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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나는 걷는다 2> 베르나르 올리비에

맑은 바람 2010. 12. 17. 12:04

머나먼 사마르칸트

 

                                                    -1938년 출생, <르 피가로>지 정치부 기자 역임, 1999년부터

                                                    4년간 실크로드 여행, 지금은 비행청소년에게 도보여행을 통한

                                                    재활의 기회를 제공하는 협회 창설, 운영

 

 

                                                       구도자의 모습

 

 

인물 사진도, 풍경 사진도 없다.

폭풍우 속에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옷에서는 홈통의 물 쏟아지듯 빗물이 흘러내리고,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길을 한 시간 두 시간 걷기도 하고 때로는 위대한 자연의 위용 앞에 무릎을 꿇기도 하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 인연을 맺고, 더러는 비우호적이고 위협적인 사람들을 만나 위기를 겪기도 하는 그런 일들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책에서 손을 떼기 어려운 이유는 뭘가?

 

글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는 자잘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나 자신이 여행자가 된다.

베르나르와 함께 걷고 보고 만나고 위협에 맞닥뜨리고--

여정에 동참하는 스릴과 긴박감을 맛 본다.

 

-밖에서 식사하기를 좋아하는 이란 사람들-나무와 풀에 대한 사랑, 시원한 그늘이 있는 정원-

이것이 ‘파라다이스’의 어원이다.

-나는 배낭을 기꺼이 내려놓았다. 농부와 목동은 내 얘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햇볕이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양들은 샘에서 물을 마시고 새끼 양들은 어미를 찾으며 ‘매애’ 울었다.

힘든 하루를 보낸 후에 맞이하는 이 순간은 그들에게나 내게나 경이로웠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지금 이 시간, 인생은 아름답기만 했고 두 노인의 낙천주의가 내게 생기를

되찾아주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이 쿠르드 마을의 고요함-

 

문득 마주친 사람들이 내미는 빨간 장미 한 송이, 친구가 되었으니 밥값을 받을 수 없다고 고집 부리는 사람, 하던 일 내려놓고 목적지를 안내해 주는 사람, 호의를 보이며 다가와 자기 집에서 자자고 서로 끄는 사람들, 가는 사람 붙들어 앉혀 놓고 차와 과일을 대접하는 사람, 하룻밤 인연에 눈물 글썽이는 사람-- 그가 만난 가장 친절한 이란 사람들이었다.

 

-한 달 만에 859km를 걷는 사람, 하루에 53km를 걷기도 하는 베르나르-

-나는 사냥꾼에게 쫓겨서 기진맥진한 토끼 같았다.

한편으로는 고요한 넓은 해변과 평화, 느림, 구원의 멈춤을 꿈꾸었다.

하지만 내 몸 속의 엔진은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무서운 속도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7 개월 만에 두 번째 책 410쪽을 다 읽었다.

베르나르 씨라면 그 기간에 6000km를 충분히 걸었겠다.

시작이 반이라는데 나는 세 권 중 두 권을 독파했으니 이제 남은 한 권은 쉬엄쉬엄 더 즐기며 읽어야겠다.

그런데 책이든 뭐든 내친 김에 이어서 하지 않으면 그 맛이 떨어지고 맥이 풀린다.

이 겨울에 꼭 읽어야 할 대망의 시리즈, 조정래의 <한강>을 위하여 카라쿰 사막을 부지런히 횡단하고 서안을 밟아야겠다.   (2010. 1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