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강원도

속초행, 툭탁거리면서 뭐하러 같이 가?

맑은 바람 2020. 8. 16. 09:53

결혼생활 47년째,
툭탁거리고 사는 건 4년차 부부(요새 광고에 자주 나오는)보다 별반 나을 게 없다.
2박3일 무작정 떠나기로 하고 아침에 출발준비를 한다.
난 미리 짐을 다 챙기고 에어컨을 쏘이며 기다린다.
시위하듯 마루 끝에 나가선다.
영감은 천천히 마스크상자를 열며 이것저것 찾는다.
먼저 대문밖에 나가 또 기다리다가 이내 걷기 시작한다.
골목 끝에서 또 목을 빼고 있으려니 저만치 영감모습이 보이고 며늘애가 따라나와 배웅한다.
애들 깨지 않게 조용히 나가쟀더니 그예 메눌을 달고 나오누만!

한성대입구역 승강장,
매번 엘리베이터쪽 입구로 들어가건만 영감은 또 반대쪽 입구로 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따로 내려가서 만났다.
2호선 환승을 하려면 맨 뒤로 가야 한다니까 영감은 앞쪽으로 가야 사람이 적단다.

잠시 의자에 앉아 기다리다 차가 들어오자 일어섰다.
휴대폰은 의자에 얌전히 놔두고 우산과 배낭만 들고 차속으로 들어간다. 얼른 주워서 따라들어갔다.

앉을자리 두 자리가 있기는 했다. 잠시 뒤,
"어, 나 휴대폰 놓구왔나봐~"
말없이 폰을 건내준다.

강변역 하차, 동서울터미널
특별한 계획없이, 무작정 떠나보기는 처음이다.
어디든 조용하고 코로나 위험이 적고 수해가 적은 곳이면 된다. 쉬는 게 목적이니까~
코로나확진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강원도 고성으로 가려했더니 바로 가는 건 없고 우선 속초까지 가야 했다.

10시 3분 티켓팅,
10시 9분 정시에 출발
서울-양양간 고속도로를 경유한다.
좌석은 빈 자리 하나 없고 도로엔 차가 가득하여 거북이 행진을 하고~(151.1km구간을 4시간 반만에 닿음)
평소 같으면 주말에 길에 나서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 부모가 집에 있는 날을 잡으려니 부득불~

피서객들이 강원도를 선호하는 이유는, 가는 길의 높은 산자락의 물안개가 속세를 떠난 느낌을 주기 때문인가 본데,

버스 바로 앞자리 발정난 수컷은 자꾸 옆자리 여친한테 침을 바르며 버스의 침실화를 꾀한다.

휴게소 화양강랜드에서 15분간 정차. 화장실 규모가 작아 볼일보고 손씻는 데도 시간이 빠듯할 정도로 사람들이 넘쳐났다.  볼일을 보고 나오니 영감이 벙찐 표정으로 말한다.
"나, 지갑을 안 가져왔네."
"----"
이제 나의 보호자는 나고, 영감의 보호자도 내가 돼야 하는가 보다, 아직 갈길이 먼데---

1시 20분에 승차, 강원도 알감자의 따끈 고소함을 맛보았다.


도로 막힘 때문에 버스는 옛길(원통, 인제, 미시령)로 우회, 우리가 다녔던 옛길과 재회하는 즐거움과 그 길가에서 번성했던 숙박시설과 음식점들의 쇠락한 모습도 함께 보았다.
지상의 어느것 하나 흥망성쇠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닫는다.

속초시내로 들어설 무렵 장엄설악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층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미관보다는 경제성을 먼저 생각하는 이 천박한 집장사들을 대신할 한국의 건축가들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 걸까?

드디어 4시간 반만에 속초시외버스터미널 도착, 바로 길 건너에서 고성행 1-1 시내버스에 오른다. 3시 6분이다.

고성군청까지 1시간 정도 걸린다.
용촌리를 지나며 차창으로 보니 그새 소문이 났는지 <바다정원> 앞에 승용차가 빼곡히 들어찼다.


고성시장 앞에서 내렸다.
시장구경도 하고 점심을 해결하려고~
그러나 '천년고성시장'이라는 플래카드가 무색하게 물건이 많지 않아 허술한 시장은 손님이 없어 한산하고,

상인들은 모여앉아 두리번거리는 낯선 여행객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반기는 이 없는 우리도 도로 발길을 돌려 <공현진항>으로 왔다.
삼식이해물탕이라는 매운탕을 주문하며 이 근방에 숙박할 데 좀 소개해 달라고 했다.
음식점 주인이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방이 하나도 없단다.
순간 양양고속도로를 꽉 메운 차량들이 떠올랐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당황해서 숙소 가능지를 여기저기 눌러보았다.
사람들의 관심이 덜할 것 같은 고성군청 쪽을 알아봤더니 방이 하나 잡혔다.
'공현진방파제'도 걸어보지 못하고 부라부랴 버스를 타고 간성 터미널 정류장에서 내려 <성신장>을 찾아들었다.
빈 카운터에 '방이 없습니다'는 안내판이 보였다.
주인을 불렀더니 열쇠를 내주며 당신들이 마지막 예약손님이었다고 한다.
오클랜드에서 방을 구할 수 없어 속을 태웠던 일이 문득 생각나고 감사하는 마음이 밀려왔다.

잠결에 한기를 느껴 이불자락을 끌어당겼다.
"왜, 추워?"
따뜻한 손이 내 손 위에 얹힌다.

그동안 각방을 썼는데 아무래도 안방에 더불침대를 들여놓아야 할까 보다.
영원히 헤어질 그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니까~


20200815 경비
*차비 (서울~속초) 39400원
*휴게소 감자 3000원
*시내버스1(속초~고성시장) 7200원 1시간 소요
*택시(고성시장~공현진항)9380원
*점저식사 삼식이해물탕 3만원
*버스 2500원
*성신장 숙박(간성터미널부근) 8만원
*짜장 5000원
계:176.48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