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장영희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고 나는 지금 내 생활에서 그것이 진정 기적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난 이 책이 오롯이 기적의 책이 되었으면 한다.-
그녀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2009년 5월 9일 향년 57세-그녀는 ‘이 좋은 세상’을 놔두고 무에 그리 급했는지 총총히 세상을 떴다.
아깝다. 평균 수명이 90을 넘기는 이 때 하고 싶은 일도 많기도 많았을 텐데--
이 책은 39편의 수필로 이루어져 있다. 아무런 가식 없이 솔직 담백한 글이 친근감을 준다.
뿐만 아니라 파스텔 톤의 몽환적인 그림들-소녀와 하얀 새, 첼로와 파란 꽃, 촛불과 정물 등-
경인교대 정인 교수의 그림이 마음을 따뜻하고 편하게 해준다.
마음에 와 닿은 글들과 나의 斷想-
<미리 갚아요>
입은 은혜를 생각하며 앞으로 입을 은혜를 ‘미리’ 갚는다는 내용의 영화 이야기.
너와 내가 이럴 수만 있다면 세상은 빠른 속도로 아름답게 변할 텐데--
<‘오늘’이라는 가능성>
--나는 더 살기를 원하는데 다른 모든 이가 힘을 합쳐 내 등을 떠밀고 있었다. 그 알지 못하는 가해자들에 대한 알 수 없는 미움이 솟았고 내가 이 세상에서 더 살 자격이 없어 쫓겨나는 것처럼 너무나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신에 대한 분노, 그리고 철저한 고독감이 느껴졌다.---
그녀가 암으로 예상되는 판정을 받았을 때의 느낌이다. 우리 주위의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와 같았을까?
-양성 판정을 받고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작가의 희망 사항-그녀는 악성 종양 수술을 받았다- )에 학교 앞 선물 가게에 들렀다. 다시 삶의 무대에 올라선 나를 자축하고 싶었다. 마크 트웨인의 말이 적힌 카드가 눈에 띄었다.
‘오늘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There's nothing that cannot happen today.)'-내 안의 천국과 지옥을 체험한다.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면 헛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조차도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
<침묵과 말>
글쓴이는 말하기를 좋아하지만 말을 잘 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물론 그녀는 글로써 말 못하는 결점을 보완하기는 하지만--
나에게 하루 중 대부분의 죄 짓는 일이 무엇에서 비롯되냐고 묻는다면 ‘말’ 때문이라고 하겠다.
집에서는 가족들에게, 밖에서는 친구나 지인들에게--끊임없이 서로 말로써 소통을 하다 보면 필요 없는 말,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마구 늘어놓고는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아, 또 세 치 혀로 업을 쌓았구나.’
입을 달고 사는 한, 죄 짓지 않을 도리는 없지만 말수를 줄이고 귀를 크게 열어 놓는다면 죄가 좀 가벼워질까?
<無爲의 재능>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서머셋 모옴
그것도 능력이구나! 난 자라온 환경부터가 이런 능력과는 거리가 멀다.
늘 새벽같이 일어나 쓸고 닦고 하는 어머니의 눈총을 받고 살아서 무언가 항상 해야 했다.
그냥 넋 놓고 잠시라도 앉아 있으면 그것이 엄마의 걱정거리가 된다. ‘저 아이가 왜 저러구 있지?’
지금은 주위에 그런 능력의 소유자들이 많아 또 그들 보라는 듯이 뭔가 한다.
몸에 밴 습관 때문에 난 잠시도 우두커니 있지를 못한다. 불안한 것이다.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강박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성과를 올린 것도 없는데--
때로는 그것이 짜증을 불러온다. 왜 뭔가 항상 해야 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편안히 있으면 안 되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 보이는 사람들에게서 예술도 철학도 나오는데--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모든 일상-바쁘게 일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고-을, 그렇게 아름다운 일을, 그렇게 소중한 일을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히 행하고 있는 바깥세상 사람들이 끝없이
질투 나고 부러웠다.
척추암 선고-입원-항암치료-긴 투병생활의 3년을 보내는 동안 그녀가 절실히 갈망한 것들을, 우리는
지겨운 일상이라고 툴툴거리며 끊임없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
<민식이의 행복론>
미국의 유명한 수필가 E.B.화이트는 글을 잘 쓰는 비결에 대해 ‘인류나 인간에 대해 쓰지 말고 한 사람에 대해 쓰는 것’이라고 했다. 즉 각 개인이 삶에서 겪는 드라마나 애환에 대해 쓸 때에만 독자들이 동감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글쓴이와 나는 이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한다.
그런 시각에서 민식이의 행복론은 훌륭하다.
-그저 이 세상에서 숨 쉬고 배고플 때 밥을 먹을 수 있고 화장실에 갈 수 있고 내 발로 학교에 다닐 수 있고 내 눈으로 하늘을 쳐다볼 수 있고 작지만 예쁜 교정을 보고 그냥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굳게 믿는다.
<네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 보라Count your blessing)>
-장애인이 ‘장애인’이 되는 것은 신체적 불편 때문이라기보다는 사회가 생산적 발전의 ‘장애’로 여겨 ‘장애인’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못해서가 아니라 못하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그 기대에 부응해서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신체적 능력만을 능력으로 평가하는 비장애인들의 오만일지도 모른다.
-나는 인간이다. 내주위에는 늘 좋은 사람들만 있다. 내게는 내가 사랑하는 일이 있다. 남이 가르치면 알아들을 줄 아는 머리와 남이 아파하면 같이 아파할 줄 아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이 멋진 세상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축복을 누리며 산다.
나의 ‘일상의 기도’도 민식이의 행복론과 통하고 ‘내가 누리는 축복’ 에 대한 감사의 말이다.
1. 오늘 아침도 눈을 뜨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2.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과 햇빛과 공기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3. 일용할 양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4. 꽃나무를 가꾸고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5. 어디든 다닐 수 있는 여건과 튼튼한 다리도 주시니 감사합니다
6. 사랑과 정을 나눌 수 있는 이웃들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7. 편안하고 단 잠을 잘 수 있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8. 제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김점선 스타일>
-나는 김점선씨 옆에 있으면 늘 그렇게 웃기 때문이다. 사는 게 재미있어 못 견디겠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평화와 행복을 주체할 수 없어서 끝없이 웃는다. 그녀의 순발력과 기발함 그녀의 활기가 지리멸렬한 삶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기 때문이다.
-김, 점, 선, 한마디로 그녀는 그녀가 그려내는 그림처럼 내 눈 앞에 실체로 존재하는 아름다운 환상이다. 이름만 들어도 저 빨간 말처럼 반가운 마음으로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향해 달려가고 싶은.
올 3월 예순 셋의 나이로 삶을 접은 김점선 화가-천재인가, 기인인가 궁금증을 자아내는 인물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색채가 화려하고 웃거나 활기찬 말 그림이 많다. 어린애들 그림 같고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의 그림들이다. 그러나 단순하지가 않다. 그의 자서전 <점선뎐>을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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