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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이집트>를 읽고

맑은 바람 2016. 3. 30. 16:37


카이로의 테러 사건 이후로 이집트 여행 상품이 별로 없어서 갈 기회가 줄어드니 오히려 이집트에 대한 미련이 더 커져가나 보다.

<내 안의 이집트>를 읽고 나니 전에 읽다 만 <고대이집트>를 마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으로 한 발만 들여놓아도 오래 전 알렉산더대왕과 나폴레옹이 왜 그토록 이집트에 傾倒되었나 하는 걸 금세

알 수 있다.

진작에 이집트여행을 떠나지 못했던 걸 또 아쉬워한다.

 

<고대이집트>地上에 새로운 건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교과서를 통해 유럽 역사 즉 그리스 로마의 역사와 전통이 우리가 알고 있는 문화의 전부인 양 여겼는데,

기원전 3000년에 이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高度의 문화를 享有한 국가가 있었다니 할 말을 잃는다.

로마의 전술, 기독교의 부활사상, 미적 감각이 뛰어난 생활용품들은 이미 그 모태가 이집트에서 온 것임을 알겠다.

 

<고대이집트>엔 수많은 들이 있었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또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이 존재하게 되었으나, 그들을 점차로 인간의

이기적 도구로 삼게 되고, 결국은 파라오는 부와 권력을 거머쥔 神官들이 버거워 革新을 꾀하다가 주저앉기도 한다.

훗날 유럽의 神政一致 시대에도 같은 樣相이 되풀이 되지 않았는가?

 

신관이나 종교지도자들이 권력의 언저리에서 맴도는 한 성직자의 타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

얼마 전에 본 영화 <프란치스코>에서 교황이 한 말이 떠오른다.

교회와 성직자들은 변두리로 나가야 한다. 거기서 가난과 슬픔을 견디고 사는 이들을 끌어안아 주어야 한다.”-

 

                                                        <고대이집트>표지- 라이프인간세계사 발행


무덤에서 발굴된 18왕조 투탕카멘의 가슴장식


기하학적 이집트 농지-줄치는 사람(측량기사)의 역할이 컸다


장례식장에서 직업적으로 곡하는 여자들


11왕조시대, 창과 방패를 들고 무덤을 지키는 목각병사

2000년 후에 만들어진 진시황의 병마총을 연상시킨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


머리장식 방울을 달랑거리며 춤추는 무희들


카르나크신전의 신성문자


                                                     19세에 죽은 투탕크아멘의 황금마스크


이 글의 편집자는 말한다.

오늘의 서구문명을 이룩한 근간에 이집트 문화(건축술, 수학, 散文, 공예, 의학, 태양력 등--)가 깊이 스며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그러나 오늘날 연이은 침략과 강대국의 착취와 약탈을 막아내지 못하고 쭈그러드는, 가난하고 힘 없는  파라오의 후손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2016.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