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강원도

금강산 가는 길, 할망이 자꾸 신경을 건드려~

맑은 바람 2020. 8. 17. 07:55

숙소가 값은 저렴한 편이나 전망이 별로라서 하룻밤만 묵고 다른 데로 옮길 셈으로 바닷가 전망좋은 곳을 알아 보았더니 내 기준에선 완죤 바가지요금이다. 그냥 여기서 하루 더 묵기로 했다.

일요일 아침, 할망이 부시시 일어나더니 화장실로 들어간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깨니, 할망은 벌써 다 찍어바르고 옷도 챙겨입은 채 한마디 한다.
-언제 일어날 거야?
-10시까지 좀 자자.
딱히 목적지도 없고 쉬러 나왔다면서 왜 저리 조바심일까?
평생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데 능숙해져 좀 느슨하게 늘어져있는 꼴을 못 본다.
여군이나 수녀님이 되었더라면 좋았으련만.

어제 해변에서 삼식이매운탕을 바가지요금을 내고 먹은 듯해서 오늘은 고성시장 건너편에 동네사람들이 주로 이용할법한 콩나물국밥집으로 갔다.
값은 헐하나 맛까지 그렇지는 않았다.
어찌 싸고 맛있는 집들은 그리 잘 아는지 식당 안이 손님들로 그득하다.


성공적인 아침식사를 끝내고 버스를 탔다.통일전망대까지 가려했으나 할비가 지갑 속에 신분증도 두고 왔으니 할 수 없이 대진항까지만 가기로 했다.
금강산 가는 길엔 군데군데 적송이 군락을 이루고 어린 배롱나무 가로수가 붉은 꽃을 피우고 있었다.

통일의 그날까지 무럭무럭 자라다오.

종점에서 내리니 바로 <금강산콘도>가 지척에 있고 <마차진해변>엔 사람들이 듬성듬성 한가롭게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도 신발과 양말을 가지런히 바위에 올려놓고 맨발로 파도와 모래가 만나는 길을 오갔다.

발바닥과 종아리에 와닿는 물모래의 촉감이 마냥 좋다.

마차진 해변


나중에 바닷가에 한 달쯤 살게 되면 아침저녁으로 이렇게 바닷가를 걸으리라.
말을 타면 종을 두고 싶다고,
-이럴 때 커피 한 잔 마시면 딱이겠는데~
할망은 툭 던지듯 한마디 하고 멀어진다.
어쩌랴, 한 잔 사오라는 얘긴데~ 할배는 1km 남짓 걸어 커피 두 잔을 날렀다!

점심 때가 되어 거진으로 갔다.
상점마다 오징어를 말리고 있는 광경이 인상적이었던 거진항~ 건오징어 몇 마리 사려고 어슬렁거리는데,
아, 제비!
청산도에서 만나보고 두 번째다. 새끼 두 마리가 전깃줄에 앉아 어미가 물어오는 먹이를 기다리며 재재거린다.

사진을 찍느라 그 아래서 얼쩡거리니 어미가 다가오지를 못한다. 얼른 자리를 피했다.

함부로 횟집을 찾아들었다가는 또 바가지요금을 물 게 뻔해서 역시 마을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김치찌개? 콩비지? 하다가 두부전골을 먹자고 했다.
할망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성질을 바락냈다.
-아니 비싼 거 안 먹는다면서!
-뭐가 비싸? 소짜가 15000원인데~
할망은 대짜 옆의 30000원만 본 모양이다. 잠시 울그락불그락하다가 주인이 내오는 반찬을 보며 둘다 웃음이 번졌다.
가지볶음, 고사리볶음, 꽁치졸임, 오징어젓깔---소박한 반찬들이 다 정갈하고 입에 맞았다.
그러구 보니 상호(복녀네면사무소)도 그렇고 벽에 쓰인 글(천천히 쉬다가 가세요, 서두르면 허방에 빠져요)도 맘에 들었다.  젊은 내외가 식당주인같은데 샌스있는 멋장이들이다.

식사 후 항구로 나갔다.
배들이 쉬고 있는 모습은 볼 때마다 정겹다.
한켠에선 어부와 그 아낙들이 조용히 그물을 깁고 있었다.
웬지 가슴이 짠해 왔다.

거진항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는데 생각보다 버스가 빨리 왔다.
오징어를 씹던 할배는 미처 마스크를 쓰지 못하고 탔더니 기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마치 어린애 야단치듯~
더욱이 행색이 외지인이니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런가 보다.
고성에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못하게 한, 유공자의 한 분이지 싶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었다가 어제 미련을 남겨 두었던 공현진항으로 갔다.

공현진등대길과 방파제길을 걸어보고 싶어서다.

공현진항 방파제
공현진항

어둠이 내리고 항구의 배들은 조는 듯 물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방파제길엔 낚시꾼들이 여기저기 텐트를 치고 낚시 중이다.
저 멀리 오징어배들이 하나둘 불을 켜서 밤바다를 환히 밝히고 있다.
동해에 오면 늘 보고 싶은 정겨운 광경이다.

                          어둠이 짙어갈수록 저멀리 오징어배의 불빛이 더욱 밝아온다

공현진해변

저녁은 집에서 가져온 누룽지와 과일로 때웠다.
할비가 누룽지에 물을 붓다가 와락 쏟는다.
-늙으니까 왜 이리 머리와 손이 따로 놀지?
-그러게, 젊은 사람들한테 타박이나 듣고~

어느 노래가사에,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거라 했는데, 글쎄?
늙는 덴 장사없다. 그저 곱게 늙기를 바랄뿐이다.
11978보 걷다

오늘 지출내역:
*성신장 숙박 80000원
*아침식사 9800원
*버스비1 (고성시장~대진)5400
*커피2잔 4000원
*버스비2(대진~거진항) 3100
*점심 두부전골 15000원
*반건조오징어 30000원
*버스비3 (거진항~고성시장) 2900원
*아이스크림 3000원
*버스비4(공현진항~간성터미널) 2500원
계 155,7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