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일본

1992 생애 최초의 해외여행

맑은 바람 2014. 2. 28. 09:16

일본 여행기(1992.1.9-1.13    4박 5일)

 

1992년 1월 9일 토-첫째날

-생애 최초의 해외여행

 

윤식씨가 회사일로 잠시 일본엘 다녀와야겠다며 동행 의사가 없느냐고 물었다.

난 당연히 뛸 듯이 기뻐하며 짐을 꾸렸다. 처음 떠나는 외국여행 아닌가!

 

10시 30분 KAL 704 좌석 번호 J 38

활주로를 박차고 오를 때의 그 짜릿한 비행의 맛!

구름 위로 완전히 떠올랐을 땐 속도감이 전혀 느껴지지를 않는다.

시속 900Km로 1시간 40분 만에 <나리따 공항>에 도착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도착 몇 분 전 상공에서 흔들림이 그리도 컸던 모양이다.

공항에서 리무진 버스로 동경 터미널에, 다시 택시로 <올림픽 인>에 당도, 예약된 803호에 들었다.

부근에 간따역이 있다.

 

깔끔 그 자체인 조그마한 방. 작년 10월에 OPEN했단다.

여장을 풀고 동경지하철을 이용, 나까미가찌마찌(중어지정)부근의 <다경옥>에서 쇼핑-

일본에서 물건 싸기로 유명한 곳이다.

당장 쓸 수첩과 바느질 도구상자, 군것질거리, 아이들 시계, 우산, 지연이 줄 스탠드 등을 샀다.   

‘떠리 떠리’하는 아저씨들도 있는 모양이, 남대문 바겐세일 장을 연상시켰다.

 

공항에서 동경에 들어오는 동안의 차창 풍경에서 인상적인 것은,

우거진 녹색의 숲과 흰색의 차종이 주류를 이루는 것이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주로 바바리와 롱코트 차림들이었고 차량이 많아 밀리기는

서울의 혼잡스런 출퇴근길과 마찬가지였다.

 

<다경옥>을 떠나 아까사까역 부근의 한식집 <일룡>으로 갔다.

갈비와 생선찌개, 밥 3그릇으로 8시간 만에 허기진 배를 그득 채웠다.

알맞게 피곤하고 정신없는 하루였다.

 

1월 10일 쾌청-둘째날

<토오쿄오-아사쿠사 절 관광>

 

눈을 뜨니 8시.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아침은 양식으로 빵과 계란 후라이, 커피 한 잔, 일본식 스프 한 컵. 식사비 5000원.

엊저녁 식사비의 1/6 정도.

식사 후 다시 전철을 타고 <아끼하바라>의 전자제품 시장으로 갔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세운 상가> 같은 곳.  요새는 <용산전자상가> 같은-

<야마기와 전자제품 백화점>에 들러 팜플릿을 수집하고 긴자거리로 가 <미스꼬시백화점>을 구경했다.

명동의 <롯데백화점>같은-

물건 값이 옴팡지게 비싸서  위축감을 느꼈다.

교장교감선생님께 드릴 일본차를 200엔씩 주고 산 게 고작.

다시 이웃에 있는 문구전문 백화점 <ITO-YA>에 들렀다.

 

참 희한한 일은 도무지 도오꾜 거리엔 학생아이들이 보이질 않는 것이다.

어제부터 줄곧 눈에 띄는 아이들이라곤 엄마 손 잡고 다니는 어린애들뿐-

전철 안도 거리에도 유랑하며 떠들썩한 아이들이 없다.

이것이 거리고 차 안이고 조용하고 분주하게 보이는 이유인가?

점심은 다시 <일룡>에서 떡국과 김치찌개를 먹고 호텔에 짐을 둔 뒤 <아사쿠사 절>엘 갔다.

 

                            

 

 

 

토오쿄오 시내에선 관광객 비슷한 사람도 구경할 수 없었는데 절 주변엔 온통 국내외 관광객들로 들끓었다.

불상도 안 보이는 대웅전(?) 안에서 열심히 기도를 올리는 모습들이 보였다.

절주변의 나뭇가지들은 소원을 담은 흰 종이들로 꽃을 피웠다.

비둘기 모이 10엔어치를 사 손에 드니 날쌔게도 한 마리가 팔 위로 날아올라 모이를 먹었다.

잠시 후엔 또 한 마리 또 두 마리가 날아올라 저희들끼리 싸우고 붐벼댔다.

 

 

 

 

해가 지니 기온이 뚝 떨어지며 동경만으로부터 해풍도 차갑게 불어왔다.

다시 <야마기와 백화점>에 가서 2차로 팜플릿을 수집하고 <간다역>으로.

비로소 교복을 입은 귀가 길의 학생들을 거리에서, 전철 안에서 볼 수 있었다.

모두들 조용하고 약간은 맥 빠진(?) 모습들이었다. 걔들은 방학도 없나? 어찌된 영문인지--

 

저녁은 일본식 우동을 먹으려다 엉뚱하게도 삿뽀로 라면집에서 중국식 라면을, 무슨 맛인지도 모르게 쑤셔 넣었다.

니글니글~

서운하여 옆집에 있는 <야끼도리 집>에 들러 부귀청주에 참새 두 마리씩 해치웠다.

비로소 포만감이 오고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돌아다니고 놀고먹는 즐거움이란!!

 

1월 11일 여정 사흘째 쾌청한 봄 날씨-세째날

-도톰보리

         

 

호텔 주변에서 우동집을 찾아내 120엔짜리 튀김우동을 먹었다.

11시 44분. 일본이 자랑하는 신간선에 오르다.

시속 210Km. 1964년 개통 이래 한 건의 사고도 내지 않은, 일본인의 완벽성을 증명하는 전철이다.

요꼬야마 역을 지나자 멀리 후지 산이 구름 속에 보일 듯 말 듯 다가서더니 마침내 구름 모자를 휙 벗어던지고

그 위용을 자랑하듯 全貌를 드러낸다.

눈 덮인 산의 장엄함에 감탄을 연발하며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었다.

<나고야>는 옛 도시 경주를 연상시켰는데 오래된 절들이 여기저기 모습을 보이나 우리나라에서처럼 몇 집 건너

보이는 교회의 십자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기독교가 뿌리 내리기 어려운 나라인가 보다.

 

회색의 기와지붕들을 이고 있는 일본의 農家들--

거의 집집마다 차 한두 대씩 세워 놓은 걸 보니 소박하나 알찬 일본인들의 생활상이 느껴졌다.

봄볕인 양 내리쬐는 햇빛 아래 여기저기 차밭이 눈에 띄었다.

차 문화가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을 이로써 알 수 있겠다.

종착역 <신오사까 역>에 당도하니 2시 50분경, 다시 전철을 바꿔 타고 오사까에 도착, 호텔 <다이이치>에 二泊을 위한 여장을 풀다. 1615실, 30 층의 원통형 건물.

 

여행기도 보고 오사카 지도도 펼쳐 놓고 오늘 내일 돌아볼 곳들을 염두에 두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오사카 순환선을 타고 일곱 정거장을 가서 학교 역(스루하시)에 내려 ‘학일’이란 음식점을 찾았다.

여기저기서 찾아든 손님들로 몹시 붐벼 번호표를 받아 30분을 기다렸다.

막간을 이용해 빠찡꼬에 들러 2000엔을 날렸다.

다시 ‘학일’로 돌아와 음식을 대하니 ‘학일’을 사람들이 줄서가며 찾는 이유를 알겠다.

갈비며 오이소박이, 콩나물, 고사리, 시금치무침 등이 다 훌륭한 우리 솜씨였다.

먹을 만큼 먹었으나 3만원이 안 되었다. ‘일룡’에 비해 싼 편이라고-

 

식후 다시 전철을 이용, <신 사이바시> 거리로 들어섰다.

오사카 대표적 쇼핑가답게 화려하고 이국적 맛이 났다.

여기 오니 무스를 바른 젊은이, 귀걸이를 한 아가씨, 모피를 걸친 아줌마들을 발견할 수 있어 정겨웠다.

신 사이바시(실재교)의 고풍스런 모습을 뒤로하고 ,<도오톰보리>로 들어섰다.

식도락가들의 거리라고 한다.

길 양 옆이 온통 먹자판이다.

불고기 간판을 내걸은 한식당이 곳곳에 있다.

한국 사람들이 꽤 많이 사는 모양이다.

허기사 ‘학일’에서도 ’나물 있어요.‘하던 아르바이트 유학생을 만났고

도오톰보리 강을 배경으로 젊은이에게 셔터를 부탁했더니 ’하나 둘 셋‘하며 우리말을 한다.

서로 한국인임을 확인하고 잠시 반가움의 악수를 나누었다.

‘주님이 우리가정에 역사하시기를 빈다.’고 -한마디 덧붙인다.

내일은 이름난 우동집 마쓰바야(송엽옥)를 알아두고 모레 먹으러 가야지~

토오쿄오에서 메밀국수를 먹고 오지 못한 것이 좀 억울하니 말이다.

 

1992년 1월 12일 일요일 바람 약간, 맑음-네째날

오사카 성

 

아침은 오사카 지하철역 전문음식점에서 밥과 두부국으로 하고 <오사카 성>으로.

거대한 돌덩이로 성벽을 쌓은 모양이 인간의 땀께나 빼앗았겠다.

<천수각>은 8층 건물로 내부에 대리석(?)으로 8층까지 계단을 놓았다.

1층부터 더듬어 올라가며 풍신수길의 모든 것(?)을 보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조선을 떠들썩하게 했던 악명 높은 사나이-

肖像을 보니 德性이라곤 눈을 씻고 보아도 보이지 않는, 자그마하고 깡마른, 주름투성이의 간교한 눈매를 지닌 인물이다. 우호적 시각에서 본다면 예리하고 냉철한 인상의 인물로 볼 수도 있지만-

오늘의 일본인에겐 그의 존재 가치가 어느 정도일까 가늠하기 어렵다.

그럴듯한 장소 여기저기에서 열심히 기념 촬영하고.

점심은 도톰보리의 <창경원>에서 韓食으로 했다.

간, 곱창, 천엽구이가 나왔다.

식사 후 <천왕사 동물원>으로.

열대 기분을 자아내는 피닉스 아래에서 사진도 찍고 여기저기로 흘러 다녔다.

 

호텔로 돌아와 잠시 눈을 붙인 후 다시 도톰보리로.

일식전문집 <후아다오레>에서 생선초밥을 거하게 먹었다.

생선살이 두텁고 겨자가 적게 들어간 것이 우리 것과 비교되었다. 물론 신선도는 더 높겠지만.

 

몇 날을 먹고 돌아다니고 보고 쉬고 했더니 체내의 독기가 다 빠져나간 것 같다.

새 마음으로 새 생활을 다짐해 보니 이것이 이번 여행에 동행한 보람이 아닐까?

 

[월요일-다섯째 날]

-일본여행을 돌아보며-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니혼바시(일본교)로.

아이들 줄 워크맨도 사고 내 소형 라디오도 사고 윤식씨는 자료 수집을 마저 한 후 택시로 <오사카 공항>으로.

수속을 마치고 화장품 몇 가지 사고 탑승. 3시 44분.

5시 20분에 김포공항에 착륙. 4박 5일의 여정을 끝내다.

하늘에서 조물주의 입장이 되어 내려다본 세상은 결국 구름 밑에서 지지고 볶고 조잡들을 떨어 대고 있는 것일 뿐이다.

좀 더 너그럽게, 좀 더 깊게, 좀 더 아름답게 인생을 살리라.

조물주 보시기에 ‘참 딱하더라’ 하시지 않게끔-

 

퓨마 공과 똥 기계-

<천왕사 동물원>에서 퓨마를 본 순간 그 늘씬한 허리며 성질 사납게 이리저리 분주히 오가는 모습이며 독기를 품은 듯한 눈매가, 화났을 때의 당신 모습 같다 했더니 스스로가 지어낸 별명-‘퓨마 공’.

먹고 놀고 돌아다니고 또 먹는 일에 열중하는 내게 붙여진 별명-‘똥기계’

이 별명에 별 이의를 제기할 생각이 없다.

 

이번 여행은 남편의 새로운 면모를 보게 되어 사실상의 우리 부부 관계 개선에 기여한 바가 크다.

日語는 입 뻥긋도 못 하는 내가, 日語를 자유로이 구사하는 남편이 존경스러워 찍소리 않고 따라다니니,

전에 없이 순종적이고 고분고분한 자세가 맘에 들었던지, 내게 대하는 태도가 그 어느 때보다 젠틀하다.

여행비 총액 220만원이라는 거금이지만 이 여행은 서로 간의 새로운 발견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여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