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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딘/스탠리 레인 풀 지음/이순호 옮김

맑은 바람 2010. 9. 30. 00:01

 

 

 

 -십자군에 맞선 이슬람의 위대한 술탄

 -내가 믿는 종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도 인정할 때 진정한 평화가 온다-살라딘

 

<나는 걷는다>-<비잔틴 제국>-<십자군 전쟁>-<살라딘>

한 권의 책을 읽다 보면 그 안에서 다음에 읽을 책을 발견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래서 어느 한 분야의 맥이 잡히고 그쪽에 대한 호기심이 어느 정도 충족된다.

학창시절 세계사 시간에 배운 역사는 반쪽 자리 세계사였다.

장기, 누레딘, 살라딘 등-이슬람 국가에서는 그 확고부동한 자리를 아무도 넘보지 못하는

위대한 존재들에 대해 우리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 심지어 영국에서조차도 ‘십자군

전쟁과 사자왕 리처드’는 그렇게 떠들면서도 사자왕 리처드를 감동시키고 일말의 우정(?)마저

느끼게 했던 ‘살라딘’에 대한 책들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결국 세계사는 현대를 주도하는 국가들의 자기중심적 기록일 뿐이다.

자신의 반대쪽에서 아무리 빛을 발하던 인물들이라도 그들이 자신의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일부러 무시하고 취급하지 않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미국과 유럽

문화에 경도되어 왔음에랴.

 

나는 이 책의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 깊은 신뢰를 갖게 되며 그래서 이 책은 더욱 흥미진진하다.

-이 책에는 실제의 동시대적 자료로 입증되지 않은 내용은 단 한 줄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저자가 주 텍스트로 쓴 것은 살라딘 생존 시 곁에서 지켜 본 두 사람-법관이며 교수이자 살라딘의

부관으로 우호적 시각에서 <살라딘> 전기를 쓴 '바하 앗 딘'과 역시 동시대인이었으나 어느 정도

비판적 시각으로 <모술 아타베그들의 역사>를 쓴 학자 출신의 '이즌 알 아티르'의 저술들이다.

살라딘(1138~1193): ‘살라 흐 앗딘’은 ‘이슬람의 영예’라는 뜻. 이슬람의 전설적 영웅.

이집트 아이유브 왕조의 시조. 가장 기사도적이며 고결한 정복자. 55세로 歿.

 

살라딘에게서 가장 돋보이는 ‘관용의 정신’은 이슬람 군주(술탄)들이 전통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품성이었고 지도자 정신이었다. 살라딘의 경우에는 이미 ‘행운의 별’을 안고 태어났기에 (그의 부친의 善緣의 결과)앞길이 순탄했다고 볼 수 있다. 어린 시절과 20대를 궁정에서 가장 훌륭한 선생들을 모시고 수학하는 복을 누렸다. 그가 이집트의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도 그의 삼촌이 이미 터를 닦아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탄탄대로를 달려 나가기만 하면 되는 그런 상황이었다. 다만 그에게 ‘자리’가 주어졌을 때 그 자리를 얼마나 오래 욕되지 않게 지킬 수 있느냐는 온전히 그의 몫이었고 그는 그 역할을 훌륭히 해냄으로써 이슬람 역사에 찬란한 빛을 던진 것이다.

 

이 글은 뭐니뭐니해도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면서 재미가 있어진다. 원문 번역도 군더더기 없이 짜임새 있고 비유적 문장들이 맛깔스럽다. 예를 들면,

-십자군은 헌 숲과 새 숲 사이의 쐐기처럼 침투해 들어가 한동안 이슬람 제국의 줄기를 갈갈이 찢어놓을 것만 같았다.

-그들(기독교 광신자인 순례자)은 경건의 조가비 아래 약탈의 욕망을 숨긴 자들이었다.

-그들(프랑크족)은 모욕과 수치심으로 기를 눌러놓은 뒤 매일매일 죽음의 음료를 마시게 했다.

 

전쟁에 대한 혐오감과 자신의 주변머리 없음을 이유로 참전을 극구 사양했으나 누르 앗 딘과 삼촌에 등 떠밀려 살라딘은 마지못해 이집트 원정을 떠났다. 거기서 그는 원치도 않는 벼슬을 하게 된다. 삼촌의 알렉산드리아 입성으로 그곳 총독 자리를 맡았고 삼촌 시루크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이집트 총독(사실상 이집트 왕)이 된 것이다. 게다가 매순간 그를 지혜롭게 호위한 것은 아버지 아이유브-살라딘에게 그는 가장 현명한 정치적 조언자였다!

 

-너에게 자격이 없다면 신은 이 위대한 자리에 너를 앉히지도 않았을 것이다.(아이유브)

-신이 내게 이집트 땅을 주셨을 때 나는 그분이 팔레스타인도 함께 주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살라딘)

그는 예감을 믿으며 강건한 무슬림 제국 건설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얼마 되지 않아 그에겐 하늘이 준비한 선물이 適時에 카이로에 도착한다. 시리아 술탄의 죽음-

바로 그것이다. 1174년 5월 15일 누레 앗 딘은 56세의 나이에 후두염으로 ‘불확실한 인생’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공정하고 신심 깊고 자비로우며 청빈해서 제 2의 ‘오마르 이븐 압드 알 아지드’로 불린

위대한 술탄 누레 앗 딘은 사망과 함께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 전부를 살라딘에게 넘기게 된 것이다.

 라틴 왕국 또한 13살의 나병 환자 볼드윈 4세가 지키기에는 너무 벅차서 결국은 살라딘 손으로 넘어온다.

그가 ‘행운의 별’을 타고 났으며 알라의 절대적인 후광을 입었다고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영웅은 하늘이 만든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알레포마저 소유함으로써 이제 ‘이슬람의 가장 강력한 군주’가 된 살라딘에게는 풀어야 할 과제가 앞에

놓여 있었다. 이슬람 왕국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聖都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가 ‘아브라함의 고장’이며 ‘동방의 진주’라고 불리우는 다마스쿠스에 머무르는 동안 프랑크족들의 횡포가 날로 심해지고 그중에서도 카라크의 성주 샤티용의 레지날드의 세 차례에 걸친 협정 위반과 만행이 갈수록 심해지자 드디어 응징의 칼을 뽑는다. 그것이 마침내 십자군을 전멸시키고 예루살렘 왕을 무릎 꿇게 한 히틴 전투(1187년)다.

-구세주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 평화의 복을 가르친 팔복산으로 믿어지던 ‘히틴의 뿔’은 지금 ‘평화’가 아닌 ’검‘의 증인이 되어 있다.

전쟁의 필수항목-살륙, 약탈, 방화, 파괴-그것들은 단순히 승리의 도구이기 이전에 군사들의 사기앙양에 필요했기 때문(?)에 지휘자들은 방관과 묵인으로 일관한다. 그 현장에서 서로 ‘자신의 神을 찾으며 승리를 외치는 행위’야말로 얼마나 가증스러운 일인가!

‘죽여야 사는’ 戰場에서 살라딘도 누구 못지않게 많은 사람의 피를 흘리게 했다.

그러나 그를 ‘관용과 고결한 정신의 정복자‘라고 부르는 몇 가지 예를 들면,

***매번 점령지의 전리품들을 부하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고

***예루살렘 왕이 붙잡혀 와 벌벌 떨 때도

 “왕이 왕을 살해하는 것은 예가 아니오.”하며 후히 대접하고 돌려보냈다.

***예루살렘 탈환 마지막 순간에 이루어진 ‘無血항복’ 때의 일이다. 예루살렘 성안의 기독교인들은 살라딘의 약속대로 각자의 처지에 맞는 돈을 지불하고 무사히 성을 빠져 나왔다. 이때 돈이 없어 딱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살라딘과 그의 형제들은 거액의 몸값을 내놓기도 했다. 돈은 먼지와 같은 거라는 생각으로 아낌없이 나누어 줘서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소유지 외에 그의 금고에 남은 것은 은화 47디르함과 티루스 디나르 한 잎뿐이었다.

***영국왕 리처드가 말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토록 용감한 전사가 땅바닥에서 싸워서는 안될 일”이라며 날쌘 아랍 말 두 필을 보내 주었다. 또 리처드 왕이 열병에 걸려 고열에 시달리고 있을 때 산에서 가져온 눈[雪]과 신선한 과일들을 끊임없이 보내 주었다.

 

-천국의 가장 위대한 속성은 자비이고 그것은 또 정의와 영광의 절정이라.

 

그러나 행운이 있으면 불운도 따르는 법-그의 불운의 시작은 티루스 정복의 때를 미룬 것이다. 그것은 3차 십자군 출정의 불씨가 되었다. 그런데 살라딘이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은 질병으로 인한 고통 때문이었을 거라고 한다. 수 년 간의 연이은 전투, 노숙, 작전 구상, 열악한 환경--건강을 타고 나지 못한 그로서 한계에 이른 게 아닌가 생각된다. 게다가 아크레 전투에서 살라딘의 동의도 없이 수비대가 항복을 했을 때는 그 절망감이 어땠겠는가.

 

십자군 전쟁은 문자 그대로 성지 탈환을 위한 종교전쟁이다. 물론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시작한 전쟁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간절하고 절박할 때 신을 찾게 되는데 신은 전쟁터에 과연 계실까?

쌍방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지켜보실까?

십자군 전쟁에서, 쌍방이 서로의 신을 찾으며 승리를 기원하는 모습은, 신을 믿는 사람조차도 가증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그들은 신을 귀에다가 걸기도 하고 코에 걸기도 한다. 서로에게 유리한 대로--

그 절정이 리처드 왕이, ‘복수할 기회를 주신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하며’ 2700 명의 투르크 인 인질을 참수한 일이다. 그들이 믿는 종교에 대해, 신앙에 대해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계획하고 신이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리처드 왕의 갑작스런 병으로 인해 그는 예루살렘 탈환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살라딘과 강화조약을 체결한다. 잠정적인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서로간의 헛된 희생과 파괴와 원한만을 남긴 채--

1193년 3월 4일, 리처드 왕이 3년 후에 보자며 떠난 사이, 살라딘은 그 고단한 삶을 내려놓고 그가 그렇게 열렬히 흠모하던 그의 신께로 가는 천국의 문을 두드렸다. (2010. 9.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