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영화 ·강연 이야기/책

가난한 사람들-도스또예프스키

맑은 바람 2022. 11. 9. 00:00

-도스또예프스키 전집 중에서/석영중 옮김/열린책들/초판1쇄 2000년6월/신판3쇄 2003년6월/1844년11월 초고 완성/읽은때 2022.11.1~11.8

도스또예프스끼( 1821~1881)
향년60세/의사의 2남으로 태어남/16세에 어머니 사망, 18세에 아버지는 농노들에게 살해됨/23세에 토지와 농노에 대한 유산상속권을 방기함/28세에 벨린스끼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 받음, 사형 직전,  황제의 형 집행 정지 명령을 받고 강제노동형으로 감형됨.(4년간 수용소 생활을 함)/36세에 미망인 마리아 드미뜨리예브나 이사예프와 결혼/이 해에 세습귀족 신분을 되찾음/간질증세로 군복무를 계속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음/38세에 하사관으로 제대함/평생 비밀경찰의 감시를 받게 됨/41세 때,  상뜨 뻬째르브르그에 화재가 발생, 15일간 5000여 상점을 불태움/이 해에 최초의 해외여행을 함/43세에 아내와 형이 죽음/44세에 유부녀 소피야 꼬발레프스까야에게 청혼했다가 거절 당함
(세상엔 정신 나간 남자들이 꽤 있나 보다.아내 죽은 지 일 년도 안 돼서~게다가 도박으로 빚을 지고 여기저기 손을 내밈, 작품 창작은 오로지 돈 조달의 수단으로 쓰임 )
44세에 수슬로바에게 다시 청혼함/간질발작이 이어짐/45세에 고리대금업자 뽀뽀프와 그의 하녀 노르만이 대학생 다닐로프에 의해 살해되고 금품을 강탈 당함/도스또예프스키는 이 사건을 숙고함/45세에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에게 청혼, 그녀의 수락을 받음/46세에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림/아내와 유럽여행 중 룰렛게임과 도박으로 큰돈을 잃고 아내에게 돈을 요구함, 간질발작 계속/47세에 딸을 얻었으나 석 달 만에 죽음/48세에 둘째 딸을 얻음/49세에 '죄와 벌'전집 4권으로 나옴/52세에 '악령'이 세 권의 단행본으로 나옴/53세에 '백치' 두 권의 단행본으로 나옴/54세에 첫아들을 얻음, '죽음의 집의 기록' 제 4판이 두 권의 책으로 나옴/56세에 '죄와 벌'4판이 두권으로 나옴/57세에 아들이 간질발작으로 죽음/59세 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탈고/"내 소설은 끝났습니다. 이 소설에 바친 3년과 출판한 2년. 나에게는 의미 있는 순간입니다.작별인사를 하지 않은 것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20년은 더 살면서 글을 쓸 작정입니다."(그때 그는 폐기종으로 고생하고 있었다.)/60세(1881년) 1월 28일 저녁 8시 38분 사망함/알렉산드르 네프스끼 수도원 묘지에 묻힘

(18)나의 천사님, 당신께 드리려고 봉선화와 제라늄 화분을 하나씩 샀어요. 혹시 물푸레나무도 좋아하십니까? 그것도 구해 드릴 수 있으니까 편지에 말씀만 하세요.
(그 흔했던 연애편지의 기억이 없으니 글 속에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러니 글 따로 마음 따로라서 따분하고 재미가 없다. '독서클럽 지정도서'가 이번에 4번째인데 썩 맘에 드는 책이 없다. 내 취향이 아니니 그만 떠날까?  이런 기회가 있으니 생각지도 못한 책도 만나게 되고 또 끝까지 읽어보게  되는 거야. 당분간 갈팡질팡할 것 같다.)
(23-33) 마까르 알렉세예비치의 처지:
머리카락도 얼마 남지 않은 늙은 나이에 사랑의 감정에 빠져서 횡설수설해서는 안 되는 건데---/
나의 소중한 아가씨, 당신은 제가 쏟아낸 감정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해하셨더라고요. 제가 느끼는 감정은 부성애입니다.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 서러운 고아 신세인 당신에게 제가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겁니다.이건 모두 제 진심입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혈육의 정을 가지고 하는  말입니다. 지금의 당신에겐 제가 가장 가까운 친척이고 보호자 아닙니까.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서 당신은 배신감과 분노만 느꼈지요. 제가 여기 사는 게 불편하고 불안하고 또 어쩌고 저쩌고 기타 등등.
어떻게 그런 말씀을 제게 썼습니까? 귀여운 나의 아가씨, 바렌까, 제게 글솜씨가 없다고, 너무 형편 없다고 흉을 보지는 말아 주십시오. 하지만 저는 당신을 어떻게든 즐겁게 해 드리고 싶은 일념으로 어쩌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얘기만 쓸 뿐입니다. 제가 공부라도 좀 했더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었겠습니다만, 배우긴 어떻게 배웁니까? 돈이 없어 기본적인 교육도 못 받았는데요.
(60-61)가정교사 뽀끄로프스끼에 대한 추억:
추억은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항상 괴로운 것이다. 그렇다.그러나 그 괴로움은 또 달착지근한 것이다. 마치 타는 듯한 하루가 지나고 밤이 되면 이슬이 폭염에 바싹 마른 꽃에 신선함을 주어 소생시키듯이, 추억은 괴롭고 아프고 지치고 슬픈 내 가슴에 새로운 힘을 주어 소생시키는 것이다.
(73)포끄로프스끼의 죽음:
폐병으로 죽음/무서운 슬픔에 사로잡힌 나는 어머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내 두 손으로 어머니를 꼭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겁에 질려 어머니의 품에 파고들며 목놓아 울었다. 마치 이 세상에 남은 나의 마지막 친구를 그렇게라도 꼭 붙잡아서 죽음에게 내주지 않겠다는 듯이--하지만 죽음은 그때 이미 내 가여운 어머니의 머리맡에 와 있었다!
(1800년대 중반 러시아의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과 2000년대 초반 이집트의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이 어찌 그리 닮았는지--도스또예프스끼의 '가난한 사람들'을 읽으며, 최근에 읽은 '그래도 사랑해, 이집트'가 자꾸 오버랩되어 마음이 불편하다.)
(83)라따자예프는사리분별 정확하고 재능도 갖춘 사람입니다. 직접 글도 쓰죠. 얼마나 잘쓰는지 몰라요! 글솜씨며  문장력이 정말 훌륭해요. 단어 하나하나, 그러니까, 제가 가끔 팔도니와 쩨레지에게 쓸 수 있는, 별뜻없이 아주 평범하고 하찮은 말도 그의 손이 닿으면 훌륭한 표현이 되는 겁니다. 저는 그 사람 집에서 열리는 저녁 모임에 가끔 참가합니다. 우리는 궐련을 피우고 그는 작품을 낭독해요. 다섯 시간씩 읽는 적도 있지만 우린 그것을 끝까지 듣습니다. 그건 문학작품이라기보다는 보기 드물게 잘 차려진 식탁 같아요. 얼마나 아름다운지 마치 꽃과 같답니다. 그래요, 그건 꽃이에요. 그가 읽어주는 책 한 페이지, 한 페이지로 꽃다발을 만들어도 될 겁니다!  그는 붙임성도 있고 상냥하고 선량합니다. 그와 비교하면 저는 뭘까요, 뭐긴 뭐예요? 그냥 아무것도 아니죠.  명성을 갖춘 그에 비하면 전 정말이지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98)낯선사람:
어쩌면 당신은 낯선 사람들이라는게 뭔지 아직 모르는가 보군요. 낯선사람의 빵을 먹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전 그것을 압니다.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바렌까, 낯선 사람은 사악합니다. 흉측하다고요. 너무나 사악해서 당신의 연약한 심장은 배겨내지도 못할 겁니다. 질책과 비난과 섬뜩한 눈초리로 당신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말 겁니다. 하지만 여기는 마치 안락한 보금자리에 있는 것처럼 따뜻하고 좋아요. 당신이 없으면 우리는 머리가 없는 것과 같아요.
(118)가난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은 까다로운 법이죠.선천적으로 그래요. 가난한 사람은 보통사람과 다른 눈으로 세상을 쳐다보고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곁눈질로 쳐다봅니다. 주변을 항상 잔뜩 주눅이 든 눈으로 살피면서 주위사람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을 씁니다. 누가 자기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혹은 다른사람들이 '뭐 저렇게 꼴사나운 놈이 다 있어!', '대체 저렇게 가난한 사람은 무슨 느낌을 갖고 살까?'. 아니면, '이쪽에서 보면 어떤 꼴을 하고 있고 저쪽에서 보면 또 어떤 꼴일까? 등등의 말들을 할까봐 남의 말에 일일이 신경을 씁니다. 바렌까, 모두 알고 있듯이 가난한 사람들은 발닦개만도 못한 인생이고 아무도 그들을 존중해 주지 않습니다.
(121):
나의 천사님! 책을 한 권 보내 줄 테니  심심할 때 읽으라고 하셨나요?
그놈의 책,책,책! 도대체 책이 뭡니까? 책은 밑도 끝도 없는 헛소리나 지껄이려고 쓴 거죠. 하릴없는 사람들이나 읽으라고 쓴 거라고요.나의 소중한 사람, 제 말을 믿어요. 사람들이 '문학이라면 셰익스피어가 있지, 그런 대가도 무시할 테야'라고 윽박지르며 셰익스피어의 작품 따위로 당신의 말문을 막으려 들어도 절대로 넘어가지 말아요. 셰익스피어도 다 엉터리예요. 말짱 헛 거라고요. 추잡스런 얘기나 늘어놓으려고 쓴 것들뿐이라고요!
(131)빌린 돈으로 당신과 나를 구하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 더 이상 가난할래야 가난할 수도 없을 만큼 가난합니다.이전엔 단 한 번도 이 정도로까지 상황이 악화된 적은 없었습니다. 집주인 여자는 저를 업신여기고 이젠 아무도 저를 존중해주지 않습니다.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거예요.---아, 하느님, 정말 돈을 구하지 못하면 당신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당신은 이사도 못하고 지금 사는 집에 남을 테고, 저는 당신과 함께 있을 수 있겠지요--아니,아니, 저, 그게 아니라 돈을 구하지 못하면 저는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어디로든 사라지겠습니다. 사라져버리겠어요. 자, 이제 당신께 할 말은 다 했으니 이젠 면도를 좀 해야겠군요.훨씬 더 단정해 보일 테고, 단정함은 언제나 무엇인가 찾을 수 있게 하죠. 신이여, 보살피소서!  그럼 이제 기도를 올리고 나가 보겠습니다!
(139)8월 11일의 일기 최악의 날: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에게 쓴 마까르 일렉세예비치의 편지 초안이 친구(?)라따자예프에게 흘러들어가, 둘 사이의 관계는 만천하에 드러나고 마까르는 졸지에 로벨라스('호색한'의 대명사)가 되고 그는 절망에 빠져 단말마의 비명을 지른다.)
(150)저의 어린 시절은 정말 금빛으로 빛났습니다.:
옛 추억에 흠뻑 젖어 저는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모든 게 너무도 생생합니다. 지나간 날들은 눈앞에서 선명한데 현재의 삶은 흐리멍덩하고 어둠 속에 가려져 있습니다.어떻게 끝이 날까요? 전 요즘 제가 올 가을을 못 넘기고 죽고 말 거라는 믿음이, 확신이 듭니다. 저는 지금 너무 아픕니다.죽음에 대한 생각도 자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여기 이곳에 묻히고 싶지는 않아요. 전 아무래도 지난 봄처럼 다시 병상에 누울 모양입니다.
(165-168)각하를 뵙다:
(마까르의 누추하고 초라한 모습을 본 각하)
'"이게 어찌된 일인가? 자네도 좀 보라고. 저 사람 저 모양새를--대체 어떻게 된 사람이야--뭐 하는 작자냐고--!"
예프스따피의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지금까지 별다른 지적을 받지 않던 사람입니다.한번도요.행동도 바르고 월급도 충분히 받고 있습니다. 급수에 맞게 연봉을--"
어떻게든 형편을 봐 줬어야 할 거 아닌가! 가불이라도 좀 해주든지--"
"이미 가불을 해갔다고 들었습니다"
---"자, 그럼, 빨리 이거나 다시 쓰게, 제부쉬낀.이리 가까이 오게.이번에는 실수없이 다시 정서하게. 그리고 말이야---"
각하께서 다른 사람들을 보시며 지시를 내린 다음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물러가자마자 각하께서는 얼른 지갑을 꺼내시더니 1백 루블짜리 지폐를 한 장 빼셨습니다.
"자, 이거 받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일세. 성의로 알고 받아두게."그러고는 그것을 제 손에 쥐어주셨습니다.
저는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저의 온 영혼이 전율을 느꼈습니다.그 순간 전 어떻게 됐었나 봅니다.각하의 손을 잡으려 했으니까요. 각하는 얼굴이 빨개지시더니 저처럼 미천한 사람의 손을 잡고 흔드셨습니다. 마치 가까운 사람에게 그러시듯, 당신과 비슷한 서열의 장군에게 하시듯 제게 그렇게 대해 주셨어요.
"자, 이제 가보게.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게 다일세--더 이상 실수는 저지르지 말게. 이번 실수는 덮어두겠네"

(평생에 이런 '어른'을 한 사람이라도 만나는 사람은 행운아다)
제가 어떤 결심을 했는지 아십니까, 나의 소중한 사람.당신과 표도라에게, 그리고 만약 제게 아이들이 생긴다면 그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아비를 위한 기도는 하지 않아도 좋으니 하느님께 매일매일 각하를 위해 영원히 기도하라고 말입니다.--제게 귀중한 것은 1백 루블이 아닙니다.각하께서 친히 지푸라기같이 하잘것없는 이 주정뱅이의 손을 잡아주신 것이 감동스러울 따름입니다! 이것으로 각하는 저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주신 겁니다. 단지 그 행동 하나만으로도 각하는 저의 영혼에 새 숨을 불어넣어 주셨고, 제 삶이 오래도록 달콤할 수 있도록 해주신 겁니다. 제가 비록 주님 앞에서 죄가 많은 인간입니다만, 각하의 행복과 행운을 기원하는 저의 기도는 주님의 권좌에 가 닿을 것이라고 확신하고있습니다--!
(179)바르바라, 결혼을 결심하다:
바르바라는 지치고 병든 몸으로, 부유한 지주 비꼬프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내키지 않는 사람한테 자신을 내던지듯이~
(운명이여, 내가 간다, 길을 비켜라. 누가 그랬던가?)

역자 해설--1(가난한 사람들)
(407)'새로운 고골이 나타났다.'
'독창적이고 범상치 않은 재능'의 소유자로 인정받고 화려하게 데뷔한 도스또예프스키는 천재라는 자부심 속에 허영심을 키움.

중년의 가난한 하급관리  마까르 제부쉬낀과, 부유하고 욕심많은 사내와 결혼한 바르바라와 주고받은 편지로 이루어진 서한체(서간체의 북한어) 소설.
(411)제부쉬낀과는 비교도 안 되게 지적이고  문학적인 뽀끄로프스키를 사랑한 적이 있는 바르바라에게  제부쉬낀은 어느 정도 이상은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없는, 문학적 빈곤의 상징인 것이다.
(412)도스또예프스키는 외관상은 물리적 빈곤을 테마로 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 문학에 관한 문제를 진지하게 제시하면서 미학과 존재론의 상관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한 인간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은 그가 읽는 책, 그가 쓰는 글이라는 도스또예프스키의 미학 공식은 이미 첫번째 소설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