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 주는 남편-그 맛있고 행복한 시간
허정도
“<책 읽어주는 남편>이 있더라~”
이렇게 말문을 여니 친구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부인이 장님인가?”
우리 주변에 그 누구도 아내나 남편을 위해 책을 읽어주는 사람 얘기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글쓴이도 책을 읽어 주게 된 동기가 아내의 ‘안부대상포진’때문이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눈 주변이 헐어 눈을 뜰 수 없는 아내가 고통 속에 있는 걸 보고 위로의 방법을 찾다가 ‘이렇게 기막힌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이 책은 펼치는 순간부터 닫는 순간까지 시샘과 부러움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게 하는, 그런 책이다.
떡 접시도 과일 접시도 아닌, ‘책’을 가운데 놓고 부부가 주고받는 따뜻한 시선과 깊은 교감, 중간 중간 쉬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이상적인 연애교실에나 나올 법한 일을 56, 54세의 부부가 해내고 있다.
글쓴이는 말한다.
‘부부가 함께할 수 있는 놀이’로써 그럴듯하지 않느냐고-- 함께 책을 고르고, 읽고, 그 책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 나누는 부부가 한 쌍이라도 더 생긴다면 그만큼 기쁜 일도 없겠다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고.
아닌게 아니라 나는 이 글을 읽으며 내내 ‘나와 남편은 무슨 책을 가운데 놓고 읽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시집? 성경? 아니면 남편이 좋아하는 역사물로서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 볼까?
그러나 좀체로 맞장구쳐 줄 것 같지 않을뿐더러 설령 동조한다 하더라도 글쓴이처럼 끈기 있게 읽을 자신도 없다.
바쁜 일상(경남도민일보 대표이사)중에도 매일 한 시간씩, 매주 1권의 책을 읽어준다.
재미있는 책은 앉은자리에서 대여섯 시간씩 소리 내어 읽으니, 눈으로 읽을 때보다 시간이 좀더 걸리기는 하지만 감동의 깊이가 다르다 했다. 느릿느릿 고요하게 흐르는 시간, 맛깔스러운 낭독의 기쁨-- ‘그 맛있고 행복한 시간’을 꼭 한번 경험해 보기를 청한다.
글쓴이는 주로 소설을 소개하며 그 쫄깃쫄깃한 맛을 전한다. 대학 졸업 이후 소설은 어쩐지 손이 가지를 않았는데, 여기 소개된 스무 권의 책은 글쓴이의 손맛으로 버무려져 읽어 보지 않을 수 없게끔 나를 유혹한다.
--스무 권의 책과 글쓴이의 말--
1.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소설-설흔, 박현찬 지음
‘좋은 글을 쓰고 싶으면 좋은 글을 읽어라. 읽되 푹 젖도록 정밀히 읽어라. 모든 사물을 관찰하고 통찰하라. --사마천처럼 분발심을 기억하라.’
2. <리진>소설-신경숙
리진은 조선말기 궁중 무희로 서양으로 건너간 최초의 조선 여인이다.
‘씻어서 깨끗해지는 건 더러운 게 아니야. 허지만 마음이 더러워지면 씻을 수가 없는 법이다.’
3. <능소화>소설- 조두진
1998년 4월 안동에서 발굴된 편지로, 고성 이씨 이응태의 부인 원이엄마가 서른한 살 젊은나이에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며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 짚신과 함께 넣어둔 편지.
기자출신인 조두진의 글은 ‘간결 정밀하고 글맛이 뛰어나다’고 한다.
--“봄꽃이 피고 진 다음 다른 꽃들이 더이상 피지 않을 때 능소화는 붉고 큰 꽃망울을 터뜨려 당신을
기다릴 것입니다.--꽃 귀한 여름날 그 크고 붉은 꽃을 보시거든 저인 줄 알고 달려와 주세요.
저는 붉고 큰 꽃이 되어 당신을 기다릴 것입니다.” -여늬의 일기
4. <히말라야 도서관>에세이- 존 우드
세계적인 기업 마이크로소프트의 촉망 받는 임원이었던 존 우드가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중 한 학교를
방문했을 때 그 열악한 환경을 보고 충격을 받아, 자선단체 룸 투 리드(Room to Read)를 설립, 네팔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3천여 개의 도서관을 짓고 150만 권의 책을 기증하는 자선사업가로 변신했다.
그의 뒤에는 훌륭한 아버지가 계셨다.
어린 아들이 기로에 서 있을 때,
“얘야, 네 인생을 만족 시킬 단 한 사람은 너 자신뿐이다. 엄마와 나를 기쁘게 만들려 애쓰지 마라.
오직 너 자신에게만 질문하고 대답하도록 해라.”-존 우드의 아버지
또 그가 유망한 직업을 버리고 자선가로 변신하고자 할 때,
“지금은 누군가를 위해 일하기보다는 너 자신을 위해 일할 때가 된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5. <마지막 강의>에세이-랜디 포시
췌장암으로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카네기멜론대학의 컴퓨터 공학 교수 랜디 포시가 2007년 9월 18일
동료 교수와 학생들 400여 명 앞에서 한 마지막 강의 내용으로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여자의 남편인
그가 사랑하는 가족에게 남기는 마지막 인사이기도 하다.
“얘들아, 아버지가 너희들이 무엇이 되기 바랐는지 알려고 하지 마라.
나는 너희들이 되고 싶은 것이면 그게 무엇이든, 바로 그것을 이루기를 바랄 뿐이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마지막 강의는 힘겹게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했고 희망을 붙잡는 용기를 심어주었습니다.
6. <바리데기>장편소설-황석영
갈등하는 세계가 만들어낸 ‘이동’을 주제로 한 소설.
이동하는 데 익숙해진 요즘 사람들에게 문화, 종교, 민족, 빈부 차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세상을 제시한다. 바리를 통해 식량 부족을 겪고 있는 북한의 실상을 드러내기도 한다.
7.<아름다운 마무리>수필- 법정
아름다운 마무리는,
1) 삶을 감사하게 여기는 것
2)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긍정하는 것
3)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에 대해 감사하는 것
4) 일의 과정에서 길의 과정에서 잃어버린 초심을 회복하는 것
소리내어 읽기의 필요에 대해,
“어떤 종교든지 경전은 소리내어 읽어야 한다. 그저 눈으로 스치지만 말고 소리내어 읽을 때 그 울림에
신비한 기운이 스며 있어 그 경전을 말한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8. <친정엄마>수필-고혜정
모녀이기 때문에 겪는 갈등과 불만, 모녀이기 때문에 우러나는 조건 없는 사랑, 모녀이기 때문에 가슴에 묻어둘 수밖에 없는 비밀스러운 감정, 이 모든 것들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가슴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향수와 연민을 불러낸다.
9.<까칠한 가족>연작소설-조반니노 과레스끼
자유롭고 유쾌하며 따뜻한 글이 특징인 과레스끼가 자신의 가족을 모델로 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10. <지상에 숟가락 하나>소설-현기영
자신의 유년기 추억을 더듬어가며 쓴 소설
작가는 이 소설을 탈고한 뒤, 글쓰는 내내 무척 설레고 행복했으며 잊었던 유년의 기억을 좇는 시간여행을 통해 인생을 다시 산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11.<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4> 여행기-김남희
네팔에 들어가 에베레스트와 그 주변을 트레킹한 경험을 기록한 책
안나푸르나(‘곡식이 가득찬 곳’이라는 뜻)-고산목과 숲, 흡사 피처럼 붉은 빛깔이 감도는 랄리구라스의 꽃숲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김남희는 안나푸르나에서 보낸 날들이 마치 천계에 머무른 것 같다 했다.
12.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산문-공지영
마흔 다섯이 된 공지영이 스물이 된 자신의 맏딸 위녕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
“위녕, 너는 아직 젊고 많은 날들이 남아 있단다. 그것을 믿어라. 네가 달리고 있을 때에도 설사, 네가 멈추어 울고 서있을 때에도 나는 너를 응원할 거야.”
13.<라틴 화첩 기행>기행문-김병종
서울미대 교수로, 대영박물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을 만큼 인정받는 우리 시대 대표적인 한국 화가이면서 신춘문예 당선자이기도 한 저자가 남미대륙을 샅샅이 훑으면서 남미의 문화, 예술, 자연 그리고 그들의 생활상까지 생생하게 재현한 책으로 인문학적 깊이와 예술적 상상력이 뛰어난 글.
눈에 보이는 남미와 눈에 보이지 않는 남미까지 몽땅 알고 싶은 독자들의 지적 욕구를 채우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책.
14. <잡식동물의 딜레마>산문-마이클 폴란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고도 통찰력 있는 답변을 제시한 책
우리의 몸을 만드는 원재료는 옥수수이므로 ‘인간은 걸어 다니는 옥수수’라고 규정한다.
글쓴이는 “우리는 음식을 입에 넣기 전에 그것의 생산 과정과 이동 경로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 책은 진정한 ‘식탁의 즐거움’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한다.
15. <연을 쫓는 아이>소설-할레드 호세이
2004년 미국도서관협회에서 ‘청소년이 읽을 만한 성인도서’로 선정된 책으로 ‘소년은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1965년 아프가니스탄 카블에서 태어난 작가는 의학을 전공한 내과 의사지만 문학에 심취해서 2003년에
이 책을 펴냈다. 지금은 유엔 난민국에서 NGO 활동을 하면서 저술을 하고 있다.
“너를 위해서라면 천만 번이라도 그렇게 할게.”하며 따르던 하층 종족에 속하는 하산을 저버린 주인공
아미르가 잃어버린 순수를 회복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
비뚤어진 우정과 이별, 그리고 때늦은 가책과 만남이 뒤얽힌, 충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는
아프가니스탄의 아픈 역사가 전각처럼 새겨져 있다.
16. <나무열전>-강판권
“나무만큼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존재도 없다.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사는 자만이 나무처럼 목숨 걸고 치열하게 사는 자만이 아낌없이 남에게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계명대 사학과 교수인 저자가 특별한 나무 사랑을 담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나무 수십 종의 이름과 그 이름에 담긴 뜻, 나무의 성질, 나무에 관련된 다양한 일화 등을 깊이 있고 폭 넓게 기록한 책.
나무를 설명하는 글과 함께 나무의 형태와 잎, 꽃모양도 사진으로 수록하여 이해하기 쉽게 구성하였다.
17. <조선의 프로페셔널>-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인 저자가 조선후기 사회에서 자신이 옳다고 믿은 한 가지 일에 조건 없이 도전한 프로페셔널 열 명의 열정적인 삶을 조명한 인물 평전.
* 천하의 모든 땅을 밟을 수만 있다면 노비가 되어도 좋다는 여행가 정란,
* 조선 제일의 국수가 되기 위해 오로지 바둑만 둔 평민 소년 정운창,
* 권력에 굴복하지 않으려고 제 눈을 송곳으로 찌른 최북,
* 자신에게 필요한 자료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는 벼루조각가이자, 천문학자요 수학자인 조선의 다빈치 정철조
* 검무 예술의 대가 밀양 기생 운심
* “책을 아는 천하 사람 가운데 나보다 나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던 책장수 조신선
* 20년 동안 화원을 경영하고 화훼의 전문지식과 감상 안목을 집필한 선비 원예가 유박
* 애꾸에 곰보요 종의 신분으로 자신의 처지를 글로 승화시킨 천재 시인 이단전
* 활 만드는 기술자이면서 최고의 악사의 경지에 이르렀던 비파와 거문고의 거장 김성기
* “칼을 잡으면 무슨 물건이든지 그대로 새기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자부한 과학기술자 최천약
여기 소개된 인물들은 지금까지 역사의 조명을 받지 못했으나 이 글을 통해 진가를 인정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컬러로 된 화사한 그림과 담백한 글이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18. <오 하느님>소설-조정래
1944년 2차 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때 노르망디 해안에서 미군 포로가 된 나치군복을 입은 앳된 얼굴의 동양인-그는 일제의 징용에 끌려 나가서 러시아 포로가 되었다가 다시 독일 포로가 되어 전선에 투입된 신의주 출신의 조선인 양경종
‘나치군복을 입고 있는 한국사람’의 수수께끼를 소설로 풀어나간 책
19. <백범일지>-김구
전국민의 교양필독서. 파란만장한 자신의 생애를 꾸밈없이 기록한 자서전의 고전.
백범 연구에 정통한 창원대 사학과 교수 도진순의 주해가 책의 품격을 더해 준다.
20. <강산무진>-김훈
단편 여덟 편이 수록된 단편 소설집
나이든 부부가 읽기에 좋은 소설-그들의 미래의 모습일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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