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여유회 나들이는 인천 차이나타운으로-
어제그제 이틀 동안 날씨도 흐리고 미세먼지로 시야가 뿌옜는데
오늘 날씨는 띵하오(挺好)다!
11시 30분, 인천역에서 19명의 ‘아해들’이 모였다.
우리는 만나면 17~18세의 선남선녀로 돌아가니 영원한 아해들이다.
牌樓(중국전통대문)에 <中華街>라 적어 차이나타운 입구임을 일러준다
바로 길 건너 <차이나타운>의 입구가 보였다.
입구서부터 ‘中国人喜欢红色’를 입증하듯 붉은색 일색의 거리가 펼쳐졌다.
입구쪽 길바닥에~
자유공원 입구 牌樓에 <善隣門>이 보인다
경사진 언덕 위에 <자유공원>이 있었다.
反美 세력들에 의해 끌어 내려질뻔한 맥아더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우리는 한때 ‘맥아더가 이끈 인천상륙작전이 아니었으면 이 나라가 어찌됐을꼬’하는 두려움에 떨었었는데--
저 건너에 월미도가
맥아더장군 동상
이미 벚꽃은 반쯤남아 그 질리도록 흰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삼국지> 벽화 거리
여유회 정회장의 안내 설명을 들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유공원을 한 바퀴 돌고 점심식사를위해 <공화춘>으로
들어갔다.
우리나라 최초로 짜장면을 선보였다는 <共和春>
七十星霜을 살며 온갖 山海珍味를 맛보았을 그 입맛이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짜장면이라 해서 뭐 대단한 讚辭가
나오겠냐마는 만 원짜리답게 여러 가지 해물이 듬뿍 들어가서 먹을 만했다. 탕수육과 물만두도 맛보았다.
17세 소녀~~
식후엔 그 옛날의 번화가 신포동을 걸었다.
대중국 교역항 및 상업·금융의 중심지로 돈과 물자가 넘쳐났던 거리-당시의 건물들이 몇몇 보수를 거쳐 남아있다.
일본이 그들의 건축자재를 들여다 지은 부산지점으로 인천에 세운 조선은행(현재 인천개항 박물관)-
그 씁쓸한 역사 현장도 둘러봤다.
중국정원을 본딴 쉼터 <韓中園>
벽에 두보의 시 <귀안>이 새겨져 있다. 이곳에 살고 있는 화교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귀안(歸雁)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망향시(望鄕詩)
春來萬里客 (봄에 온 만리 밖 나그네)
亂定幾年歸 (난리 그쳐 돌아갈 해 언제일까)
腸斷江城雁 (강가 성의 기러기가 애간장을 끊나니)
高高正北飛 (높이높이 북쪽으로 날아가네.)
1911년 무렵의 신포동거리 재현
당시의 우체부
마지막 코스로 <신포국제시장>에서 정회장이 인천방문 기념으로, 어린애 머리통만한 왕공갈빵을 하나씩 안겨줬다.
검은 비닐 봉다리를 하나씩 들고 돌아다니는 늙수그레한 우리들 모습은 영락없는 중국관광객들이었다.
어떤 이가 우리에게 중국관광객이냐고 물으니, 일행 중 하나가 초보 중국어발음으로
“我们韩国人 不是中国人!(우리 한국인이예요, 중국인 아녜요)” 했더니
“난 중국 사람인데도 못 알아듣겄네.” 해서 한바탕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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