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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 <얘들아, 힘들면 연락해>

맑은 바람 2022. 12. 25. 22:36

김수미 에세이/샘터/284쪽/2009.6 초판1쇄/2009.8 초판4쇄
/읽은때 2022.12.22~12.25

월드컵 결승전 시간에 TV 앞에 앉을 것인가, 유튜브로 '김수미 신앙간증'을 들을 것인가 하다가,아무래도 운동 쪽에는 도무지 흥미가 일지 않아 유튜브를 보기로 했다.
그 천연덕스러움과 망설임없이 내지르는걸죽한 욕사발--,그러면서도 무언가 심지가 확실한 김수미--그녀에게 반해 수필집을 바로 주문해서 만난 것이 이 책이다.
책이라 좀더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다루고 전라도인의 자존심,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폭발하는 저력, 과한(?)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오히려 엄마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몽둥이찜질의 기억만을 갖게 된 가정사.

요새 어떤책이 이렇게 폭소와 감동의 눈물을 선사할까?
영화나 책이나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는 것이라야 名作이다.(내 생각)

뭐니뭐니해도 그녀가 연예계의 톱스타로 올라서기 전에 부모님이 두 분 다 돌아가신 일은 어쩔 수 없는 한이 되었으리라.
국민학교 3학년짜리가 방과 후와 방학을 이용해 실향민의 아이들을 돌본 이야기는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외국인 전도사와 거래(?)를 해서 영어를 배우게 된 사연 또한 김수미의 순발력과 기지가 엿보이는 사건이다.
(51)세상에 둘도 없는 아부지
수미가 연극놀이에 쓰느라 엄마 한복 안감 망사를 요절냈다고 혼나는 걸 본 아버지는, 시금치 수십 가마 판 돈으로 망사를 넉넉히 사주셨다. 또, 똑똑한 막내딸은 서울 유학을 꼭 보내야 된다며 제일 좋은 밭을 팔아 서울 해방촌에 근거지를 마련해 준 일, 여름이면 아카시아꽃으로 화관을 만들어 씌워 주시고, 원두막에서 숙제하는 나를 부채로 부쳐주시곤 했다.-/겨울 군산항 칼바람에 폐렴을 얻어 고생하시면서도 이따금 서울 내 자취방에 들르시면, 쑤셔박아뒀던 내 생리대를 다삶아 차곡차곡 개어놓고 가곤 하셨다..--(세상에 이런 아버지는 없다)/그러던 아버지가 나 고 2 되던 봄에 돌아가셨다.
(51)그 여름내내 맞고 살았다.저거 뭐가 될지 보고 죽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던 당신(어머니)은 결국 아무것도 못 보시고 내 나이 열일곱에 돌아가셨다.
(54)'지금 옆 사람도 다시 보자':
국민학교 2학년 때 간첩 표어 일등 당선작/재봉틀과 라디오를 부상으로 받음/그후 인생역전을 꿈꾸며 간첩을 잡으러 다님
(신앙간증 때부터 알아봤지만 이렇게 톡톡 튀는 아이디어 실천으로 사람을 포복절도하게 하다니!)
(57)수미 아부지의 명언
아이들이 촌년이라고 놀려먹어서 도로 시골 내려가겠다고 했을 때,
"내 강아지야,니가 촌년인 건 사실이제. 하지만 만약 니가 도둑질을 안 혔는디 도둑이라 허믄 아부지가 첫차로 올라갈껴. 서울 것들, 공부로 뭉개 부러."
(60)思父歌
아부지, 어떻게 하느님께 부탁드려 하루만 시간 낼 수 없으실까요?
평생 흙 만지며 거칠어진 손, 명주보다 부드러운 실크로 감아 오일 맛사지 해드리고 싶습니다.---아부지 업고 63빌딩도 구경시켜 드리고, 용인 동물원도 구경시켜 드리고 해질녁 극장으로 업고 가서 막내딸이 나오는 영화도 보여 드리고싶습니다.어떻게 단 하루라도 모실순 없는지요?
아, 하루 가지곤 턱도 없겠습니다.요일마다 한복으로, 아르마니 양복으로, 발렌티노 셔츠로 바꿔 입혀드려야 할 텐데.똥지게 짊어지는 것 대신 골프도 치시게 하고---아부지 하느님과 약속한 하루가 지나 헤어질 시간이 다 되어도 저는 아부지 꼭꼭 숨겨 놓고 안 보낼 겁니다.혹시 힘센 저승사자가 당신을 끌고 간다면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하루든 며칠이든 하느님이 시간을 안 내주신다면--서둘러 제가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부지 계시는 곳으로 가려면 남은 생 정직하게 살아야겠지요.
당신이 주시고 간 유산은 책과 가난이지만, 그 책과 가난이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 큰 名藥과 名醫였습니다.
(66)꽃을 보고 우는 아이
무덤가에 난 할미꽃이 너무 아름다엉엉 울었다.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느이 엄마 산소냐?"고 물었다.
(68(서러운 엄마의 나팔꽃
온집안을 꽃밭으로 만들고 나팔꽃을 좋아하던 엄니/그 엄니가 생각나서 앞뒤 안 가리고 나팔꽃 보러 괌까지 날아갔던 일/흰밥에 고깃국타령을 하던 엄니는 모가지가 비틀어질 정도로 무거운 열무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장에 팔러 가시다가 고꾸라져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다.
친구들에게 빵 거저 얻어 먹지 말라며, 엄니가 채소 팔아 번 꼬깃꼬깃한 종이돈을 내 난닝구에 넣어 주면 나는 그 돈으로 아테네극장에 사복 입고 가서 영화를 보았다.
(하, 그러구 보니 수미씨와 아테네극장 동기네. 난 오빠한테서 물려받은 참고서 팔아 영화보러 다녔는데~)
(86)빙의(憑依)귀신이 붙다
시어머니의 갑작스런 교통사고(김수미 차를 기사가 후진하다 치어 사망함)로 시어머니의 혼이 수미에게 들어왔다는결론--(젊은이와 대개의 남자들과 기독교인들은 미신이라고 묵살하겠지만, 나는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영혼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왜 귀신은 안 믿을까? 수미씨도 결국은 기치료사와 묘심화 스님 덕에 깨끗이 낫지 않았는가?)
(94)하지만 문득문득 알고 싶다. 왜 하느님께서는 기치료사와 스님을 통해 나를 치료해 주셨는지 정말 그것이 알고 싶다.
(104)탑스타가 되기까지
데뷔 십 년 동안 계단을 오르듯 차근차근 신인상, 여자조연상,여자최우수상,연기대상을 받았다. 그것은부모님이 유산으로 주신 헝그리 정신과 시골에서 태어나 망망대해 금강과 꽃이 지천인 들과 산을 보며 유년기를 자연 속에서 보내며 생긴 감수성, 한 인물 할 거라며 땅을 팔아 서울로 유학보내 주신 아부지 덕인 것 같다.
내가 데뷔 때 감독들은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대사,호흡,표정 등을 가르쳐주셨다. 단체연습이 다 끝나도 따로 남게 해 입에 거품을 물어가며 담배꽁초가 재떨이에 가득 차도록 내게 연기를 가르쳐 주셨다.
(110)퍼내도 퍼내도 줄지 않는 화수분 같은 여자
나는 십여 년이 넘게 '전원일기' 녹화 날이면 밥을 싸갔다.리허셜이 끝나면 분장실 옆에 있는 작은 방으로 모여 도시락을 먹었다.정말 행복한 나날이었다. 녹화가 있는 새벽이면 바빴다. 궁둥이에 불붙은 것처럼 지지고 볶고 무치고, 지난 주와 메뉴를 바꿔 맛있게 드실 정애란 선생님과 최불암 선생님, 가끔 짜다고 타박하시는 혜자언니를 생각하며 한보따리 싸서 녹화를 하러갔다.
(118~187)김수미의 사람들?
정혜선-입이 무거운 사람/김혜자-인품이 훌륭한 사람/송대관-편한 사람/조용필-안 나갈 때 거리를 좁혀 친해진 사람/유인촌-학구적이고 반듯하고 속깊은 사람/황신혜--식성이 비슷하고 생각도 비슷하고, 남 흉 볼 줄 모르고/이용식--개그의 생활화,아무때나 입만 열면 개그--사람들은 순간 속았다는 느낌과 함께 웃음보를 터트린다./심형래-완전 시치미 떼고 거짓말(?왕개그)하는 사람/김원희-옷 잘입고 순발력과 재치는 고단수/유재석-국내 최고의 MC이자 개그맨, 영광을 누릴 때 절제할 줄 아는 사람, 사위삼고 싶었던 사람/최양락-'예능선수촌' 프로에서 활약,소질이 뛰어나서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란 사람/신현준-한결같고 작품에 성실히 임한다.힘들 때 출연하게 해 주어 큰도움을 받았다.신앙심이 돈독하여 타의 모범이 된다. 제2의 사윗감
(이 많은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장점을 찾아내서 쓸 수 있다는 건 대단한 능력이다)
(198)친구 중 더 베스트 이효재
(이효재를 '꼬붕'이라 칭했다.얼마나 가깝고 편안한 사이면---그녀의 곱디 고운 한복짓는 얘기와 헝겊 편지 얘기는 감동이다. 나도 그녀를 길상사 앞 가게에서 스치듯 보았다.예사롭지 않은 인상이었다.)
(200)이효재에 대하여

박꽃같은 여자/남자가 여자를 보고 '뻑 갔다'라는 말을 쓰는데, 나는 정말로 '뿅 갔다.' 얼마나 엽엽한지, NG날 걸 대비해 저고리 하나를 더 보냈다. 서울 시내에 사는 여자가 아니라 옛날 어느 소국에 사는 선녀 같았다./효재도 책을 좋아하고 꽃을 좋아했다./도무지 내가 먼저 말을 시작하지 않으면 먼저 입을 여는 법이 없었다. 그냥 그렇게 각자 앉아 몇 시간이고 지내다 보면 왠지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 어느 마을의 귀신 같은 벙어리 마술사 집에 다녀온 느낌이다./세월이 흘러 한 십 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먼저 말문을 연다는 게,
"선생님, 찔레꽃 보러 언제 가요?"한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지금 가자."(공감 100%)
(213)꽃을 보고 실신하는 여자
전라도 어느 절에서 나 역시 상사화 무더기를 보고 잠깐 실신한 적이 있다.
"오머머, 오머머, 미쳐, 나 미쳐"하다가 주저앉아 버렸다. 상사화가 무더기무더기 달아오르며 땅바닥이 빙빙 도는 것이었다./강원도 촬영 갔을 때는 산등성이가 온통 하얀 구절초로 깔려 있었는데, 나는 역시나 또 "오머머, 나 미쳐,죽어, 오머머---"하다가 잠깐 실신했었다
(이렇게 감정 몰입이 격한 사람이 있나 보다. 나도 친구에게서, 자기엄마가, 언니가 이런 광경 앞에서 눈물을 주르르 흘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216)가슴에 회오리바람이 한번 홱 불면 나는 가방부터 싼다.고향인 전라도 쪽 산으로 일단 간다.
(221)겨울 눈쌓인 무주 영국사의 스님
그분이 나를 사랑하든 안 하든,이 우주에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니, 다 닳은 줄로만 알았던 내 영혼의 배터리를 새로 갈아 넣은 것 같았다. 그렇다. 사랑은 낡은 허물을 벗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해방을 모르는 무기수와 같다.
(234)김수미의 생활신조:

약속을 잘 지킨다
(237)세상에 몹쓸 병
*약속을 안 지키는 것
*불평을 가지고 만사를 보며 세상과 다른사람에게 그 독을 퍼붓는 것
(244)이런 사람이 성공하더라:
1.시간 약속이 칼이다
2.프로정신이 있어야 한다
3.알뜰하다
4.친절ㆍ정확
5.서비스 정신
(책을 읽다가 김수미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 싶어서 넷플릭스에서 '가문의 영광'을 사보았다.
그녀가 좋아한다는 신현준,김원희가 나온다. 그녀의 시선을 거쳐서보니 더 새롭다. 내친 김에 그녀의 요리책도 하나 샀다.
'맘놓고 먹어도 살 안 쪄요'
김수미 글이 이렇게 다가오는 것은, 내 또래인 데다.같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대학후배가 될 뻔한 사람이고, 뭐든 생각나면 오래 생각 않고 바로 내지르는 성격이 비슷하고, 그녀의 걸죽한 욕사발이 좋아서다.

나는 어떤 인연으로 김수미와 만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녀가 만든 음식을 한 젓가락만 맛볼 수 있다면--우쨌든 그녀의 신앙 간증을 듣고 그녀의 책을 읽고 그녀의 영화를 보고, 또 그녀의 요리책을 따라 해 볼 것이니, 김수미는 내게 2022년도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