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중국

중국여행(2) 항주-상해-계림

맑은 바람 2012. 3. 13. 00:35

 

2000년 728() 항주에서 다시 상해로

<악비-서호-육화탑-영은사-용정차-포트만 서커스-상해 야경>

 

몸이 안 좋아서인가 악몽에 시달리느라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집안으로 들어오려는 범, 어머니, 은옥이--모두가 섬뜩한 모습들이다.

조반을 먹고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니 기분이 많이 가벼워졌다.

한때 南宋, 吳越의 수도였던 물의 도시 <항주>-너무 허겁지겁 다니다 돌아와서인가

잠시 꾼 꿈속인 듯 아련하다.

아름답고 깨끗함을 자랑하는 항주. 플라타너스(여기선 프랑스 오동나무라 한다.)거리를

지나 아침 일찍 岳鄂王(군대의 우두머리 악비)의 묘를 찾았다.

남송 때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국토 회복에 총력을 경주하던 그도 결국 모함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1142년 살해되어 이곳에 묻혔다.

盡忠報國그 어머니가 아들의 등에 문신을 내면서까지 一念으로 길렀으나 그 결과는

한낱 허망한 뜬구름.

 

                            <악악왕>

 

                              <악악왕의 무덤> 의로운 사람은  그 이름이 오래도록 후세에 전해진다.

 

안개 낀 <西湖:항주 서쪽에 위치>에 배를 띄웠다.

소동파, 백거이가 이곳에 둑을 쌓고 섬을 만들고 배를 띄웠던 곳- 달밤에 이곳에 배를

띄우면 37개의 달을 본다. 하늘의 달, 물 속의 달, 술잔의 달, 연인의 두 눈동자 속의 달,

마음의 달, 전병--

물안개 때문에 경치를 잘 보지 못했다고 툴툴거렸더니 가이드의 말이 걸작이다.

서호의 아름다움은 그 뿌연 물안개 속에 떠오르는 호숫가의 경치에 있단다.

 

<서호>를 떠나 <六和塔>을 보러 갔다. 972년에 만들었다는데 무려 1100년을 꿋꿋이

버티고 서있다. 입구 쪽의 六和童子가 다부지고 귀엽다.

전당강 潮流를 억제하고자 돌팔매를 들고 강을 내려다보는 품이 예사롭지 않다.

탑의 높이는 과거엔 120m나 됐었는데 지금은 50m밖에 안 된다는 데도 우리 눈엔

엄청나게 크고 높다.

 

                                          <육화동자>

 

                                   까마득한 <육화탑>

 

다시 발길을 돌려 <靈隱寺>.

인도의 중 해리가 지었다는 이 절은 강남에서 제일 규모가 크다.

비래봉 여기저기의 절벽에 새겨진 불상을 포함해서 자그마치 334개의 부처가 있다는데

그 중 익살맞고 친근하게 불룩한 배를 내밀고 웃고 있는 미륵불이 가장 크다.

 

                                     산을 깎아 불상을 만들었다

 

             와불상

 

식사 후 용정차를 시음하고 선물용과 가족용으로 거금을 내고 몇 통 샀다.

 

차속에서 들려준 재미난 이야기-

중국인은,

소주에서 태어나서(잘사는 이가 많음)

광주(광동)에서 먹고(요리 으뜸)

항주에서 살다가(깨끗하고 아름다운 곳)

요주에서 죽고 싶다고 한다.

 

항주 일정을 끝내고 두 시간 만에 상해로.

버스로 몇 시간씩 달리는 동안 눈에 띄는 풍경은,

끝없는 평야, 군데군데 터진 물줄기, 여기저기 새로 지은 이층짜리 주택들-비록 옷차림이

남루하다고 해도 누가 그들을 얕볼 수 있는가?

식수난, 전력난, 과잉소비를 경고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와도 제각기 난 몰라라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우리 국민-여행의 즐거움이 싹 사라지려 한다.

 

중국이 꿈틀거리고 있다.

죽의 장막을 걷어내고 개방과 함께 등소평은 농민(13억 중 8, 그중 강남이 주산지)에게

소유권을 인정해 주어 땅에 애착을 갖게 하고 있다.

 

식사 후 <포트만 서커스>를 보러갔다.

최근에 지어진 으리으리한 극장-규모도 엄청나지만 건축미도 뛰어났다.

15세 전후의 소년소녀들의 묘기는 神技에 가깝다는 흔한 표현대로다.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박수를 쳤다.

 

상해의 夜景-

황포강변에서 바라본 신시가지의 각양각색의 건축물들. 하나같이 꼭대기에 조명을 해서

건물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마치 커다란 궁전 같다. 그중에서도 群鷄一鶴은 높이 468m,

아시아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동방명주의 방송탑>이다.

욕심 같아선 한번 올라가보고 싶건만 얌전히 숚소로 돌아왔다.

 

                                             동방명주탑

 

***끌려가는 원숭이

상해 시가지에서 목격한 원숭이-

주인 못지않게 꾀죄죄하고 바짝 마른 원숭이 네 마리가 주인의 끈에 매달려 가고 있다.

무심히 걷는 주인 곁에서 고통스러운 몸짓으로 두 손으로 줄을 잡고 마지못한 듯 끌려가던

원숭이가 찻길 한가운데서 주인이 잠시 걸음을 멈추자 얼른 엉덩이를 내려놓는다.

얼마나 다리가 아프고 힘들었으면~ 필경 제대로 못 먹어 몹시 허기진 상태이리라.

그 원숭이의 측은한 모습이 한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729() 상해-계림 공항

<요산케이블 카-옥 공장-가마우지 쇼>

 

한국인이 외국 땅에서도 금세 눈에 띄는 까닭이 무엇일까?

하나같이 볶은 머리, 짙은 화장?

 

계림에 도착하니 남자 가이드가 나왔다. *, *, *화와 대조적으로 발음도

시원찮고 말하는 내용도 허술하다.

계림이 처음 우리를 맞아준 모습은 TV 화면에서 심심치 않게 보면서 볼 때마다

감탄하던 광경이다. 평지에 불쑥불쑥 솟은 봉우리들- 무려 37000봉이다.

우리는 금강산 일만 이천 봉도 입을 딱 벌릴 지경인데--

이곳을 찾아 일 년 내내 한국 관광객이 끊임없이 밀려든다고 한다. 덕분에 200

조선족의 상당수가 이곳 관광지의 판매원으로 또는 안내원으로 취직이 되어

경제적 여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건가?

 

상해나 소주 항주보다 거리질서도 더 엉망이고 공사 중인 건물들이 여기저기 늘어서

있지만 어쩐지 한가롭고 향토적인 맛이 풍긴다.

<요산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라 계림을 조망했다.

해가 얼마나 뜨겁던지 종아리가 따끔따끔할 지경이다.

 

                                          계림

 

 

옥 공장에 들러 생각지도 않았던 루비 알을 목걸이용으로 하나 샀다.

식사 후 일행은 발 맛사지 집에 들러 단체로 맛사지를 받았다.

 

맛사지의 효과가 좋은지 얼마 뒤 모두가 개운한 얼굴이 되어 <가마우지 쇼>를 보러갔다.

가마우지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끈으로 단단히 묶어 놓고 고기잡이를 시키는데 큰 고기는

삼키지 못하게 목을 살짝 졸라 놓았다. 가마우지의 물고기 사냥 광경을 보고 사람들은

박수를 쳐대고 좋아한다.

죄 없는 鳥類에게 어찌 그렇게 몹쓸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이익과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는 게 인간들인 것 같다.

 

인천팀과 교수님과의 저녁 미팅은 유쾌한 시간이었다.

 

730() 56일의 제 5일째

<상비산-한방병원-복파산-관암동굴-이강 산수유람-소수민족 쇼>

 

象鼻山(코끼리 모양의 산)앞에서 장족(티베트족)인지 몽고족인지 관광객을 위한 의상

대여가 있어 그들의 의상을 한번 걸쳐 보았다.

 

 

 

두 번째 코스로 계림 시 한방병원을 방문, 甘言利說에 녹아 소염제와 피부연고를 샀다.

기미치료에 좋다 해서 그 즉시 발라보았더니 박하 껌 씹을 때처럼 얼굴이 화한 느낌이

돈다.

경남 출신 조선족 중국인이라는 내과전문의 강 선생의 이야기에 의하면,

<계림 中醫醫院>은 중국 전체에서 여섯째 안에 드는 병원이란다.

의술과 책임감이 뛰어나고 여기 쓰이는 약재들은 모두 37,000 봉우리의 계림의

산에서 나는 무공해 약재라고 한다.

얼떨결에 약을 지어놓고 카드 결재를 하려 했는데 계속 에러가 발생해서 할 수 없이

약 구입을 포기했다. 돌아 나오면서 300불 날릴 뻔했다는 생각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음 <伏波山>으로. ‘복파는 장군 이름이다.

작은 동굴에 자그마치 천 개의 부처가 새겨져 있어서 <천불암>이라 한다.

 

한식으로 맛있게 점심을 먹고 <冠岩동굴>.

 

                                 <관암동굴>

 

             <이강>산수 유람

 

***여행기 마무리가 안 된 채 여기서 기록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