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가을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렸다.
모처럼 여유롭게 오전 내내 TV 요리 프로를 보며 해볼 만 한 건 메모해 둔다.
뭔가에 쫒기는 듯한 날들에서 잠시 벗어나니 맘 편하고 좋다.
오후엔 뜰의 풀도 깎아주고 군자란 분갈이도 했다.
겨우내 꽃을 볼 수 있는 것들은 한 가지씩 화분에 옮겨놓았다.
메리골드, 사랑초, 제라늄, 이태리봉숭아, 꽃기린--
가벼운 일들을 묵묵히 하면서 어제 일을 反芻한다.
어제 오후 <중국문화원>에서 새 학기 수강생을 뽑기 위한 인터뷰가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와 남대문시장으로 향했다. 밖에서 결과를 알고 싶었다.
‘이번엔 되겠지.’
합격문자가 오면 영감한테 으스대며 문자를 날려야지~
“여보 합격 먹었어!!” 라고.
5시 20분. 아직 결과가 나오려면 1시간 남짓 남았다.
이것저것 사고 나니 5시 40분이 넘었다.
약간은 긴장된 마음으로 스마트폰을 켠다.
아무런 메시지도 뜨지 않았다.
‘아직 인원 조절이 어려워 발표를 미루고 있나 보다.’
더 기다려보자. 그러면서도 조바심치며 열어보고 또 열어보고—
7시가 넘어서야 상황이 종료되었음을 실감한다.
두 번째 낙방이다.
집에서 <중국문화원>까지의 실제 거리는 10 km 남짓이지만, 이제 <중국문화원>은 백리 밖으로 달아나고,
나는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다.
지난번 낙방할 때만 하더라도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 생각하고 바로 <종로문화원>에 등록해서
중국어 공부를 계속했다.
그런데 또 한 차례 미역국을 먹으니, 심각해진다.
‘난 원래 어학에 소질이 없었지.’ 自己卑下까지 해가면서--
사실 퇴직 후 ‘능력’에 대해선 더 이상 갈등이 없었다.
이제 속박에서 풀려났으니 ‘생긴 대로 살자’ 마음먹었으니까--
이렇게 되니 아예 <중국문화원>에 대한 짝사랑을 접을까도 생각해 본다.
인터뷰 때마다 苦杯를 마시면서 맘을 다칠 것이 두렵다.
그러나 七顚八起란 말도 있잖은가!
접을까 말까 고거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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