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방/오가는 정

삼이 편지

맑은 바람 2010. 7. 28. 20:16

 

선생님, 안녕하세요?

 

연락 제 때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지난 번 선생님께서 7월 두 번째 주 정도에 만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첫 째 주말 즈음, 섭이에게 전화를 했더니 전화 연결이 안됐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섭이에게서 전화가 다시 왔을텐데 연락이 없더군요.

 

핑계입니다. 몸과 마음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고, 최저 생계를 위해

밤에 일하다 보니 낮엔 잘 때가 많고, 불규칙한 불면증을 장기간 앓다보니

제 때 푹 자지 못하고, 오후에 쏟아지는 잠에 시달릴 때가 많았습니다.

"우리가 선생님 위해 찾아 가나?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시간 내 주시는 거지"

혼자 이런 넉두리로 합리화 하며 '찾아뵘을 나중으로 하고 싶습니다' 하는

연락까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요즘은 밤에 대리 운전하며 생계를 버티고 있습니다.

1년 반 전에 심해진 우울증 탓에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할 수 없어

은행 신용카드 영업을 그만 둔 뒤에 대리운전으로 견디고 있습니다.

 

지난 3월 담당 의사로 부터 완치 판정을 받고 약을 복용하고 있진 않지만,

삶에 대한 허무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계속되어

사회 생활에 대한 열정이 도무지 살아나지 않습니다.

물론 다시 사회생활을 하기엔 갖춘 것이 너무 없고 나이도 많아서

구차하게 이력서 들고 다니며 구걸하고 싶지 않은 되먹잖은 자존심 탓도 있습니다.

 

가끔 아내로부터 문자 또는 이메일로 소식이 옵니다.

내용은 거의 무슨 무슨 사정이 있어서 급히 돈 좀 보내달라는 내용 일색입니다.

할 수 있는 한 합니다. 이 몇 푼이 저들에게 숨통을 튀워줄 수 있고 버팀목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그런 문자나 이메일을 받으면 저는 또 앓아야 하고

어둠에 빠지기도 합니다.

 

제가 이런 저런 핑계를 잘도 둘러댔습니다.

결론은 모두가 제가 자초한 것이고 저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날 좀 선선해지면 뵙고 싶습니다. 수제비도 날이 선뜻해야 더 맛있겠지요.

어른들이 '건강이 제일이야' 라고 입에 달고 다니시는 소리를 들으며,

'저 소리가 나와는 무슨 상관이지?' 했었는데 너무나 절박히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마음 평안 하시길 바랍니다.  또 연락 올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묵은 병이 완치되었다니 축하한다. 섭이도 뭔가 힘든 일이 있나 보다.

도움을 주지 못할 바에는 잠자코 있는 게 낫다는소극적 생각 때문에 전화도 안하고 있다.

선생님도 큰애 때문에 노상 가슴앓이하고 사는 상태란다.

버젓이 대학공부까지 시켰는 데도 딱히 일자리를 못찾으니 넌들 오죽하겠니?

 

얼마 되지 않는 돈이라도 내 힘으로 벌 수 있다는 게 소중한 일이야.

너두나두 적은 돈 하찮게 여기며 일 안 할려는 풍조가 만연해 있어

고급 학력 실업자가 느는 모양이다.

70%만 이루면 만족하고 살라는 얘기가 있다.

그래, 하루하루 건강하게 세 끼 밥 먹을  수 있는 거 감사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니?.

 

우리 동네 해장국 잘하는 집이 있어.

혜화동 쪽으로 오게 되거들랑 문자 줘.

시간되면 나갈께.    안녕^.^   2010.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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