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주도하는 야바위판에 전 국민이 놀아나서 수많은 사람이 울상을 짓는데 그들은
한몫 단단히 끌어안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말이 2000원짜리 복권이지 한 장 사면 어디 한 군데만 하나?
에라, 이왕 산 거 10000원어치 긁지! 하며 다섯 칸을 채워 돈 10000원을 순간에 날린다.
연일 몇 천 억, 억 억하며 떠드니 2000원은 돈도 아니다.
10000원짜리 복권이 휴지만도 못하다. 휴지면 코나 풀지!
언젠가 인적이 드문 어느 절 입구에 고부간인 듯싶은 여인이 나란히 앉아 나물을 팔길래,
노인 쪽으로 다가가서 샀다.
노인은 돈을 받아들더니 얼른 젊은 여인에게로 가져간다.
돈을 받아든 여인이 ‘자-’하면서 1000원을 뚝 떼 노인한테 도로 주니, 노인은 세뱃돈 듬뿍 받은
어린애 얼굴이 되어 좋아 어쩔 줄 모른다.
갓난애 주먹만한 귤 30개, 알이 굵은 계란 열 개, 떠리 꽁치 열댓 개, 이제 막 쏟아져 나온 봄나물
한 봉다리, 땅콩 한 되, 내가 좋아하는 뻔데기 한 되, 겨우내 낄 수 있는 털장갑 한 켤레--
2000원 들고 재래시장을 한 바퀴 돌면 건질 수 있는 것들이다.
PC방 가서 80분 동안 열나게 오락 한 판 할 수 있고, ‘샤먼 킹’, ‘꽃보다 남자’ 등의 만화책 다섯 권
빌려 숨도 안 쉬고 읽을 수 있고 서넛이 머리 맞대고 수다 떨며 먹을 수 있는 떡볶이가 두 접시,
오뎅이 한 그릇, 누깔 사탕 스무 개---
열세 살짜리 손에 들린 2000원의 용도다.
노숙자에게 주어보라.
500원짜리 컵라면 한 그릇,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 한 잔, 식 후 담배 한두 개피로 뿌듯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귀한 줄 모르고 버리는 2000원--
신종인간 호모 로또리우스(로또에 중독된 사람, 숫자만 보면 여섯 자리를 조합하는 사람,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을 가리키는 신종 용어란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2003. 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