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대학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네가 사는 이웃 동네에서 좋은 모임이 있으니 한번 가보라고.
말이 적고 자주 전화하는 사이도 아닌 친구로부터 받은 전화라 꼭 그렇게 하마 약속하고
수첩에 적어 놓았었다.
오늘 그곳을 찾았다.
서울 종로구 명륜 1가 33-100에 자리잡은 <한무숙 문학관>-
그곳은 한무숙 선생이 평생 살다 가신 생가다. 전에 대문 앞을 지나다니면서
저 문은 언제 열리려나 했는데 지금 그곳에서 저자서명 기증본전 '공감과 나눔이 담긴 책들'이
전시(6.16-8.19)되고 있다
조심스레 대문을 들어서니 주인인 듯한 분이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맞아주신다.
김호기 관장님이었다. 바로 한무숙 선생의 장남이셨다.
그리 넓지 않은 정원이지만 구석구석 정갈하고 화분과 꽃나무들이 조화로웠다.
옛날 대청마루였음 직한 곳에 전시공간을 마련하고 손때 묻은 책들이 유리장 안에 깔끔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선생님의 손길과 숨결이 벤 가구들과 자잘한 소품들을 보노라니
집안 어디선가 선생님이 활짝 웃으며 걸어 나오실 것 같았다.
안방(?)에서는 '전시기념 낭독회'가 열렸다.
선생님의 수필에서 발췌한 글들을 돌아가며 읽었다.
대부분 반세기 전에 쓰신 글이건만 조금도 퇴색하지 않은 생각을 담아 내시어
인간의 근원적인 생각이 예와 지금이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발견했다.
낭독자 대부분이 70~80대의 고령이라 낭독의 맛을 충분히 살릴 수는 없었으나
한무숙선생님과 이런저런 인연으로 오셨으니 한때 사회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분들임을 알 수 있다.
조선 때 기로소耆老所가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명륜동 <한무숙 문학관>
<향정 한무숙 기념관>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관장님과 내친구
<향정헌>현판이 걸린 곳이 전시 공간
안방에서는 낭독회가 열렸다
생전에 선생님이 사랑하셨던 모란과 목백일홍
책 전시와 함께 한무숙선생의 약력이 소개되어 있다
거실의 전시공간
선생님이 애지중지했을 화류장
대청마루에서 바라본 뜰
기로소의 어르신들
-한무숙 선생의 글
비록 기로소에 들어갈 나이들이 됐을망정, 향정 선생은 뒤늦게나마 이 자리에 아들 딸 같은 이들을 불러 모아 함께 담소를 나눌 수 있게 하셨다.
다만 그곳이 나이든 이들의 향수 어린 공간에 그쳐서는 안 될 것 같다.
취업전선에 몰려 마음 한 쪽 비집고 들어갈 데 없는 젊은 인문학도들에게도 이런 자리에 와서
한 토막 글을 음미하며 한 세기를 빛나게 살다간 문인을 함께 추억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귀한 사람들이 머문 공간-
그곳에서의 의미있는 만남의 시간을 갖게해 준 관장님과 학예사를 비롯한 모든이들에게 감사한다. (201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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