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내가 겪은 4 19

맑은 바람 2022. 11. 13. 16:36
--1960년 4월 19일--

내 뇌리에 깊게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는 그 날은 내가 용두동에 있는 서울사대부중에 입학한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은 때였다.

날씨는 맑고 모든 것은 평온해 보였다.
그 큰 소용돌이에 휩쓸리기 전까지는.

여느 때처럼 우리는 등교해서 오전 수업을 끝내고 한가롭게 점심 후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수다쟁이 친구의 얘기를 들으며--
그때, 교문 쪽에서 거친 함성과 함께 사대생들이 누군가를 떠메고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아연실색했다.
그들의 어깨 위에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죽은 듯이 보이는 대학생이 들려져 있었다.

선생님들은 서둘러 우리들을 귀가 조치시켰고, 우리는 겁먹은 강아지모양 허둥대며 학교 밖을 빠져나갔다.
동대문을 막 지날 무렵, 전차는 더 이상 운행할 수 없다며 승객들을 모두 내리라고 했다.
길에는 총기를 든 경찰, 허둥대는 사람들, 골목길로 도망가는 대학생들--
모든 것이 아수라장 그대로였다.

나도 혼비백산하여 울먹거리며 종로 2가의 집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종로 4가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앞쪽에서 뛰어오던 젊은 여자가 픽 쓰러졌다.
시위대에게 발포 명령이 떨어졌다더니,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을 맞은 모양이다.
난 단성사 쪽으로 이어진 좁은 골목으로 달려들어갔다. 연탄가게가 보였다. 인사고 뭐고 차릴 겨를 없이 가게 방으로 뛰어들며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밖에선 연이어 총성과 비명소리, 아우성소리가 들렸다.

눈물범벅이 된 채로 오들오들 떠는 초라한 강아지 꼴이 된 나를 주인 아주머니는 보듬어 주시며
"그래도 더 늦기 전에 뒷골목으로 해서 어여 집에 가야지."
하셨다.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다시 주섬주섬 가방과 소지품들을 챙겨 들고 가게를 나왔다.(나중에 집에 와 보니 가방밖에 없었다.)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에 떨며 골목길을 달리고 있는데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초저녁에 통행금지령이 내린 것이다.
집까지는 아직 멀었는데, 오금이 저려왔다.

내가 종로2가 집에 도착한 때는 사이렌이 울리고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집에 뛰어드는 나를, 사색이 된 엄마와 아버지가 뛰쳐나오며 끌어안았다.
그리고 아버진 이렇게 말씀하셨다.
"에구, 이 자석아, 괴기국 한번 실컷 못 멕이구 널 보낸 줄 알았다."

----그 날을 후에 '피의 화요일'이라 불렀다.

다시 4.19가 다가오는 오늘, 그 날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며 안타깝게 숨져간 숱한 영령들의 명복을 빈다.(20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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