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고 싶은 길
조정권
1.
일년 중 한 일 주일에서 열흘쯤 혼자 단풍 드는 길
더디더디 들지만 찬비 떨어지면 붉은 빛 지워지는 길
아니 지워버리는 길
그런 길 하나 저녁 나절 데리고 살고 싶다
늦가을 청평쯤에서 가평으로 차 몰고 가다 바람 세워 놓고
물어본 길
목적지 없이 들어가 본 외길
땅에 흘러다니는 단풍 잎들만 길 쓸고 있는 길
일년 내내 숨어 있다가 한 열흘쯤 사람들한테 들키는 길
그런 길 하나 늘그막에 데리고 같이 살아주고 싶다
2.
이 겨울 흰 붓을 쥐고 청평으로 가서 마을도 지우고 길들도 지우고
북한강의 나무들도 지우고
김나는 연통 서너 개만 남겨 놓고
온종일
마을과
언 강과
낙옆 쌓인 숲을 지운다
그러나 내가 지우지 못하는 길이 있다
약간은 구형인 승용차 바큇자국과
이제 어느 정도 마음이 늙어버린
남자와 여자가 걷다가 걷다가 더 가지 않고 온 길이다
'글사랑방 > 애송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라도 7-이성부 (0) | 2009.01.12 |
---|---|
수선화에게- 정호승 (0) | 2009.01.12 |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황지우 (0) | 2009.01.10 |
어떤 적막-정현종 (0) | 2009.01.10 |
긍정적인 밥-함민복 (0) | 2009.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