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이집트

이집트 여행을 마치면서(歸路에)(28)

맑은 바람 2023. 1. 17. 00:14

지금 비행기는 5시간 4분 후에 인천공항에 착륙한다는 글자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무력하게 앉아있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은 언제나 볼펜 한 자루와 메모지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메모하는 즐거움을 맛보았었는데~
주섬주섬 가방에서 여행 안내문을 꺼냈습니다. 볼펜도 찾아냈습니다. 의자 뒤의 트레이를 빼서 안내문 이면지를 펼쳐 놓았습니다. 순간 안도감과 편안함이 찾아왔습니다.

이번 여행은 국적기 대신 사우디아 항공기를 이용했습니다.
이집트도 물론 처음이지만 사우디아 항공은 처음 타 보았습니다. 아랍인들의 비행기를 탄다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약간의 불안이 있었습니다. 호기심은 아랍승무원들은 어떤 모습일까, 불안감은 이착륙 때 우리 국적기만큼 편안할까? 후자에 대한 두려움은 단 한번의 경험으로 싹 가셨습니다. 그리고 약간 검은 피부에 커다란 눈, 오똑한 콧날에 녹청색 히잡을 쓴 여승무원의 모습이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게다가 빈자리가 많아 오고가는 동안 자리를 터서 누워 잠을 잘 수도 있었습니다. 사우디아 항공에 대한 이미지가 업그레이드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서울행 사우디아 항공은 앞뒤는 거의 차고 가운데는 텅 비다시피했습니다. 몇 시간 죽은 듯이 푹 자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나니 펜을 잡을 여유가 생기네요. 여행 중 여기저기서 퍼뜩 떠오른 생각과 감정을 그때그때 바로 잡아들여 기록해 두지 않으면 얼마 후엔 지우개로 지워놓은 칠판처럼 깨끗하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제일 유감스러웠던 일은 펠레 신전에서, 룩소르 신전에서, 피라미드를 둘러볼 무렵 휴대폰이 꺼져 버린 일입니다.
다시는 만나볼 수 없는 정경들을 다 담아내지 못했으니 속상한 마음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네요.
왜 진작에 휴대폰 밧데리도 점검하고, 여분 밧데리도 준비할 생각을 못했을까요!
여행은 누구랑, 어떤 이의 가이드를 받고, 무엇을 먹고 어디를 둘러보았느냐에 따라 그 성패를 이야기하지요.
그런 면에서 이번 여행은 비교적 성공적이었어요.
60안팎의 점잖은 부부 몇 쌍과 가족팀과 그리고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유쾌한 '아줌마'들로 이루어진, 21명은 8일 동안 잡음 한 번 없이 서로 배려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니 일단 만족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십 년 가까이 이집트에 살면서 이집트 역사학 박사 수준에 이른 이집트 가이드 미스터 리 덕분에 꼼꼼 깨알 지식을 흠뻑 섭취했으니 이에서 무얼 더 바라겠는지요. 옵션으로 제시된 누비안 빌리지 투어, 마차로 룩소르 신전 가기, 잠수정 체험, 사하라 사막 선셋 사파리 등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안겨 주었습니다.
나는 가이드에게 "이번 여행의 옵션은 예술예요"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먹거리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제 자신 어디 가나 계란과 토마토와 치즈, 올리브 그리고 약간의 육류만 있으면 족하니까요.
이번 여행에서는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짓'을 했습니다.
비용 부담없이 가볍게 구할 수 있었던 전통의상 덕분이지요.
걸쳐보니 의외로 잘 어울려서 그대로 입고 다녔지요.

어느덧 항공맵에 8시 39분 도착 예정 안내 표시와 함께 안전벨트 착용 신호가 뜨더니 비행기가 몹시 요동을 쳐서 글쓰기가 어려워졌네요. South Hatia 섬(뱅골만)상공을 지나고 있군요.

이집트에서 만난 이들을 떠올려 봅니다.
**무하마드 알리--잘생긴 이집트 남자, 세 아이의 아버지, 사진도 찍어주고 날더러 '할머니'라고 부르길래 "할머니 No, 누나 OK" 했더니 배꼽을 잡고 웃네요.
**크고 까만 눈동자의 아이들--가난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물건을 팔러 다니는 아이들이 정말 많았어요. 문맹률 50%라네요.가이드는 그들에게 볼펜을 주면서 "학교 가라"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볼펜 한 묶음을 가져오리라고 별렀건만 짐을 가볍게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그 무겁지도 않은 물건을 가져오지 못한 거예요.달러 대신 볼펜을 건네주라던 가이드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도네요.

그나마 아부심벨 앞에서 나세르 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데 옆에 있던 군인이 다가와 찍어주겠답니다.
대니는 1달러를 주고 나는 볼펜 한 자루를 주었습니다. 그는 얼굴이 환해지더니 안주머니에서 작은 사진을 꺼내 보여주었어요. 딱 우리 손녀 또래의 소녀들이 활짝 웃는 모습이었어요. 자신의 딸들이라고요. 볼펜을 한 자루밖에 건네지 못한 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비루먹은 당나귀, 말, 낙타, 고양이, 떠돌이개 들--사람이 세 끼 먹고 살기 힘든데 짐승들은 오죽하겠습니까!
마차투어를 끝내고 고마운 마음에 말등을 손으로 쓰다듬었더니 등에 땀이 흠뻑 젖어 있더군요.

말 못하는 짐승이 배가 고파도 목이 말라도 주인이 이끄는 대로 움직여야 하는 걸 생각하니 맘이 짠했습니다.
쓰레기더미 위를 돌아다니는 개와 고양이도 너무 많았습니다.
옷까지 입혀 가지고 유모차에 개를 모시고(?) 다니는 어느 나라 사람들 모습이 오버랩되었습니다.
언제쯤 이 나라에 활기가 돌고 이 짐승들의 살갗에도 윤기가 돌는지요~

항로 맵이 뜹니다. 어느새 2/3가량 왔나 봅니다. 보름달이 휘영청, 창공에 눈이 부십니다.
시간은 사정없이 흘러 '지상에 새로운 건 없다'는 말을 실감나게 하는 神殿의 나라 이집트는 나의 삶에서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짧은 인연이지만 '고운 인연'의 사람들과도 작별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또다른 어느 하늘 아래 새로운 인연을 지을 것을 기대하며 '즐거운 나의 집'으로 향합니다.

'모두투어'는 이번에 처음 접해보는 여행사입니다. 일정도 좋고 무엇보다 가격이 맘에 들어 선택했는데, 인솔자와 가이드 모두 1급입니다. 아무 잡음없이 전 일정을 소화해 가는 그들 모습에 감탄했습니다.
다음 여행은 모두 '모두투어'로! !

'모두투어' 이집트가이드 이재정씨

아참, 나의 완벽한 보디가드, 내 인생의 동반자 대니!
내가 알게 모르게 고약하게 굴고 고집 부리고,무대뽀로 나와도 꾹꾹 참고 받아주어서 고마워요.!
' I'm nothing without 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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