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평생 학습관에서 오는 6월부터 <토요 가족음악 한마당>이 펼쳐진다.
오늘 그에 앞서 오프닝 특강으로 <김명곤의 예술과 인생 이야기>가 있었다.
김명곤은 누구인가?
‘서편제’를 통해 배우라는 것, 한때 국립극장장을 지냈다는 것, 그리고 문화관광부장관까지
역임한 사실들을 알고 있었으나 가까이 접할 기회가 없었다.
단순한 호기심에 대강의실을 찾았는데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그는 자신을 스스로 ‘광대’라고 불렀다.
어릿광대임이 분명하지만 ‘廣大’한 인물이라는 뜻도 있으니 좋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1952년 生으로, 서울대 독문과를 나와 여고에서 독어를 가르치기도 하고 <뿌리깊은나무>에서 편집 일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진정하고 싶은 일은 소리꾼이었다.
고향에 내려가 소리를 배운다고, 북치고 장구치며 노래하니 이웃사람들이 모두 ‘대학까지 나와 무당이
될려나 부다’하고 미쳤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가 연극에 발을 들여놓게 된 일, 국악에 관심을 갖고 판소리를 배우게 된 과정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성공했을 사람이다.’
대학시절 처음으로 친구 따라 교내 연극 구경 갔다가 대역을 맡게 된 일을 계기로 연극인이 된 일,
휴학 중 고향 친구 따라 국악원에 갔을 때 우리 국악을 접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으면서 판소리를 배우게 된 일 등은 우연이 만들어낸 필연이었다.
그는 처음 대하는 일에 망설임이 없었고 오히려 강한 지적 호기심과 도전정신으로 그 대상에 집착했다.
호기심이 충족될 때까지 그 일에 매달리는 열정과 집념 또한 남달랐다.
그를 지도하고 남달리 총애하며 함부로 대하지 않았던 박초월 선생이 ‘너는 군수가 되야 혀’라고 바랬는데
그는 대한민국의 장관까지 되었다.
그는 장관시절 우리나라 ‘전통문화의 현대화 사업’에 역점을 두어 6H(한복, 한식, 한지, 한옥, 한글, 한국 음악)
운동을 펼쳤다. 21C는 문화가 산업이 되는 시기이므로 전통문화 콘텐츠 산업을 보다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그런 의미에서 자라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소질을 계발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뒷받침을 해주어야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앞으로도 광대의 길을 가면서 우리음악의 현대화에 적극적으로 헌신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술, 그 가운데서도 음악이야말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최상의 선물’이니까--
입가에 번지는 환한 미소가 얼굴 가득하고, 말이 살갑고 재미있어 시간가는 줄 몰랐다.
종로구민이면서도 열심히 성북구 평생교육관 나들이하는 보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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