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손님이 없어 한가로운 아침을 맞는다.
8시까지 늘어지게 자고 친구의 초대로 오후에 <질마재 신화>를 보러 가야겠기에 서정주 산문집 <육자배기 가락에 타는 진달래>에서 질마재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읽으며 정리해 본다.
‘질마재 마을 사람들’을 未堂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눈다.
儒者와 자연주의와 審美派-
1)儒者-마을의 큰세력을 이루는 이장의 아버지 선달영감, 훈장 송무술, 명분과 시비와 선악을 날마다 가려 밝히기에
아들 마누라 잘 패는 儒生 조광술선생, 눈들영감, 젓장사 효자 아들을 둔 황영감, 그리고 대지주 동복영감(인촌 김성수 부친)댁 서생이자 마름노릇(농감)을 한 미당선생의 아버지인 서광한
그들은 위엄과 治産으로 마을의 세력을 이루고 있으나 어린 미당에게는 무섭고 인색하고 매력없는 부류들이다.
2)자연주의-진형이 아저씨(진영이), 선봉이, 정규씨
(진영 아재) 마을에서 으뜸인 몸집에 숱 짙은 곱슬 구레나룻과 붉은 입술사이의 단단히 흰 이빨, 광채 나는 美目을 가진
好丈夫에 누굴 미워하거나 겁을 주는 것과 거리가 먼, 평소엔 과묵하기 짝이 없지만 항시 넉넉한 웃음의 소유자이면서
숭어 낚시 선수였다.
그는 마을에 으뜸가는 쟁기질로 품삯을 벌었다.
작은 수박밭도 일구어 오가는 아이들 손에 수박 한 덩이씩 들려주는 품성이면서도,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는 때보다는
‘소소리 바람 위의 원두막같이’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사나이.
‘일’을 고되게 여기지 않고 ‘찬란하고 간절한 재미’로만 여기며 산 사람-
(정규) 용미릿골 張億萬(가명:박상선)
얼핏 율부린너를 닮은 그는 한때 소도둑질을 해서 옥살이도 하고 미당네 땅문서를 위조하기도 했지만 한편 육자배기 가락에 능하고 숭어 낚시를 잘하는,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인물이다.
역시 낚시를 좋아하는 이로 그만의 특허품 새우고추장(생새우와 붉은 풋고추를 확에 갈아 만든 고추장)을 만들어 숭어회를 찍어 먹는다. 어른이 된 미당에게 새로운 味覺을 열어준 이.
이들은 낚시질살이패들로서 아이들에게 친근감을 주고 무섭지도 인색하지도 않았다.
이들 중 어린 정주에게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진영아재였다.
3)審美派-이생원, 상곤이 아재(미당네 머슴 상산)
‘아랫것들’ ‘쌍것’ 취급을 받은 계층이었으나 나름 멋내기를 알고 가장 자유로운 사람들.
노래와 춤으로 동네에 흥을 불어넣어 아이들이 제일 편안해하고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체격 좋고 눈이 형형한 아상주의자형이면서, 숭어낚시와 내리미질을 잘하는 小者 이생원과 욕쟁이 그의
마누라가 어린 미당을 사로잡았다.
욕쟁이 마누라의 욕은 욕 속에 해학이 있다.
-네 어떤 놈의 새끼가 우리 밭 밟았냐! 네에잇! 그놈의 새끼 오늘밤에 호랑이나 아흔 아홉 번 물려갈 놈의 새끼!
-네 이놈의 새끼! 이놈의 새끼 대구리를 몽땅 속곳 속에다 집어넣고 더운 오줌을 누어 놀 텡게! 네 이놈의 새끼 게 있거라!
-응! 어떤 놈의 새끼 발모가지가 밟어놓았냐? 어떤 지이미를 붙고 화룡장 갈 놈의 새끼 발모가지가 밟았어! 썩 이리 나오지 못해! 오줌을 누어 대가리를 활딱 벳겨 놓고 말텡개!
그러면 아이들은 기다렸다가 돌아가는 욕쟁이 마누라 뒤통수에 대고
“아 지랄 잡것!”한다.
상곤이 아재는 연날리기면 연날리기, 줄다리기면 줄다리기, 구성진 노래 등을 잘 부르는 만능재주꾼일뿐더러 아이들에게 친형같이, 친구같이 자상하고 부드러워 동네 아이들의 우상이었다.
명절이면 놀이패의 앞장에서 형형색색의 종이꽃을 멋스럽게 만들어 머리에 쓰고 열두 발 상모를 돌리며 꽹과리, 장구, 징, 나팔을 불고 육자배기도 섞어 부르며 신바람 나게 돌아다녔다. 게다가 숨은 멋쟁이라 종종 똥오줌항아리를 거울삼아 얼기빗으로 머리를 다듬는 그 모양도 좋아보였다.
이밖에도 질마재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육자배기를 부르던 막걸리 집 여자
<禪雲寺 洞口>
禪雲寺 고랑으로
禪雲寺 동백꽃을 보러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미당의 ‘뼈다귀를 적시던’ 그 육자배기를 부르던 여자는 6.25 때 우익청년과 경찰을 숨겨준 죄로 공산군에게 온 식구와
함께 죽임을 당하고 집은 불태워져 없어지고 그곳은 파밭이 되어 파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未堂은 그의 이웃집 친구 황영감에게 보내는 글에서
“정이 없으면 아무리 남이 좋아하는 거라도 아무 의미 없고 정을 보내야 사람도 가깝고 꽃도가깝고 하늘도 가깝고 민족도 가깝고 바른 것도 가까워진다.”고 했다.
길마재 마을은 ‘모든 것의 근본인 情’이 넘치는 마을로, 한 어린 소년의 삶 속에 녹아 흘러 오늘의 대시인 未堂을 낳은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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