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이야기/봄

아차산의 봄

맑은 바람 2015. 4. 15. 22:51

 

산너머 남촌에는

-김동환-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 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상추, 쑥갓 등을 심은 밭 

 

 

 

 

아차산 입구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넓은 벌엔 호랑나비 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명자꽃

 

 

 

명자꽃  안도현

그해 봄 우리집 마당가에 핀 명자꽃은

별스럽게도 붉었습니다.

옆집에 살던 명자 누나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누나의 아랫입술이 다른 여자애들보다

도톰한 것을 생각하고는

혼자 뒷방 담요 위에서 명자나무처럼 이파리처럼

파랗게 뒤척이며  명자꽃을 생각하고

또 문득 누나에게도 낯설었을 초경(初經)이며

누나의 속옷이 받아낸 붉디붉은 꽃잎까지

속속들이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꽃잎에 입술을 대보았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내 짝사랑의 어리석은 입술이 칼날처럼 서럽고

차가운 줄을 처음 알게 된

그해는 4월도 반이나 넘긴 중순에 눈이 내렸습니다.

 

하늘 속의 눈송이가 내려와서 혀를 날름거리며

달아나는 일이 애당초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명자 누나의 아버지는 일찍 늙은 명자나무처럼

등짝이 어둡고 먹먹했는데

어쩌다 그 뒷모습만 봐도 벌 받을 것 같아

나는 스스로 먼저 병을 얻었습니다.

 

나의 낙(樂)은 자리에 누워 이마로

찬 수건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어린 나를 관통해서 아프게 한 명자꽃,

그 꽃을 산당화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될 무렵 홀연 우리 옆집 명자 누나는

혼자 서울로 떠났습니다.

 

떨어진 꽃잎이 쌓인 명자나무 밑동은 추했고,

봄은 느긋한 봄이었기에 지루하였습니다.

나는 왜 식물도감을 뒤적여야 하는가,

명자나무는 왜 다닥다닥 홍등(紅燈)을 달았다가

일없이 발등에 떨어뜨리는가,

내 불평은 꽃잎 지는 소리만큼이나

소소한 것이었지마는

명자 누나의 소식은 첫 월급으로 자기 엄마한테

빨간 내복 한 벌 사서 보냈다는 풍문이 전부였습니다.

해마다 내가 개근상을 받듯 명자꽃이 피어도

누나는 돌아오지 않았고,

내 눈에는 전에 없던 핏줄이 창궐하였습니다.

명자 누나네 집의 내 키만한 창문 틈으로

붉은 울음소리가 새어나오던 저녁이 있었습니다.

 

그 울음소리는 자진(自盡)할 듯 뜨겁게

쏟아지다가 잦아들고 그러다가는

또 바람벽 치는 소리를 섞으며 밤늦도록 이어졌습니다.

그 이튿날, 누나가 집에 다녀갔다고,

애비 없는 갓난애를 업고 왔었다고 수런거리는 소리가

명자나무 가시에 뾰족하게 걸린 것을

나는 보아야 했습니다.

 

잎이 나기 전에 꽃 몽우리를 먼저 뱉는 꽃,

그날은 눈이 퉁퉁 붓고 머리가 헝클어진 명자꽃이

                                                                 그해 첫 꽃을 피우던 날이었습니다. 

 

 

 

 

워커힐 벚꽃길-오픈카를 모는 노신사

 

 

 

길가의 수수꽃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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