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휴지부호-<마로니에 백일장> 수상작

 -한국문화예술위원회주최 마로니에 전국 여성백일장 산문부 장원-

***직장 다닐 때 늘 해보고 싶었던 일이, 마로니에공원에 앉아 연필심에 침 묻혀 가며 낙엽지는 가을하늘 아래 앉아

글쓰기를 해보는, 지극히 소녀취향적인 소망이었다.

그래 이번 행사발표가 있길래 일찌감치 접수를 해놓고 어떤 제목이 주어져도 쓸 수 있는 엄마이야기에다

촛점을 맞춰 놓았다. 기대 이상의 좋은 결과가 나와 정말 기쁘다.

친구들이 함께 기뻐해 주니 더욱 가슴 설레고 기쁘다.

장원 한 편만으로 <에세이플러스>라는 잡지에 자동으로 등단하게 된 모양이다. 꿈 하나가 이루어졌다.***

 올봄 내가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하니까 제일 반가워하시는 분은 올해 여든여섯 되신 나의 어머니셨다.

그도 그럴 것이 두손 놓고 있은 지 며칠 안 된 어느 날 이른 아침,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친정오빠다.

엄마가 밤새 토사곽란을 일으켜 지금 집 근처 병원엘 모시고 가고 있단다. 나는 서둘러 병원으로 차를 몰아 부랴부랴 응급실로 달려 들어갔다.

“내가 복이 많은가 부다! 기냥 직장 다닐 때 이런 일이 있었음 으쩔 뻔했어?”

“아, 그럼 조퇴를 하구라도 와야지.”

“그래두 그게 어디 맘 편햐?”

“그러게 말이야, 나두 그렇게 생각해.”

맞장구를 쳐드린다.

“이제 시간 많응께 자주 들려.”

자식들한테조차 자존심 내세우고 꼬장꼬장하던 엄마의 모습은 어디로 가버렸나 보다.

자주 뵈러 다녀야지 하는 생각뿐이지, 직장 다니면서 못 해 본 것들 하고 싶은 욕심에 여기저기

쫓아다니다 보니 오히려 더 바빠졌다.

“은제 올 거여? 올 때 동대문시장에 들려 안 매운 고추 즘 사와.”

“요담에 올 때 미제 퐁퐁 즘 사와, 그걸 써야 손이 들 거칠어.”

“또 뭐 필요하신 거 �우?”

“그 광장시장에서 빈대떡이나 한 쪽 사오든지--”

“경동시장 가거들랑 육쪽 마늘 즘 사와”

“역삼역에 갈일 있으믄 소화제 좀 사와, 거기 내가 다니든 한약방 찾아가서”

응급실에서 퇴원하신 후로는 거의 외출을 안 하시면서 내게 종종 전화를 걸어 주문을 내신다.

뿐만 아니라 당신이 물건을 사셨던 그 사람이 있는 델 꼼꼼히 일러 주신다.

그 사람들이 엄마가 한참 안 보여 궁금해 할 거라면서--아무 데서나 살 수도 있지만 나도

그 사람들을 만나 엄마의 안부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찬찬히 가게를 짚어나가며 인상착의를 더듬어가며 그 사람을 찾아내서 물건을 산다.

하긴 아무데서나 샀다가는, 탁 보면 알아내는 엄마한테 들통 날 게 뻔하긴 하지만--

“가까운 데라도 살살 다녀보시지?”

“ 아서! 괜히 지척거리고 나다니다 쓰러지면 여러 사람 힘들어.”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평생을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 한번 안 하고 사신 분이라 남한테 폐 끼치는 일 생길까 봐 늘 신경을 쓰신다.

아무래도 바깥나들이는 이제 삼가기로 하신 모양이다.

“니가 온다구해서 집을 대강 치웠어. 근데 다리가 아프고 어지러워 걸레질은 할 수가 있어야지? 집구석이 꼴이 아녀”

“알았어, 내, 밥 먹구 치울게.”

우리들 어렸을 때는 걸레도 행주처럼 하얗게 삶아내시고 면 팬티도 숯불다리미로 일일이 다려주시고 양은 냄비가 빵구가 날 정도로 빤짝거리게 닦고 하시더니, 몸이 뜻대로 안 움직여 줘서 걸레질 하나 제대로 못하고 사니 그 맘 오죽하실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팔을 걷어 부치고 집안 구석구석 물걸레질을 한다.

소파에 올라앉은 엄마는 강냉이를 사각사각 씹으시면서, 땀을 뚝뚝 흘리며 청소하는 딸을 미안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흐뭇해하며 보는 듯 안 보는 듯하시더니,

“노인네처럼 조용조용 일두 잘해!”하신다.

나는 참았던 웃음을 터트리며

“엄마, 그럼 내가 나이 60인데, 노인이지 뭐유?”한다.

물건을 사가거나 집안일을 한바탕 하고 나면 엄마는 찬장 속에서 누런 종이봉투를 꺼내 부스럭거리다가 배추잎을 내놓으신다.

“ 아니, 내가 드리는 용돈두 충분하지 않은데 이건 또 뭐유?”

“ 아냐, 받어. 내가 요새 나다니질 않어서 돈을 안 써. 그래서 주는 거야.”

두어 번 손사래를 치며 사양하다가 문득,

‘부모라고 자식들한테서 받기만 하고 싶을까, 당신도 자식한테 주는 즐거움을 왜 안 누리고 싶겠는가?’

여기 생각이 미치자,

“알았어, 엄마한테 돈 받으니까 기분 좋다. 잘 쓸께!”

집안에 엄마랑 나랑 둘만 있게 되면 엄마는 예의 그 기억의 창고문을 열어 이런저런 일과 사람 얘기를 하나하나 꺼내놓는다.

전셋집을 전전하며 설움 당했던 일, 어렵게 살 때 인정을 베풀었던 사람들 얘기, 절에 같이 다니다가 어느 날부터 소식이 끊어진 사람들, 저 아쉬울 때 뻔질나게 드나들더니 제 자식들 시집 장가 보내놓고는 소식 뚝 끊어진 친척들, 친구처럼 왕래하다가 최근에 연달아 돌아가신 이웃 할머니들-- 그 끝에 매달려 나오는 게 벌써 돌아가신 지 스무 해도 훨씬 넘은 아버지다.

집도 없는 남자한테 은가락지 하나 받고 시집 온 얘기서부터, 아버지에 대한 한의 실타래가 끝도 없이 술술 풀려나온다.

열 번도 스무 번도 더 들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가 된 얘기들을--

자식들에겐 고작해야 명절 때나 기일에 한두 번 생각나는, 저 아득한 북망산에 누워 계신 분일뿐인데, 엄마는 어찌 저리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수십 년 전 일들의 순간순간을 떠올리며 조금도 삭지 않은 원망의 念을 풀어낼까?

나의 대모 헤레나의 얘기가 떠오른다.

대모는 아흔이 넘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는데 치매기가 심해서 대소변을 가릴 분별력도 없으시다. 일 년 전만 하더라도 정신이 온전해서 좋고 싫은 감정표현을 그대로 하고 사셨는데 칭찬과 감사보다는 원망과 미움이 많았단다.

수발을 들면서도 몸이 힘든 것보다는 그런 푸념을 듣는 일이 더 힘들었다고.

신심이 매우 깊은 대모는 그 문제 때문에 기도도 많이 했단다.

그 가운데 깨달아진 것이,

“하느님은 지상의 모든 인간들을 깨끗이 정화시켜서 데리고 가고 싶어 하시는데, 자신의 힘으로는 원망과 불평의 불구덩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을 치매라는 병에 들게 하셔서 순진한 아이들 상태로 돌려놓으시는가 보다.” 라고.

그러면서 대모는, 이제 몸은 훨씬 힘들어도 시어머니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로 돌아가서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고.

난 불쑥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누구를 미워하거나 욕하면 하느님이 안 데려가신대. 계속 미워하고 욕하면 똥오줌 못 가리는 어린애처럼 치매에 걸리게 해서 데려가신대-- 이제 아버지 그만 미워하고 잊어버려.”

“그것두 괜한 소리여, 이 앞집 할멈은 맨날 메느리 욕 하드만 아프지두 않구 자다가 죽었어!”

“----” 

남다른 질곡 속에서 오로지 강인한 의지의 化身이 되어 살아오신 어머니-이제 그만 툭툭 다 털어버리고 저 가을 햇살 속으로 나가 보세요. 하늘이 참 맑고 푸르네요.

 

 

 아들의 축하 꽃다발을 받고

 

에세이플러스 박상주회장님의 축하를 받으며

 

 

 

 

 마로니에 장원작으로 에세이플러스 신인상 수상(등단)

 

 

 수상자들과 함께 

 

고교동창들이 축하연을 베풀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