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도심 속의 시골

맑은 바람 2022. 11. 13. 15:07

동을 향해 엎어지면 안국역, 자빠지면 버스 정류장, 육교하나 건너면 인사동 거리---

찻길이 지척이지만 밤이 이슥해지면 사위는 깊은 정적에 싸여 흡사 한가로운 시골에 들어와 있는 기분.
새벽이면 가까운 절에서 들리는 은은한 쇠북소리--

이삿짐을 풀던 날 집앞 가게에 들어갔더니
"못 보던 아줌마네요?"
하며 두 여인의 시선이 집중된다.
"오늘 이사왔어요."
"아, 요 앞집에 오늘 이사 들던데---"
동네 소식이 빠삭하다.

이곳엔 없는 게 많다.
슬리퍼 질질 끌고 갈 수 있는 대형 슈퍼마켓도, 할인 마트도, 고층 아파트도, 잘 다듬어진 산책로도 없다.
특히 시골과 닮은 것은 젊은이가 없는 점이다.

일요일날 가까운 성당엘 갔더니 영락없는 시골 교회 분위기인데다 허연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온 신부님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더욱 눈에 띄는 것은 '남녀 칠세 부동석'이 그대로 지켜지고 있는 광경---
남녀신자들이 양쪽으로 뚜렷하게 나뉘어 앉아 있고 대부분의 신자들이 노인층이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 무수히 반짝이는 머리들로도 연령을 짐작할 수 있었다.

50대는 이곳에서는 청춘이다.
젊은 느낌으로 살고자 한다면 이곳으로 와도 좋을 것이다.

이웃에 살고 있는, 바쁜 친구(솔낭구)에게 일단 신고는 했으니 틈나면 함께 인왕산에라도 올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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