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낙선 소감과 수필 정신

맑은 바람 2009. 7. 15. 21:00

 

상금과 명예가 함께 따라오는 수기 공모전에 응모했다. 장려에도 못 들고 보기좋게 떨어졌다. 서운하고 속상하고--나름대로 열심히 잘(?)썼는데 내 작품이 실수로 누락된 거 아닌가 하는 억지 생각도 들었다. 금상을 받은 작품에 대해서는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겸허하고도 미학적인 면을 드러내는 탁월한 작품‘이라 했다.

출품한 내 작품과 비교해 보면서 읽으니 자신이 부끄럽고 수상작에 대해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담담한 심정이었던 건 아니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내가 써온 글들을 돌아보았다.

일기 쓰듯 매일 쉽게 쓰는 글, 한번 쓴 후에는 두 번 다시 읽어보는 법이 없고, 비교적 자신의 글에 만족해하고-- 삶에 대한 성찰과 응시보다는 그저 겪은 일을 소상히 옮겨놓은 것에 지나지 않은 글들-

심사평을 보니 바로 내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입상권에 들지 못한 작품들의 공통점을 보면, ‘계도성과 주제성이 앞서고 실천사례만 나열, 자연스러운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글들’이라는 지적이다. 실천 행위의 강조와 자랑이나 과시보다는 삶의 응시와 깨달음을 통한 인생의 의미 부여가 필요하다고 했다.

 

오늘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수필의 날’ 행사가 있었는데 강사로 초대된 분이 수필인이자 한양대교수인 윤재근 선생님이었다. 수기공모전 심사위원이셨던-

<수필정신과 기법>이라는 주제 강의인데 주최측은 20분이라는, 당치도 않게 짧은 시간 동안 강의해 달라는 주문을 했다. 소위 유명인사라는 분들의 축사 시간을 줄이고 강의를 들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한문학의 대가인 선생은 명수필로 <장자의 꿈>을 꼽았고 홍매의 <용재수필>을 수필가의 모범으로

제시했다. 한두 번 읽고 말게 아니라 정신에 스며들게 곁에 놓고 늘 곱씹으라 하셨다.

그리고 여러 차례 강조한 단어-‘習廻’ 수필은 붓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習廻’를 따라가는 것이다.

이를 잘 삭여야 수필인이 될 수 있다.

손끝 재주, 감성으로 쓰는 수필은 참된 수필이 아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방법으로 수필만한 게 없다.  좋은 수필은 읽는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절대로 자랑하는 글은 쓰지 마라.

수필인은 ‘군자’가 되야 한다. 사람들은 꽃을 보지만 수필가는 뿌리를 봐야 한다.

꽃을 피울 수 있는 뿌리가 되라.

 

낙선의 쓰라림(?)이 가시기 전에 좋은 수필 강의를 듣는 행운을 누렸다. 만약 내 글이 당선되었다면

오늘 강의가 이리 귀에 쏙쏙 들어왔을까?  인생만사 새옹지마-불변의 진리!   (2009. 7. 15 수)

 

***홍매 (1123~1202)

중국 남송의 명신(名臣)·학자.

요주(饒州) 포양[鄱陽:지금의 장시 성(江西省)에 속함] 사람. 호는 용재(容齋).

폭넓은 독서가였으며, 주요저서인 〈용재수필 容齋隨筆〉은 자신의 지식을 토대로 정치·사회·사상·역사·풍속예술·의학·천문·수학 등 모든 방면의 사상(事象)에 관하여 고증을 기록한 것이다.

子習懶  讀書不多 意之所之 隨卽 記錄  因基先後  無復銓次 故曰隨筆

(나는 게으른 탓으로 책을 많이 읽지는 못햇으나 그때그때 뜻한 바가 있으면

앞뒤의 순서를 가려 정리할 것도 없이 바로바로 기록하여 놓은 것이어서

수필이라 일컫게 되었다)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직 멀었어   (0) 2009.08.28
와룡공원의 여름 아침  (0) 2009.08.07
누가 이 사람을~  (0) 2009.07.07
독립 선언하고 출가한 루비   (0) 2009.07.03
꿈이 이루어진 날  (0) 2009.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