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여기저기서 "내란수괴 잡아넣어라" 외치며, 겨울 찬바람도 개의치 않는 저 촛불부대를 보며, 85년 전 지구 저쪽 끝에서 일어났던 '스페인 內亂'의 실상이 궁금해졌다.
<스페인 기행>의 2부는 스페인 내란 당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곳을 방문하여, 처절하고 끔찍한 실상을 기자의 시각으로 있는 그대로 전한 글이다.
*스페인 내란:1936.7.17~1939.4.1
세계사에 오점을 남긴 '스페인 내란'은 피카소의 <게르니카>로 상징된다.
히틀러, 무쏘리니까지 거들었어도 마드리드 점령에 실패한 프랑코는 조용하고 작은 마을에 場이 서는 날, 느닷없이 히틀러의 최신무기 하인켈111을 공중에 투입, 융단폭격으로 게르니카를 피바다로 만들었다.이때 쏟아부은 폭탄이 30여톤이었다.인간의 뼈까지 녹이는 소이탄도 사용되었다. 작은 농촌 마을에서 한순간에 1600명이 죽었다.세계사에 남을 '최초ㆍ최악의 민간인 학살'이었다.
당시 유럽에 떠오르는 세 인물--히틀러,무쏘리니,스탈린이 다 이 내란에 밥숟갈을 얹어놓고 있었다. 2차대전의 戰雲이 감도는 때 이들은 스페인을 자신들이 개발한 최신무기 실험장으로 썼던 것이다.
아사냐공화국 좌파에 협조한 스탈린은 무기를 제공하고 500톤이나 되는 금덩어리를 가져갔다.
국방력도 정권을 지킬 힘도 없었던 스페인은 남의나라 사람들을 끌어들여 죄없는 민간인을 학살하고 富를 강탈당했다.
프랑코 장군에게 밀리고 당하는 꼴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프랑스 땅에서는 50여 개 국가에서 몰려온 지식인, 文人들이 <국제여단>을 창설한다. 헤밍웨이,생텍쥐페리,조지 오웰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조직력이 약하고 무기조차 변변치 않은 의용군과 민병대는 승리의 깃발을 프랑코에게 넘겨준다.내전의 종식에 힘을 보탠 건 프랑스와 영국이다.그들은 프랑코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과연 정의란 있는 것일까?
애초에 정치가들은 제 잇속차리는 데만 혈안이 되었지 民草의 삶은 안중에도 없었다.스페인 전국토를 폐허로 만든 프랑코는 권좌에 올라 40 년 가까이 독재정치를 펼쳤다.
온건 자유주의 정부를 표방하며 진보적 정치를 펴고자 했던 아사냐 대통령은 내전이 끝난 이듬해 망명지 프랑스에서 죽었다.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두 편 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Land And Freedom>
--피카소가 한국전쟁도 그렸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