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
박완서/마음산책/279쪽/2012년 9월 1판 1쇄 인쇄ㆍ발행/읽은 때 20210627~ 0629
박완서(1931~2011)
경기도 개풍 박적골/3세 때 부친별세/모친은 오빠만 데리고 서울로 떠나고 조부모와 숙부모 밑에서 어린시절 보냄/7살 때 모친 곁으로 와서 매동국민학교 입학/숙명여고 진학/14세 때 소개령으로 개성으로 이사, 호수돈 여고로 전학/해방을 맞음/1950년 서울문리대 국문과 입학/6ㆍ25 발발/오빠와 숙부 사망/생계를 책임지게 되어 미8군 PX의 초상화부에 취직, 그곳에서 박수근 화백을 알게 됨/1953년 호영진과 결혼, 1남 4녀를 둠/1970년 <裸木>으로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1981년 보문동 한옥에서 강남 아파트로 이사/1988년 남편과 아들을 연이어 잃음/2006년 호암상 예술상 수상/서울대 명예문학박사 학위 받음/2011년 담낭암으로(향년 80세) 별세/정부로부터 금관문화 훈장 추서받음
작품들:1.목마른 계절/2.도시의 흉년/3.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4.휘청거리는 오후/5.창밖은 봄/6.꼴찌에게 보내는 갈채/7.혼자 부르는 합창/8.배반의 여름/9.여자와 남자가 있는 풍경/10.욕망의 응달/11.도시의 흉년/12.달걀은 달걀로 갚으렴(마지막 임금님)동화/13.살아있는 날의 시작/14.그 가을의 사흘 동안(제 7회 한국문학 작가상)/15.오만과 몽상/16.엄마의 말뚝 2(제5회 이상문학상)/17.도둑맞은 가난/18.살아있는 날의 소망/19.그해 겨울은 따뜻했네/20.서울사람들/21.서 있는 여자/22.지금은 행복한 시간인가/23.미망(대한민국 문학상 우수상, 제 3회 이산문학상)/24.서있는 여자의 갈등/25.꽃을 찾아서/26.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27.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28.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고 있는가/29.한 말씀만 하소서/30.저문날의 삽화(회갑기념집)/31.나의 아름다운 이웃/32.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33.산과 나무를 위한 사랑법(동화)/34.꿈꾸는 인큐베이터(제38회 현대문학상,제19회 중앙문화대상)/35.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제 25회 동인 문학상)/36.부숭이의 땅힘(동화)/37.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제5회 대산문학상)/38.여덢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39.한 길 사람 속/40.환각의 나비(제1회 한무숙 문학상)/41.모독(티베트 네팔 여행기)/42.속삭임(동화집)/43.어른 노릇 사람노릇/44.너무도 쓸쓸한 당신(제14회 만해문학상)/45.이게 뭔지 알아맞혀 볼래?(그림동화)/46.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47.자전거 도둑(단편동화집)/48.아주 오래된 농담(제 14회 인촌상)/49.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50.그리움을 위하여(제1회 황순원 문학상)/51.두부/52.옛날의 사금파리(동화)/53.보시니 참 좋았다(동화)/54.그 남자네 집/55.잃어버린 여행가방(기행산문)/56.호미/57.친절한 복희씨/58.세 가지 소원/59.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60.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61.기나긴 하루/62.세상에 예쁜 것
(40년간 무려 60편이 넘는 소설, 산문집을 펴낸 작가의 열정과 그 화수분처럼 무궁무진 쏟아지는 영감 앞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의 작품은 하나의 트랜드가 되어 유명출판사와 신문사들이 앞다투어 출판을 해서 공전의 히트를 치기도 했다. 숱한 상을 휩쓸고 문학의 정점에서 삶을 마감한 그의 일생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꽤 여러 편을 읽긴 했지만 제목만 보아도 읽고 싶어지는 작품이 많다. 아직 밟아보지 못한 미지의 땅으로 한발한발 내딛는 이 즐거움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어찌 알까?)
그림은 많으나 내용이 그 어느 하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시공사 책들을 잠시 뒤로 하고, '잘 읽히는 책' 박완서의 수필을 골랐다.
'세상에 예쁜 것'이 뭘까? 궁금했는데 작가의 글을 읽는 순간 100%공감이 되었다.
'포대기 밖으로 살짝 빠져나온 아기 발바닥과 발가락들!'
이를 보고 탄성을 지르지 않을 사람 누굴까?
(각별히 친하게 지낸 사이였으나 2009년 작고한 김점선의 손자가 발가락의 주인공)
나는 왜 소설가인가
(18)소설을 잉태하다:도시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내성적인 아이는 상상력으로 고독을 달래는 꿈많은 아이가 되었다.
(21~23)여자였지만 젊음만으로도 더럽고 잔혹한 세월의 좋은 먹이였다. 세상이 바뀔 때마다 빨갱이로 몰렸다가 반동으로 몰렸다가 하면서 내 눈엔 도저히 인간 같지 않은 자들로부터 온갖 수모와 박해를 당하면서 그들 앞에서 벌레처럼 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때 내 마음에 섬광처럼 번득이는 게 없었다면 아마도 그 시절을 제 정신으로 버텨내긴 어려웠을 것이다. 번득이는 섬광은 언젠가는 저자들을 등장시켜 이 상황을 소설로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극한 상황에서 왜 하필 소설이었을까. 그건 아마도 내가 설화가 풍부한 고장에서 태어나서 옛날이야기를 잘하는 가족과, 이야기책을 많이 읽고 내가 심심해 할 때 그것을 풀어내기를 즐긴 어머니 밑에서 자라서 이야기가 지닌 위안과 치유의 능력에 대해 은연 중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한때 나를 불같은 욕망으로 달구고 고개를 세우게 했던 소설을 쓰리라는 예감은 그 후 이십 년이 지나서야 실현되었다. 그때 나는 문학을 하고싶었던 게 아니라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나를 달구었던 것은 창작욕이 아니라 증오였다. 복수심과 증오는 세월의 다둑거림으로 위무받을 수 있을 뿐, 섣불리 표현되어선 안 된다는 걸 차차 알게 되었다. 상상력은 사랑이지 증오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의 치떨리는 경험이 원경으로 물러나면서 증오가 연민으로, 복수심이 참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바뀌면서 비로소 소설을 쓸 수 있었다.
내가 인간이기에 인간같지 않은 인간과 그런 인간을 만들어낸 시대상에 대해 말하고 싶은 욕구는, 그후에 쓴 소설을 통해서도 내가 살아온 분단시대, 산업화, 정보화 시대가 어떻게 인간성을 속물화, 황폐화시켜 가나를 증언하는 걸로 일관되게 유지돼 왔다. 또한 이 나이까지 (79세)꾸준히 소설을 써온 건 이야기가 지닌 살아낼 수 있는 힘과 위안의 능력을 믿기 때문이다.(이러다 책 한 권 다 베끼는 거 아냐?)
(28)정신의 탄력:나를 젊게 하는 건 이야기의 힘인 것 같다. 좋은 것을 좋다고 느낄 수 있는 감수성과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고 옳지 못한 일에 분노하고 부조리에 고뇌할 수 있는 정신의 능력은 나의 경우 글쓰기가 아닌가 한다.
(37)할머니는 푸성귀를 데치거나 국수를 삶고 난 더운 물을 시궁창에 버릴 때도 반드시 큰소리로 '더운물 내려간다,' 소리치고 나서 잠시 머뭇거린 후에 버리셨다. 시궁창 바닥에 살고 있는 미물과 지렁이가 죽을까봐 그런다고 했다.
(우리 어머니가 이 글을 읽었을 리 만무했지만 어찌 이리 똑같을까, 자식들을 명문학교에 보내겠다는 일념으로 흑석동 집을 팔고 사대문 안으로 이사 온 일까지--어머니에 대해서라면 난 박완서 하나도 부럽지 않다)
(48)이야기가 풍부한 집안:가족간의 대화도 풍부했고 어른에게 말대답하거나 대들어도 야단치지 않고 끝까지 둘어주고 잘못된 말은 그게 아니라고 고쳐주고 또 할머니나 어머니가 옛날 얘기 선수여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자랐지요.
할아버지도 어머니의 책 궤짝을 보시며 시집오는 며느리가 웬 책이냐고 언짢아하거나 그러시지 않고, 필체가 구슬 같다며 칭찬을 하시고 동네방네 자랑까지 하셨답니다.
(김동길 교수의 글이나 박완서의 글에서 따뜻한 어머니상을 본다. 난 아직도 따뜻한 어머니, 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있건만 힘들다고 이렇게 피해다니기만 하니--)
(박완서가 마흔에 글을 써서 그 어머니께 당선의 기쁨을 안겨 드렸다면, 난 육십에 전국마로니에 백일장에서 산문부 장원을 해서 어머니의 자랑거리가 되어 드렸으니, 딸노릇 좀 한 것 같아 뿌듯하다.)
(59)젊은 글과 늙은 글:글을 쓸 때 늙었다고 하는 것은 속도가 느려졌다는 것이 아니라 감수성이 경직되고 진부해졌다는 것입니다. 진부해지지 않도록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또 문학 외의 예술 분야에도 애정을 갖고 자주 접하고 느낌으로써 내 감수성이 녹슬지 않고 젊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좋은 것을 보면 감동할 수 있는것, 이 세상에 감동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삽니까?
(63)사치하는 작가:작가는 밤에 혼자 술을 마실 때엔 와인을 든다. 치즈도 예쁘게 썰어놓고--
때론 집에 혼자 있으면서도 예쁜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하기도 한다. 집이 곧 작업실이니까--(공감이 가는 사치다)
(66)박노갑:박완서 고2때 담임/좌익 문학가 동맹에서 활동/경험의 무게가 실리지 않은 허황하고 감상적인 미사여구 사용을 용납하지 않음/경험에서 나온 것을 써라/쓸 게 생겼다고 금세 쓰지 말고 속에서 삭혀라고 가르치심
(80)시간은 신이었을까?: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소중한 체험이 있다면 그건 시간이 해결 못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이야말로 신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85)나는 누구일까:
카드도 지갑도 주민증도 없을 때 나는 뭔가?
그때 내가 남영역에서 잃은 건 지갑도, 길도 아니라, 명함만한 주민증이나 카드에 불과한 나자신이었다.
(99)그 할머니가 분을 삭인 비결:며느리가 친정어머니랑 단둘이 해외여행을 간다며 친손자를 맡기고 떠났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 어서 돌아오기만 해봐라 별렀으나 할머니는 분을 삭이려고 헤리포터 원서를 사서 사전을 찾아가며 일주일만에 독파했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우니 그깟 일로 속을 썩인 자신이 오히려 불쌍하고 초라해 보이더라~
그 나이에 버거운 지적 도전이 그에게 만족감을 주었고 손상된 자존심을 회복시켜 주었다.
세상을 지탱하는 힘
(132)"왕들의 지혜(남성 중심의 문화)가 한계에 이르렀을 때 세상을 지탱하는 유일한 것은 여성들의 현명함임을 알아야 한다."
(옳거니! 석학 김동길을 길러낸 이도, 대작가 박완서를 길러낸 이도 교육열이 뛰어나고 지혜로운 그들의 어머니였다.
나를 이만큼 살 만하게 한 이도 바로 우리 어머니다. 세상의 칭송을 받아 마땅한 이들, 어머니!)
전원생활은 고요한가
(158)만일 자연의 조화를 관장하는 어떤 큰 힘이 있어 인간의 독주와 오만에 분노하여 인간을 멸하고자 한다면 인간의 지혜를 앞지르는 극미소한 세균을 퍼뜨리면 인간세상은 간단하게 멸할 수 있지 않을까(작가가 지금 살아서 코로나19를 지켜보았더라면 깊이 고개를 끄덕거렸을 것이다.)
(164)고양이의 배신: 돌확에 수련과 함께 기르는 금붕어를 고양이가 모두 물어죽여 마당에 내동댕이친 사건
(마당있는 집에서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어가며 길러본 사람이면 작가가 고양이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부르르 떨고 있는 모습이 피부가 근질근질하도록 느낄 것이다.)
(181)어느 이민자의 조국사랑:
캐나다에 사는 그는 귀국할 때마다 나를 찾아와 같이 식사도 하고 울분도 토하곤 했다. 당연히 이 나라의 잘못돼 가는 점에 대한 개탄의 나열이요, 이민국의 안정된 사회에 대한 찬탄이 주요 화제였다.
내가 듣기싫은 소리 한마디 했더니, 학원가의 데모와 정국의 불안과 상관없이, 명랑하고 치열하게 장사를 하는 남대문, 동대문 시장의 인파에 휩쓸렸다가 돌아가면 힘이 생긴다는 거였다. 그는 말했다. 안정된 나라에서 걱정없이 사는 게 얼마나 견딜 수 없는 무료인지 아는냐고. 그러니까 그의 고국방문은 충전을 위해서였다. 밖에서 보기에 우린 그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나라인가 보다. 그러니까 그에게 모국은 에너지원이고 그는 아직도 그 젖줄에 매달린 젖먹이였다.
깊은 산속 옹달샘:
작가를 깊이 사랑해준 이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그들을 추모하는 글모음
법정/피천득/장영희/김수환추기경/박경리/김상옥/박노갑선생님 부인/이병주/이해인/김창완/손자
(207)법정스님은 연예인 못지않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면 누릴수록 그걸 버거워하고 때로는 지겨워하면서 한시도 공부와 고독한 자기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혼자만의 사색과 공부의 시간을 얼마나 원했는지는 불일암이 번다해지자 더 깊은 산속 오두막에 숨어 사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어쩌면 깊은 산속 옹달샘이고자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223)박경리 선생님은 본인의 병명을 아셨고 그 병에 흡연이 얼마나 해롭다는 걸 아시면서도 너무나 태연하게 담배를 태우셨죠. 아마 돌아가시기 전 의식을 잃는 날까지 즐기셨을 겁니다. 수술도 치료도 거부하고 태연히 피우셨지요. 매사에 쪼잔하고 아등바등하는 걸 싫어하신 그분의 대범한 태도가 죽음 앞에서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으셨어요.
(245)(남편(박노갑)이 행방불명된 지 54년, 홀로 4남매를 키워 빌딩을 가진 자식, 대학교수가 된 자식까지 두었으니 얼마나 맹렬하게 사셨는지 안 보아도 눈에 선하다)
박노갑선생님의 사모님은 93세에 돌아가셨는데 아들의 건물 빌딩 4층에 사시면서 돌아가시기 열흘 전까지도 가볍게 힘 안 들이고 오르내리셨다 한다.
누워 계신 열흘 동안도 의식이 또렷하셨을 뿐 아니라 유머감각도 잃지 않으셨다고.
고인의 복되고 아름다운 長壽를 자랑스럽게 회고하는 유족들을 보면서 괜히 억울해한 내가 슬며시 무안해졌다.
한때는 서럽고 억울했겠지만 그건 충분히 보상받은 거였다. 심신이 건강한 장수, 편안하고 존엄한 죽음 이상 가는 신의 위로는 없으리라는 깨달음이 나에게도 크나큰 위로가 되었다.
(250)이병주선생님은 제가 아는 어떤 작가보다도 책을 많이 읽는 작가였다고 기억됩니다. 늘 티 안 나게 문고본 책을 뒷주머니에 찔러넣고 다니셨고 동서의 고전뿐 아니라 당시의 회제작, 해외의 문학 철학 사회 과학의 최신 이론서에도 해박하여 어떤 고담준론의 자리에서도 막힘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날카롭지 않고 무던하셔서 그분 곁에서는 저처럼 아는 것이 편협하고 얕은 사람도 열등감을 느낄 필요없이 편안했습니다.
(255)이병주 선생님의 소설:풍부한 상상력에서 우러난 소설적 재미도 재미거니와 편견과 오해에 가려진 근세사의 진실을 목격자로서 증언하는 실록에 가까운 진술방법의 매력도 이병주 소설의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266)법조인이된 손자에 대해:너는 어려서부터 네가 속한 학교나 친구, 가족이나 이웃에 대해 한번도 나쁘게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심지어는 음식에 대해서도 있는대로 아무렇게나 차려줘도 맛있게 탐스럽게 먹고 음식솜씨를 칭찬해주며 고마워하는 걸 잊지 않는 착하고도 수더분한 아이였지. 흔한 말로 긍정적인 사고라고나 할까. 천성적으로 인간과 사물의 좋은 면만 보는 편안하고 행복한 이이였다.
(그 손자는 할머니의 성격을 닮았나 보다. 언짢은 일은 쉽게 잊어버리고 감사한 일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는-- 내 가족들을 돌아보고 내 성격을 살펴보며,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을 새삼 실감한다.)
(272~273)법 없이도 살 사람이 법망에 걸려들었다:
전기용품도매상을 하던 할아버지(박완서남편)가 경제사범으로 체포됐다. 옥바라지하면서 무수한 혐의자 가족을 알게 됐다. 그들의 사정을 들으면서 장발장이 <레미제라블> 안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이웃에도 널려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법조인이 되려는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라면, 아무리 합법적이고 경제적으로 이익이 돌아올 것 같은 일이라도 공동의 선에 어긋나는 일이라면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작가가 마지막으로 살던 동네: 경기도 구리시 아치울
(지금은 예술인 마을이 되어, 어떤 유명 배우는 89평짜리 집을 24억 3천에 매입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