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방/21 세기에 남을 한국의 시인 10명

9.김춘수

맑은 바람 2010. 12. 13. 12:51

추천작품: 꽃, 처용 단장, 꽃을 위한 서시, 바위

 

 

처용단장(處容斷章)

(Ⅰ의 Ⅱ' 전문)

 

삼월(三月)에도 눈이 오고 있었다.

눈은

라일락의 새 순을 적시고

피어나는 산다화(山茶花)를 적시고 있었다.

미처 벗지 못한 겨울 털옷 속의

일찍 눈을 뜨는 남(南)쪽 바다,

그날 밤 잠들기 전에

물개의 수컷이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삼월(三月)에 오는 눈은 송이가 크고,

깊은 수렁에서처럼

피어나는 산다화(山茶花)의

보얀 목덜미를 적시고 있었다. 

            (1974년 발표) 

 

***산다화는 '동백꽃'이다. 시인은 이 시를 쓰는 순간 고향 통영 앞바다에 보얗게 내려앉는 함박눈을 떠올렸으리라.

어느 해 삼월 초저녁, 때 아닌 함박눈을 맞으며 골목길을 접어드는데 어느 집 이층 창가에서 트럼펫 소리가 들렸다. '초우'였다. 긴 골목길 끝까지 따라오는 그 소리가 얼마나 애절하던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다.  삼월의 눈은 '인디언 섬머'같은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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