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귀향

맑은 바람 2022. 11. 13. 14:33

드넓은 논밭이 펼쳐지고 집 앞엔 졸졸 냇물이 흐르며,
뒷산에 밤나무가 있어야만 고향인가?

철조망 친 미군부대,

사거리 드럼통 위에서 수신호를 하는 헌병,

땡땡거리며 신나게 달리는 전차,
눈썹이 뭉개진 얼굴을 누더기로 가린 채, 구걸하러 다니는 문둥이,

해가 지면 종로통에 칸델라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루며 펼쳐지는 야시장----

50년대 서울 복판에 살던 사람들이라면 생생하게 떠올리는 정경들이다.

나는 사대문 안에서 27년을 살았다.
아버지 직장이 광화문 통에 있고, 통행금지 시간이
다 되서야 일을 마치시는 형편인데다 자주 약주를 드시고 귀가하시어,
어머니는 안심이 안 된다며 언제나 아버지 직장을 구심점으로 이사를 다녔다.

결혼 후엔 주로 사대문 밖이 주거공간이었다.

대방동, 독산동, 안양 석수동, 그리고 강남 8학군--

아이들이 대학 들어가자마자 서울을 떴다.

공기 좋고 사통팔달, 시원시원하게 구획정리가 잘되어
더없이 살기 좋은 고양시-

그러나 2년 만에 그곳 생활을 접었다.
거리에 버리는시간과 기름이 적잖이, 경제에
주름살을 더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내에 집을 정해 놓고 나니 문득문득 어릴 적 가지가지
추억과 함께 익숙한 '그곳'으로 마음이 자꾸 달려간다.

멋모르는 어린 나이에 4.19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죽을 뻔하다 살아났고,
지축을 뒤흔드는 탱크소리에 잠을 깨고 뛰쳐나가
5.16을 맞기도 한 종로--
그곳으로 27년만에 다시 복귀하는 심정이,
고향 가는 차표 끊어 놓고 자꾸만
고향마을로 향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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