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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

맑은 바람 2021. 1. 28. 22:25

나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영화 <>에서

 

영화 제목이<>라니~ 관객이 제한적이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라는 매력적인 단어와 윤정희 주연 영화라는 말에 솔깃해서 기대감을 갖고 개봉을 기다렸다.

그녀는 비단의 곱게 빛바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너도나도 성형으로 제 얼굴을 찾아보기 어려운 속에서도 고집스럽게 원래의 모습을 보여 주니 그 또한 아름답다.

 

시 창작 교실의 선생은 <아름다운 순간들>을 이야기하게 한다. 어떤 이는 할머니께 노래를 가르쳐 드렸을 때, 어떤 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졌을 때, 또 어떤 이는 집을 장만했을 때--라고들 말한다.

나는 그 순간이 언제였을까? 반백 년을 넘어 살았으니 아름다웠던 순간들이 열 손가락으로 꼽아도 부족할 것 같은데--글쎄?

주인공 미자는 꽃을 보고, 나무를 보고, 구름과 강물을 보면서 시상을 찾는다. 그러나 그녀가 한 다발의 꽃과 함께 남긴 시는 절절한 슬픔이 배어 있다. 시는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닌가, 아니 진정 아름다운 건 곱고 빛나는 것들만이 아니라는 걸 이야기하고 있나?

 

강물에 한 여학생의 시신이 떠올랐다. 그녀의 일기장에서 오래 전부터 같은 학교 남학생들한테 성폭행을 당한 사실이 발견됐다. 이 일이 탄로 날까 보아 학교와 가해자와 경찰과 기자들이 한통속이 되어 돈으로 피해자와 합의를 보려 한다. 미자의 손자-거칠고 반항적이고 할머니 존재를 무시하기까지 하는-도 가해자다. 할머니는 그들 속에서 인간의 몰염치하고 추악함을 직시한다. 악의 유혹에 휘말리는 듯하다가 그녀는 진정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가 찾아내기 시작한다.

몸이 깨끗해야 마음도 깨끗해진다며 손자를 깨끗이 씻기고 손톱 발톱까지 깎아주고는 다음 날 경찰에게 넘긴다. 그리고 그녀는 떠났다. 그녀가 소녀처럼 강물에 몸을 던졌으리라-소녀에게 사죄하고 넋을 위로해 주는 일이 그것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는 추측은 가능하지만 그녀의 마지막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아름다움을 찾아 내안의 시를 꺼내는 일이 임을, 시를 짓는 일보다 시를 사는 일이야말로 아름다운 것임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한 소녀의 죽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떨어트리지 않았고, 시를 찾아가는 시인들의 모습도 진솔하게 그려졌다. 그러나 자막이 끝나고 극장의 불이 켜졌을 때 커다란 허전함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