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김화영 옮김/민음사/497쪽/1판1쇄 2011년 3월/1판 17쇄 2017년5월/읽은 때:20210806~0811
알베르 카뮈(1913~1960)알제리의 몽도바에서 출생 /가난한 우등생/알제대학 철학과 재학시절 장 그르니에를 사상적 스승으로 여기며 창작활동/신문기자/1942년 이방인 발표/1947년 <페스트> 발표(집필기간 7년), 이 작품으로 비평가상 수상/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1960년 미셸 갈리마르와 함께 파리로 가다가 교통사고로 사망
1부
배경(시대적ㆍ공간적)194×년 4월 16일 아침~다음해 2월, 오랑시(알제리 해안에 면한 프랑스의 한 도청 소재지/지금은 알제리땅/지중해연안/비둘기도 없고 나무도 없고 공원도 없어서 새들이 날개치는 소리도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도 들을 수 없는 도시/사람들은 권태에 절어 있으며 여러 가지 습관을 붙여보려고 기를 쓰고 있다/장사에 관심이 있고 여자와 영화와 해수욕을 좋아한다.)
인물:
*베르나르 리유:의사/페스트 환자들 때문에 눈코뜰 새가 없다.
*조제프 그랑:시청의 늙은 하급 서기/허약한 체질/몽텔 리마르 출생/저녁시간은 '신성불가침'의 시간으로 결코 다음날로 미룰 수 없는 부분이다/인격계발에 관한 그 무엇을 위한 시간(명예로운 괴벽에 열중하고 있는 겸손한 관리)/자기의 착한 마음씨에서 오는 용기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떠나간 아내 잔에게 설득력있는 편지를 쓰고싶어하고 있다./페스트에 걸렸다가 회복됨
*코타르:어딘지 산돼지 같은 모습의 작은 사내/자기 방, 실비 식당, 상당히 수상쩍은 외출, 그것이 코타르 생활의 전부/포도주와 리쾨르 대리점 점원/연금생활자?
*레몽 랑베르:파리 모신문사 기자/어깨가 딱 벌어진 작달막한 키/눈이 맑고 총명해 보임/결단성이 있어 보임/자유분방한 인물 같음/폐쇄된 오랑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침/오랑시가 다시 개방되자 아내와 재회하게 되는 행복한 사나이
*장 타루:큼지막한 얼굴에 육중한 체격의 젊은이/페스트가 번지는 오랑시의 모습을 꼼꼼하게 전해 준다./그는 호텔에 머물고 있다/인생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보건대를 조직함/코타르에게 친절하고 자상함/페스트가 끝나갈 무렵 페스트에 걸려 죽는다
*수위:
*카스텔:늙은 의사/임시변통으로 구한 재료로 현장에서 혈청을 제조하는데 자기의 온 신념과 정력을 기울인다/후반에 가면서 혈청의 효과가 증대한다
*리샤르:의사/페스트로 사망
*오통:예심판사/올빼미 신사/어린 아들을 페스트로 잃음/격리되었던 판사도 페스트로 죽음ㆍ
*라울:부정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오랑시 밖으로 탈출시킴/키가 크고 건장함
2부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지사의 전보 공문
*'페스트'(pest)는 균 이름/BC430년경 발생한 역병으로 아테네 인구의 4분의 1이 사망, 542년경 아라비아와 이집트에서 페스트가 창궐, 로마제국으로 번져 30여 만 명이 사망했다. 1340년대 유럽에서는 2000~30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에도 페스트는 1700년대까지 100여 차례에 걸쳐 각국에서 재발했다--다음 백과 참조
돌발적인 이별 앞에 당혹스러워진 사람들--서신교환 금지/시외전화 /금지/전보허용--그러나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우리의 마음에서 솟아나와 피가 뜨겁도록 흐르던 말들이 의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96)시의 허락--귀가(복귀)는 허락하나 다시 나가지는 못한다.
(98)페스트가 우리 시민들에게 가장 먼저 가져다 준 것은 귀양살이였다. 그렇다. 그때 우리가 끊임없이 마음 속에 지니고 있었던 공동, 과거로 돌아가고만 싶은, 혹은 그 반대로 시간의 흐름을 재촉하고만 싶은 구체적 감정, 어이없는 요구, 저 불타는 화살과도 같은 기억, 그것이 바로 귀양살이의 감정이었다.
(103)극도의 고독 속에서 결국 아무도 이웃의 도움을 바랄 수는 없었고 제각기 혼자서 저마다의 근심에 잠겨 있었다
(페스트 자리에 코로나19를 대입해도 될 만큼, 어쩌면 이리도 현재와 닮았을까?
정치가, 기자들, 폐쇄된 공간 속의 사람들--무섭고 답답하고 미래를 기약할 수 없고--)
(108)폐쇄된 오랑의 모습:
오랑시는 이상한 모습으로 변했다. 보행자들의 수는 현저하게 늘었으며 심지어 대낮의 한산한 시간에도 가게의 휴업이나 몇몇 사무실들의 휴무로 할 일이 없어진 많은 사람들이 거리와 카페에 득실거리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그들은 실업자가 아니라 당분간 휴가 중이었다.
영화관들도 그 전반적인 휴가를 이용해서 큰돈을 벌었다.
끝으로 포도주와 알코올 음료의 매매가 으뜸가는 자리를 차지하는 도시이고 보니, 전부터 비축되었던 상당수의 재고품 덕분으로 카페들 역시 손님들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120)리유의 하는 일:
임시병원관리-접수실/크레졸 못/환자접수--백신주사--종기수술--왕진(24시간이 턱없이 모자라는 사람)
(122)매일 저녁 사람들의 팔이 리유의 팔을 붙들고 늘어졌고, 무용한 말들, 약속들, 그리고 눈물이 쏟아져 나왔고, 또 매일 저녁 구급차의 사이렌은 모든 고통과 마찬가지로 헛된 감정의 발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비슷한 모습으로 계속되기만 하는 저녁들을 오래 겪고 나자, 리유는 끝없이 되풀이되는 비슷한 광경의 기나긴 연속 이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 페스트는 마치 추상처럼 단조로운 것이었다. 단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리유 자신이었다. 마음 속에 차오르기 시작한 벅찬 무관심이었다.
(126)그들에게 있어서는 페스트가 어느 날엔가는 사라져버릴 불쾌한 방문자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단 찾아왔으니까 말이다. 겁은 났지만 절망은 하지 않았으며, 페스트가 그들의 생활 형태처럼 보이기까지 하고 또 그때까지 영위할 수 있었던 생활방식 자체를 잊어버리기까지 하는 시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152)저녁하늘을 나는 명매기 울음소리도 도시의 머리 위에서 더욱 가냘프게만 들렸다.
**명매기:귀제비 / 칼샛과에 속하는 새
(153)신문과 당국은 주말 사망자 수 대신 매일 사망자 수를 발표함으로서 시민들의 눈속임을 하고 시민들은 박하정제를 사먹으면서 페스트를 예방하려 한다.
페스트를 옮길지 모른다는 이유로 텅빈거리를 돌아다니는 개와 고양이를 쏘아죽이는 군인들도 있다.
(159)타루는 페스트에 휩쓸린 우리 도시의 하루 생활을 꽤 세세하게 묘사해보려고 노력함으로써 이번 여름 동안 우리 시민들의 괸심사와 생활에 대한 하나의 정확한 생각을 전달하고자 했다.
'주정꾼들 이외에는 아무도 웃는 사람이라고는 없다.'라고 타루는 말하고 있었다.
'새벽이면 산들바람이 아직 인기척 없는 거리를 훑고 지나간다. 밤의 죽음과 낮의 고뇌의 중간에 있는 그 시간에는 페스트도 잠시 일손을 멈추고 숨을 돌리는 듯싶었다.
가게란 가게는 다 문이 닫혀있다. 그러나 그중 몇 집에는 "페스트로 인한 폐점"이라는 패가 나붙어, 잠시 후에 다른 가게들처럼 문을 열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161)매일 11시경만 되면 중심가에는 청춘 남녀들의 행렬이 밀려드는데, 이 행렬에서 사람들은 커다란 불행의 도가니 속에서도 자라나는 삶에 대한 열정을 느꼈다.
(165)이제 페스트는 폐장성으로까지 확대되었던 것이다. 바로 그날 열린 어느 회합에서, 기진맥진한 의사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지사를 상대로,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는 폐장성 페스트의 전염을 막기 위해서 새로운 조치를 요구하고 승낙을 받아냈던 것이다.(코로나19시대의 델타변이가 떠오른다)
(167)타루,자원보건대를 조직하려 함
(170)의사 리유:나는 필요한 정도의 자존심밖에는 없습니다. 앞으로 무엇이 나를 기다리는지, 이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는 무엇이 올 것인지 나는 모릅니다. 당장에는 환자들이 있으니 그들을 고쳐주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반성할 것이고 또 나도 반성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긴급한 일은 그들을 고쳐주는 것입니다. 나는 힘이 미치는 데까지 그들을 보호해 줄 것입니다. 그뿐이지요.
(176)타루, 자원보건대를 조직함:
보건대는 우리 시민들이 페스트 속에 더 깊게 파고들도록 도와주었으며, 시민들에게 부분적이나마 질병이 눈앞에 있으니 그것과 싸우기 위해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된다는 것을 납득시켰다.
(185)사람은 자기 눈으로 볼 수 없으면 어떤 고통을 참으로 나눌 수 없다
(페스트가 7년 만에 나온 책이라면 카뮈의 역작임에 틀림없다. 그가 오래도록 살아 많은 역작을 남기고 미완성으로 남긴 자전적 소설 '최초의 인간'도 완성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앞날이 창창한 중년에 삶이 꺾이다니 넘 안타깝고 아깝다.
<페스트>라는 질병이야기가 뭐 500쪽이나 되나 했는데 사실, '페스트'는 상징을 위해 빌어온 것일뿐, 그가 치열하게 겪은 '전쟁'을 비유적으로 쓴 것이다. 한때는 다큐거나 수필류만을 읽다가 요즘 연이어 소설을 가까이 하게 되는데 역시 소설은 재미와 또다른 감동이 있다.)
3부
(222)바람 부는 오랑:황혼 무렵이 되면 거리에 인적이 끊어지고, 바람만이 계속적으로 울음같은 소리를 곳곳에 토해놓는 것이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은 채 물결이 높아진 바다로부터 해초와 소금냄새가 올라왔다. 먼지가 덮여 뿌옇게 되고 바다냄새로 절은 그 인적없는 도시는, 바람만 윙윙대며 불어치는 가운데 마치 불행하게 신음하는 하나의 섬과도 같았다.
(224)자명한 이유에서이긴 하지만, 페스트는 특별히 군인이라든가 수도승이라든가 죄수들처럼 단체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악착같이 공격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피검자들은 격리상태에 있긴 하지만 감옥이란 하나의 공동체니까 말이다.또 그것을 똑똑히 증명이라도 하듯, 우리 시의 감옥에서는 죄수 못지 않게 많은 간수들이 그 병에 희생을 당했다. 페스트라고 하는 저 꼭대기 지점에서 내려다보면 형무소장에서부터 말단죄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은 유죄선고를 받은 처지였으니, 아마 사상 처음으로 감옥 안에 절대적인 정의가 이루어진 셈이었다.
(232)모든 작업을 하려면 사람이 필요했는데, 언제나 모자라기 일보 직전에 있었다. 그러나 정작 페스트가 도시 전체를 사실상 장악해 버리고 나자 그때부터는 과도함 자체가 아주 편리한 결과를 가져왔다. 페스트는 모든 경제 생활을 파괴했고 그 결과 엄청난 숫자의 실업자가 생겨났던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 실업자들은 간부직을 위한 충원대상은 못 되었지만 막일에 관한 한 그들 덕에 일이 쉽게 되었다. 그 시기부터는 사실 곤궁이 공포보다 더 절박하다는 사실을 늘 눈으로 볼 수 있었고 위험성의 정도에 따라서 보수를 지불하게 마련이고 보니 그 점은 더욱 명백해졌다.
(목을 죄는 소상공인들의 삶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238-239)절망에 습관이 들어버린다는 것은 절망 그 자체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전에는 생이별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불행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고통 속에는 이제 방금 꺼져 버린, 어떤 섬광 같은 것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길모퉁이에서, 카페나 친구네 집에서, 평온하고도 무심한 표정을 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게다가 또 어찌나 따분해하는 눈길인지 시 전체가 마치 하나의 대합실만 같았다.직업이 있는 사람들도 그들의 일을 페스트와 똑같은 보조로, 즉 소심하고 눈에 띄지 않게 해 나가는 것이었다. 모두들 겸손해졌다.처음으로 그들 생이별당한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헤어져 있는 사람 얘기도 하고, 제삼자 같은 말투를 쓰기도 하고, 자기들의 생이별 상태를 전염병의 통계 숫자와 똑같은 시각에서 검토해보기도 했다. 그때까지는 자기들의 고통을 한사코 집단적인 불행과 떼어서 생각해 왔지만 이제는 두 문제를 섞어서 생각해도 좋다고 여기게 되었다. 기억도 희망도 없이, 그들은 현재 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실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현재로 변해버렸다.
페스트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사랑의 능력을, 심지어 우정을 나눌 힘조차도 빼앗아 가버리고 말았다는 사실도 말해야겠다. 왜냐하면 연애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미래가 요구되는 법인데, 우리에게는 이미 현재의 순간 이외에는 남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4부
9월과 10월 두 달 동안, 페스트는 도시 전체를 자기 발 밑에 꿇어 앉혀 놓았다.
그때 리유와 그의 친구들은, 어느 정도로 자기네들이 지쳐 있는가를 발견했다. 사실 보건대 사람들은 더 이상 그 피로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의사 리유는 자기 친구들과 자기 자신의 태도에서 이상야릇한 무관심이 커가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그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고역에 지칠대로 지쳐서 그저 일상적인 자기 일에 과오나 없으면 그만으로 여기다 보니 결정적인 작전도 휴전의 날도 더 이상 바라지 않게 된 대규모 전쟁의 전투원에게서나 상상할 수 있는 무관심이었다.
(252)인간 리유:페스트가 발생하기 이전에는 그는 구세주 같은 대접을 받았다. 알약 세 개와 주사 한 대면 모든 것을 다 바로잡을 수 있었으며, 사람들은 그의 팔을 붙들고 복도까지 따라 나왔다.
이제는 그와 반대로, 그가 병정을 데리고 가서 개머리판으로 문을 두드려야 가족들은 문을 열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리유를, 그리고 인류전체를 자기네들과 함께 죽음으로 끌고 들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아! 정말이지 인간은 다른 인간들 없이 지낼 수는 없고, 정말이지 그도 이제는 저 불행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속수무책의 신세이고, 정말이지 그들 곁을 떠나고 나면 그 역시 가슴 속에 걷잡을 수 없이 솟구쳐오르는 동정심의 전율과 똑같은 것을 받을 가치가 있는 그런 인간인 것이다.
(253)그러나 재앙에 맞서서 투쟁을 계속하는 사람들에게 차츰차츰 밀려들고 있는 탈진 상태의 가장 위험한 결과는, 그들이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는 무성의에 있는 것이었다.
그 사람들은 점점 더 빈번하게 자기 자신들이 규정해 놓은 위생 규칙을 소홀히 하고, 자기 자신들 몸에 실시하기로 했던 수많은 소독 규칙을 잊어버렸으며 때로는 전염에 대한 예방조치조차도 취하지 않고 폐장 페스트에 걸린 환자들 곁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253)그러나 이 도시에서 지치거나 낙망한 것 같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 만족감의 살아있는 이미지나 다름없는 그 사람은 코타르였다.
그는 어떤 큰병 또는 심각한 번민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그와 동시에 다른 모든 병과 번민을 면제받는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성싶었다. 그런 생각이 코타르를 아주 명랑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그가 원하지 않는 단 한 가지 일은 딴 사람들과 헤어져 있는 일이다.
그는 혼자서 죄수가 되느니보다는 모든 사람과 함께 포위당해 있는 편을 더 좋아한다.
(257)코타르와 페스트:코타르가 수개월 전에 공공장소에서 찾고 있던 것, 다시 말하면 그의 꿈이면서도 만족스럽게 맛보지는 못했던 사치와 여유있는 생활, 즉 거침없는 향락을 이제는 주민들 전체가 추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걷잡을 수 없이 물가가 상승하고 있었지만, 그때만큼 사람들이 돈을 낭비한 적은 없었으며, 또 대부분의 경우 생활필수품이 부족했던 때에, 그때처럼 사치품이 많이 소비된 적은 없었다. 사람들은 실업상태를 의미할뿐인 그 시간적 여유가 가져다 준 모든 유희들이 배로 늘어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는 그 모든 것을 누구보다 먼저 맛보았으니만큼, 내 생각으로는 그는 이 불안의 잔인한 맛을 완전히 그들과 똑같이 느끼지는 못할 것 같다. 요컨대, 아직은 페스트에 걸려 있지 않은 우리들처럼, 그는 자기의 자유와 생명이 매일매일 파괴 직전에 있음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272)기자 랑베르의 심경의 변화:
-선생님, 나는 떠나지 않겠어요.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있겠어요.
-그럼 부인은요?
랑베르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는데 자기 생각에 변함은 없지만 그래도 자기가 이곳을 떠난다면 부끄러운 마음을 지울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남겨두고 온 그 여자를 사랑하는 것도 거북해지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리유는 몸을 일으켜 세워 앉으며 무뚝뚝한 목소리로,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행복을 택하는 것이 부끄러울 게 무어냐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랑베르가 말했다.
"그러나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때까지 한 마디도 없던 타루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만약 랑베르가 남들과 불행을 같이 나눌 생각이라면 행복을 위한 시간은 결코 못 얻고 말 것이니,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한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게 아닙니다."라고 랑베르가 말했다. "나는 늘 이 도시와는 남이고 여러분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러나 이제 볼 대로 다 보고 나니,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나도 이곳사람이라는 것을 알겠어요. 이 사건은 우리들 모두에게 관련된 것입니다.
리유가 말했다.
-미안합니다, 랑베르. 그러나 나는 잘 모르겠어요. 원하신다면 우리하고 함께 남아도 좋아요.
이 세상에 자기가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몸을 돌릴 만한 가치가 있는 건 하나도 없어요. 그렇지만 나 역시 왜 그러는지 모르는 채 거기서 돌아서 있죠."
(284)판사의 어린아들이 페스트로 고통 받으며 죽어간 모습을 본 직후:리우가 파늘루를 돌아다보았다.
"용서하십시오. 피곤해서 그만 어리석은 짓을 했군요. 이따금 나는 이 도시에서 반항심 밖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해합니다. 정말 우리 힘에는 도가 넘치는 일이니 반항심도 생길 만합니다. 그렇지만 아마도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리유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는 그로서 할 수 있는 모든 힘과 정열을 기울여서 파늘루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신부님. 나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 달리 생각하고 있어요. 어린애들마저도 주리를 틀도록 창조해 놓은 이 세상이라면 나는 죽어도 거부하겠습니다."
파눌루의 얼굴에는 당황한 그림자가 스쳤다.
---리유는 웃는 낯을 하려고 노력했다.
"인간의 구원이란 나에게는 너무나 거창한 말입니다.나에게는 그렇게까지 윈대한 포부는 없습니다. 내게 관심이 있는 것은 인간의 건강입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건강이지요."
(288)페스트의 종말이라는 것이 모든 희망의 대상이 되었다.
(289)그래서 옛날의 마술사들이나 가톨릭교회 성자들의 여러 가지 예언이 이 손에서 저손으로 떠돌아다녔다. 시중의 인쇄업자들은 그 구미를 미끼로 해서 한밑천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재빠르게 눈치채고, 유통 중인 책들을 대량으로 찍어내어 뿌렸다. 역사 자체 속에 예언들이 충분히 담겨 있지 않을 때에는 기자들에게 그런 것을 쓰도록 주문했는데, 그들 역시 그 점에 관한 한 과거 몇 세기 동안에 있어 왔던 그들의 모범들 못지 않게 능란한 재주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시민의 구미를 가장 많이 당긴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묵시록의 어법으로 알려주는 일련의 사건들이었는데 그 하나하나는 이 도시에서 지금 겪고 있는 사건으로 볼 수도 있었고 , 또 그 복잡성 때문에 온갖 다른 해석도 가능한 것들이었다. 매일같이 노스트라다무스와 성 오딜을 들먹였고, 또 번번이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데 모든 예언에서 공통되는 것은, 결국에 가서는 사람들을 안심시켜 준다는 점이었다. 다만 페스트만은 그렇지가 않았다.
(304)판사의 어린 아들의 죽음을 목격한 뒤 얼마 후에 신부도 열에 시달리다 죽는다. '병명 미상'
(309)"빵을 달라, 그렇지 않으면 공기를 달라":생필품 가격이 치솟아 빈곤한 가정은 무척 괴로운 처지에 놓이게 됨/빈곤한 사람들은, 전보다 더한 향수에 젖어 생활이 자유롭고 빵이 비싸지 않은 이웃 도시들과 시골들로 보내 주어야 한다고 비논리적인 주장을 펴기도 했다.
(311-313)격리수용소가 된 운동장:(타루와 랑베르가 본 수용소 사람들)
--저 사람들은 낮에는 무엇을 하나요?
--아무것도 안 하죠.
사실 거의 전부가 두 팔을 축 늘어뜨리고 앉아 빈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거대한 인간 집단은 신기하리만큼 조용했다.
모두 자기들의 생활을 이루었던 것들에서 격리된 이별의 슬픔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죽음만을 생각하고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런 생각도 안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휴가 중이었다.
'그러나 가장 나쁜 것은' 타루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잊힌 사람들이라는 사실과 그들 역시 그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을 아는 사람들도 다른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 생각을 잊고 있는 바, 그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역시 그들을 거기서 끌어내기 위한 운동이나 계획에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 생각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끌어내는 일에 급급해서 끌어내야 할 사람에 대해서는 잊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에 가서는 비록 불행의 막바지에 이른 경우라 할지라도 어떤 사람을 정말로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 하면 어떤 사람을 정말로 생각한다는 것, 그것은 어느 순간에도 결코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살림 걱정도 안 하고, 날아다니는 파리도 안 보이고, 밥도 안 먹고, 가려움도 안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리라든가 가려움이라든가 하는 것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래서 인생은 살기가 어려운 것이다.'
(319-325)타루 이야기:검사의 아들로 유복하게 살았으나 아버지의 재판 과정에서 사형선고를 하는 광경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집을 나와서 가난과 더불어 산다.
(328)타루의 주장:우리들 모두가 페스트 속에 있다./그래서 나는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오늘날도 그 평화를 되찾아서,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그 누구에게도 치명적인 원수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나는 다만, 이제 다시는 페스트에 전염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그것만이 우리들로 하여금 평화를 되찾을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평화가 아니라면 적어도 떳떳한 죽음을 바랄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좋은 이유에서건 나쁜 이유에서건 사람을 죽게 만들거나 또는 죽게 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모든 걸 거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329)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스스로를 살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주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외의 것들, 즉 건강, 청렴,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정직한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그런데 결코 해이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단 말입니다.그렇습니다, 리유.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더욱 더 피곤한 일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피곤해 보이는 것입니다. 왜나하면 오늘날에는 누구나가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니까요.
(336)사람이란 기다림에 지치면 아예 기다리지 않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우리들의 도시 전체는 미래의 희망없이 살고 있었다.
(339)그해의 크리스마스는 복음서의 명절이라기보다 차라리 지옥의 명절이었다. 텅 비고 불이 꺼진 가게들, 진열장 속에 있는 모형 초콜릿이나 빈 상자들, 음울한 얼굴들을 실은 전차들, 어느 것 하나 과거의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키는 것이라고 없었다. 전 같으면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모두 한데 모여서 지내던 그 명절도, 이제는 때가 꾀죄죄한 가게 내실에서, 일부 특권층이 금력으로 장만하는 고독하고도 부끄러운 몇 가지 즐거움 이외에는 있을 수가 없었다. 성당들은 감사의 기도보다는 차라리 탄식으로 가득찼다. 음침하고 얼어붙은 시내에서는 몇몇 아이들이 어떤 위협에 직면해 있는지도 모르고 뛰어놀고 있었다.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이제 극도로 늙고 극도로 음울해진 희망, 심지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냥 가만히 죽어가지도 못하게 하는 희망, 삶에 대한 단순한 아집에 불과한 그런 희망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340)사랑이 없는 이 세계는 죽은 세계와 다를 바 없으며, 사람에게는 언제고 반드시 감옥이니 일이니 용기니 하는 것들에 지친 나머지 한 인간의 얼굴과 애정 어린 황홀한 가슴을 요구하는 때가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독한 그랑은 잔을 그리워하다가 페스트에 걸리고 만다. 그러나 리유의 예상을 뒤엎고 그랑은 회생한다. 그런 기적 같은 일이 리유의 관할 구역에서 네 건이나 생겼다.)
(345)살아 돌아다니는 쥐를 보고 사람들은 희망을 읽는다. 병세의 후퇴를 의미하는 징조로 보았다.
5부
(349)비록 그렇게 갑작스러운 병세의 후퇴가 예기치 않았던 일이기는 했지만, 우리 시민들은 선뜻 기뻐하지 않았다. 여태껏 겪어온 몇 달 동안이, 해방에 대한 그들의 욕망을 증가시켜 준 만큼 그들에게 조심성이라는 것도 가르쳐 주었으며, 이 전염병이 불원간 끝난다는 기대는 점점 덜 품도록 길을 들여 놓았던 것이다.그러나 그 새로운 사실은 모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따라서 내색은 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커다란 희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공공연하게 떠들어 대지는 않았지만 누구나 건강한 시절을 은근히 기다리고 있다는 징조가 나타났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 시민들이 그때부터는 비록 무관심한 듯한 표정으로나마, 페스트가 퇴치되고 난 후에 세워야 할 생활 계획에 대해서 즐겨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이었다.
(352-353)사람들의 얼굴은 한결 더 느긋해지고 간혹 미소까지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실 몇 달 전부터 그 도시를 뒤덮고 있었던 어두운 베일에 이제 막 조그마한 구멍이 생겨났는데 사람들은 제각기 월요일마다 라디오 보도를 통해서 그 구멍이 자꾸 커져 가고 있으며, 결국에 가서는 숨을 쉴 수 있으리라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전 같으면 기차가 떠났다든지 배가 들어왔다든지, 또는 자동차의 운행이 다시 허가될 것 같다는 소식을 들을 때 믿을 수 없다는 마음이 앞섰을 것이다. 그런데 정월 중순경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발표를 했더라도 아무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가장 보잘것 없는 것이나마 주민들에게 희망이란 것이 가능해진 그 순간부터 이미 페스트의 실질적인 지배는 끝났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354-355)주민들은 1월 25일까지 그렇게 은근한 흥분 속에서 지냈다. 그 주일에 통계 수치가 어찌나 낮아졌는지 도 당국은 의사협회의 자문을 거쳐서 질병은 저지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발표를 했다. 사실 발표문에서는 덧붙여 말하기를, 반드시 시민들도 찬동해 마지 않으리라 기대하는 터이지만 신중을 기하려는 취지에서 시 문은 향후 2주일간 폐쇄 상태를 유지할 것이며 예방조치는 일 개월간 더 계속될 것인데, 그 기간 중에 위험이 재발할 듯한 징후가 조금이라도 보일 경우에는 '현상' 유지 조치는 계속될 것이며 조치들은 소급해서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355)그래서 1월 25일 저녁에는 희색이 넘치는 흥분이 시가를 가득 채웠다. 지사는 전반적인 기쁨에 동조하기 위해서 건강 시대 때와 마찬가지로 등화관제를 해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우리시민들은 차고 맑은 하늘 아래, 불이 환하게 켜진 거리로 떠들썩하게 무리를 지으며 웃으면서 쏟아져 나왔다. 그날 저녁 타루와 리유도, 랑베르와 다른 사람들도, 군중 틈에 섞여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들 역시 땅에 발이 닿지 않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대로에서 벗어난 지 오래되었는데 타루와 리유의 귀에 여전히 그 기쁨의 소리가 그들 뒤를 따라오며 들렸고, 심지어는 그들이 인적없는 골목길로 덧문이 닫힌 창문들을 따라 걸어가고 있을 때에도 그 소리는 들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피로 때문인지 그들은 그 덧문들 뒤에서 아직도 계속되는 괴로움을, 거기서 좀더 먼곳의 거리거리를 메우고 있는 기쁨과 분리해 생각할 수가 없었다. 다가오는 해방은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365)코타르와 타루:늙은 연금수급자 코타르는 페스트가 가라앉는 걸 불안해 하는 중에 형사에게 쫓겨 달아난다.
이 모든 걸 소상하게 기록하던 타루도 코타르가 사라지는 날 기록이 끝나 있었다.
(369)페스트에 걸린 타루:
"나는 죽고 싶지 않아요.그러니 싸워 보겠어요. 그러나 지는 판이면 깨끗하게 최후를 마치고 싶어요."
리유는 머리를 숙이고 그의 어깨를 잡았다.
"아니요, 성자가 되려면 살아야죠. 싸우십시오."
(372)행인들은 비가 뜸한 틈을 타서 급히 보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이내 그들의 발소리가 줄어들더니 멀어져 갔다. 의사는 처음으로, 밤늦게까지 산책객들이 가득하고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안 들리는 그 밤이 옛날의 밤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페스트에서 해방된 밤이었다. 그리고 추위와 햇빛과 군중에게 쫓긴 질병이 시내의 어둡고 깊은 곳들에서 빠져 나온 다음 이 따뜻한 방 속에 숨어들어 와서 타루의 맥없는 몸을 향해 최후의 맹공격을 가하고 있는 듯싶었다. 재앙은 더 이상 이 도시의 하늘을 휘저어대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이제 방안의 무거운 공기 속에서 나직이 색색거리고 있었다. 리유가 몇 시간 전부터 듣고 있던 것이 바로 그 소리였다. 그는 그곳에서도 페스트가 멎고, 그곳에서도 페스트가 패배를 선언하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376)리유 앞에는 미소가 사라진 채 이제는 무기력해져 버린 하나의 마스크밖에는 남은 것이 없었다. 그에게 그렇게도 친근했던 그 인간의 모습이, 지금은 창끝에 찔리고 초인간적인 악으로 불태워지고 하늘의 증오에 찬 온갖 바람에 주리 틀리면서 바로 그의 눈앞에서 페스트의 검은 물결 속으로 빠져들어 갔지만 그로서는 이 난파를 막는 데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다시한번 빈손과 뒤틀리는 마음뿐, 무기도 처방도 없이 기슭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는 자신의 무력함을 한탄하는 눈물이 앞을 가려 리유는 타루가 갑자기 벽쪽으로 돌아누워 마치 몸 한구석에서 가장 근원적인 어떤 줄 하나가 툭 끊어지기나 한 것처럼 힘없는 신음소리를 내며 숨을 거두는 것조차 보지 못했다.
그후의 밤은 투쟁의 밤이 아니라 침묵의 밤이었다. 그것은 패배의 침묵이었다. 리유는 이번에야말로 정말 결정적인 패배, 전쟁을 종식시키면서 평화 그 자체를 치유할 길 없는 고통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런 패배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379)타루는 환상이 없는 생활이 얼마나 메마른 생활인가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희망 없이 마음의 평화는 있을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 아무도 단죄할 귄리를 인간에게 주지 않았던 타루, 그러면서도 누구도 남을 단죄하지 않을 수 없으며, 심지어는 희생자가 때로는 사형집행인 노릇을 하게 됨을 알고 있었던 타루는 분열과 모순 속에서 살아왔던 것이며, 희망이라곤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성스러움을 추구하고, 인간에 대한 봉사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고 했던 것일까?
(380)타루가 죽은 다음날 아침, 리유는 아내가 죽었다는 전보를 받는다. 그는 자신의 고통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여러 달 전부터, 그리고 이틀 전부터 계속되어 왔던 똑같은 아픔이었다.
(381)시의 문들은, 2월의 어느 화창한 날 아침, 시민들과 신문과 라디오와 도청의 발표문이 환호하는 가운데 마침내 열렸다.
기차는 역에서 연기를 뿜기 시작했고, 한편 머나먼 바다로부터 항해해 온 배들은 어느새 우리 시의 항구로 뱃머리를 돌렸고, 제각기 그날이 생이별을 애달파했던 모든 사람들의 역사적인 재회의 날이라는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었다.
(385)산언덕 꼭대기에 있는 요새의 대포들은 움직이지 않는 하늘에 끊임없이 포성을 울렸다.
사람들은 광장마다 모여서 춤을 추었다. 시내의 모든 종들이 오후 내내 힘껏 울렸다. 종들은 푸르른 황금빛의 하늘을 그들의 진동으로 가득 채워 놓았다. 과연 교회들에서는 감사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오락의 장소들은 터질 듯한 상황을 이루었으며 카페들은 앞일은 걱정도 하지 않은 채 마지막 남은 술을 다 털어 내놓는 것이었다. 모두들 소리치거나 웃고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 영혼의 불빛을 낮게 줄여 놓고 살아온 지난 몇 달 동안에 비축되었던 생명감을, 마치 그날이 자기들의 생환기념일인 양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그날 그 순간에는 근본이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팔꿈치를 비벼대면서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다. 죽음 앞에서도 사실상 실현되지 못했던 평등이, 해방의 기쁨 속에서 적어도 몇 시간 동안은 실현되고 있었다.
(401)의사 리유는, 입다물고 침묵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속하지 않기 위하여, 페스트에 희생된 그 사람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기 위하여, 아니 적어도 그들에게 가해진 불의와 폭력에 대해 추억만이라도 남겨 놓기 위하여, 그리고 재앙의 소용돌이 속에서 배운 것만이라도, 즉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는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사실만이라도 말해두기 위하여, 지금 여기서 끝맺으려고 하는 이야기를 글로 쓸 결심을 했다.
시내에서 올라오는 환희의 외침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리유는 그러한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 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 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이 소설의 끝 문장)
--작품 해설--
항독 지하운동가/지하신문 '전투'의 사설 집필자/
**페스트에 대한 평가:
2차 세계대전 직후 최대 걸작/ 2차대전은 페스트 착상의 기폭제/'전쟁'이 '페스트'로 바뀜/페스트는 전쟁의 내면화 과정을 상징하기 위해 사용된 것
(2차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예기치 못하게 카뮈에게 일어난 사건들을 기자의 본능으로 일일이 작가수첩에 메모해 놓은 것이 후에 대작을 낳았나 보다. 직접체험만한 소재가 어디 있으랴)
(413)그러나 물론 현실 속에서 겪은 체험이 의미있는 작품이 되려면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 필요한 변용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414)현장에서 겪은 '파리해방의 체험'은 자연스럽게 '페스트에서 해방된 오랑시'의 흥분과 열광으로 묘사된다.
(421)4부는 앞서의 2부에서 페스트에 대응하기 위해 제시된 세 가지 태도, 즉 도피, 초월(체념), 반항이 구체적 경험을 통한 반성에 의해, 혹은 새로운 시련과 문제에 부딪침으로 인해 '반항'이라는 불가피하고 단일한 대응방식으로 집약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422)파늘루 신부와 어린아이의 죽음: 사실 첫번째 설교에서 이미 우리는 기독교 옹호를 위한 독단론과 웅변에 가려진 채로나마 은연중에 엿보이는 그의 근본적인 선의와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종교적 신념이 맞닥뜨리게 된 가장 커다란 시련은 한 어린아이의 죽음이다. 이 작품 속에서 가장 강한 조명을 받으면서 그려지고 있는 이 장면은 페스트를 신화적인 차원으로 승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파늘루에 대한 리유의 항변은 이 책을 '가장 반기독교적인 책'이라고 카뮈 스스로 밝힌 이유다)
(431)서기 그랑은 이름 그대로 '위대한' 일면을 갖고 있는데, 서술자는 그랑이야말로 이 이야기 속의 한 사람의 영웅으로 그리고 있다. 약간의 선량한 마음과 아무리 봐도 우스꽝스럽기만한 이상밖에는 없지만, 적절한 말을 찾는데 고심하는 그랑은 선량한 마음과 더불어 우스꽝스러운 형태로나마 하나의 이상을 대표하는 일종의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수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랑은 페스트에 감염되었다가 최초로 회생한 인물이 될 수 있었고 페스트에 대한 승리의 분기점이 될 수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나마 그랑이 찾고 있는 말은 작가 카뮈가 찾고 있는 말과 다른 것이 아니다. 그말은 곧 모든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행동의 형식으로서의 최후의 말인 것이다. 사실 이런 점에 있어서 그랑은, 작가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을 서술자와 동일한 목표를 겨냥하고 있는 셈이다.
(434)등장인물로서의 의사 리유, 객관적인 증인 및 네레이터로서의 리유가 작가 카뮈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라는 것을 우리는 은연 중에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밖에도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사실은 카뮈 자신을 닮았으며 부분적으로 카뮈의 생각과 태도를대변한다고 말할 수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주목하고 싶은 인물은 랑베르와 코타르이다.
(436)코타르는 과연 그 혼자만으로도 충분히, 독일군에게 점령된 프랑스 땅에서 적과 협력한 부역자 상을 뚜렷이 암시해 주고 있다.
코타르가 이처럼 가장 어둡고 부정적인 인물이라면 랑베르는 그와 반대로 가장 치열한 행복에의 갈구를 드러내보이는 긍정적 인물이다. 이 작품에서 진정한 승리자가 있다면 그는 바로 랑베르일 것이다.
(437)카뮈는 타루나 리유 혹은 그랑의 '영웅주의'보다 랑베르의 '행복에 대한 강한 욕구'를 앞세우고 있는 것이다.
(438)사실 이 작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든 고통스러운 투쟁은 바로 랑베르가 갈구해 마지않는 구체적인 '행복'과 '사랑'을 위한 것이다.
(439)노벨상 시상식에서 카뮈의 말:나는 부정을 표현했다. 세 가지 형태로 말이다. 소설로는 <이방인>이었고 극으로는 <칼리굴라>와 <오해>였으며 이념적 형태로는 <시지프신화>였다. 만약 내가 그것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그것에 대해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겐 전혀 상상력이 없어서 지어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있어서 이를테면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와도 같은 것이었다. 사람은 부정 속에서도 살 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으므로 시지프 신화의 서문에서 그 점을 미리 밝혀 놓았더랬다. 그래서 나는 다시 세 가지 형태의 긍정을 표현해 보고자 했다.
소설로는 <페스트>, 극으로는 <계엄령과 정의의 사람들>, 그리고 이념적인 것으로는 <반항적 인간>이 바로 그것이다.
<작가연보>
(443)조상은 프랑스 출신이었으나 후에 알제리로 이민간 것으로 추정
(445)1913년 루시앵 카뮈와 카트린 사이에서 차남으로 카뮈 출생
(446)1914년, 입대했던 아버지 군병원에서 사망함/귀머거리 삼촌에게서 수영과 낚시를 배우고/사고능력이 온전치 못하고 말수가 적은 어머니에게서 말없는 눈길로 애정을 표시할뿐인 어머니의 침묵을 감동적으로 받아들인다.
1923년, 초등학교 2학년 선생님의 무료 개인교습으로 중고등학교 장학생시험을 준비한다.
1957년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식장에서 연설한 '스웨덴연설'을 그 스승에게 헌정한다.
(카뮈는 가난에 더해 장애를 가진 집안 사람들과 지내면서도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게다가 보은의 마음을 잊지 않고 가장 영광스러운 선물을 그 스승에게 바친다. 그같은 행위로 미루어 그의 순결한 성품을 엿볼 수 있다.)
1925-1928축구의 골키퍼를 하면서 아랍친구들과 우정을 쌓는다.
1929 이모부의 집 서재에서 앙드레 지드를 만난다.
''지상의 양식'에 대한 카뮈의 생각'
그 기도하는 것 같은 문체가 열여섯짜리 소년에겐 난해했다. 그런 종류의 풍요라면 넘쳐나다 못해 물릴 지경이었던 것이다. 나는 아마도 그런 것과는 다른 어떤 부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1930 철학반에 진급, 철학교사 장 그르니에를 만나 그에게서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폐결핵으로 축구와의 인연은 끊게되고 장그르니에의 가정방문을 받는다. 선생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의 가난을 목도하게 된다.
1932년, 장그르니에의 권유로 앙드레 드 리쇼의 소설 <고통>을 읽는다.
(카뮈는 그 책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료했던 것 같다)
그는 지드를 높이 평가하고 프루스트를 예술가의 표상으로 삼는다.
장 그르니에의 '섬'을 읽고 '지상의 양식'에 비견할 만하다 했다.
1933넌, 프랑스어 작문 1등, 철학 2등/말로의 인간조건이 콩쿠르상 수상/카뮈에게 큰 영향을 끼침
1934년, 21세에 20세의 매력녀 시몬 이에와 결혼/그녀는 모르핀 중독자
1936년, 아내의 부정을 알고 이혼을 결심한다.
1938년,철학교수 자격시험에 응시하려했으나 폐결핵 후유증으로 인한 공직 부적격 판정을 받고 포기함(가장 가슴 아픈 일)
카뮈는 주로 신문사나 잡지사에서 일을 하게 된다.
1940년 12월 프랑신 포르와 결혼한다.
1941년 7월, 오랑에 티푸스가 창궐한다.
1942년, 독일군 프랑스 점령으로 아내와 연락 두절, 이별의 고통을 체험한다.
1945년 8월, 카뮈는 '콩바'지에 인류의 미래에 대한 예언을 한다.
"기계 문명의 야만적 횡포가 극에달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집단자살이냐 아니면 자연과학적 성과의 현명한 사용이냐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1945년 9월 쌍둥이 남매 출생.
1947년 6월10일 <페스트>출간/카뮈의 저서들 중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작품/비평가상 수상/페스트의 성공에 카뮈는 오히려 우울해진다
1952년 8월, 사르트르와 정치적 견해 차이를 보이며 카뮈는 상처를 입음
1953년 연기와 연출활동을 계속함
1954년 카뮈가 글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아내가 심각한 우울증을 앓음
1956년 카뮈의 종교관:
"나는 신을 믿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신론자인 것은 아니다."
1957년 10월16일 노벨문학상 수상소식을 접한다/프랑스 작가론 아홉 번째, 최연소(44세)
역대 프랑스인 노벨문학상 수상자:(2021년까지 15명에 이르러 최다 수상 국가)
1901 쉴리 프리돔-1904 프레데릭 미스트랄-1915 로맹 롤랑-1921 아나톨 프랑스-1927 앙리 베르그송-1937 로제 마르탱 뒤가르-1947 앙드레 지드-1952 프랑수아 모리악-1957 알베르 카뮈-1960 생 종 페르스-1964 장 폴 사르트르(수상거부)-1985 클로드 시몽-2000 가오싱 젠-2008 구수타프 클레지오- 2014 파트릭 모디아노
10월 19일 "내게 일어난, 그리고 내가 요구한 것도 아닌 일로 인하여 질려 있다. 모든 것을 결말 짓자는 것인지 내 가슴을 저미는 것만 같은 너무나도 비열한 공격들"
(카뮈의 수상 소식에 대한 각계각층의, 그리고 가깝다고 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질투 섞인 비아냥거림들은 필경 그를 지치게 했으리라, 페스트가 잘 팔릴 때 그랬던 것처럼. 아마도 카뮈는 마음이 무척 여린 사람이었던 것 같다.
인간의 사악함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나같은 미물도 그런 느낌에 휘말릴 때가 종종 있거늘~)
1958년 6월:거의 한 달간 그리스 크루즈 여행을 한다.
"그리하여 바다는 모든 것을 씻어 줍니다"--장그르니에에게 보낸 편지
1959년 도스토옙스키 원작 악령 연출-앙드레 말로가 객석에서 관람
1960년1월4일:미셸 갈리마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파리로 가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
(덧없기로는 차사고 만한 것이 있을까!)
묘지:남불 루르마랭 마을의 공동 묘지
(가정적으로는 열악하기 짝이 없는 환경이었지만 그는 시대를 잘 타고 났다.
기라성같은 문인들이 그의 주변에서 그에게 직간접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니까~
장 그르니에/앙드레 말로/앙드레 지드/싸르트르/프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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