선교사생활을 시작함/포로였을 당시 82세의 나이로 96km를 걸어 이동함/1950년11월 11일, 기아상태와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몸이 되어 중강진에서 생을 마침
(222)1950년 11월 4일의 짚더미:온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잠자리같이 보였다 /고난의 행진 끝에 어느 학교에서 행진을 멈추고 그들은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받았다
(226)24.메리 클래어 수녀:
잠든 중에 사망함/중강진 어느 학교 언덕바지에 묻힘
(226)10월 31일 만포근처에서 강제행진을 시작해 11월 8일 중강진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160km가 넘는 거리를 행진해왔다. 그동안 우리는 거의 100명에 달하는 사망자들을 길가에 남겨두고 왔다.
(231)25.형제인 공안국 신부와 공안세 신부: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출신/1900년 함께 사제의 신분으로 한국에 옴/공안국신부는 33년 동안 안성에서 사목함/대신학교에서 당가신부가 됨/말년에 가르멜 수녀원 지도신부가 됨/공안세 신부는 1942년 서울 주교좌성당에 근무/1946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도회 수녀원과 고아원의 지도신부가 됨/진실로 이들은 '그 시대의 거인들'이었다
(232)26.테레즈 원장 수녀:

중병에 걸려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을 위해 바느질을 했다./11월30일 별세
(237)27.멕틸드 원장 수녀:
1888년 벨기에 이프르에서 출생/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서울에서 가르멜수녀원 창설
(241)28.오요셉 신부
1901년 프랑스 방데 현에서 태어남/1927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사제로 서품됨/부산에 지금도 남아있는 범일동성당을 지음/2차대전이 끝난 뒤 단기 의학과정을 받고 부산으로 돌아옴/시약소(보건소에 해당)를 설립함/포로였을 당시, 50세의 거인으로 황소처럼 튼튼하여 계속 강신부를 돌봄/끝내 쇠약해져 12월18일 하창리에서 숨을 거둠
(259)29.던 소령:
키가 크고 늘씬함/거무스름하고 잘생김/용기,공평무사함,자제력, 침착하고 품위있는 태도로 사람들의 칭송을 받음
(262)30.외제니 원장 수녀:

1952년 2월 만포에서 25주년 은경축을 기념함/수도회 입회 후 간호사 교육을 받음/서울 수녀원 수련장으로 있을 때 포로가 됨/참을성 많고 온화하고 수줍으며 부지런하고 헌신적/빨래와 바느질로 포로들을 도움
(263)31.마리 마들렌 수녀:
앙리에트 마르키에/프랑스 남서부 마르망드 출생/실연의 아픔을 딛고 가르멜 수녀원에 들어가 수녀가 됨/1938년 서울 가르멜 수도회의 수련장이 됨/종교서적 보급을 위한 번역과 필사 작업으로 눈을 혹사하여 1948년 마침내 실명함/온화하고 참을성 많고 불굴의 정신을 보여줌/교사로서의 천부적 재능과시
(265)32.앙리에트 원장 수녀:
원래 이름은 드 로비/장상수녀라 불림/프랑스의 명망높은 드 로비 장군의 조카딸/1920년대 초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1938년 서울 가르멜 수녀원에 와서 1948년 부원장이 됨/건강이 좋지 않았으나 늘 기도로 포로들에게 위로를 줌
(285)33. 글리제 부인:
샬롯데 글리제/베를린에서 태어남/한국인 사업가와 결혼/동베를린이 소련에 점령당하자 추방되어 한국으로 옴/유쾌하고 낙천적임/서울대 독일어 교수로 있다가 포로가 됨
(301)조선희 신부 석방되다.

1953년 5월 25일, 평양을 떠나 다음날 아침 안동에서 소련 정부 대표자에게 인계되었다. 거기서부터 3일간 중국을 가로질러서 호송병 없이 7일간 기차로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모스크바로 보내졌다. 거기서 오스트레일리아 대사관직원이 나를 친절하게 영접하여 이틀 동안 나를 환대해 주었다. 그러고 나서 역시 친절한 독일 본 주재 오스트레일리아 대사에게 나를 넘겨주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
**휴전협정일 1953년 7월 27일

저자 필립은 수용소에서 만난 사람들을 자세히 기억하여 깨알 기록을 했다.  사제,수녀,외교관, 목사, 의사 등 무려  33명이나 되는 인물들의 장점을 찾아내어 칭송하고 널리 알렸다.이는 타고난 심성과 겸손의 소치다. 또 그렇게 칭송되는 사람 이야기를 듣는 것도 기쁘고 흐뭇하다. 조선희 신부는 그런 면에서 탁월하고 멋진 분이다
나는 성인전을 읽는 기분으로 이들의 고난의 시간들을 함께했다.

그러나 포로가 된 성직자들과 미군 포로들에게 가해진, 이루 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폭력과 언사를 행한 북한군 장교와 간수들은, 지옥이 있다면 영순위로 가야할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건 우방의 입장이다. 우리 편이라고 그들에게 온건했겠는가. 그들의 자리는 바로 목숨을 앗고 앗기는 전쟁터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