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공부하는 모임에 조병화 시인이 오시어 특강을 했다.***
-나는 어떻게 시인이 됐나?-
경성사범에서 물리 화학을 전공하고 교사생활을 하다가 그것은 내가 진정 배우고 싶은
학문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한 마리 새가 새로 태어나려면 껍질에서 나와야 함을 인식,
'행동만이 자유다, '
'행동만이 생각하는 것이다. '
'행동만이 푸른 하늘을 날 수 있다.'
하며 시 쓰기를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51권째 시집을 남기셨다.
늘 새벽부터 밤늦도록 일에 파묻혀 사는 어머니의 삶을 보고 쉬며 하시라니까,
‘죽으면 썩어질 몸‘이라 답변하셨다.
이때 터득한 ‘죽음의 철학’이 바탕이 되어 시 세계를 구축했다.
경성사범 시절, 잘사는 일본인 학생들 속에서 ‘가난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의 여행(독서)만이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리라는 믿음으로, 조금의 짬도 아껴가며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이렇게 열심히 책과 씨름하며 산 끝에 경성사범을 1등으로 졸업했다.
선생의 좌우명은 '너의 천적은 너 자신',
'먼길을 가다가 해가 저물면 등불을 켜 가지고 간다.'이다.
어느 날 접한 글귀,
'사색만 하고 있는 놈들은 창 밖에 새파란 목초가 자라는 것을 모른다.'
그래서 새파란 목초를 따라 동경유학을 결심했다.
한때 헤르만 헷세에 심취하여 ‘데미안’, ‘피터 카멘찐트’의 영향을 받았다.
시 <안개>에서
안개는 다 혼자다
인생은 고독한 것
이라 노래했듯이 시인의 본질은 외롭고 고독한 것임을 깨달았고 고독이 나를 이 자리까지 이끌어준
인력이라 믿는다고 했다. '소라', '추억', '하루만의 위안' 등의 시는 그의 고독, 소외감, 우월감을
떨쳐버리려는 마음들이 잘 표현됐다.
그의 시 '밤의 이야기'에서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있다는 거다. 라고 고독의 정의를 내린다.
***그의 널리 암송되는 시들;
<소라>
바다엔
소라
저만이 외롭답니다
허무한 희망에
몹시도 쓸쓸해지면
소라는 슬며시
물 속이 그립답니다
해와 달이 지나갈수록
소라의 꿈도
바닷물에 굳어 간답니다
큰 바다 기슭엔
온종일
소라
저만이 외롭답니다
<추억>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 보던 날이
하루
이틀
사흘
여름 가고
가을 가고
조개 줍는 해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바다에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가는 날이
하루
이틀
사흘
<하루만의 위안>
잊어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지금은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온 생명은 모다 흘러가는데 있고
흘러가는 한 줄기 속에
나도 또 하나 작은
비둘기 가슴을 비벼대며 밀려가야만 한다
눈을 감으면
나와 가까운 어느 자리에
싸리꽃이 마구 핀 잔디밭이 있어
잔디밭에 누워
마지막 하늘을 바라보는 내 그 날이 온다
그 날이 있어 나는 살고
그 날을 위하여 바쳐 온 마지막 내 소리를 생각한다
그 날이 오면
잊어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시방은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애착(자기애)을 버려야 함을 강조***
<낙엽끼리 모여 산다>
낙엽에 누워 산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
낙엽이 지는 하늘가에
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
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
항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나는 살고 싶다
살아서 가까이 가는 곳에 낙엽이 진다
아 나의 육체는 낙엽 속에 이미 버려지고
육체 가까이 또 하나 나는 슬픔을 마시고 산다
비 내리는 밤이면 낙엽을 밟고 간다
비 내리는 밤이면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
밤은 나의 소리에 차고
나는 나의 소리를 비비고 날을 샌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낙엽에 누워 산다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
**단 한 번의 만남(그후 얼마 안 있어 타계하심)이었지만 우리는 유감스럽게도 그에게서 비우호적인
느낌을 받았다. 耳順의 나이를 훌쩍 넘어 米壽를 앞에 두고 있건만, 82세 된 노인의 그 경직된 우월감과
자만심, 시간관념이 없는 사람에게 쏟아 붓는 모멸의 표정, 강의 도중에 테이블 위에 있는 떡 한 개를
집어먹는 수강생에게 노골적인 경멸을 담아, “먹으러 여기 왔냐”는 힐책 등은, 그의 시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서정과는 거리가 있었다.
안타깝다,
가진 자가 겸손해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 보다 더 어려운 것’임을 실감한다.
향기를 지닌 자는 그냥 있어도 절로 향기가 나는 법이거늘--
(2002.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