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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100세 잔칫날

맑은 바람 2015. 6. 30. 11:54

점심약속이 있어 외출을 서두르는 중에 카톡이 떴다.

동국대에서 오후에 행사가 있다고 하니 카페에 들어가 보라고--

 

오후 5시, 충무로역에서 친구들을 만나 본관 중강당 앞으로 갔다.

6시부터 좌석표를 나누어 준다는데 우리는 일찌감치 줄을 섰다.

대한극장에 들어가려고 이른 아침부터 장사진을 이루었던 날들이 새삼 떠오른다.

 

 

 

 

7시 정각,

피아노 반주와 함께 한 여인이 미당선생의 <자화상>을 암송한다.

 

<자화상>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를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고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

그렇게 보고 싶었던 백건우와 윤정희는 얼굴도 알아볼 수 없는 희미한 무대에서 역할을 끝내고 내려갔다.

헌다하는 시인들이 나와 서정주님의 대표작을 하나씩 '낭송'한다.

100세 생신을 축하하는 자리라면 한 편 정도는 '암송'해서 관객 앞에 서야 하는 게 예의가 아닌가 하는 내 까칠한 생각--

 

이어령 선생님이 무대에 오르셨다.

八十老軀가 무색하게 꼿꼿한 자세로 군더더기 없이 말씀하시는 모습이 여전하시다.

당신은 未堂선생을 만나 그의 정신세계를 알게 된 것이 일생의 자랑거리라 하셨다.

그리고 <花蛇>의 원작자의 깊은 속뜻을 간과한 채 표준어를 사용한데 대해 一喝하신다.

징그러운 뱀을 보는 순간 ‘으 으 으 으 ~~’하는 비명을 연상시켜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라고 표현하신 거라고--

그리고 아무의 관심거리도 되지 못하는 신발을 시의 주인공으로 삼으신 분이라고.

 

<신발>

 

나보고 명절날 신으라고 아버지가 사다주신 내 신발을 나는 먼 바다로 흘러내리는 개울물에서 장난하고 놀다가 그만 떠내려 보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마 내 이 신발은 벌써 변산 콧등 밑의 개안을 벗어나서 이 세상의 온갖 바닷가를 내 대신 굽이치며 돌아다니고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이어서 그것 대신의 신발을 또 한 켤레 사다가 신겨 주시긴 했습니다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용품일 뿐, 그 대용품을 신고 명절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그래, 내가 스스로 내 신발을 사 신게 된 뒤에도 예순이 다 된 지금까지 나는 아직 대용품으로 신발을 사 신는 습관을 고치지 못한 그대로 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잔치의 하이라이트는 송창식의 무대였다.

<왜 불러><푸르른 날><선운사>를 뿜어내며 홀 안을 열기로 채웠다.

 

 

즐거운 장소로 불러주는 친구,

빵과 마실 거 사주는 친구,

늦은 저녁밥까지 챙겨주는 친구가 있어

우린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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