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감사일기

꽃을 든 남자--벗을 떠나보내며

맑은 바람 2023. 8. 16. 10:38

삶과 죽음의 길이
예 있으매 두려워
나는 가노란 말도
못다 이르고 갔는가

카톡방에 미처 들어오기 전 친구의 전화로 訃音을 들었을 때 울컥 울음이 솟았습니다.
아, 우리에게도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나는 때가 드디어 왔군요.
모임이 있는 자리마다 꽃을 들고 나타나 우리 여친들에게 쑥스러운 소년의 미소와 함께 꽃을 건네주던 벗이 생각납니다.
몇 해 전 몰타에서 돌아왔을 때, 외국물 마셨으니 영어실력이 얼마나 늘었나 보자며  미8군 영내로 불러 만찬을 베풀어 주었을 때 얼마나 고맙고 감동적이었던지요?
어찌 제게만 그런 섬세한 호의를 베풀었겠습니까?
가는 자리마다 꽃자리로 만드는 재주가 있어 주변을 밝혀 주던 벗이여!
이제 어느 자리에서 그 짱짱한 음성과 웃음소리 들을 수 있겠는지요?

어둠이 깃든 숲 속에서 가족의 생명수 길어놓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체력단련에 힘쓰다가 문득 이승의 인연을 놓아버린 벗이여,
이것이 생의 마지막이란 걸 느끼며 얼마나 고독했는지요?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선농>지에 낼 원고 좀 부탁한다고 전화한 것이 이승에서 나눈 마지막 대화였네요.

어제 벗들은 당신이 베푼 마지막 만찬에서 따끈한 국밥과 술 한 잔 주고받으며 작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잘가시오, 벗이여!

아, 彌陀刹에서 만날 나는
도 닦으며 기다리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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