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영화 ·강연 이야기/책

점선뎐

맑은 바람 2021. 7. 2. 09:24

 

 

-고통을 물감삼아 인생의 환희를 그려낸 화가가 글로 그린 자화상
詩作/2009년 7월 발행/391쪽/읽은 때 20210630~0703

김점선(1946~2009)개성 출신/이대, 홍대 대학원 서양화과/자유롭고 파격적인 그림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킴/

1987,88년 평론가협회 선정 미술 부문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로 뽑힘/개인전 60차례.

(391)친구와의 대화:
연극인 김방옥-인생은 졸립도록 길다.너무나 긴 연극이다
김점선-나는 너무 멍청해서 그런지  그렇게 긴 줄도 몰랐어. 그렇게 길었나?

11년 전 읽은 책을 다시 본다.
그때 안 보이던 것이 새롭게 보인다.

1부 나를 만든 시간, 유년


(60)매력적인 외할머니:조선왕조 시대 사람/소설을 많이 읽고 동네 아낙과 처녀들을 모아놓고 소설을 소리내어 읽어주기도 하신 분/딸을 키울 때도 집안 일을 전혀 시키지도 가르치지도 않고 유쾌하게 행복하게 어린시절을 보내라고 자꾸 말씀하셨다고 한다/피난지를 떠돌면서도 작은 공장을 경영했고 환갑이 넘도록 실질적인 경영자의 삶을 사신 분/곧 죽음이라는 단계를 거쳐 해체되어 버릴 외할머니의 기품있는 육신과 창조적 힘으로 가득  찬 매력적인 영혼을 은밀하게 감상하면서 그 실체를 내 기억속에 철필로 그려넣곤 했다.
(61)친구같은 어머니:내가 실컷 놀고 들어가서 저녁 밥상머리에서 오늘은 이런저런 놀이를 했다며 즐겁게 떠들면 어머니는 자기도 어려서 그런 놀이를 했었는데 아주 신이 나셨다고 하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가 친구같이 여겨져 아주 기분이 좋았다. 무엇이든지 말할 수 있는, 나와 통하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61)아버지:활달하고 지적이며 모험심이 많은 사람이어서 젊어서는 취미가 다양했다/오토바이도 타고 집안에 암실을 꾸며놓고 손수 현상과 인화까지 하고, 유성기판도 수없이 사 모으고, 여행도 많이 다녔다./"내 젊어서의 꿈은 아이를 많이 낳고 그 아이들에게 모두 스케이팅을 가르쳐서 함께 즐겁게 스케이트를 타는 일이었다"
아무도 스케이트를 탈 줄 모르는 우리 형제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씁쓸히 웃었다.
(65)어머니의 교육방식:내가 분명한 잘못을 하면 어머니는 조용히 나만 방으로 불러 내가 스스로 차근차근 자신이 한 일을 얘기하도록 했다. 그런 때가 내 생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의 시간이었다. 나중에 커서 소크라테스의 글을 읽으면서 어디선가 경험한 듯한 느낌이 자꾸 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어머니가 나를 불러내 잘못을 스스로 말하게 한 그 기억이었다.
처음에는 잘못을 뉘우치고 인간으로서의 수치심을 느끼다가, 나아가서는 잘못한 그 점만 고치면 나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에 울고 또 울었다. 그럴 때의 어머니는 인류를 대표한 스승이고 내 영혼을 낳아준 아버지이고, 나를 사랑으로 일깨워주는 지도자였다. 어머니는 내가 원하는 것을 주저없이 승낙했다. 그때 현금이 없으면 금붙이를 팔아서라도 내 뜻을 받아주었다. 어머니는 우리를 키우는 데  아무것도 아낀 것이 없다


(67)미혼모로 살다:내가 다 자라 바람이 나서 집 나가 어딘가에서 아이 낳고 살고 있는데 어머니가 몇 년 걸려 수소문해서 나를 찾아오셨다. 내 아이가 돌이 다 되었을 때였다. 아이를 덥석 안더니 볼을 비비시면서 "아이구 예뻐라!"만 계속 하시는 거였다.
그 다음날 집에 갔다가 돌 전날 또 오셨다. 이번에는 아이 돌옷을 손수짓고 돌상에 차릴 음식도 손수 만들어 오셔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돌상을 받게 되었고 사진도 찍었다. 잡스러운 질문은 하나도 하지 않고 그저 기뻐하기만 하시다가 가셨다./어머니의 생일조차 기억 못하는 나는 조금 기쁜 일로 돈이 생기면 조그만 선물을 사서 어머니께 보냈다. 내 기쁨의 윈천, 내 영혼의 발상지에다 내 마음의  한 조각을 잘라 던졌다. 오직 내 기쁨을 더 크게 하기 위해서, 나의 기쁨을 완성하기 위해서!
(70)피난지에 버리고 온 인형;어머니가 자투리로 만들어 솜을 두고 잉크로 얼굴도 그린 그 인형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원천이었다.
그 어려운 시절에도 현실이 주는 고통 속에 함몰되지 않고 손수 인형을 만들어 궁핍한 유년기를 보내고 있는 나를 위로하려 했던 어머니/환경과 시간의 특성을 초월하여 자신의 내부에서 나오는 목소리에만 귀 기울이며 의연하게 살아가는 한 인간, 어머니/이 세상이 아무리 암울해도 인간의 인간에 대한 애정은 변함없고, 또한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인해 모든 어두움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신 어머니/사람이 태어나서 할 수 있는 최초의 일도 최고의 일도, 최후의 일도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몸소 실천하신 어머니대한 그리움으로 그 인형을 그리워한다
(73)아버지의 칭찬:나는 한번도 미술대회에 나간 적도 없고 상을 타 본 적도 없다. 그런데도 그림 그리는 일을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칭찬이 그림그리기를 자연스럽고 편안한 작업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끊임없는 칭찬의 말들이 어른이 돼서도 세상 속에서 어지간한 일에는 끄떡도 하지 않게  하는 기초가 되어 주었다.
(김점선의 글은 재밌다. 기발하다. 줄칠 만한  좋은 글귀도 많다. 웬만한 문인들 저리가라다)
(84)명절 차례상의 비밀:시인들 중에 후손이 없다는 걸 알고 집안에서 차례상을 올릴 때 그들의 이름도 올렸다, 랑보, 베를렌, 말라르메, 보들레르
(88)(아버지는 금강산이 너무 아름다워 운 후에 개과천선했고 나는 광릉숲이 아름다워 울었다. 부녀가 꼭 닮았다)
(95~96)범죄자와 예술가:넘치는 에너지는 범죄자나 예술가나 똑같았어. 그런데 나는 어쩌다가 이렇게 가지런한 영혼으로 다듬어졌는데, 그들은 바람부는 벌판에 버려져 있었던 거지, 헝클어지는 영혼을 그대로 놔둔 채  몸은 자라난 거야.
범죄자는 버려진 에너지야. 손질하지 않은 정신력들이지.
세상엔 왜 악마가 있는가?  보살피지 않으면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있다. 따뜻하게 보살피면 악마가 없어진다는 걸 증명해 보이기 위해 있다.

2부 내 마음대로 투쟁기
(107)대학 시절 나는 늘 생각했다. 등록금은 이화여대에다 내지만 나는 세계 속의 대학생이다.나는 월드와이드한 표준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스로 공부할 목표를 세우고 혼자서 실천해 나갔다. 초서나 보카치오 같은 고전작가의 작품도 스스로 찾아서 읽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적인 영웅주의자였다.
(109)독서는 인간이 발명한 행동 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생환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쓸 때 인간은 최선의 상태에 있는 자신을 불특정 다수의 인간들에게 전달하려는 의지에 불탄다.
책을 읽는 자들은 이미 천년 전에 죽은 다른 민족의 조상에게서까지 은총을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110)베를리오즈의 환상적인 교향곡을 일 년 동안 수백 번은 들었다. 그때 타임지가 발표한, 지난해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연주된 고전음악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그 곡을 그렇게 열심히 들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었다.머릿속을, 생각의 체제를 올바르게 구축하기 위해 독서를 하고 감성적으로 세계인이 되어, 동시대인으로 거침없는 대화를 나누기 위한 준비로서 세계인이 듣는 음악을 훈련하듯 들었다.
(지적인 사치라도  좋다. 김점선은 멋진 사람이다.  내 삶에 후회같은 건 없어!  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내게 크게 아쉬움으로 남는 건, 대학시절 다양한 방면의 지적인 활동-물론 주로 책을 통해서이지만--을 더 많이 하지 못한 점이다. 새털같이 많은 날을 싸구려 감정에 들떠 찻집에서 노닥거리기나 하다니! )
(111)좌절하고 죽음을 생각하고 중퇴당하고 하는 중에도 머릿속의 지식들은 스스로 발효하면서 이미 습득한 지식들을 종합하고 있었다. 이런 정신활동으로 나는 내 그림을 강하게 이론적으로 변호하는 역할까지 하면서 내 멋대로 그림을 그려댔다. 이것이 예전에 읽었던 책들이 나에게 준 힘이다. 오래 전에 살았던 인류의 어른들이 내게 책을 통해 전해준 그들의 힘이다.
결국 그림도 생각을 벗어난 행위는 아니라는 것을.  생각이 가지게 되는 해석마저 제거해야 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젊어서 두뇌체조를 열심히 한 것이 평생의 정신적인 힘이 되었음을 그림을 그리면서 천천히 알게 되었다.
(장발 단속에 걸린 일, 이유도 모르고 감방에 간 일, 통금시간에 걸려 유치장에 들어가서, 이름도 모르는 술집 아가씨에게 거짓말하며 춤추고 논 일, 드럼 배우러 다닐 때 뜬금없이 한 청년에게 '형님 존경합니다' 라는 말을 들은 일--꽁트로 엮인 글들이 동화처럼 재미있다)
(126)쓸데없이 공부했다:나는 어떻게 하면 그들과 다를 수 있을까만 연구하는 사람 같았다.  나는 전혀 시험 치를 일이 없는데도 밤새워 공부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영어문장들을 힘들게 구해서 단어 하나하나를 그 어원, 라틴어에서 파생된 부분까지 노트하면서 쓸데없이 공부했다. 공부를 위한 공부를 했다.
(126)유니섹스 모드의 성공적인 표본이 됨:나를 두고 사람들은 여자냐, 남자냐 하며 다투기도 했다.(키170cm, 머리손질 전혀 안함)
(131)김상유 선배의 충고:
"당신들, 결혼하시오! 당신들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봐줄 수 있었소!
하지만 이따위 식으로 살아간다면 나는 곧 구역질을 할 거요!  당신들 중에 돈 벌어서 물감 산 사람 있소? 자기 배를 자신이 번 돈으로 채운 사람이 있소?  누굴 위해 언 물에 손을 넣고 빨래하는 사람이 있소?---
예술은 당신들처럼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아니오. 지금까지는 순수하고 진지하고 탐구적인 점만으로도 버틸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예술이 되는 게 아니오. 결혼하시오. 그리고 아기를 낳고 기저귀를 빨기 위해 얼음물에 손을 넣고, 시장에 가서 콩나물 100원어치를 사면서 어떻게 더 많이 받을 수 없을까를 생각하며 부들부들 떨어보시오.
그런 연후에야 예술이라는 게 될지 말지요--"
결혼이라는 걸 이런 식으로 말해준 사람이 이전에는 없었다. 예술이라는 것도 이렇게 구체적으로 방법을 일러주는 사람이 없었다.
(133)내가 먼저 청혼한 결혼: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선택의  기쁨'을 느꼈다. 직접 내가 고른 물건들에 긍지를 느끼면서 사랑했다.  나의선택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내가 고른 남자는 노래를 썩 잘불렀다. 그 순간 반해서 청혼을 했다.
그 남자도 즉석에서 좋다고 했다.
집도 절도 없는 사람이었다. 바로 내가 찾던 사람이었다. 굶으면서 그림을 그려 팔았다. 광목에다 붉은 말을 그렸다. 친지들이 굶는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 그림을 사갔다. 광목과 물감과 정부미를 샀다. 그리고 산에 가서 한 시간쯤 풀을 뜯어다가 반찬을 해 먹었다. 가난했던 존 케이지를 떠올리며~

**존 케이지:(1912~1992)
미국/20세기 전위예술 분야의 가장 위대하고 독창적인 작곡가이자 음악이론가, 작가, 철학자, 예술가이다./ 〈4분 33초〉, .
〈부엌에서 나는 27개의 소리〉, 〈장난감 피아노를 위한 조곡〉, 〈크레도 인 어스〉 등
(143)남편과 아들:술 잘 먹고 노래 잘하던 남편이 아들을 몹시 사랑하고 그 아들의 성장에 보람을 거는 아버지가 되었다.시원한 강가에서 강바람을 가르면서 롤러 스케이트를 타고, 함께 이발소에 가고 책방에 가고, 장난감 가게에 가고, 극장에 간다. 그들은 함께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헤엄치고 여행을 한다.
(누구나 꿈꾸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다. 그렇지 못한 나는 부러워하면서도 흉내조차 잘 내지 못한다)
(151)단순하게  마주보며 천치처럼 사는 재미:나는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스스로도 힘들어하면서나를 도와준 사람들을 별로 기억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힘들어할 때 스스로 즐거워하면서 나와 어울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사람들만 기억한다. 나의 남편은 그런 면에서 내게 가장 많이, 그리고 자주자주 나를 그 자신의 행복감 속으로 끌고 들어간 사람이다.
(161)아이 교육하기:아이를 어떻게 가르칠까를 생각하기 이전에 어떻게 자기 자신이 옳은 어른이 될까 하고 생각해야 한다. 아이는 스스로 자기 일을 꿋꿋이 해나가는 사람을 봄으로써 더 큰 것을 얻게 된다.
(167)학교 교육:나는 학교를 싫어했다. 학교교육이 없으면 사람은 더 훌륭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아이를 그렇게 키우고 싶었다. 집에서의 일상생활에서 스승이 교과과정을 이수하는 제자를 대하듯이 경건하게 아이를 대했다.  아주 훌륭한 사람의 어린 시절을 내가 독점해서 관리하고 있는 듯한 감격을 느끼기도 했다.

(우리 시대에 자식을 이런 태도로 대하는 이도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고 그  자세에 머리가 숙여진다)
(169)아무도 못 말리는 아이:13살 때, 방학을 통째로 놀게 하기 위해 아침부터 밤중까지 산속으로 냇가로 데리고 다니며 놀게 했으나 개학을 며칠 앞두고 방문을 걸어 잠그고 자정이 넘도록 숙제를 하는 아이---(누가 이를 말릴 것인가! )
(171)포기하려는 아이를 일으켜세운 엄마:

(김점선의 훌륭한 엄마로서의 면모가 드러난다. 14세 때, 수학을 포기하겠다는 아이를 열이틀 동안 매일 저녁 함께 수학문제를 풀며 답을 얻어내는 길을 열어 주었다. 그 이듬해 아이는 안 배운 문제를 푸는 유일한 학생이 되었다)
(170)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명언:"산수 문제는 우선 풀기 전에 믄제 자체를 깔봐라. 그러면  안 풀리는 문제가 없다."
내가 혹시 유언을 못하고 죽는다면 나중에 네 아이에게도 이 말을 전하거라.
(176)병아리를 먹어 치운 고양이에 대한 아버지(김청남)의 말:"고양이는 원래 이런 걸 먹고 살게 되어있는 동물이다. 고양이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 격리시키거나 주의했어야 했다."
아이와 나는 모든 행동을 멈추고 세상의 복잡함에 대해 생각하느라 조용해졌다.
(필사의 재미는 이런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김점선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그녀의 병아리를 함께 생각하고 있는 기분!)
(182)아들 결혼식날:나는 평소대로 사진작가 김중만  마누라가 만든 검은 반바지와 티를 입고, 운동화에 검은 양말을  신고, 늘 그렇듯이 검은 재킷을 허리에 매고 식장에 들어가 하객석에 앉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박완서 선생님, 최인호 내외, 신수정, 신수희, 앙드레 김, 내 담당 피디와 작가들, 소프라노 강미자와 내친구들이 떼 지어 와 있었다. 나는 그들과 같이 하객석에 앉았다. 식 중에 부모님께 절하는 시간이 왔다. 아들이 나를 보고 웃었다.그러고는 시누이 내외에게 절을 했다. 사람들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즉석에서 루머가 만들어졌다. "저기 저 반바지 입은 머리 헝클어진 여자가 신랑의 생모래. 그런데 약간 머리가 돌아서 엄마역할을 못한대---"
나는 아직까지도 아들이 무슨 반지를 신부한테 줬는지 말았는지, 신혼집은 어디에 마련해 어떻게 살았는지를--지금도 어떻게 사는지를 모른다. 한번도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이 결혼하고 살고 하는, 그들의 짓거리에 대해서.
(189)그 남자(김청남)의 노래:그는 왕 앞에 붙잡혀온 고대 희랍의 노래 부르는 노예처럼, 맘에 안들면 곧 처형당할 듯한 긴박감과 긴장과, 아니 그것을 훌쩍 뛰어넘어 "왕이 기뻐하는 모습이 나의 기쁨이요, 왕은 내 존재의 오직 한 가지 이유올시다"하고 고백하듯이 죽기살기로 노래불렀다.
(196)하늘에서 내려온 사자:그는  하늘에서 내려온 사자다. 나와 내아들을 깨우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사자다. 먼지 속에 고요히 서서 우리를 깨우치다가 홀연, 어느 가을 날 하늘로 되돌아갔다.
(그들 부부는 이미 10년 전, 20년 전에 떠난 사람들인데도 지상에 아름다운 추억보따리를 많이도 만들어 놓고 갔다. 그 누구에게도 원망이나 불평없이--인생은 그렇게 사는 거야 라고 가르쳐주듯)

3부 내 인생의 만남
(204)생각하지 마라! 오로지 그리기만 하라!:자연사할 때까지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그림을 그렸다.

8월 15일 아침신문에,  제8회 파리 비엔날레 앙데팡당전에 국가대표로 출품할 사람으로 김점선이 뽑혔다. /후에 나는 그짓이 프랑스의 권위를 세우는 일에 앞잡이처럼 참여하는 일이라 여겨졌다/나는 현대 회화의 개념을 모두 무시한 원초젹 그림세계로 들어갔다./나는 무식한 인간 김점선으로 돌아가서 행동하고 원시인 김점선이 되어서 그림 그린다./그들은 한때 천재로 불렀다가 나를 완전히 왕따로 만들었다.
(211)책이 나를 품어 주었다: 성질 나쁘고 불만에 찬 나를 조용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질풍노도의 시기에 자기자신을 가누지 못한다고 느낄 땐  무조건 책을 펴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원인 모를 분노와 슬픔을 삭여주는 것도 책이었다
(222)미운놈에 대한 대처법:미운 놈을 자신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 용서해 주든지  그게 어려우면  그 미운 놈 곁을 떠나는 거야
(234)내 그림:나는 어릴  때 공부하듯이 그림을 그린다. 머리가 아파도 그림을 그린다. 나는 등산하듯이 그림을 그린다. 산길을 잠든 채 걷듯이 그림을 그린다. 나자신이 지탱하기 힘들 만큼 무겁게 느껴질 때도 그림을 그린다. 내가  그림을 그릴 때  내 의식 속에는 시니 뭐니 하는 게 없다. 무엇이라고 분화해서 부를 수 있는 게 없다. 무엇이라고  말로 끄집어낼 수 있는 것이 없다.
무겁고  큰, 성질 사나운 황소를  몰아가듯이 나는 나 자신을 몰아갈 뿐이다.
(245)내가 아는 박완서:오십이 넘은 나이에 실컷 유명해진 사람이었는데도 어린 학생이 갖는 순하고 다소곳한 모습이어서 대하기가 즐거웠다./내게 그냥 스쳐가는 사람이 아닌, 나빠지면 안되는 관계,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진 어려운 사이인 것처럼 느껴졌다./나는 이 세상에 있는 목화꽃 나무만 보면 박선생님을  생각한다. 목화꽃 닮은 부용꽃만 봐도 박선생이 떠오른다.


(274)나는 꿈꾼다.카프리가 아니라 경주를! 나는 계획한다.유럽여행이 아니라 고령가야 유적지 탐방을! 나는 그곳에서 일상을 떠나 황홀한 세상을! 어디서도 홀로 사색하여 맛볼 수 없는 고유한 냄새를 맡을 것이다. 참된 수행에서 나온 정신적인 향기를!  생애를 건 진지한 자세에서 뿜어져 나오는 깊은 향기를. 나는 거기서 맡을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 살게된 나의 운명을 행복하게 음미할 것이다.
(김점선이 더 오래도록 살아 '문화고시'라는 걸 만들고, 너도나도 자부심을 가지고 문화지킴이 활동을 했더라면 해외여행으로 빠져나가는 엄청난 돈이 내수로 풀려 지금보다 더 풍요롭고 윤택한 나라가 될 텐데---)

4부 오늘도 나는 그린다


(287-289)김점선의 암:
암은 피곤할 때 풀지 않은 피로가 쌓인 석회석이고,  굶고 또 굶으면서 손상된 내 내장 속에 천천히 새겨진 암벽화다.

수십 년에 걸쳐서 몸의 소리를 무시한, 야망과 과욕, 인문주의적인 편식에서 나온 독들이 저절로 만들어낸 퇴적층이다.

암이 발생한 것은 죽기 전에 생각할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암은 그래서 축복이다. 늘 늘어져서 일상 속에서 권태를 느끼던 나같은 인간에게 번쩍 하고 하늘에서 번개를 내리꽂은 것이다. 그런 현상을 나는 즐긴다. 나의 일상 하나하나를 점검할 시간이 있음을 즐긴다. 마음상태까지 객관적으로 조용히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을 즐긴다. 암환자라는 특별대우를 즐긴다, 몰상식을 행해도 되는 특권을 번개맞은 대추나무처럼 즐긴다. 급속도로 변해가는 몸을 바라보는 기회를 즐긴다.
(300)눈도 실컷 나빠지고 무릎뼈도 삐걱거리고 몸 구석구석에 피로와 나태가 찐득찐득하게 달라붙어 있는 요즘, 나는 늙은 마티스를 생각한다. 두꺼운 안경을 끼고, 배가 남산만큼 부른  늙은, 무거운 마티스. 몸이 날렵하고 기운이 넘칠 때 별볼일 없는 그림만 그려대던 마티스가 그 지경에 이르러서야 좋은 그림을 그려냈다. 사람은 다 망가지고 죽을 무렵이 되어서야  자유로워지는 괴로운 동물인가?
어느 성당의 벽화를 끝으로 그는 죽는다. 그것이 성당이고 뭐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최후의 그림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이 내게는 슬프고도 아름답다. 나도 죽을 무렵에는 그 지경에 도달해 볼지도 모른다는 꿈을 갖게 된다.
(302)좋은 그림만 발표하겠다는, 좋지 않은 그림은 집안 식구들에게 조차 보이기를 꺼려하던 생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그 우중충한 정신으로부터 도망치는 날, 나는 자유를 찾을 것이며, 그 자유 속에서 행복할 것이며, 그 자유의 짧은 허용에도 나는 감사할 것이며, 인간으로 태어난 기쁨에 몸을 부르르 떨며 크게 울지도 모른다.
(311)나의 책읽기는 심심풀이 땅콩에다가 골속 세포 체조에 불과한 일상사--
(318)앙리 미쇼:화가로서 대성하지도 못하고, 시인으로서  릴케처럼 어스름한 달밤에 남몰래 읽히지도 않는 시인으로서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도 남들과는 조금은 다르고자 죽을 때까지 노력한 그가 좋다. 그의 패배가 곧 나의 패배가 되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나 자신처럼 그를 생각하는 것이다. 엉성함도 말도 안 되는 시도도, 적응 못해서 생겨난 세상과의 거리감도 다 내가 체험한 듯이 내 뼈 속에 녹아 있다.
(320)프리다 칼로:인간을 지배하는 힘은 자기애다. 평생을 봉사로 보내는 사람마저도 자기애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런 자기애를 시각적으로 적나라하게 풀어낸 대표적인 사람이 프리다 칼로다. 그리면서 자신을 위로하고 스스로 치유하면서 그녀는 인생을 살아냈다. 죽는 날까지 장엄하고 화려하고 꼿꼿한 자세를 잃지 않은 여자. 언제나 행복하고 화려하고 쾌활한 겉모습을 유지하면서 강인한 풍모를 보여주던 여자. 이런 자세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본다.  우리의 이상을 본다. 우리가 되고 싶은 형상을 거기서 읽는다.
현실을 핑계대면서 비굴해지려는 인간들에게 독침을 찌르는 여자. 저주같은 불행을 받으면서도 자기길을 화려하게 간 이 사람을 보라!

(341)무궁화: 여자들은 모름지기 무궁화꽃만큼만 아름다울 것이며 사랑은 무궁화꽃처럼 드러나지 않을 만큼 애정이 깃들인 오랜 눈길 속에서만 비로소 아름답게 나타난다. 무궁화는 촌스러운 꽃이다. 건강하고 튼튼한 꽃나무다.  무궁화꽃은 촌여자처럼 아름답다. 제 할일 다하면서 바쁘게 살다가 얼핏 모양낸, 그런 여자처럼 쬐끔만 아름다운 꽃이다. 언젠가 더욱 아름다워질 것만 같은 그런 꽃이다. 무궁화꽃에는 절제 속에 가득한 힘, 숨겨진 힘, 절제와 질서와 힘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듯한 이상한 아름다움이 스며있다.
(345)맨드라미:닭벼슬은 움직이는 닭머리 꼭대기에 붙어 있어서 나는 만질 수가 없다. 맨드라미는 하루종일 한곳에 서 있기 때문에, 여름부터 가을 끝까지 오래오래 거기 서 있기 때문에, 나는 아무때나그 꼭대기를 슬슬 문지르면서 논다. 꽃을 이렇게 편하게 주물러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해도 안 해도 맨드라미는 전혀 상처 입지 않고 거기 서 있다. 맨드라미는 참 이상하다. 그런데 나는 맨드라미를 아무리 그려도 더 그리고 싶다.
(여름날 당당하게 마당을 지키는 붉은병정-- 나도 홀딱 반해서 몇날 며칠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텃밭을 제대로 가꾸지 못해 잔디밭으로 바뀌는 바람에 맨드라미 군단도 사라졌다)


(363)품위있는 개:내 작업실 앞 히말라야 소나무 밑에서 사는 잡종개는 개답지 않게 품위가 있었다. 뿐만아니라 부끄러워하기도 하는데 자신이 동물인 게, 개인 게 부끄러운 듯이 보였다. 내가 보는 데서는 절대로 밥을 먹지 않았다.  밥 안 먹을 때 대낮에 일부러 찾아가서 욕을 한다.
"너는 네가 개인 게 창피하냐? 뭔 죄를 져서 개로 태어났냐? 개면 개답게 살아야지. 웃기지 마라, 이 개놈아. 너는 그냥 갠데, 놀고 있네. 개면 개답게 개로서 살아라, 이 개야'


(380)나의 유언장:
나는 너무나 엄정하게 아들을 대했기 때문에 특별한 유언장이 없다.

줄기차게 칭찬, 숭배, 예찬 일변도로 대했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생활하는 관찰자로서 그를 칭찬했다.

나로부터 개선된, 진화된 생물체로 태어난 미래의 인간으로서  숭배했다.

인류의 훌륭한 유전자를 그대로 보유한 미래 세대의 구성원으로서 예찬했다.
아들이 기억하는 나의 모든 순간이 유언장이 될 것이다.

그의 장점을 혹시 그가 잊을까봐 늘 깨우쳐주려고 노력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그를 칭찬할 거리를 만들고 찾았다.
나는 아이를 낳고 나서는 이 세상에서 내가 낳은 아이를 제일 무서워하면서 살았다. 

혹시 그에게 내가 나쁜 영향을 줄까봐 펑생을 긴장하며 살았다.

아들을 비웃거나 빈정거린 말을 한 기억이 없다. 그런 정신상태에 잠긴 기억도 없다.
나의 아들은 기억 속의 나를 종종 추억하면서 웃기만 하면 된다.
(아들을 대하는 김점선은 그대로 성자다. 도무지 흉내낼 수 없는--)



(어린시절 아버지로부터 온전히 사랑받았던 기억, 누구의 모범이 되려는 노력이 없는데도 스스로 빛나던 외할머니, 경제적 무능력자 남편을 기꺼이 먹여살리고, 자식을 하느님이 맡긴 보석처럼 소중히 다룬 김점선--삶의 끝에서 새삼 느낀  건 가족간의 사랑이었던가 보다.
마음 바탕에 가족에 대한 분노와 미움을 끌어내지 못하고 끙끙거리니 난 언제쯤 이 미망에서 벗어날까?)

 

'책 ·영화 ·강연 이야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앙드레 말로  (0) 2021.07.08
푸른 삶 맑은 글  (0) 2021.07.06
세상에 예쁜 것  (0) 2021.06.29
술레이만  (0) 2021.06.21
바그너  (0) 2021.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