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감사일기

칠십다섯 노인이 열다섯 소녀에게

맑은 바람 2023. 7. 29. 19:44

나이 칠십다섯이 되어 60년 전 열다섯 너를 들여다보았다.
6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딱딱한 빨간표지 안에 단정한 글씨로 또박또박 써내려간 300일 남짓한 기간의 일기들 속에서---

왜 그리 자주 아팠니?
아파서 결석한 일도 있고, 코로 입으로 피를 쏟은 적도 있다는 말에 새삼 무척 놀랐다. 병윈치료도 제대로 못 받아 병명도 모른 채 늘 골골거리며 힘들었을 너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리다.
잠을 이기지 못한 것도 다 건강이 시원치 않아서 그랬나 보다.

지각은 또 왜 그리 자주 했니?
하기사 그 버릇을 이내 못 고치고 직장 다닐 때도 지각하는 버릇 때문에 이미지가 손상되곤 했지.네 모습 가운데 제일 맘에 안 드는 게 바로 그거다.

부지런한 네 어머니는 네가 지각쟁이라는 걸 모르고 계셨나 보다. 지금 살아계셨다면 한번 여쭤보고 싶구먼.

네가 학창시절을 떠올릴 때면 기독학생회밖에 생각나지 않는다더니 맞는 말이구나.
그 모임이 평생 친구를 만들어 주었고 네 학창시절을 의미있게 해준 면도 확실히 있기는 한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네가 허약한 몸으로 제대로 쉬지 못하고 거기 매달려 사느라 차분히 공부를 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넌 결국 네가 원하는 대학을 들어가지 못해 평생 아쉬움을 안고 살았으니 말이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가난이 어깨를 짓눌렀어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 너에게 잘 견뎌냈다고,
잘 버텨주어 고맙다고 말하고 싶구나.
99세까지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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