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아직 멀었어

맑은 바람 2009. 8. 28. 23:28

 

 조금 일찍 집을 나서 미사 시간에 여유 있게 성당에 들어가 앞자리를 잡았다. 평일 미사를 드리러 성전에 들어가 조용히 앉아 있노라면 문자 그대로 ‘강 같은 평화’가 잔물결 친다.

 

 이미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조용히 묵상에 잠겨 있는데 뒤에서 잔기침 소리가 난다. 기침 소리는 점점 더 가까이 들리더니 내 바로 앞자리에 와 앉는다. 젊은 여인이었다. 생머리에 단정하게 원피스를 차려 입었는데 뒤에서 보기에 몸이 가냘퍼 보였다. 여자는 자리에 앉아서도 계속 기침을 해댄다. 점점 불안해서 있을 수가 없다. 신종 풀루는 기침과 재채기로 옮는다는데--

안 되겠다 싶어 가방을 들고 멀찌감치 뒤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고서도 자꾸 기침 소리 쪽으로 신경이 쓰이는데 나중에는 거의 발작적으로 기침을 해댄다. 여인은 기침이 점점 심해지자 옆으로 쓰러져 버린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나 무어라고 소리를 냈는지 전례 위원이 돌아보며 제재를 가한다.

‘혹 이상한 여자 아냐? 저 정도면 뭐 하러 성당엘 오나? 집에서 몸조리나 할 일이지.’

둘러보니 기침소리에 신경을 쓰는 건 나뿐이 아니었다.

뒷자리에서 할머니 한 분이 일어나시더니 그 처자에게 다가가서 등을 토닥이며 가만히 끌어안는다. 어린아이에게 그러듯이-- 그 때에 또 한 분 할머니가 부시럭거리며 가방을 여시더니 사탕 두 알을 꺼내 다독이고 있는 할머니한테 건넨다. 여인은 싫다고 거부하는 눈치다.

 

 나는 혹시라도 감염될까봐 ‘어메야!’ 뒤로 내뺐건만 두 할머니는 처자의 기침을 가라 앉히기 위해 이런 저런 일을 하고 계신다.

‘넌,

아직 멀었어!!’ (2009. 8. 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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