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강원도

안평대군의 자취를 찾아(1) 영월 장릉

맑은 바람 2013. 7. 20. 18:10

 

내겐 자랑스런 친구가 하나 있다.

서울대 미학과를 나와  수십 년간 세계 각국을 누비며 외교관으로 활동해 왔고 

지금은 모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틈틈히 집필을 하고 있는데, 머잖아 '안평대군과 몽유도원도'에 관한 책이 나올 예정이다.

 

평생 한 가지 일도 제대로 해내기 어렵고 이제는 이것도 저것도 힘들다고 두 손 놓고들 앉아 있는 때에, 그녀는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아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내년에 은퇴하고 나면 캠핑카를 몰고 미국 동서 횡단에 나설 예정이란다.

 

그녀는 '안평대군~'을 집필하기 위해 다각도로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데 그 일환으로 오늘 영월 장릉과 청령포 탐방에 나선 것이다.

 

조선초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왕이 된 조카를 끝내 지켜주지 못하고 비명에 간 안평대군의 이름 석 자가 장릉(莊陵) <장판옥>에 남아 있다.

 

 단종대왕릉 가는 길

 

 솔숲에 둘러싸인 <장릉>

 

 

 

 <정자각(丁字閣)>

영조 때 건립한 제전(祭殿).  단종대왕 제향(祭享) 시 재(齋)를 올리는 곳

 

 <정자각>

 

  위쪽이 장릉, 아래쪽에 정자각 단종비각 수복실守僕室이 나란히 있다.

 

 

      

               <단종비각> '조선국단종대왕장릉' 영조때 세움

 

엄흥도 정여각 嚴興道 旌閭閣

영월 호장戶長 엄흥도의 충절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영조 2년(1726)에 세운 것.

노산군(단종)이 사약을 받고 숨진 후 시신이 강물에 버려졌다.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엄흥도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 암장했다. 목숨을 건 결단과 용기-

 

재실齋室:제향을 올릴 때 쓰는 제기, 제구와 제물 등을 보관하던 곳.

능참봉과 수호군이 기거했다.

 

 

<배식단 配食壇> 단종을 위해 목숨 바친 충신을 비롯한 여러사람들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매년 단종제향 후 제사드리는 제단

 

 <장판옥藏版屋> 단종을 위해 목숨 바친  충신들과 벼슬아치, 여인네 등 모두 268인의 위패를  모셔놓은 사당

 

 <장판옥>안에 이  건물의 역사를 기록한 글이 현판으로 걸려 있다.

 

-본 충신각은 조선 제 6대왕 단종을 위한 사절충의인(死節忠義人)의 위패봉안소

제 22대왕 정조 15년(1791)에 조정의 명령으로 당시 영월 도호부사 박기정이 창건했고

1950년 6월 25일 동란으로 인한 공산군의 만행으로 퇴락하였다가

1964년 11월 영월 군수 김경산이 이를 애석히 여겨

보수 및 단청을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다가

쌍용양회대표이사 홍재선의 희사로 동년 12월에 보수및 단청공사를 하여 면모를 일신케 하였음-

 

 영월 도호부사 박기정이 어명을 받들어 사당을 지었다는 기록

 

  268인의 위패 맨 앞에 안평대군의 이름이 보인다.

 

                         수령 370년이 넘는 보호수 느릅나무

                   오래도록 이 땅의 희로애락을 지켜보았으리

 

앞으로 나올 책의 저자와 사진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따라나선 사진작가 선생님, 그리고 두 명의 말벗은 몇 차례 출사 여행에 동행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