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방/애송시

같이 살고 싶은 길-조정권

맑은 바람 2009. 1. 10. 23:27

 

 

같이 살고 싶은 길

조정권

 

1. 

일년 중 한 일 주일에서 열흘쯤 혼자 단풍 드는 길 

더디더디 들지만 찬비 떨어지면 붉은 빛 지워지는 길 

아니 지워버리는 길 

그런 길 하나 저녁 나절 데리고 살고 싶다 

 

늦가을 청평쯤에서 가평으로 차 몰고 가다 바람 세워 놓고 

물어본 길

목적지 없이 들어가 본 외길 

땅에 흘러다니는 단풍 잎들만 길 쓸고 있는 길 

 

일년 내내 숨어 있다가 한 열흘쯤 사람들한테 들키는 길 

그런 길 하나 늘그막에 데리고 같이 살아주고 싶다 

 

2.

이 겨울  흰 붓을 쥐고 청평으로 가서 마을도 지우고 길들도 지우고

북한강의 나무들도 지우고 

김나는 연통 서너 개만 남겨 놓고 

온종일 

마을과 

언 강과 

낙옆 쌓인 숲을 지운다 

그러나 내가 지우지 못하는 길이 있다

약간은 구형인 승용차 바큇자국과 

이제 어느 정도 마음이 늙어버린 

남자와 여자가 걷다가 걷다가 더 가지 않고 온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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