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2000원의 가치

맑은 바람 2009. 6. 9. 20:45

 

 

 그들(?)이 주도하는 야바위판에 전 국민이 놀아나서 수많은 사람이 울상을 짓는데 그들은

한몫 단단히 끌어안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말이 2000원짜리 복권이지 한 장 사면 어디 한 군데만 하나?

에라, 이왕 산 거 10000원어치 긁지! 하며 다섯 칸을 채워 돈 10000원을 순간에 날린다.

연일 몇 천 억, 억 억하며 떠드니 2000원은 돈도 아니다.

10000원짜리 복권이 휴지만도 못하다. 휴지면 코나 풀지!

 

 언젠가 인적이 드문 어느 절 입구에 고부간인 듯싶은 여인이 나란히 앉아 나물을 팔길래,

노인 쪽으로 다가가서 샀다.

노인은 돈을 받아들더니 얼른 젊은 여인에게로 가져간다.

돈을 받아든 여인이 ‘자-’하면서 1000원을 뚝 떼 노인한테 도로 주니, 노인은 세뱃돈 듬뿍 받은

어린애 얼굴이 되어 좋아 어쩔 줄 모른다.

 

 갓난애 주먹만한 귤 30개, 알이 굵은 계란 열 개, 떠리 꽁치 열댓 개, 이제 막 쏟아져 나온 봄나물

한 봉다리, 땅콩 한 되, 내가 좋아하는 뻔데기 한 되, 겨우내 낄 수 있는 털장갑 한 켤레--

2000원 들고 재래시장을 한 바퀴 돌면 건질 수 있는 것들이다.

 

 PC방 가서 80분 동안 열나게 오락 한 판 할 수 있고, ‘샤먼 킹’, ‘꽃보다 남자’ 등의 만화책 다섯 권

빌려 숨도 안 쉬고 읽을 수 있고 서넛이 머리 맞대고 수다 떨며 먹을 수 있는 떡볶이가 두 접시,

오뎅이 한 그릇, 누깔 사탕 스무 개---

열세 살짜리 손에 들린 2000원의 용도다.

 

 노숙자에게 주어보라.

500원짜리 컵라면 한 그릇,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 한 잔, 식 후 담배 한두 개피로 뿌듯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귀한 줄 모르고 버리는 2000원--

신종인간 호모 로또리우스(로또에 중독된 사람, 숫자만 보면 여섯 자리를 조합하는 사람,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을 가리키는 신종 용어란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2003.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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