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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는다 3 베르나르 올리비에

맑은 바람 2011. 6. 16. 14:05

 

-스텝에 부는 바람

 

2차 여행 시 끌고 다녔던 <에브니>는 수명을 다해 어느 소년에게로 넘어갔고 이번 여행은 바퀴달린 골프 가방으로 만든 수레 <윌리스:오디세우스>와 동행한다. <윌리스>는 가는 곳마다 여행자 자신 못지않게 호기심과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는 이 여행을 위해 터키어, 페르시아어, 러시아어를 익혔다.

 

(1) 파미르 고원

2001628일부터 10월까지 120일 예정으로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를 출발,

 파미르 고원을 넘어 불타는 오아시스 투루판에 도착하다.

 

우즈베키스탄의 파흐타코르 마을-가가린 마을-미르자쇼 마을-시르다리야 강(중앙아시아의 큰 운하)-알말리크-안그렌-캄치크 협로(해발 2300m)-페르가나 계곡(타클라마칸 사막 입구의 낙원 같은 곳, 이곳의 말은 天馬로 불리기도 한다)-코간드(칸이 통치하던 때의 수도, 60여 개의 이슬람학교와 600여 개의 이슬람사원이 있었다)-안디잔(깨끗한 숙소가 있던 곳***여행 중 깨끗하고 풍치 좋은 숙소를 만나는 일이 얼마나 큰 행운이던가)-쿠르간테파-유감스러운 것은, 여기까지에서 실크로드의 흔적을 하나도 찾지 못했다. 이는 그들이 의도적으로 흔적들을 없앴기 때문이다.

 

 

베르나르씨의 키르기스스탄에 대한 인상은 무척이나 호의적이었다.

그는 키르기스스탄의 웅대한 자연의 아름다움에 여러 차례 감탄을 금치 못하곤 했다.

 

**‘태양빛을 훔쳐낸 것처럼 눈부신금발의 소녀와 포도나무 덩굴 그늘의 친절한 사람들,

수천 키로의 해바라기 밭--

**이곳은 어디에 가나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흘러넘친다.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늙게 될 날을 꿈꾼다.

천국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키르기스스탄의 잘랄아바트(‘노인이 왕인 나라. 너두나도 어서 늙어노인 대접 받고 싶어 한다?)--페레발-카자르만-코슈도바-오소아비아 마을-바에토바(=물의 여왕)마을-토루가르트길-아르베이트 마을-타슈라바트(대상숙소, 중앙아시아를 통틀어 가장 웅장한 건물의 하나)-아크베이지트 마을(해발 3200m)-파미르고원-토루가르트 협로(3700m)-국경초소 투오파-카스(=카슈가르, 타클라마칸 사막 입구에 있는 도시로 지금도 일요시장은 실크로드 시대를 방불케 함, 가장 번창했던 도시의 하나)-향비묘-타클라마칸 사막(40, -20도 프랑스 면적의 1/2, ‘이곳을 뚫고 지나가는 자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의 뜻)-아커쑤-치우시(=안쳉=일루올루)의 키질 석굴-쿠처-달라오바-룬타이(바가지 요금과 불친절한 대접으로 유쾌하지 못했던 곳)-엔지사르(석탄마을, 방앗간 주인 셴과 위구르인 아브디힐의 친절에 인상 좋은 곳이 됨)-쿠얼러-끔찍한 교통사고 목격-우시타라-퉈커쉰-사막-투루판(50, 씨 없는 포도, 옛이름 고창국)2001. 9. 23 도착, 한 달 동안 1000km 걸음, 3000km의 여정 끝-쉬는 동안 우루무치의 런민공원에서 중국인의 활기를 느끼며 휴식.

 

 

-국력의 힘을 다시금 느낀다.

국경을 넘을 때마다 까다로운 절차, 그가 프랑스의 힘 있는 언론인이 아니었더면, 필요할 때마다

본국의 지인에게 요청해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었더라면,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700km

다시 갔다 오라는 엄명을 내리는 관리들 앞에서 어떻게 했겠는가.

 

(2)고비사막에 부는 바람

2002년 봄에서 여름까지 고비사막을 넘어 중국의 시안에 닿기까지의 총 3,000km를 여행한 기록이다.

 

신장-샨샨-고비사막(“하늘에는 새 한 마리 없고 땅에는 풀 한 포기 없다. 몇 년간 비도 내리지 않고 세찬 바람에 돌이 날아다닌다.“) -싱싱샤-자위관(요새 청루(城樓), 하늘 아래 존재하는 난공불락의 협로)-15km-주취안(1602 예수회 수사 벤토 데 고에스가 죽은 곳. ‘카타이=중국이라는 사실 발견)-칭수이(군사기지가 있는 곳)-소하타 마을-장예(인구 40, 이번 여정의 절반이 되는 곳)-7시간-만리장성-중국 스님을 만나 비움에 대해 다시 생각-펭셴바오(2350고지 마을)-수이취안쯔(2500고지 마을)-펑야오바오(이슬람교도가많음)-41일동안1300km걸음-우웨이-구랑-안위안-다차이칸-텐주-티베트마을-우샨계(‘말을 갈아타는 장소’)-허쿠(‘제일 더러운 도시’)-란저우(대기오염이 심각한 도시)-황허-중국인들에 대한 실망-웨이허(신성한 강)-웨이위안-위양-우산-판댜투(외국인에 대한 혐오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마을 "go away!")-간구(덩산시푸 베르나르는 여기서 삶의 작품을 본다. 해발 1700m에 이르는 비탈진 곳에 수천 개의 경작지를 보았다. 그는 이 광경을 보고 말한다. 바로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박물관이라고.-텐수이(진저우 주민 250만 명, 194개의 동굴, 복희 사원, 마이지 산의 동굴[중국 4대 불교 성지 중 하나])-메이셴(아침 정경에 반하다)-주지-간허마을-시안(8세기동안 중국의 수도,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자 종착점, 대장정의 최후 목적지는 마을 중앙 종탑 시먼(20m 오층탑))

 

 

중국인들은 학자(라오스(老師)=선생님)라고 하면 껌벅 죽는다.

베르나르는 가끔 이 사실을 활용했다!!

당장 그들의 태도가 달라지고 내오는 음식이 바뀐다.

 

_아름다운 고독은 때로 절망을 극복하는 최고의 치료제

-이들은 내게 물고기나 마찬가지다. 그들의 입이 움직이는 것은 볼 수 있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사막과 사막의 공허감과 슬픔과 바람보다 내가 더 강할 것이라는 데 내기를 걸기로 했다.

-저무는 햇살에 예쁘게 물든 풀들은 빗줄기의 입맞춤을 받고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현실에서 본 실크로드는 보잘것없었고 나는 1500km를 걸어오면서 나락 속에 있는 모습을 보았다.

-바로 이곳에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것 대부분이 밀집해 있었다. 장사, 소음 ,인파, 게임 그리고 맛있는

음식

-나는 감수성을 잃은 존재, 걸으라고 프로그램 되어 있어 앞으로 나아가는 자동인형이었다.

꿈도 상상력도 없는 메마른 존재, 세계에 눈을 감은 장님이었다.

-나는 실크로드에서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고 큰 희망을 품고 올랐던 콜럼버스의 탐험 같은 여행은

실패로 돌아갔다.

-중국인들은 미국인처럼 야구 모자를 즐겨 쓰지만 중국 국경을 벗어난 모든 것에 무지했다.

-지혜를 찾기 위해 세계를 보기 위해 여정에 올랐던 것인데 지혜란 무엇인가? , 정직해지자.

나는 하나도 얻은 게 없었다.

-‘만리장성은 시간과 낙서로 무너져간다.

사원은 종교전쟁에서 파괴되고 시간과 인간에 의해 점차 부서진다.

그러나 살아서 변화하는 이 경작지는 매년 더 아름다워진다.-간구의 경작지를 보고

-나는 여행하고 나는 걷는다. 왜냐하면 한쪽손이 아니 그보다 알 수 없는 만큼 신비한 한 번의 호흡이

등 뒤에서 나를 떼밀고 있기 때문에

-나를 그토록 고생시켰던 사막과 초원의 바람도 나는 결국 사랑하게 되었다.

-텐산의 정상은 봄 햇살 속에서 반짝거렸고 송곳니 모양의 얼음은 푸른 하늘을 베어 물었다.

-박물관에 있는 예술작품은 따분했다. 서민적인 거리를 쏘다니는 것이 더 좋았다.

 

베르나르 씨가 4년 동안 실크로드에서 만난 것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유명 건축이

아니었다.

그가 만나고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준 것은 바로 길 위의 사람들말없는 자연이었다.

이슬람 풍습대로 손님은 신이 보낸 선물로 생각하고 조건 없는 친절을 베푼 이들, 활기 넘치는 시장,

동트는 아라라트 산의 찬란함, 얼어붙은 고원-같은 것들이었다.

 

그는' 2000년 역사를 통틀어 실크로드 전체를 혼자 걸어서 종단한 유일한 사람'으로 언론의 대대적인

주목을 받으며 잠시 우쭐거리기도(?) 했으나 바로 설사병을 얻고 시안의 마지막 날을 힘들게 보냈다.

그리고 말했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언제쯤 나도 진정한 의미의 여행을 하게 될까?

위의 낯선 지명들을 열심히 메모해 놓은 이유는, 언젠가 실크로드의 일부라도 방문하게 되었을 때

그 이름들이 무척 반가운 것으로 다가올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2011.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