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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기념관

맑은 바람 2024. 12. 11. 19:13

2024년 12월 10일 (화) 몽양 여운형 선생의 기념관을 방문했다.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몽양길 66번지에 2011년 11월 27일 개관
여운형 1886~1947.7.19 혜화동에서 암살됨

집안은 대대로 소론파에 속하는 양반 가문이었다.1891년부터 1900년까지 향리에서 조부에게 한학을 수학하였다. 1899년 용인군 유세영의 장녀와 결혼하였다.1900년 서울의 <배재학당>에 입학하였고 1901년 민영환이 세운 <흥화학교>로 전학하였다. 1903년 조부와 처가 사망했고 같은 해 흫화학교를 중퇴한 후 통신원 부설 <우무학당>에 입학하였다.

1944년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고 '조선건국동맹'이라는 비밀 독립운동 조직을 만들어 해방에 대비했으며, 해방직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새로운 국가건설에 앞장섰다.

하지만 해방직후 극심한 좌우대립의 와중에서 여운형과 같은 중도파 세력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졌다.

이 와중에서 1947년 7월 19일 혜화동 로터리에서 달리는 차 안으로 난입한 괴한에 의해 총격을 받고 암살당했다.

그에 대한 테러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끝내 12번째 테러를 막아내지 못하고 당한 것이다.

경찰은 한지근이라는 청년을 범인으로 지목했으나 미성년이라고 나이를 속여 사형을 면했다.

6 25가 발발하자 북한군에 끌려가 생사를 알 수 없게 됐다.

훗날 밝혀진 바로는 여운형의 좌우합작노선에 불만을 품은 극우테러리스트들의 소행이었다.

여운형 선생과 제자들
1930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여운형 선생
1908년 노비해방
1918년 중국상해에서 신한청년당 조직

1918년1월, 김규식을 신한청년당 대표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하여 독립청원서 제출, 11월, 도쿄제국호텔에서 조선독립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1933년 조선중앙일보사장으로 취임, 1936년 베를린올림픽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선수의 일장기를 말소하여

신문을 간행함

'체력은국력'을 강조한 여운형 선생
여운형 생가, 당시 주소는 경기도 양근군 양서면 신원리 묘곡

1715년 (숙종 41년) 함양 여씨가 양평에 자리잡고 '영회암'이라는 이름으로 지은 집으로 여운형선생이 태어나고 애국계몽운동을 실천한 곳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중에 소실되었다가 2011년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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