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리아 북서부에 있던 터키 고대도시
스카만데르 강 북쪽과 헬레스폰트 해협의 남쪽 어귀로부터 약 6.4km 떨어진 트로아스 평야에 있었다.
트로이 전설은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였으며, 호메로스 서사시의 근간을 이룬다.
광활한 유적 덕분에 트로이는 고대세계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사적지가 되었다.
BC 3000~2000년에 번성한 문화 중심지로서, 트로아스의 농업 공동체들을 지배하던 왕권의 수도였다.
BC 6세기말부터 이 지역은 페르시아인, 알렉산드로스 대왕, 아시아 남서부의 셀레우코스 왕조, 페르가몬 왕국, 로마인들에 차례로 점령당했다. BC 85년 로마인이 약탈한 후 같은 해에 로마 장군 술라가 부분적으로 복구시켰으며,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다른 황제들이 많은 애정을 기울였다. 그러나 324년에 콘스탄티노플이 건설되고 나서 일리온은 망각 속으로 사라져갔다.-브리태니카 인용
트로이의 목마-어리석은 인간의 단면을 잘 말해주는 증거물
트로이 유적지를 지키는 야옹이~
반출을 위해 도굴한 보물들로 치장한 슐레만의 부인--공범자??
프리아모스 왕의 도시
슐리만이 밝혀낸 9개 주요 지층
트로이는 1870년 독일의 하인리히 슐리만에 의해 발굴되기 시작했다.
슐리만은 유년 시절 호머의 <일리어드 오딧세이>에 심취해서 어딘가에 트로이가 있으리라는 꿈을 지니고 성장했다.
훗날 '고고학의 아버지'라 불리게 된 슐리만은 독학으로 19개 국어에 통달하여 트로이 발굴에 큰 힘이 되었다.
트로이 성벽
옛자취는 희미하고 무성한 풀밭에 개양귀비꽃이 붉다
우물엔 풀이 자라고 양귀비꽃도 웃고--
트로이가 사라진 가장 큰 원인은 100년마다 찾아오는 지진 때문이었다.
오디온(반원형극장)-귀족들의 회의장과 공연장으로 쓰였다.
의자 밑이 들어간 것은 소리를 모았다가 내보내기 위한 고안
가이드는 진이 빠지도록 설명을 하나 우리들은 대강 듣고 사진이나 찍는다. 말은 사라지고 사진은 남으니까~
3층 구조의 목마-이렇게 숱한 사람들이 오르내리니 얼마 못 가 부서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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