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등단 이후

맑은 바람 2009. 4. 3. 01:16

 

시 한편에 삼 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이하 생략)

-함민복의 ‘긍정적인 밥’의 일부

 

 

시인 되면 어떻게 되는 거유

돈푼깨나 들어오우

 

그래, 살 맛 난다

원고 청탁 쏟아져 어디 줄까 고민이고

평론가들, 술 사겠다고 줄 선다

그뿐이냐

베스트셀러 되어 봐라

연예인, 우습다

 

하지만

오늘 나는

돌아갈 차비가 없다    -한명희의 ‘등단 이후’

 

 나는 2007년 가을 어느 날 마로니에 백일장에서 산문부 장원을 함으로써 글 한편으로 단박에 수필가가

되었다. 뜻밖의 ‘사건’이었다. 글 한편에 100만원이 넘는 상금도 받고 또 수필가로 탄생한 것이다.

다니던 수필교실에서도 신인상을 받게 되어 졸지에 상패를 두 개나 거머쥐게 되었다.

지인들의 연이은 축하파티도 나를 흥분시키고 우쭐하게 만들었다.

 

등단 작품을 의기양양하게 돌리고 신인상 수상작품도 돌렸다. 그런데 그 뒤에 잡지에 게재된 글을 또 읽어 달라고 돌릴 때에는 웬지 손이 부끄러웠다. 바쁘고 또 나이들이 들어 눈도 침침한 사람이 많을 텐데 자꾸 강요하는 것 같아서--

읽어줄 만한 사람을 생각하며 차일피일하다 달이 지나고 계절이 가고 나니 시효가 지난(?) 책을 선뜻 건네줄 수가 없었다. 이제는 거실 한구석에서 이제나저제나 좋은 독자를 만나러 가려고 기다리던 책들을 한데 묶어 넝마주이의 손에 넘겨야 할 판이다.

 

사실 등단 직후 나는 꿈도 야무지게,

‘아, 이제부터 원고료를 받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구나, 용돈은 좀 들어오겠는데~’

혼자 이런 생각을 품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만 생짜 없이 무안을 당하고 말았다.

시를 지도하는 선생이,

“이제 작가가 됐으니 수필 한 편 써오면 잡지에 실어줘야겠군.”

하길래 나는 덥석,

“원고료 얼마 주실 건데요?” 했더니,

가당찮다는 표정이 스치면서 새파란 초짜가 돈부터 밝힌다며 핀잔을 준다.

 

‘아. 몰라도 한참 몰랐구나.’ 되지도 않은 글을 가지고 흥정부터 한 셈이니, 평생 글을 쓰면서

살아온 선생으로서는 내가 딱하기 그지없는 인간으로 보였던 거다.

작가의 이름을 얻었다고 원고료가 척척 손에 들어오는 게 아님을 곧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이참에 글을 쓰면 원고료가 생긴다는 망상도 함께 꽁꽁 싸서 내다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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