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할머니들의 물놀이 2 (아쿠아로빅)

맑은 바람 2013. 11. 16. 17:30

 

 오늘 선생이 바꿨어, 잘 가르치데~~”

풀장에 들어가기 위해 샤워를 하는데 이미 수업을 마치고 나온 어떤 언니(할머니)가 하는 말이다.

 

집에서 나올 시간이 되면 무슨 구실로 오늘 운동을 빼먹을까 궁리하다가, 물리치료 받으러 가는 셈치고

주섬주섬 준비물을 챙겨 나오곤 한다. 오늘도 풀장의 물은 선뜩하니 비호의적으로 나를 맞는다.

두어 번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물장구를 치는데 새로 온 선생의 날카로운 호루루기 소리가 들린다.

 

작달막하고 단단한 체구의 전형적인 아줌마 선생이다.

초반부터 트로트가 나온다. <한 많은 미아리고개>, <동백아가씨>, <마포 종점>--

할머니들이 경음악을 싫어하는 걸 잘 간파한, 지혜로운 선택이다.

신기하게도 느린 템포에 맞춰 빠른 동작이 연결된다.

호루루기를 힘차게 불며 적극적으로 동작을 시연하니 저절로 열심히 따라하게 된다.

눈을 뗄 겨를을 주지 않는다.

10분 만에 수강생들의 시선을 한손에 넣는다.

 

누군가를 향해 주먹을 날리기도 하고 신나게 발차기도 한다.

그러면서 야아-! 하고 기합을 넣는다.

할머니들도 따라 '야아!!'한다.

'할머니 목소리 맞어?'  의심할 정도로 울림이 크다.

속에 담고 다니며 끌탕하던 것들을 다 쏟아내는 것 같다.

밴드 튜브(?)로 물 바닥을 힘껏 패대기치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속이 다 후련하고 웃음이 절로 난다.

손목, 팔꿈치, 어깨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발목, 무릎, 고관절도 고루고루 돌려주고 자극을 준다.

격렬한 동작으로 지칠 만하면 선생은 우리에게 같은 동작을 반복하게 하며 잠시 잠시 쉼표를 찍는다.

 

끝나갈 무렵 꺼벙한 젊은이가 선생 곁으로 다가와 선다.

선생 두 배는 되는 키에 팔다리가 긴팔원숭이를 닮은 젊은이는 우리의 시선은 아랑곳없는 듯, 옆에 있는 선생의 동작을 짐짓 어설픈 몸짓으로 따라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한 편의 작은 판토마임이다.

 

지난 시간의 선생이 보여주고 즐거움을 주는 선생이었다면 오늘 강사는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와, 쓸데없이 쌓아놓고 비우지 못하는 휴지통을 몽땅 비워 내서 몸을 가볍게 해주는 힐링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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