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강원도

여유가 생기니 보이는 게 많아졌다.

맑은 바람 2020. 6. 3. 21:44

오늘은 <까리따스피정의 집>으로 가야 하므로 바쁘다
낯선 곳에서 혼자 자려니 깊은 잠이 들지 않아 밤새 전전반측하다가 일찌감치 눈을 떴다.

새벽 공기가 淸淨하다. 지척의 울산바위가 아침 해에 물든 구름 속에서 장엄하다.

약밥과 참외로 아침을 대신하고 9시에 <척산온천장> 숙소를 나섰다. 9시30분 차를 타기 위해서.

카운터에 정류장을 물으니 나가서 오른쪽으로 삼거리 방향으로 조금만 가란다.
삼거리까지도 꽤 걸었는데 정류장은 보이지 않는다.
시내 방향 이정표를 따라 타박타박 걸었다.

어? 그런데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무릎이 아프지 않다. 걸음이 가볍고 기분은 더없이 상쾌했다.
인적없는 보도에 작은 꽃들이 앙증맞게 피어 있는 게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오가는 이가 많았더라면 벌써 짓밟혀 없어졌을 작은 꽃들이--

<아마란스> 호텔까지 오니 그 앞에 정류장이 있다.
전에 와 본 적이 있는 장소라 반갑다.여유있게 숙소를 나서길 잘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록 차는 감감 무소식-때 맞추어(?) 택시 한 대가 나타났다.
어제 상황과 어찌 이리 같은지-

어디쯤에 CCTV가 있어 손님이 난감해할 때쯤 나타나는 것 같은--
이번엔 시내버스회사에 전화까지 했는데 어째 이렇듯 잘못된 정보를 줄까?
속초시내로 들어와 은행과 약국을 들렀다가 피정의 집으로 가는 3번 버스를 탔다.

용촌리는 없고 용촌1리, 다음에 용촌2리가 두 군데나 있다. 가장 먼 용촌 2리에 내리고 만 것이다.
다음 지도를 열어 봤으나 도무지 감을 못잡겠다. 길가는 이에게 물어도 보고 피정의 집에 전화도 걸었다.

잘못 내린 게 확실하다.

햇살이 따갑고 거리엔 사람 그림자를 찾기 어려웠으나 이 근방 어디겠지 하는 마음에 초조하지는 않았다.

인적 없는 길

세 정거장을 거슬러와 보니 바로 앞에 피정의 집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바다정원>이라는 대문짝만한 이정표도 보인다.
조금 걸어들어가니 요란한 벽화로 치장한, 새 건물이 시선을 당긴다.
두 시 넘어서 들어오라는 수녀님의 압박성 말을 두 번이나 들었기에, <바다정원>에서 밥 먹고 놀다 들어가면 되겠다 싶었다.  빵과 커피로 점심을 하고 느긋하게 맥주 한 잔 한 뒤 바닷가에 앉아 두어 시간 책을 펼쳐놓고 앉았으려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그 무엇과도 이 순간을 바꿀 수 없을 것 같았다.

바다정원
바다정원은 내게 매혹적이었다. 바로 뒤에 편히 재워줄 피정의 집이 있어 더더욱~
산토리니가 생각 나

3시 가까이 되서 피정의 집으로 갔다. 간단한 열 체크와 몇 마디 주고받은 후 방배정을 받았다.

전에 피정의 집을 찾아다닐 때와 기분이 사뭇 다르고 유원지 한가운데 있어서 경건함도 덜했다. 주위에 위락시설이 없을때는 적막하지만 '避靜'의 참뜻을 음미할 만했겠다. 가방을 내려놓고 다시 바닷가로 나갔다.
불탄 흔적이라도 보려고 <나폴리아> 쪽으로 갔다. 이미 깨끗이 정리되어 불탄 흔적 같은 건 없었다. 이동 커피판매차가 있는데 <나폴리아>가 운영하는 거라고 한다. 아쉬운 마음으로 카페라테 한 잔 주문하고 언제쯤 다시 나폴리아를 볼 수 있겠냐니까 가을쯤엔 문을 열 거라고 한다. 바다정원을 하도 근사하게 꾸며놓아 경쟁이 되겠나 싶기도 하다.

까리따스 피정의 집
정갈한 식당에서 수녀님들의 손길이 느껴진다

저녁식사 후 '잃어버린 동화'를 끝까지 읽었다.
의사 수필가들의 글에 대한 기대가 어긋나 약간 실망스러웠다. 60년대 그땐 그렇게 재미있었는데~
반백 년 전 정서와 지금이 어찌 같겠는가, 문자그대로 잃어버린 동화의 시절인걸.

 

오늘 걸음 8312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